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35
134화
“이 집은 겉에서 보기에는 한옥인데 안은 왜 일반 집 같이 생겼냐.”
“그럼, 21세기에 창호지 바른 문을 쓰냐? 난방비가 더 나오겠네.”
어이없는 소리를 하는 수원의 모습을 보고 나는 기가 차서 말했다.
“집 생긴 것만 보면 창호지여야 하는 거 아니냐? 손가락에 침 묻혀서 구멍 뚫고 첫날밤 구경하는 맛이 있는 건데, 저건 무늬는 창호지인데 유리잖아.”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어요 아저씨. 얼른 너네 집으로 돌아가세요. 너는 결혼식이 끝났으면 얼른 돌아가야지 왜 여기에 있는 거냐.”
결혼식이 끝나고 모든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서 이 제주도 집에는 나와 메건 그리고 수원의 가족들만 남아 있었다. 물론 몇 명의 경호원도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출퇴근을 하는 입장이었고 집 안이 아니라 입구에 있었으니 제외.
유재욱은 오랜만에 한국의 가족을 만나러 간다며, 크리스의 손을 잡고 서울로 올라가 버렸다. 너네 휴가 아닌데….
나 역시도 곧 결혼식 때문에 2주간 자리를 비워 놓은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데, 얘네 가족은 언제 돌아가려고 여기에 있는 거야.
“집이 없어서….”
“불쌍한 척하지 마. 집이 없는 게 아니고 판 거를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집 팔아서 돈 나왔잖아. 그리고 산타모니카에 있는 내 집에서 지내잖아.”
“쳇. 나도 제주도 와 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고. 중학교 수학여행 이후로 처음이란 말야.”
“나는 태어나서 처음인데요. 그리고 여기 그저께 결혼한 신혼부부 있는 곳이에요.”
남들 수학여행 갈 때 나는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나갔었다. 그러고 보니까 수학여행이고 뭐고 가 본 적이 없구나. 학교를 다니면서 다들 그런 추억 한두 개씩은 갖고 있을 텐데, 나에게는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수원이와 함께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 예전 생각들이 많이 떠올랐다.
“두 분 식사하세요.”
“네에~”
수원의 부인이 식사 때가 되었다며 부르는 목소리에 우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이라고 해 봐야 특별할 것은 없었다. 바닥에 앉는 것을 불편해하는 메건을 위해 식탁과 의자를 놓은 것이 전부인 거실과 가까운 방.
그 방의 안에는 이미 식탁에 앉은 메건과 수원의 딸 지유가 앉아 있었다. 둘은 말 한마디도 통하지 않으면서도 꼭 붙어 있어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지유 너무 귀여워요. 괜히 사람들이 딸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겠어요.”
“아빠~! 이 언니가 뭐라고 하는 거예요?”
메건은 지유의 말랑말랑한 볼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나를 향해 말했고, 그와 동시에 지유는 나와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온 수원을 향해 물었다.
대체 말도 안 통하는데 어떻게 둘이 같이 있는 거지.
나는 이 믿을 수 없는 식탁에 앉아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아야 했다. 둘은 떨어지지 않았고, 지유는 식사를 시작했을 때도 메건의 무릎에 앉아 밥을 먹었다.
“응? 전화 왔었네?”
“아, 아까 밥 먹기 전에 왔었는데 깜박하고 말을 안 해 줬었네?”
수원은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자신의 전화를 보며 말을 했고, 수원의 부인은 전화가 온 것을 보았지만 말을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일이 아닌 것처럼 넘어가서 정말 아무 일도 없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기분 좋게 밥을 먹고 마루로 돌아와 다시 턱에 앉아 있었더니, 전화기를 들고 돌아온 수원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왜, 무슨 전화길래 표정이 그래? 세금 내래?”
“세금 낼 걱정을 할 만큼 많이 벌지도 않았어. 내가 무슨 탈세범이냐?”
“그러면 표정이 왜 그래?”
“한국에 몇 달 만에 들어왔는데 썩 좋은 소식은 아니네.”
수원은 잠시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만들어 준 곡 넘겨줬던 회사. 망했대.”
“응? 그래? 뭐 사업한다는 게 어렵지.”
나는 정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경영을 하는 사람의 판단이 잘못되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사업성이 떨어지는 것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망하는 일도 있을 수 있으니까.
한 해에도 수천 개의 기업이 생겨나고 사라지는데, 하나의 회사가 망한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나 때문인가 싶어서.”
“회사가 망하는 게 왜 너 때문이야?”
나의 질문에 수원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대답하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까지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데….
“거기 사장이 너한테 곡 하나만 써 달라 전해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내가 거절했었거든.”
“곡 하나 안 써 준다고 회사가 망하는 건 있을 수가 없지 멍청아. 그냥 너한테 책임을 떠넘기고 싶은 거 아냐? 사람 한 명 때문에 망하는 건 이미 회사가 아냐.”
가만 보면 수원이는 회사 생활까지 했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이런 단순한 일 하나로 회사가 망하는 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당연하지. 사람이 부탁 한 번 거절했다고 회사가 망하는 게 말이 되겠냐고. 그리고 음악 회사면 나 말고도 작곡을 하는 사람이 수십 명은 될 텐데, 곡 하나 없다고 회사가 망하겠냐. 상식적으로 생각해. 상식적으로.”
“그래, 괜히 나에게 책임을 묻고 싶어서 그런 걸지도 몰라.”
“그건 그렇고 너 집에 언제 가냐? 나 며칠 전에 결혼했는데, 단둘이 좀 있었던 적이 없어.”
***
정현은 사람 하나로 회사가 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수원에게 말했지만, 유지현이 활동하지 않는 체리 엔터테인먼트에서 발생할 수익은 수직으로 곤두박질칠 것이라는 업계의 전망이 나왔다.
전 세계적으로 팔렸던 유지현의 앨범 판매 수익과 스트리밍 수익이 엄청났기에 유지를 하고 있었지만, 은퇴하게 된다면 다른 사업 분야에서 기대 수익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부분이 인정되어 아르테미스에서 전 체리 엔터테인먼트 사장인 박재경은 사기 혐의로 기소가 되었다.
사업성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으면서 기업의 합병을 이뤄내며, 상대적으로 거대한 차익을 거뒀다는 것이 인정된 것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며 이정현이 만들어 낸 두 번째 K팝 붐으로 후끈하게 달아오르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는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주식 시장에 상장했던 기획사들의 주식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수많은 주주들의 추궁과 기업 가치 재평가로 인해서 시장에 끼어 있는 거품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람 한 명이 은퇴하는 것으로 인해 경쟁이 치열한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상위권에 있던 회사가 망할 것으로 나온 전망이 사실인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었다.
가수 혹은 배우. 그 어떤 종류의 연예인이라도 상관없이 한 명만 띄우면 된다는 식의 막무가내 경영을 하던 많은 기업들이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것에 빨간불이 켜졌다.
체리 엔터테인먼트가 돌멩이가 되어 엔터테인먼트 업계라는 커다란 호수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것이었다.
정현이 제주도에서 가족, 지인들과 함께 결혼식을 치른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일은 기사가 되어 전파를 타고 한국 전역에 퍼져나갔다.
법원의 기소 통지서를 받아 본 박재경의 마음은 복잡했다. 자신은 회사의 사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르테미스의 조어진 사장에게 인수 제의를 했었던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그 원인이 되었던 조어진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는 순간의 분노로 저질렀던 일이었기에, 조금은 후회가 되기도 했다.
아르테미스의 조어진이 인수 거부를 하며 계약 파기를 요구했었을 때도 이미 성립된 계약이라는 생각에 배짱을 부렸던 박재경.
자신의 안에서는 이미 끝나 버린 일이었지만, 사기 혐의로 기소되어 검찰청에 출두해 조사를 받아야 하는 날짜가 적혀 있는 기소장을 바라보며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지…?”
재경은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전국적으로 퍼져 버린 재경의 만행을 알면서도 나서서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은 없었다.
개인이 만든 자영업도 아닌 주식회사의 부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숨긴 채 다른 회사에게 인수 제의를 했던 경영자에게 긍정적인 시선을 줄 사람은 없었으니까.
전화기를 들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신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기에, 한참 동안 절망적인 생각을 하며 미친 사람처럼 울고 웃었다.
드르르르-
그때 재경의 손에 쥐어져 있던 전화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울려 대는 사람들의 연락을 피하기 위해 전화벨조차도 진동으로 바꿔 두었기에, 자신의 전화기가 울린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전화기에 떠 있는 전화번호는 자신의 연락처 목록에 없었기에, 그저 두 눈에 보인 것은 오로지 숫자뿐.
꿀꺽.
가슴이 떨려오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은 생각조차 나질 않았고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대체 내가 무슨 일을 했다고 이러는 거야….’
전화기를 두 손에 꼭 쥔 채로 재경은 눈을 감고 속으로 비명을 질러 댔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내면 혹시나 집 앞에 전화를 받기를 기다리던 사람이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숨도 쉴 수 없었다.
그만큼 재경의 마음속은 절망으로 물들어 피폐해져 있었다.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소리 내어 말을 해 보아도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손에 쥐어져 있던 휴대폰의 진동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멈추었지만, 그 멈추기까지의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휴우….”
진동이 멈추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온몸에 배어 있는 식은땀에 오한이 느껴질 때쯤, 다시 한번 작은 진동이 한번 울렸다.
[서울 지검 특수 수사과입니다. 검찰청 소환 조사에 대한 출석 여부 확인차 연락드렸습니다.]그 문자는 자신만의 생각에 잠겨 있던 재경을 현실로 꺼내어 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손이 떨려 왔다. 숨도 쉴 수 없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문자메시지를 지웠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연락처를 열어 전화를 걸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많던 연락처 목록에 자신의 전화를 받아 줄 사람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이름이 뉴스에서 나왔다. 유지현이었나 하는 걔가 있던 회사가 체리 엔터테인먼트 아니었나?
TV 화면은 뉴스 앵커가 있는 화면과 어느 건물 앞에 있는 현장, 두 개의 화면으로 나뉘며 계속 이어졌다.
박재경이라는 이름도 어디에선가 들어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잘은 기억나질 않았다. 뭐 워낙에 흔한 이름이니까.
“재밌는 건 없나요?”
“이건 한국어를 알아들어도 재미 없을 거예요. 그렇게 재밌는 소식은 아니라서. 뭐 보고 싶은 거 있어요? 영화 볼래요?”
TV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가 메건의 말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리모컨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 봐도 영어로 나오는 것이 없었기에, 차라리 영화를 보는 게 낫겠다 싶어서 되물었다.
메건은 그렇게 되묻는 나의 얼굴을 지긋이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그러면 TV 말고 나를 보면 안 될까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꿀꺽.
메건의 말이 끝난 뒤, 내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낮에 지유와 놀아 주던 그 참한 아가씨는 온데간데없이, 매일 밤 불타오르는 푸른 눈을 가진 맹수가 다가오고 있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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