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36
135화
철이 들고 나서 남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나는 한국 여자의 심리를 잘 알지 못하기도 하고, 한국 여자와 연애를 해 본 적도 없다.
다른 사람들은 누나가 둘이 있어서 여자의 심리를 잘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남동생에게 있어서 누나라는 존재는 여자가 아니라 웬수에 가까워서 여자의 심리를 이해하는 대상으로는 부적절.
그래서 나는 한국 드라마나 광고에 나오는 ‘나 오늘 뭐 달라진 거 없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하호호 하며 재미있게 놀고 있던 한 커플이 이 말 한마디로 인해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행복했던 분위기가 스릴러의 살인마가 나오는 것 같은 배경 음악으로 바뀌며 긴장을 고조시킨다.
“야, 저거 왜 저러는 거냐? 뭐가 달라진 건데?”
“너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아직도 미국에 돌아가지 않은 수원이는 대낮부터 TV를 켜 놓고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내 옆에서 과자를 먹고 있었다.
“몰라서 묻는 거지. 알면 물어보겠냐?”
“참 편하게 산다…. 영국 여자는 저런 거 안 물어봐?”
“그러니까 저런 게 뭔데?”
“아냐…. 모르는 게 낫다.”
영국 여자가 어땠더라?
다른 사람들 앞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둘만 있으면, 좀 야성이 넘친다는 것 정도일까? 메건 말고 다른 사람은 잘 떠오르질 않았다.
한국 여자에 대한 이미지는 어렸을 때 잠들기 직전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던 누나들밖에 없었다. 그렇게 불러서 놀란 마음에 찾아가면 아무 일도 없다며, 가는 길에 자기 방 불을 꺼 주고 가 달라는 말을 했더랬지.
다시 생각해 보니까 열 받네.
어찌 되었건 한국의 드라마나 광고 같은 것들을 이해할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게 조금은 어색했다. 어릴 때는 그래도 많이 봤었던 것 같은데, 10년 넘게 떠나 있다 보니 이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들도 생겨났다.
어쩌면 이게 문화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그 문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조금 답답함이 느껴져, 바람을 쐬고 싶어졌다.
“바닷가나 갈래?”
“메건 씨랑 둘이 갔다 와. 둘이 데이트도 제대로 못 해 봤잖아. 서울이면 움직이지도 못할 테지만 제주도니까 괜찮을 거야.”
“그래 그럼 집 잘 보고 있…. 아냐 너 얼른 미국 가라. 마리한테 이야기해 둘 테니까 네가 안젤리나랑 작곡해서 시에스타한테 넘겨주고.”
“뉘예뉘예.”
나는 대청마루에 놓여 있는 TV 앞을 벗어나 메건이 지유와 놀고 있을 뒷마당으로 향했다.
뒷마당의 잔디밭에는 메건과 지유 그리고 지유의 엄마인 최지회가 함께 돗자리를 깔고 나와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을 멈추지 않는 느낌이랄까.
“메건, 나랑 바다 보러 갈래요?”
“지금이요?”
만약 셋이서 노는 것이 재미있어서 벗어나기 싫어한다면 바닷가에 혼자 갈 생각도 했었지만, 지금 가는 거냐고 되물으면서도 아쉬워하는 눈치는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네, 지금.”
“가요. 잠시만 기다려 줄래요? 외투 가져올게요.”
내륙보다 따뜻한 제주도라고 하더라도 하더라도, 10월의 중순은 역시나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다.
메건과 함께 집을 나서기 위해 나도 재킷을 챙겼다. 대문 밖에 있는 경호원들에게 바닷가에 갈 거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경호원들에게 붙잡혀서 실랑이를 하는 사람이 보였다.
“저건 왜 저러는 거예요?”
“이곳을 어떻게 알았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이정현 경을 뵙겠다고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제주도에 머물고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신혼여행인데, 이 여행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경호원들이 막아 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조금 더 조용히 들어왔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보면, 이미 그전부터 내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지.
“이번 여행에서는 찾아오는 사람 없게 해 주세요. 그냥 우리끼리만 있고 싶어요.”
“네, 알고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건은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왔고 우리는 차를 타고 바닷가를 향했다.
***
합의를 원하는 재경에게 아르테미스 엔터테인먼트의 조어진이 고소 취하 조건으로 내민 것은, 유지현의 계약 연장 혹은 합병 때 재경이 받았던 돈보다 많은 배상액.
재경은 회사의 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합병을 추진했던 터라 그만큼의 돈은 갖고 있질 않았다. 마지막 희망은 지현의 계약 연장이었지만, 지현 역시 재경의 전화를 피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뉴스에서 정현이 현재 제주도에서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재경은 뒷일은 생각도 하질 않고 비행기에 올랐다.
‘지현이가 이정현의 광팬이니까, 한마디만 해 주면 될 거야….’
근거 없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제주 국제공항에 내려 정현의 집을 찾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기자들이 몰려드는 장소를 찾아다니던 재경.
새벽같이 집에서 출발했지만 오후가 되어서야 정현의 집을 찾아낼 수 있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수많은 경비원들이 집 앞을 서성이고 있었고, 그 사이를 뚫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기에 오히려 당당하게 그 사람들에게 인사까지 하며 앞으로 나섰다.
외국인들로 보이는 경비원들을 상대로 어린 시절 열심히 공부한 영어가 통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당당하게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습니까?”
“저 정현이 과외 선생님이에요. 티쳐 아시죠 티쳐?”
“미리 약속되지 않은 분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 있는 곳의 한가운데에 지어진 한옥. 담장만 넘어가면 바로 정현이 있을 것이라고 여겨졌지만, 집을 지키는 경비원들은 도무지 자신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
믿어주기는커녕 손을 뻗어 가까이 올 수 없도록 멀리 밀어냈다.
“잠깐만요! 딱 1분이면 된다니까요. 저 이정현이랑 잘 아는 사이라고요!”
“잘 아는 사이면 전화를 하셔야죠. 안 됩니다.”
정현의 집을 지키고 있는 경비원들은 단호했다. 재경이 찾아와 아는 사이라고 소리를 쳐도 들은 척도 하질 않았다.
그때 멀리 나무로 만들어진 대문이 열리고 정현이 나와 경비원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다.
재경은 이때다 싶어 자신의 몸을 경비원에게 부딪치며, 크게 소리를 치고 손을 흔들었다.
“정현아! 이정현! 나 재경 쌤이야 모르겠어?”
“이러지 마세요. 관계자가 아니시면 지나가실 수 없습니다.”
“놔 봐요. 나 정현이랑 아는 사이라니까요! 같이 밥도 먹고 책도 보던 사이란 말이에요!”
아무리 크게 소리를 질러도 저 멀리 보이는 정현은 잠깐 쳐다보곤 신경을 쓰질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문에서만 보았던 정현의 부인이 등장하더니 차를 타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재경은 허탈했다.
정현이 지현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고 믿고 새벽같이 비행기를 타고 도착했던 제주도였지만, 말 한마디 섞는 것이 불가능했다.
“여기서 이러지 마세요. 사유지입니다. 경찰 부르기 전에 가세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울었지만 그 누구도 자신이 우는 것에 대해 신경조차 쓰질 않았다.
***
“제주도 물이 맑다더니, 바닷속이 다 보이네.”
“날씨만 따뜻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바닷속이 훤히 보이는 모래사장을 맨발로 걸으며, 메건은 물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다.
“얼른 돌아가야죠. 학교에서 내준 결혼 휴가가 2주뿐이니까요.”
“학교는 재밌어요?”
두서없이 날리는 메건의 질문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전혀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썩 연주를 잘하는 아이들도 아니었고, 그 안 좋은 연주에서 가장 안 좋은 부분들을 짚어나가는 것도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무슨 콩쿠르를 우승했다며 내 덕이라고 찾아오는 것이 조금 웃겼다. 그런 실력으로 우승이라고?
메건의 질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학교생활의 안 좋은 점만 잔뜩 떠올랐다.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골방 같은 사무실에 사무원이라고 있는 학생은 수다쟁이. 매일 신문만 보며 대기하는 경호원까지.
“썩 재미있는 것 같지는 않네요. 그냥 리처드 경이 학생들을 가르치면 영국의 음악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는 이야기에 남아 있는 거죠.”
“그렇게 재미가 없다면 계속하기는 무리 아닐까요.”
파도가 밀려와 발을 적시며 간지럽혔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게요. 아마 조만간 그만두지 않을까 싶어요.”
나는 덤덤하게 답했다. 말에 도무지 감정이 실리지 않았다.
학교에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음악계의 발전이 된다 한들 내가 느낄 수 있는 재미 같은 것은 없었으니까.
“그만두고 뭘 하시려고요?”
메건은 나에게 다가와 자신의 손가락을 나의 손가락 사이에 끼우며 깍지를 끼며 물었다.
“글쎄, 뭘 할까. 메건이랑 여행이나 다닐까요?”
메건은 대답을 하는 대신 나를 바라보며 웃어 주었다.
“여기에서 사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지 않아요? 학교를 그만두면 여기에서 살까요?”
“저 런던에 돌아가서 이력서부터 써야 해요. 다시 일을 구해야 하니까.”
이렇게 한가로운 분위기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메건은 다시 직장을 구하겠노라 말했다.
“메건이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나는 괜찮은데. 나 생각보다 돈 많이 있거든요.”
게다가 내 회사도 있으니까, 굳이 직장을 구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지만 메건은 단호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일을 한다는 건 내가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돈을 번다는 건 그다음 문제죠. 가끔씩 여행을 가는 건 좋지만, 평생 여행만 다니며 살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면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는 건 어때요? 한국어를 익히는 데에도 도움이 될 텐데. 어학원을 다닌다거나.”
조금은 충동적인 말이었다. 한국이 그리웠던 적은 몇 번 없지만, 이렇게 돌아와서 한국어를 쓰는 것이 조금은 반가운 느낌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은 어디를 가더라도 한글로 된 표지판을 볼 수가 있었으니까.
“여기에 제가 다닐 만한 회사가 있나요? 저는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 하는데?”
“이력서를 넣어보고, 없으면 만들면 되죠.”
기존에 다니던 곳이 영화 음악을 만드는 곳이라고 했던가. 작곡과에서 무얼 배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은 나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드는 것은 대부분 내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면이 있었으니까.
“나쁘지 않은 제안이네요. 일단 런던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볼게요.”
“그래요. 한국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큰 차이가 없을 테니까.”
태평한 말이었지만 그 말이 어쩌면 우리의 사이를 정의 내리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곳이 어디라도 상관없다는 것.
런던으로 돌아가서 리처드에게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 그러면 내가 미국에서 자리를 잡으라고 했던 수원이는 어떻게 하지…? 아 몰라. 알아서 하겠지.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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