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37
136화
사실 한국으로 가기 전에 런던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서 한국 국적 회복을 신청했었다. 결혼으로 인해 이중 국적이 인정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굳이 한국 국적을 포기할 필요가 없었다.
한국에 들어올 때 여권이 하나뿐이라 영국의 여권을 제출했었지만, 대사관에서 받은 한국의 여권을 손에 쥐자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정현 씨 다시 한국인이 되신 걸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여권을 손에 쥐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면세 조건까지 얻어냈는데, 굳이 한국에 가서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
메건에게 한국에서 사는 것은 어떠냐고 물어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또 생각해 보면 영국이 더 편한 것 같기도 했다.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십니까?”
“응? 아니에요. 그냥 좀 고민이 되어서요.”
경호원이 평소의 나와 다른 분위기라 생각했는지, 가까이 다가와 무슨 일이 있느냐고 걱정하는 말투로 물어볼 정도였다.
오히려 미국의 분위기가 나와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뒷마당의 그 선베드에서 지내는 것도 적당히 좋은 느낌이었으니까.
게다가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겨울에도 굉장히 따뜻해서, 날씨가 어중간한 영국이나 극과 극으로 나뉘는 한국보다는 살기가 편했다.
바로 옆에 LA 한인 타운이 있으니까 한식을 먹는 것도 괜찮은 느낌이었고.
수원이는 미국에서 사는 경험도 자신에게 도움이 될 거라며 오히려 한국보다는 미국에서 살고 싶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사 놓은 집에서 사는 것이 좋았던 모양.
SNS에 수영장부터 시작해서 집 안 곳곳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게다가 내 이름으로 된 회사에서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 곳은 미국이 유일했다. 영국에서는 음반 유통만 담당하고 있었고, 한국의 법인은 폐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이것저것 떠올려 보았지만, 결론이 나질 않았다.
어느 나라에서 사는 것이 가장 좋은가라는 생각은 결론이 나질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참 동안 고민을 했지만 성과 없이 시간만 낭비한 꼴이 되었다.
“어차피 세 나라에 집도 다 있는데 세 군데 다 살면 되지 뭐. 아 몰라.”
고민하는 데 지쳐서 더이상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아서 소파에 엎드려 있을 때, 메건이 들어왔다.
“저 왔어요.”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메건은 최근에 컴퓨터로 이력서를 여기저기 보내느라 지쳤을 법도 한데, 면접까지 보러 다니느라 불편한 정장에 구두까지 신고 돌아다녔다.
집에서 뒹굴대는 나와는 전혀 다르게 커리어우먼 같은 느낌이 났다.
“오늘 학교 안 가는 날이라고 너무 퍼져 있는 것 아니에요?”
“오늘은 온종일 생각하고 있었어요…. 누워만 있던 건 아니라고요.”
어떻게 딱 소파에 누울 타이밍에 들어와서 너무 퍼져 있다고 말을 하는 메건.
언제나 그렇지만 들어오는 타이밍이 절묘하다니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셨길래 낮부터 누울 정도로 지치셨어요?”
“…영국과 한국, 미국 중에 어느 나라에 자리를 잡는 게 좋은가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결론은 났어요?”
“집은 세 나라에 모두 있으니까. 그냥 돌아다니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메건을 생각하면 런던이 좋고 우리 가족들을 생각하면 한국이 좋겠지만, 캘리포니아 날씨가 너무 좋거든요. 그래서 결론이 안 났어요.”
적당히 고개를 소파에 파묻고 대답을 하고 있자 메건이 다가와 소파에 앉고 내 얼굴에 차가운 손을 가져다 대었다.
“결국 그렇게 결론이 날 것 같았어요.”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하는 메건.
“결정하기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특히 SNS에 올라온 수원이 가족 사진 때문에 더 결정하기가 어려웠어요.”
“저도 봤어요. 사진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 집도 이정현 경 꺼라고 하던데.”
“처음에 산타모니카에 도착해서 샀던 집이에요. 바닷가가 보이는 데다가 인피니티풀까지 있어서, 휴가를 보내기 좋을 것 같았거든요.”
“저도 언제 가 보고 싶어요.”
메건은 미국의 집에 가 본 적이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지만, 그곳에서 메건의 얼굴이 떠오르지는 않는 것을 보면 정말 없었던 모양.
“다음에 한번 같이 가요. 어차피 내 집이라 수원이가 자기 살 곳을 찾을 때까지만 지낼 거거든요. 곧 다시 비워질 거예요.”
“그래요. 그런데 내가 들어왔는데도 그렇게 엎드려만 있을 거예요?”
“앗! 미안해요. 생각하다 지쳐서.”
밖에서 일하다 들어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불편한 구두를 신고 면접장을 돌아다니다 들어온 메건이었기에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메건에게 다가가 가볍게 안아 주었다.
이것은 애정 표현을 하는 것을 어색해하는 나에게 메건이 부탁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했지만 영국에 돌아와 며칠 동안 반복하며 익숙해진 것인지, 이제는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다.
“세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사는 건 즐거울 것 같네요. 좋은 생각이에요.”
“비행기 티켓이 많이 필요할 거예요.”
아무리 에릭과 시에스타의 음반이 많이 팔린다고 하더라도, 전용기를 구매할 정도로 많이 벌리지는 않았다.
게다가 전용기는 사는 것보다 유지비가 더 많이 필요할 것이라는 말에 비행기를 사는 것보다, 그때그때 표를 끊어서 돌아다니는 것이 편리할 것 같았다.
“이번 학기가 끝나면 바로 한국으로 가는 건가요?”
“메건이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면 말이죠.”
“음…. 아마 쉽게 구해지지는 않을 거예요. 사람들이 저보다는 이정현 경에 대한 걸 부담스러워하더라고요.”
메건의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 영화 음악을 하는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왜 나에 대한 것을 부담스러워하는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저는 영화 음악을 만든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요?”
“…만든 적이 있건 없건 그 사람들에게 그런 게 중요하겠어요? 이정현 경에게 붙은 이미지 때문이에요.”
“이미지?”
“본인은 모르겠지만, 모든 장르의 음악을 다 한다는 이미지가 있거든요.”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다. 나야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왔지만 그게 장르가 다 달랐을 뿐이었지, 모든 장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으니까.
억지로 노리면서 그렇게 다양한 음악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해 본 적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게다가 영화는 음악을 들으려고 보는 게 아니잖아요.”
“제 말은 그런 이미지 때문이라는
거예요. 평가당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게다가 이정현 경은 평가할 때 브레이크가 없이 짚으니까요.”
메건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가장 부족한 부분을 짚어내는 것뿐이었는데, 그걸 브레이크가 없다고 표현하다니.
마치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잖아.
내가 그렇게 악랄한 악당처럼 말했던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말이지.
“뭐, 가장 부족한 부분을 알아야 빠르게 나아지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듣는 사람은 괴로워요….”
메건의 곡은 일부러라도 아무런 말도 안 해 주려고 했었지만, 어쩔 수 없이 한 번은 해야 했다.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첨부할 곡을 평가해 달라는 말 때문이었다.
회사의 지원 이력서와 함께 동봉이 되어 이메일로 발송되는 일반적인 형태의 포트폴리오.
예술 계통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류만으로 능력을 판별할 수 없기 때문에, 포트폴리오라는 형식으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는 대표적인 무언가를 첨부해야 했다.
그 상황을 떠올렸는지 조금 전까지 힘들어하던 나와 멀쩡한 메건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내가 멀쩡해지고 메건이 힘들어했다.
이렇게 힘들어할 정도로 괴로운 일이었나 싶었지만, 나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부족한 면이 보이는 것을 말했을 뿐이었으니 이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뭐 결국에는 완성했잖아요. 그러면 된 거죠. 그래서 내가 메건의 곡에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요.”
“미안해요. 하지만 마음이 좀 급했어요. 이력서는 완성했는데, 포트폴리오가 완성되질 않아서….”
“이력서 나한테도 한번 보내봐요. 내가 만들 회사에서 쓸 수 있는 사람인가 확인해 보게.”
“지금 있는 회사 말고 다른 회사를 만들려고요?”
내가 장난스럽게 한 말에 메건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한국에 집만 있다고 머무르기에는 너무 별장 같은 느낌이잖아요. 놀러 가는 것도 좋지만 1~2년씩 머무르려면 집 말고 회사도 있어야죠.”
“…정말 세 나라에서 전부 지낼 생각이네요, 이정현 경은.”
조금 전에 결론이 그렇게 났다니까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야.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으니까.
결국에는 곡을 만들고 그것을 유통하는 것. 최근에는 내가 만든 곡이 없었지만, 빈 필하모닉과의 계약에 의해 내년까지는 만들어서 함께 협주를 해야 했다.
젠장. 그러고 보니 테마도 정하지 않았네.
“한국에서도 지내고 싶어졌어요. 결혼식 때문에 방문했을 때부터.”
“…내가 이력서를 보내더라도 웃으면 안 돼요. 아셨죠?”
“진지한 경영자의 눈으로 바라보겠습니다.”
실전이라는 것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지만, 기초와 응용이 다른 부분이 많다.
영화 음악으로 유명한 한스라는 작곡가는 주변에 보이는 모든 사물로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톱을 바이올린처럼 켜서 음악을 만든다든지 하는 것은 정말 극도로 응용 능력이 좋아야만 가능하다.
내가 들어보았을 때 메건의 작곡 실력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지금 내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에 비해서는 훨씬 낫다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학교를 졸업한 뒤에 실전에서 익힌 것들이 많아서인지, 획일화된 학교 스타일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편.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대부분 화성학을 이용한 화음 장난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우니까.
게다가 사실 메건을 채용하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편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함께 이 나라 저 나라를 기웃거리기에는 같은 일을 한다는 것도 크게 작용할 테니 말이다.
“보냈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미세스 메건.”
나는 웃음기를 지우고 메건이 보내준 이력서를 살펴보았다.
영국과 미국의 이력서에는 사진이 인종 차별이나 성적 차별을 조장한다는 주장 때문에 사진을 붙이지 않는다. 생년월일도 나와 있지 않다.
그저 자신이 해 왔던 일들을 줄줄이 나열할 뿐이었다.
면접을 보러 갔던 회사들이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메건의 이력서는 대부분의 회사의 서류 전형을 통과할 만큼은 되는 느낌.
영국에서 가장 실력 있다고 알려진 왕립 음악원을 졸업했다는 것도 큰 점수일 테지만, 실제로 작업을 했던 영화가 꽤나 히트를 쳤던 기록이 보였다.
겨우 두세 작품이기는 했지만, 실전 작업에 참여했다는 것에 큰 점수를 주고 싶었다.
아무런 실전도 겪지 않은 상태로 회사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지난번 미국의 면접에서 이미 한 번 겪어 봤었으니까.
“꽤나 경력이 화려하네요. 저희 회사를 지망한 동기는 어떻게 되나요?”
“…이러기에요? 아무런 준비할 시간도 주질 않았잖아요.”
“우리 회사는 쉬는 시간이 없어요. 아주 빡빡하게 돌아갈 겁니다. 1년 365일 나와 함께 있어야 해요. 괜찮으시겠어요?”
“풋….”
장난인 걸 알아챈 메건은 심각한 표정을 풀고 그제서야 웃음을 터뜨렸다.
“학기가 끝나면 나랑 한국에 같이 가요. 거기에서 회사를 세워 보죠.”
“저는 언제든 준비되어 있어요. 아무래도 너무 잘나가는 남편 덕분에 런던에서 취업이 안 될 것 같거든요.”
학기가 끝날 때까지 대략 한 달. 조금씩 계획을 세우기에는 적당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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