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38
137화
똑똑똑-
“들어오세요.”
사무실에 놓여진 짐들을 박스에 담는 도중 누군가가 노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종강을 한 상태라 학교에서 나를 찾아올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매일같이 아쉬워하는 리처드 정도?
학생들은 교수에게 상담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학교의 방음 연습실을 사용하기 위해 학교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집에서 마음껏 연습을 하기에 악기의 소리는 너무 크니까.
어차피 내가 2주 뒤에 시작되는 다음 학기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교수진들 이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학기가 끝났기 때문에 오늘은 사무원인 알렉산드라도 나와 있지 않은 날.
나중에 알게 되면 서운해하겠지만, 그런 것을 일일이 말해 줄 만큼 친근한 사이도 아니었다. 게다가 너무 수다쟁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말했다가 동네방네 소문을 내 버리면 내가 곤란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경호원도 오늘은 방이 아닌 외부에서 기다리는 중이었기에, 나는 방에 혼자 남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누구…. 아, 어서 와요! 정리 중이라서 많이 어수선한데, 무슨 일로 왔어요?”
사무실에 온 것은 내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 중 가장 열성적으로 질문과 감평을 부탁했던 학생.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그래도 얼굴은 기억이 났다.
“덕분에 쇼팽 콩쿠르 본선에 올라가게 되어서 감사 인사를 드리러 왔어요. 이건 선물이에요.”
“아, 벌써 콩쿠르가 시작하는 시기인가요. 본선이 마무리되는 5월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결과가 꽤 빨리 나왔네요. 그런데 뭐가 감사하다는 건가요?”
나는 짐들을 담아 두던 박스를 옆에 치워 두고, 학생의 얼굴을 마주했다. 두 손으로 건네주는 종이봉투 안에는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네모난 상자가 들어 있었다.
지금 당장 뜯어 내용물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왜 선물을 주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뜯을 수가 없었다.
얼굴을 다시 보자 상기된 볼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검은색 뿔테 안경에 가려진 눈 역시 빨갛게 변해 있는 것을 보니 한참을 울었던 것 같아 보였다.
“교수님께서 제 연주의 문제점을 짚어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아마 예선조차 통과하질 못했을 거예요….”
“응? 내가 문제점을 알려 주었다고 하더라도 연습을 하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어요. 예선을 통과한 것은 본인의 노력 덕분이지 누가 가르쳐 준다고 해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애초에 잘못된 버릇을 들인 것이 잘못이기는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 교정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이렇게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게 될 줄 몰랐기 때문이겠지.
자신의 연주에서 잘못된 부분을 알고 그 습관들을 고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거다. 일반인은 몰라도 프로 연주가가 되는 것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말이야.
종이봉투 안에 들어 있는 고급스러운 포장지에 싸인 네모난 상자를 손에 쥔 채 잠시 생각했다.
감사 인사를 하러 왔던 학생이 돌아가고 나서도, 차마 선물에는 눈이 가질 않았다.
뭐가 들어 있는지조차 궁금하지 않았다. 원래 교수는 선물을 받으면 안 된다는 룰이 있기에 다시 돌려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 보다가, 그래도 성의라고 생각해서 책상 위에 두었을 뿐이었다.
어차피 교수라고 불려지는 것은 오늘까지였으니까.
처음에 조금 설렘을 느끼며 들어왔던 건물의 후문을 통해 다시 나가는 길에 시원섭섭한 느낌이 들어 뒤를 한번 돌아보았다.
높다란 펜스로 둘러싸인 왕립 음악원의 건물을 나와 차가 세워져 있는 주차장을 향하면서 처음 들어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리처드의 부탁으로 처음 음악원에 들어왔을 때부터 시작해서 기자들 때문에 불편함을 느꼈던 일. 그리고 세 학기 동안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을 경험한 것까지.
“집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잠시 예전의 기억에 빠져 있을 무렵, 운전기사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음식점을 좀 들르죠. 메건에게 전화해서 뭐가 먹고 싶은지 좀 물어볼게요. 잠시만요.”
“알겠습니다.”
이제는 제법 자연스러운 귀갓길에 거는 전화까지 생각하면 변한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처음 교수직 제의를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없었던 부인이 생겨 버렸으니까.
차창 밖으로 지난 1년 동안 왕립 음악원을 오가며 보아 왔던, 익숙한 런던 시내의 풍경들이 조금씩 뒤로 지나쳐가고 있었다.
***
업계 3위를 차지하던 연예 기획사가 최종 부도 처리되고, CEO였던 박재경이 기소되면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춘추 전국시대가 되었다.
부동의 업계 1, 2위를 제외한 나머지 회사들은 서로 아웅다웅하며, 비어 있는 3위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정현이 한국에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불과 한 달 전에 결혼식을 위해 한국에 들어왔었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에 이번 귀국에 큰 파장이 있지는 않았다.
얼마 전에 결혼식을 하기 위해 들어왔을 때처럼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다시 출국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기자들 역시 짧은 기사로만 출국을 알려 왔고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지난번 결혼식의 출입이 거절되면서 부정적인 생각들을 많이 갖고 있었지만, 그런 것을 기사로 만들지는 않았다.
과거 정현이 했던 대규모 소송으로 인해 많은 잡지사들이 문을 닫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무런 일도 없이 잠잠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정현이 귀국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35년 2월.
사람들의 관심은 정현이 아닌 유지현에게 쏠렸다.
재계약도 은퇴 선언도 없이 아무런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궁금함을 담아 게시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유지현 재계약 발표 났냐?
-아직 안 남.
-당연히 아르테미스 가는 거 아님? 가면 수박 플레이어에서 나오는 수익에 수수료도 덜 뗄 것 아냐.
-나는 체리 엔터에서 유지현 이후로 준비하던 연습생을 모두 잘라 버렸다는 게 너무 충격이다. 어떻게 회사가 한 명한테 의지를 해서 운영을 하냐. 연예계에 1인 기획사도 많지만 체리는 아니었잖아.
그렇게 대중의 관심이 깊어지자 각종 미디어는 유지현의 재계약 상황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디바로 손꼽히던 유지현이었기에, 재계약을 할 수 있는 업체로는 당연히 업계 1위인 아르테미스를 꼽았지만 협상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질 않았던 것이 원인이었다.
체리 엔터테인먼트가 부도 처리되는 과정에 이미 유지현의 계약은 기간 만료가 되었지만, 언론의 보도는 부도의 책임에 대한 프레임을 유지현에게 씌우는 자극적인 말들로 꾸며져 있었다.
결과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직접적으로 부도가 나게 된 원인이었던 배상 금액 납부 실패에 대한 내용을 모두 빼 버리자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란으로 가득 찬 한국의 연예계에 떨어진 폭탄. 바로 정현이 한국에 회사를 세웠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유지현에 쏠려 있던 사람들의 관심은 한순간에 이정현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
“현아, 밥 먹어.”
“안 차려 주셔도 된다니까….”
“새아가도 어서 나오라고 해.”
제주도에서 머무는 것이 마음은 편했겠지만,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은 대부분 서울에서 해야 했기에 나는 오랜만에 양재동 집에 와 있었다.
나와 함께 와야 했던 메건은 이 집에 들어오는 것이 처음인데도 크게 어색해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보통은 시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불편해하지 않나?
게다가 영어도 잘하시는 분이 사극 톤으로 한국어만 말씀하시는 것도 영 적응이 되질 않았던 것도 한몫했고, 희한할 정도로 어머니가 극성이셔서 내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메건, 어머니가 나와서 점심 먹으라고 하시네요.”
“네, 금방 갈게요.”
시키는 대로 방으로 돌아가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메건에게 나와서 밥을 먹으라고 전해 주었지만, 솔직히 말을 해서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집에 놓인 식탁에 둘러앉아 한식을 먹는 것은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지만, 어머니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현아, 엄마도 이제는 많이 늙었어.”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렇게 운을 띄우실까…?”
예전에는 이러지 않으셨던 것 같은데, 내가 한국에 없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점점 변해가는 어머니.
“얼마 전에 윤 교수를 만났는데 수원이가 미국에서 손녀 사진을 보내줬다고 자랑을 하는 게 너무 부럽더라고….”
“…큰누나한테 말씀하세요. 거기는 결혼한 지 좀 됐으니까 이제 애 가져도 되잖아요. 우리는 결혼한 지 아직 100일도 안 됐다고요.”
“얘는, 걔가 자기 공연하는 데 정신이 팔려서 애를 갖겠니?”
큰누나는 일 욕심이 많은 편이었기에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독주가 되었건 협주가 되었건, 연습 때문에 엄청나게 바쁠 테니 아이를 갖는 것은 무리겠지.
수원이의 어머니인 윤 교수도 예전에는 참 굉장히 사무적이라는 인상이 강했지만, 할머니가 되고 나서는 조금 팔불출이 되었었나 보다. 이렇게 손녀딸의 사진을 어머니에게 보여 주면서까지 자랑을 할 줄은 몰랐다.
“지금 무슨 이야기 하는 거예요…?”
식탁 앞에서 한국어로만 이야기하는 나와 어머니를 바라보며 메건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까 어머니, 영어 잘하시잖아요. 왜 한국어만 하시는 거예요?”
“나는 우리 새아가가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길래 도움 되라고 그랬지. 답답하면 영어로 말해 줄까?”
“메건 아직 글자 공부 중이에요. 가나다라도 못 읽는데 한국어를 쓰는 게 도움이 되겠어요? 영어로 해 주세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어머니는 유창한 영어 실력을 뽐내며, 다시 한번 윤 교수가 손녀딸 사진을 보여 주었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연히 부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의외로 메건은 어머니의 말에 흥분을 하며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인 뒤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저도 지유 같은 아이를 꼭 갖고 싶어요!”
“그러면 우리 새아가는 딸이 갖고 싶은 거구나?”
“아뇨. 저는 최소한 둘은 낳고 싶어요. 제가 혼자 자라서 그런지 혼자는 너무 외로운 것 같더라고요. 게다가 딸만 있는 건 재미 없을 것 같으니까 아들도 좋아요!”
그러고 보니 메건도 서른이 되기 전에 아이를 갖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났다.
서양인들은 외모에 일찍 노화가 오는 편이라 아이를 일찍 갖는 편이라고 했던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두 고부간의 눈이 나를 향했다. 그 눈빛은 흡사 뱀이 먹잇감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래요. 무섭게.”
“우리 현이 요즘에 많이 바쁘지?”
“얼마 전에 사업자 등록했고, 이제 사무실 자리 알아보러 다녀야 하니까 바쁘겠… 죠?”
“엄마는 윤 교수와는 다르게 일을 집에서만 하니까, 아이도 잘 봐줄 수 있는데.”
그냥 한국어만 하시라고 할 걸 그랬나. 이제는 아이를 갖는 걸 넘어서서 누가 봐주느냐 라는 이야기로 변질되었다.
“아니, 아이가 무슨 하루 이틀 만에 나오냐고요!”
“그러니까 엄마 말은 아이 볼 걱정하지 말라는 거지.”
안 그래도 회사 때문에 바빠죽겠는데…. 이참에 집을 새로 구해 버릴까.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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