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48
147화
“이진혁…? 너 진혁이 맞아?”
“네, 형.”
고등학교 시절 내 아래 학년에서 실력은 잘 모르겠지만, 가장 싹수가 좋아 보이던 보컬 지망생 이진혁이 샤미라의 계약 현장에 나와 있었다.
음악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던 유자가 기타리스트가 된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진혁이가 왜 보컬리스트로 활동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도 조금 있었다.
뭐, 음악이라는 것이 하다가 접는 사람이 좀 많은 바닥인가. 어차피 조금 하다가 접었겠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
그런데 보컬 활동을 접었다면 샤미라와는 대체 무슨 관계인 거지?
“진짜 오랜만이다…. 수원이랑 재욱이는 지금 나랑 일하고 있어. 다른 애들은 소식이 안 들려서 전부 음악 접은 줄 알았는데, 너는 안 접었나 보네.”
“여기 주영이…. 아, 그러니까 보컬이 제 학생인데 형 이야기를 한 적이 있거든요.”
“학생?”
“저 지금 보컬 학원 강사예요. 이 친구 대학교 갈 때 제가 가르쳤어요.”
학원 강사라니 정말 의외였다. 진혁이는 연습벌레 중에서도 연습벌레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죽도록 연습을 했으면 보컬리스트로 성공을 했어야지, 남을 가르치는 걸로 만족을 한단 말야?
“진짜 놀랐네…. 너라면 인디밴드에서 보컬을 하고 있거나 접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네 학원 강사라니.”
“저 대학 다닐 때 성대 결절이 몇 번 와 버려서 이제는 무대 못 올라가거든요. 그래서 강사로 전향한 지 좀 됐어요. 달랑 두세 곡밖에 못 부르는 보컬이 어떻게 보컬로 활동하겠어요.”
성대 결절도 한두 번 겪게 되면 습관처럼 반복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는데, 얘가 그런 케이스인가.
보컬은 이게 문제다. 다른 악기처럼 실력을 늘리겠다고 연습을 하려 해도, 너무 열심히 하면 목의 수명이 줄어드니까.
“진짜로 아는 사이였네요! 저는 진혁 쌤이 이정현이랑…. 죄송합니다, 이정현 사장님이랑 아는 사이라고 해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나 고등학교 때 보컬 발성법 가르쳐 준 선배라고 했었잖아.”
내가 말해 준 거라고는 보컬 스케일링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걸 가르친 거라고 말을 하다니.
솔직히 말을 해서 스케일링도 수원이가 키보드를 쳐 줬었지, 내가 쳐 줬던 것도 아니었다. 그 당시 나는 악기 혐오증을 갖고 있을 때였으니까.
하지만 내 눈앞에서 나와 아는 사이였다는 것을 말을 하며 뿌듯해하는 진혁의 표정이 보였기에, 차마 그 말도 아니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샤미라니까, 먼저 사인부터 해 드릴게요. 진혁이 너는 전화번호 내놔. 우리는 나중에 이야기하자.”
“네, 형!”
어릴 때 보았던 어리바리한 모습과는 달리, 어느새 나이를 먹어 버린 진혁이의 모습을 뒤로한 채 나는 샤미라의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보컬인 민주영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외모가 없는 모습. 그런 민주영마저도 아이돌 판과 비교를 하자면 평범한 얼굴에 가까웠다.
다른 멤버들은 편의점에 과자만 사러 가도 볼 수 있는 동네 청년같은 느낌.
하지만 밴드의 중심이 되는 민주영의 분위기 있는 독특한 목소리, 그리고 리드기타 오재혁의 연주 실력은 꽤 좋은 궁합을 보여 줬었는데….
문제는 작곡 실력이 영 형편없다는 점 정도일까?
그 좋은 목소리와 연주 실력을 전혀 살리고 있지 못했다.
나는 준비되어 있는 사인지 위에 사인을 하고, 이제 우리 식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 멤버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저와 계약을 했으니 한 가지 알려 드리자면, 여러분은 자신들의 장점을 전혀 살리고 있지 못합니다.”
“네?! 그런데 왜 저희와 계약을….”
“그 장점을 제가 찾아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계약서 읽어 보지 않으셨나요? 회사 측에서 제안하는 트레이닝에 전력으로 임하며 편곡에 대한 의견을 적극 수렴한다. 라는 조항이 있는데.”
“그, 그러면 저희가 지금까지 해 왔던 음악의 색이 달라지는 것 아닌가요?”
합리적인 의심이다.
자신들의 음악의 색이 바뀌는 것을 거절하고 싶을 만하지. 수많은 기획사들이 스카우팅을 하는 조건으로 ‘뭘 바꿨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들어 왔었을 테니 당연히 싫을 거다.
“지금까지 해 왔던 우울함이 가득 찬 느낌의 모던락 말인가요?”
“나, 나름 저희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걸 바꾸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해 왔던 대로 단조로 노래를 만든다고 해서 우울한 노래가 되지는 않아요. 제가 조금 손을 본다면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계약을 제안한 겁니다.”
보통 음악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밝은 느낌을 원한다면 장조를 사용하고, 우울한 느낌을 원한다면 단조를 사용하라고 말한다.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
슬픈 음악이라고 무조건 단조로만 표현하려고 하는 것. 애초에 배우는 단계에서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에 다른 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편견에 빠지게 되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음악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자유롭게 표현을 하는 편. 그들은 장조로 슬픈 음악도 만들고 단조로 밝은 음악도 만든다.
복합적인 감정의 표현이 가능하다고 해야 할까.
이 사람들은 실용 음악과를 나왔기 때문에 너무 교과서적인 음악을 들려 주고 있다.
“제가 여러분의 곡을 조금 손봤는데 한번 들어 보시겠어요? 만약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약을 취소하셔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되나요?!”
“주영아!”
민주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고 오재혁은 그녀를 말리듯이 이름을 불렀다.
아마 민주영은 자신들의 색이라고 말하는 우울한 모던락의 색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을 테고, 오재혁은 슬슬 생활이 아르바이트만으로는 힘들어지는 입장이라 계약을 엎고 싶지 않았을 거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의 흐름이 이 자리에도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그럼요. 당연하죠. 저희의 영입 계약금은 아직 입금도 되지 않았는걸요. 편하게 생각하세요.”
“들어 볼게요!”
“작업실로 가시죠.”
캐스팅 매니저 사무실에 있는 작은 회의실 안에서 빠져나와 내가 작업을 하던 작업실로 향했다.
나의 뒤를 따라오는 네 명의 샤미라 멤버들은 긴장을 했는지 아무런 말도 없었고, 진혁이는 회사 안을 둘러보면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예전에는 이렇게 수다쟁이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본색을 숨기고 있었던 걸까 싶을 정도로 말이 많아진 진혁이.
“…너 그렇게 말 많이 하면 또 성대 결절 오는 것 아니냐?”
“괜찮아요. 이제는 만성 같아서 신경 안 써요.”
“그러냐….”
겨우 몇 층을 이동하는 동안에 들었던 질문들에 답해 주느라 귀찮을 정도였지만, 나는 예전의 정을 생각해서 귀찮은 내색을 하지 않으며 답변해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작업실이 있는 층에 도착해서 걷고 있자 또 다른 질문이 들려 왔다. 지금까지 자질구레한 것들을 질문한 이진혁과는 다른 목소리.
오재혁이었다.
“이 층에 있는 방이 모두 작업실인가요?”
“네, 한 층을 모두 작업실로 꾸렸어요. 여러 층에 있으면 번거로우니까.”
“대단하네요….”
대단한 게 아니라 귀찮아서 그런 건데.
뭐 알아서 감탄하게 내버려 두고 나는 내가 작업하던 방의 문을 열어 안으로 안내했다.
쾌활한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에 설치해 둔 컴퓨터와 그 옆에 있는 음료수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관리하는 직원을 불러 인원수에 맞게 의자를 가져와 달라고 말을 한 뒤에, 냉장고를 열어 음료수를 하나씩 꺼내주었다.
“여기…. 굉장하네요. 모니터 스피커 봐….”
“응? 저는 헤드폰을 싫어하거든요. 답답해서. 헤드폰이 필요하시면 저기 캐비닛 열어 보시면 있을 거예요.”
“아뇨, 그런 말이 아니라. 비싼 거잖아요 저거.”
보통 음악 작업실은 모니터링 헤드폰을 쓰는 사람이 많다. 소리를 조금 더 편하고 정확하게 들을 수가 있으니까. 게다가 스피커에 비해 헤드폰의 가격이 더 싸다는 점도 있고.
그래서 나는 왜 헤드폰이 아니라 스피커가 있는 거냐는 말을 한 건 줄 알았는데, 스피커의 가격을 말한 거였나.
샤미라의 멤버들은 휘둥그레한 눈으로 방 안의 장비들을 바라보며 감탄하기 바빴다.
“음악을 들으셔야죠. 장비들은 계약 완료되면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까 나중에 보셔도 늦지 않아요.”
“어? 여기 사장님만 쓰시는 방 아니었어요?”
“아닌데요. 작업실 장비 전부 똑같아요. 방이 열 개가 넘는데 혼자서 기분 내키는 대로 바꾸면서 쓰기에는 좀 그렇잖아요.”
뭐 아직 다른 아티스트들을 계약한 지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써 본 적은 없다.
그래도 나 혼자 쓰기 위해서 만든 곳은 아니었다.
“엄청나네요….”
“감탄은 나중에 하시고 일단 들어 보시죠.”
나는 서둘러서 내가 편곡한 음악을 들려 주고 싶었다.
더 이상 시간을 뺏기면 집에서 어학원 다녀오고 기다리고 있을 메건이 어머니랑 단둘이 저녁을 먹어야 한다고.
외국까지 나와서 아직 데면데면한 시어머니랑 단둘이 밥을 먹는다고 하면, 나라도 체할 테니까 얼른 집에 들어가야 했다.
나는 콘솔의 앞에 앉아 컴퓨터를 조작해서 조금 전까지 작업을 했던 샤미라의 음악을 띄워 놓았다.
DAW 화면에 띄워진 수많은 네모 박스들과 트랙들이 보였다.
“이게 저희 신곡이 되는 건가요? 저희에게 곡을 만들어 주시다니!”
“응? 아뇨. 신곡이 아니라 이게 여러분 영상에서 연주하신 곡이에요. 보컬은 없지만 한번 들어 보세요.”
내가 영상으로 마주한 원곡은 우울함이 가득한 곡이었다. 그 누가 들어도 억지로 울음을 짜낼 것만 같은 슬픔을 위한 슬픔이라고 말을 해야 할까.
원곡의 도입부부터 시작되던 의미 없는 기타 솔로 파트를 과감하게 삭제했다.
90년대에 인기가 많았었다고 하는 슬픈 락발라드의 코드들을 2030년대에 사용하다니.
레트로 감성이라고 말을 한다면 할 말은 없었지만, 요즘에 자주 보이는 세련된 레트로라기보다는 구닥다리라고 느껴질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들을 조금 세련된 레트로 스타일로 만들었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에요. 의견을 들어보고 필요하다 싶은 것들을 더 넣든지 빼든지 해야 하니까.”
그 말을 하면서 스페이스 바를 누르자 내가 조금 전까지 만들던 멜로디가 들려 오기 시작한다.
모니터 스피커에서 들려 오는 신시사이저로 만든 몽환적인 분위기.
그 몽환적인 분위기 위에 물속에서 연주하는 것 같은 먹먹한 듯한 느낌의 드럼 소리가 더해진다.
“와아…. 이게 우리 곡이라고? 제목이 뭔데?”
“야, 민주영! 조용히 안 해? 아직 도입부잖아!”
네명의 샤미라 멤버가 입을 벌린 채 들려 오는 소리에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보컬이 들어가면 더 좋아질 거예요. 아직 전자 악기만 사용한 상태라, 진짜 악기 소리가 들어가면 더 좋아질 테고.”
“지금 이것보다 더 좋아진다고요? 지금도 완전 중독성 있는데?”
“저 소리를 실제 악기로 어떻게 내요?”
다시 한번 아직 완성된 것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들의 분위기가 너무 진지한 것 같은 느낌이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대신 다른 이야기를 해야 했다.
“이 곡을 다음 주에 녹음해서 싱글로 발표하도록 하죠. 아주 바빠지실 겁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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