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5
014화
정현은 기분이 몹시 안 좋았다.
방학이 시작되고 집에서 뒹굴어야 한다는 야심 찬 계획을 품고 있었음에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시켜 댔기 때문이다.
[너 방학이라 할 것도 없잖아, 와서 좀 봐줘 봐. 응?]큰누나인 이정희는 정현에게 너무나 귀찮은 강요를 하고 있었다.
“내가 가서 뭐 해.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그리고 나 공부해야 돼. 내년에 수능 본다고. 동생이 대학교 못 가서 재수하는 꼴 보고 싶어?”
아니다. 그는 그저 뒹굴거릴 수 있는 시간을 빼앗기는 게 싫었을 뿐이다.
공부는 정기적으로 하는 과외 말고 아예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정현은 단지, 정희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밴드의 합주를 봐줘야 했고, 김수원의 눈물 섞인 부탁으로 Torn의 곡 리메이크 계약도 원작자와 맺으면서 정신없이 지나왔던 며칠.
– 실제로 계약을 위해서 뛰어다닌 것은 김수원이었다. 실제로 계약을 진행한 것은 변호사였고. 눈물 섞인 부탁은커녕, 정현이 한 일은 계약서 두 장에 굴러다니는 볼펜으로 사인을 했을 뿐이다. 합주는 그 뒤로 나오지도 않았다.
밴드의 공연은 클럽 오디션부터 아주 잘 진행되었고, 실질적인 밴드 수장인 김수원의 지휘에 따라 리메이크곡의 싱글도 발매했다.
음원 발매는 학교 밴드치고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정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 공연을 위한 관현악단과의 합동 연습까지 얼마 남지 않아, 그 핑계로 집에서 뒹굴거리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실현 중이었던 것이다.
남동생은 누나들을 이길 수 없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누나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킨다.
잠에 들기 직전, 마치 지구가 망할 정도의 큰일이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동생을 부르곤.
“아무것도 아니었나 봐, 미안. 아, 가는 길에 불 좀 꺼줄래?”
라며 옆방에 있던 동생에게 자신의 방 불을 끄게 만드는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에 들어갈 정도다.
‘누나’가 없는 사람들은 믿지 못한다.
‘에이 설마, 거짓말하지 마.’
‘너네 누나 완전 착하던데, 그런 누나가? 뻥치지 마.’
하지만 진실이다.
어디에 가도 믿어 주지는 않지만, 순도 100%의 진실이다. 이래서 임금님의 머리카락을 자른 이발사가 대나무 숲에 가서 그렇게 소리를 쳤나 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며.
누나를 가진 남동생들은 이렇게 가슴 속에 울화를 갖고 산다.
그리고 이번에도 아무런 이변 없이 정현은 정희에게 끌려갔다.
정현 남매가 도착한 곳은 예술의 전당 건너편에 있는 레코딩 스튜디오.
이곳의 시설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된 관현악이나, 피아노 음악들을 녹음할 수 없다.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인 이정희는 몇 번의 ‘독주’ 앨범을 이곳에서 녹음했던 경험이 있었다.
클래식 불모지인 한국 땅에서 손익 분기점을 넘기도 어려워 앨범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앨범을 꾸준히 발매해야 공연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이다.
클래식 연주가들이 자신들의 영감을 발산하기 위해, 기존 클래식 연주가 아닌 자작곡들을 녹음하여 만든 앨범을 내는 경우가 있다.
그들의 곡은 듣기 편한 연주곡 장르에 붙는 ‘뉴에이지’로 불리는 것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듣기 편한 음악들만 발매를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음반 업체와 디지털 스트리밍 서비스 그리고 그들의 소속 에이전트까지, 그들이 만든 음악들을 클래식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뉴에이지는 사실 장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종교 운동에서도 나온 말이고, 음악에서도 나온 말이다. 피아니스트들이 내놓는 앨범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재즈 아티스트들의 앨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뉴에이지는 음악의 정석적인 장르가 아닌 일종의 파생 장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뉴에이지는 음악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명확하지 않은 장르의 정의 때문이다.
이런 뉴에이지로 분류되는 곡들 중에도 기존 클래식과 비슷한 급의 음악들이 많지만, 이들의 음악들을 클래식으로 불러줄 수는 없다.
누군가의 곡을 ‘클래식’으로 꼽는 순간 그 누군가는 모차르트와 같은 전설이 된 거장들과 동급이 되어 버리게 되니까.
현실에 살아 있는 전설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렇게 음악가들이 만들어 낸 곡들은 대부분 클래식이라는 말이 붙지 못하고, 뉴에이지라는 정의하기 어렵고 애매한 이름의 장르로 분류가 되었다.
클래식이라는 것은 그 이름에 갑옷을 두른 것처럼, 그 벽을 뚫고 지나가기란 너무 어려웠다.
새롭게 곡을 만드는 것보다 그들의 영역 안에 발을 들이는 게 더 어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클래식 불모지에서는 더더욱 어려웠고.
그런 이유로 클래식 아티스트라는 말은 전 세계에서 그들만의 리그 안에 있는 극소수의 거장에게만 붙어 왔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을 즐기는 나라인 일본에서는, 그 벽을 깨기위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게임 음악을 클래식 심포니 오케스트라 곡으로 편곡해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기도 하고, 하나의 애니메이션만을 위한 BGM까지 오케스트라로 만들어 삽입한 뒤 국립 교향악단의 레퍼토리로 넣었다.
그 곡들에도 클래식이라는 말은 붙이지 못했지만,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은 붙을 수 있었다.
물론 작곡한 이들의 이름에는 여전히 ‘뉴에이지’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지만 말이다.
교향곡을 직접 만들고 편곡하며 국립 교향악단까지 지휘해도, ‘뉴에이지’라는 딱지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클래식이라는 문턱은 높았다.
하지만, 이정희가 생각할 때 자신의 동생인 정현이 만든 곡은 클래식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뉴에이지와 클래식을 구분하는 것이 무엇일까?
같은 악기를 사용하고 같은 화성을 사용하며, 같은 곡 구조를 지닌다.
단순하게 기술적으로 보았을 때 클래식과 뉴에이지 연주곡에는 차이가 없다.
단지 감정의 전개와 깊이에만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현이 만든 곡에는 그 깊이가 있다고 느껴졌고.
녹음실 한쪽에 앉아 엔지니어와 이야기를 하며 녹음의 방향을 정하는 회의.
이번 녹음을 이끌어 가야 하는 프로듀서라고 할 수 있는 정현이 의욕이 없는 상태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억지로 끌려와서 기분도 별로고, 이 좁은 공간에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도 있었다.
아직 국내외에서 크게 활약한 바가 없는 이정희는, 유명한 피아니스트들과는 달리 특정 피아노 브랜드와 아티스트 계약을 맺지도 않았기에 피아노부터 골라야 했다.
이런 면에서 계약되지 않은 피아니스트는 상대적으로 편했다. 원하는 피아노를 어떤 것이든 사용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항상 ‘일정한’ 환경에서 연주를 할 수 없다는 건 마이너스.
“현아, 어떤 피아노 소리가 괜찮아?”
피아노를 손가락 끝에도 대 본 적 없는 사람에게 할 소린가. 정현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대외적인 이미지를 항상 좋게 가져가려 했었기 때문에, 단둘이 있을 때처럼 소리를 치며 막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뭘 아나…. 피아노는 만져 본 적도 없는데.”
두 개의 녹음실에 준비된 그랜드 피아노는 총 두 대. 각각 다른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야마하, 그리고 피아노의 마스터피스라고 불리는 스타인웨이.
이 두 대의 피아노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소리를 냈다.
야마하는 가볍고 청명하다고 해야 할까. 하나의 음과 음이 연결될 때 또렷하게 들린다.
딩 디 리 링~
스타인웨이는 무겁고 분위기가 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음과 음이 연결될 때 부드럽게 넘어가는 느낌이랄까.
디디리링~
정현은 자신이 만든 곡이 머리에서 꺼내진 뒤에 실제 연주를 들어 보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피아노 독주곡들과 어울리는 피아노가 무엇인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피아노의 소리를 듣자마자 자신의 머릿속에서 연주가 시작되었다.
정현은 그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어느 피아노가 곡에 어울릴지를.
단 1초도 고민하지 않았다. 분명 같은 곡인데 두 대의 피아노는 같은 곡을 완전 다른 느낌으로 들려 주었으니까.
“이쪽이네.”
정현이 고른 것은 스타인웨이.
“그치? 그치? 나도 그런 것 같았어. 야마하는 너무 또렷하게 소리가 나서 현이 네가 만든 곡이 분위기가 안 살잖아. 네 곡은 겨울밤 바닷가에 내리는 비처럼 은은한데 말야.”
“어후, 시끄러워. 그만해, 이 수다쟁이야.”
수다쟁이의 스위치가 올라가 버렸다. 그런 뒤 녹음을 시작할 때까지 한참 동안이나 아웅다웅하며 남매의 티키타카는 계속되었다.
***
‘뭐? 피아노에 손을 대 본 적도 없다고? 그런데 어떻게 곡을 만들어?’
두 남매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스튜디오 소속의 레코딩 엔지니어는, 그 이야기를 듣고 황당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레코딩 엔지니어로 일해 온 십수 년간 수도 없이 많은 연주가들을 보아왔다.
곡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며 술을 먹고 와서 난동을 피웠던 사람도 보았고, 자기가 보았을 때 이건 무조건 성공한다 라고 느꼈던 곡을 가져왔음에도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며 연주를 하다 그 자리에서 악보를 모두 찢어 버리고 주저앉아 울었던 사람도 보았다.
게다가, 단 하나의 곡을 만들기 위해 길게는 수년 동안 한 곡의 악보만 붙잡고 사는 대다수의 연주가들은, 손가락 끝이 갈라질 정도로 악기를 연습하며 자신의 몸에 체화를 시키는 과정을 거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피아노에 손도 대 본 적도 없는 어린애가 독주곡의 작곡가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이거… 밀어주기인가?’
밀어주기. 대중음악 업계에서 숱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의 저작물들을 이용해 흥행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들을 뜻했다.
예를 들면 싱어송라이터의 이미지를 갖는 가수들을 위해 밀어주기로, 다른 사람이 만든 곡들을 매절(지속적인 음원 수익은 발생하지 않지만 곡 비 자체는 서너 배 비싸다)로 구매하여 작곡가가 아닌 가수의 이름으로 등록시키는 일은 정말 대중음악계에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업계에서 힘이 없는 수많은 피고용인인 ‘새끼’ 작곡가들의 곡을 가로채서 힘이 강한 작곡가의 이름으로 등록하는 가로채기는 밀어주기보다 훨씬 흔하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양심 고백이네 뭐네 하면서 서로에 대한 폭로글과 비방글이 난무하는 곳이 대중음악계였고, 그랬기에 대중음악을 클래식에 비해 싸구려 문화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엔지니어로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예술의 전당 앞에서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는 최고의 음악가들이 만든 곡들, 연주한 곡들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녹음을 받았다.
그것이 재능이 없어서 음악을 그만두었던 그에게는 최고의 자랑거리였다.
대한민국 땅에서 클래식이라고 이름이 붙은 모든 것이 자신의 손에서 피어나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만이, 그를 살아가게 해 주는 원동력이었다.
물론 이정현이 누구인지 그도 알고 있었다.
성악계의 신성이라며,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클래식의 부흥을 일으켜 줄 사람이라 온갖 미디어에서 띄워 주기 바빴던 인물.
자신도 이정현이라는 신성이 클래식의 부흥을 일으켜 줄 구세주라 믿었고 그것이 현실이 되기를 원했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엔지니어는 더 화가 나서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었다. 이건 클래식에 대한 기만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아무리 클래식의 구세주라고 하지만 악기조차 다루지 못하는 사람에게 밀어주기라니 이건 아니지….’
그는 전화기를 들어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던, 클래식 전문 잡지 기자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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