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51
150화
사장이 불을 켜자, 문이 열린 안쪽으로 보인 시설은 보잘것없었다.
어렸을 때 보았던 것과 큰 차이가 없는 시설을 마주하며, 이런 곳에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던 동아리 멤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한 것일까. 오래된 기억이라 조금 미화가 되기는 했겠지만, 나는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빛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는 실내. 멀리서 보이는 무대 위에 놓인 낡아빠진 스피커와 앰프들. 그리고 정리되지 않은 케이블과 마이크.
한쪽에는 누군가가 술을 마시고 흘려 놓은 흔적이 보였고, 구석에는 청소가 제대로 되질 않아 곰팡이가 슬어 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화장실의 입구에는 클럽에 오간 수많은 사람이 벽에 눌러 불을 끈 담배 자국이 남아있다.
무대 바로 아래쪽에 보이는 관객이 위치할 곳에는 안전을 위한 시설이 하나도 없었기에, 자칫하면 다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느낌.
고등학생 때 나는 어떻게 이런 곳에서 공연을 하자고 잡았던 걸까.
내 눈이 높아진 건지도 모르겠지만, 도저히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없는 환경.
천장에서 비추는 노란 백열전구의 빛에 반사되어 보이는 먼지들조차 들이켜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잘 봤습니다. 가자 진혁아.”
“넷? 공연 예약하시려던 것 아니었습니까?”
사내는 놀라는 눈초리로 말을 했지만 아쉬워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예약을 하면 돈이나 좀 받아낼 고객으로만 보는 듯했다.
나는 그에게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클럽의 문을 열고 나왔다.
“앗, 아파요.”
“…미안해요. 내가 조금 생각이 많아졌네요.”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을 넣었었나 보다. 가볍게 소리를 지르는 메건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덩달아 놀란 메건 역시 나에게 영어로 물어왔다.
“왜 그래요. 표정이 안 좋은데?”
“공연 환경이 너무 안 좋아서요. 어떻게 우리 아티스트를 저런 무대에 올릴 수가 있겠어요…. 게다가 관객들도 위험해요. 스탠딩 공연에서 가드레일 같은 것이 없으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고요. 감전 사고도 일어날 수 있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더럽긴 하더라고요….”
아마 내가 어렸을 때부터 저곳은 이런 느낌이었겠지. 새삼스럽지만 그때는 어떻게 저런 곳에 드나들 수 있었을까.
나는 고개를 돌려 반대편에서 나를 보고 있는 진혁에게 말을 했다.
“기존에 있는 곳을 인수하는 것보다 새로 만드는 게 더 낫겠다. 다른 곳은 더 이상 볼 필요도 없겠네.”
“새로 만든다고요? 지금 본 곳이 가장 좋은 곳이에요. 차라리 저기를 인수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너무 더럽고 시설이 별로야. 공연 한 번 하면 공연 보러 온 사람들 중에 환자 한두 명씩은 나올 것 같아.”
“…이 바닥이 다 이렇죠.”
“가까운 공인 중개소로 가자.”
도저히 이런 곳에서 우리 아티스트들, 아니 그 누구라도 공연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분명 공연장의 사장은 꽤 돈을 많이 벌었을 거고, 그 돈을 건물주에게 월세로만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그 돈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아까 보았던 그 아저씨의 주머니 속이 가장 가능성이 높겠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육사가 챙긴다는 말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이 바닥은 무대에 서는 밴드들이 ‘딴따라’ 소리를 들었을 시절부터, ‘아티스트’로 부르는 지금까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나는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방문한 클럽의 분위기에 실망해야 했다.
진혁이 안내로 역에서 제법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공인 중개사 사무소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옵… 쇼?”
“안녕하세요. 사장님. 이 근처에 매물로 나온 곳이 있을까요?”
나는 문을 열자마자 인사를 하던 도중, 내 얼굴을 알아보고 당황하는 공인 중개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
나는 몇 주 전에 매입한 건물의 리모델링을 건설 회사에 의뢰하고 난 뒤, 회사로 돌아와 마케팅 실장을 불렀다.
입주하고 있던 음식점이나 카페 같은 것이 없는 오피스 건물이었기에, 공실이 많았던 것이 그나마 입주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건물을 비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이사금과 보상금으로 적지 않은 돈이 나갔고 시간이 꽤 걸렸지만, 그런 것은 사소한 문제.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 건물에서 중점적으로 공연하게 될 인디 밴드들에 대한 것이니까.
회사에서 영입한 밴드들은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치명적인 문제가 보이는 곳은 없어서 다행.
나는 내가 소유한 공연장에서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마케팅 실장에게 이야기했다.
“건물 내에서 흡연이나 음주를 금지할 거예요. 그 점 잘 생각해서 마케팅해 주세요.”
“공연장 내에서 음식이나 술을 아예 팔지 않으시겠다고요?”
“네, 인디 밴드 공연에서 술 마시고 일어나는 사고가 너무 많으니까요. 공연을 보는 사람이 담배를 피워서 옆 사람의 옷을 태우는 건 애교고.”
“그러면 사람들이 와 줄까요?”
“한국의 인디 공연은 너무 퇴폐적이에요. 애초에 술을 마시는 문화에서 파생된 거긴 하지만, 지금 거기는 미성년자가 들어가는 것도 어렵잖아요. 음악 시장의 주 고객층은 10대가 가장 많아요. 술 말고 음악을 팔아야죠.”
클럽 공연에서 술을 파는 것은 애초에 술집에 만들어졌던 무대에 아티스트들이 올라갔었기 때문이지, 공연을 위해 술을 팔던 것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애초에 누군가를 만나서 술을 마시면서 편하게 음악을 즐기는 분위기였던 것.
그렇기에 대부분의 공연 클럽들에는 술을 파는 바가 있었고, 이 바에서 판매한 수익들은 모두 사장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구조.
게다가 가격도 너무 비싸잖아. 콜라 한 병에 몇천 원씩 받는 폭리.
나는 공연만 즐길 수 있는 공연장을 만들고 싶었다. 클래식이나 콘서트장에서는 술을 팔지 않는데, 왜 공연 클럽에서는 술을 팔아야 하지?
이건 어떻게 보면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애초의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팀은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팔아서 성과를 내는 곳이니까, 다른 걸 팔면 되지 뭐.
“대신 1층에 아티스트들의 앨범들과 상품들을 팔죠. 음악을 들어 볼 수 있는 뮤직 데크도 들여놓으면, 술을 파는 만큼은 되질 않아도 수익은 나올 거예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인디 밴드들의 티켓이 팔릴지 걱정됩니다.”
“그건 실장님이 생각하셔야죠. 그걸 위해서 고용한 건데.”
“으익!”
마케팅 실장은 깜짝 놀라며 눈이 커졌다.
나는 그 커진 눈이 부담스러워서라도 안심하게 만들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 건물에서 큰 수익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차피 공연 수익을 바라고 만든 것은 아니었으니까. 티켓 가격도 높게 책정하지 않을 생각이고.”
“휴우. 다행이네요…. 목표 수익이라도 없는 게….”
“지금 샤미라를 보세요. 부르는 데가 너무 많잖아요. 이제는 인디 밴드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되어 버렸어요.”
“샤미라는 이제 인디가 아니라 메이저죠….”
공중파 한 번 탔다고 전국에 알려질 대로 알려진 밴드. 특히 보컬인 민주영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얼굴이 엄청나게 예쁜 것도 아니고, 옷을 야하게 입고 무대에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단 말이지.
어쩌면 그 몽환적인 목소리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도 모른다.
무브먼트에서 구매자 수도 꽤나 많았고 공연 요청도 기대 이상으로 많았기에, 이제는 아르바이트를 찾을 걱정보다 어떻게 효율적으로 잠을 잘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이제는 다른 밴드들을 걱정해야 할 시간.
우리 회사에 소속된 밴드는 샤미라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앞으로 우리 회사와 계약한 인디 밴드들의 곡들을 두세 달 정도 지속해서 발매할 거예요. 다른 밴드들이라고 샤미라보다 못한 성적을 낼 거라는 보장은 없잖아요. 매니저 실장님하고 이야기 잘하셔서 좋은 결과 만들어 주시길 기대할게요.”
“네, 넵!”
지금까지는 내가 무브먼트에만 신경을 썼기에, 할 일이 거의 없어서 놀다시피 했던 직원들.
그들에게서 지난 한 달 사이에 할 일이 갑자기 많아지는 바람에, 직원을 늘려 달라는 말까지 들려 왔다.
그런데 뭐 구인 광고를 올린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인원을 고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지금 회사는 완전히 전쟁터.
매니저실의 사람들의 엉덩이는 의자에 붙어 있질 못했고, 마케팅팀의 전화기는 불을 뿜었다.
사장실에서 뒤를 돌아 문을 여는 마케팅 실장의 어깨가 축 처져 보였다.
안 그래도 바쁜데, 조금 미안해지네….
***
홍대 입구역 8번 출구 인근에 있는 한 8층 건물의 외벽은 하얀색 천으로 둘러싸였고, 그 입구에는 리모델링을 알리는 공고가 붙었다.
지나는 사람들은 워낙 숱하게 리모델링이 이루어지는 곳이기에 그 말에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회사명을 보며 적지 않게 놀랐다.
대부분의 기획사가 몰려 있는 강남에 위치하고 있다는 LJH의 이름이 붙어 있었기 때문.
“뭐야, 이정현 홍대 입구역으로 회사 옮기는 거야? 강남에 있다며.”
“빌려서 살다가 돈 주고 사서 나온 거 아니겠어? 강남이 좀 비싸냐. 예전에 그런 회사도 있었잖아. ZOO였던가, 새로운 인터넷 스트리밍 플랫폼 만든다고 돈 엄청 들여서 강남에 회사 만들었다가, 한 달만인가 사업 접어 버렸던 회사.”
“지난번에 기사 못 봤어? 강남역의 1천억 원이 넘는 건물을 한 번에 사 버렸다잖아.”
“뭐?! 그 건물이 이정현 거였어?! 대체 얼마나 부자인 거야?”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이 오가는 길목에 위치하는 건물에 붙여진 공고를 바라보며 멈추는 발길들.
어디에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매입을 진행하였기에, 정현이 홍대 입구에 위치한 건물을 산 것이 알려지는 것은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였다.
하지만 그 소식이 알려지고 나서도 그 건물을 공연장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클럽 공연의 성지라고 알려진 홍대 입구 주변에서도, 공연장으로 사용하는 클럽들은 대부분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현이 새로 매입한 건물은 주변 지역의 역세권 중에서도 가장 상권이 강한 곳이었기에, 주변에 위치한 곳들은 대부분 프랜차이즈 음식점이나 편의점 등의 편의 시설들.
그 누구도 역 주변에 위치한 상업 구역에서 공연장을 만들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 주변으로 버스킹하는 포인트가 있었고,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는 모두 술집.
예전처럼 공연을 위주로 하는 클럽들은 그 수익성이 떨어지고, 주변의 땅값이 올라가며 덩달아 올라간 월세로 인해 대부분 사라졌다.
그 많았던 만화방과 수입 책 서점 역시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분식집마저 프랜차이즈가 아니면 보기가 어려운 곳이 되어 버렸기에, 과거 통기타 하나만 메고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보다 본격적인 장비들을 동원해서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 버린 곳.
바로 그곳 홍대 입구역에 새로운 공연 문화의 성지가 생겨나려 하는 것을 아무도 눈치챌 수 없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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