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54
153화
5년마다 5월에 진행되는 쇼팽콩쿠르 결선의 2035년 우승자는 영국의 에이드리언으로 결정되었다.
쇼팽콩쿠르를 우승하게 된다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었는데, 그 건방진 여자애를 다시 상대할 일은 없어졌다.
기교는 뛰어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냥 기교만 뛰어났었나 보네. 중국의 자존심이네 뭐네 하는 소리를 했던 것 같은데, 그 자존심이 그만큼 뛰어나지는 않았었던 모양이었다.
우승자인 에이드리언이라는 사람이 기자 회견을 하며 나에게 배웠다고 말을 했는데, 나는 그게 누구인지 기억도 나질 않았으니 말이야.
인터넷 기사를 뒤로하고 내가 지금 손을 대야 하는 것은 회사를 안정시키는 일.
회사를 향하는 차 안에 앉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인터넷 기사들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내가 직접 하지 않아도 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세우면 되는 것.
나는 곧장 손가락을 움직여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응 나야.”
[지금 몇 시인 줄 알고 전화를 거는 거냐.]“여기가 아침 여덟 시니까 오후 다섯 시쯤 되었겠지.”
전화를 받은 수원은 퇴근 직전에 전화를 한 나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오후 다섯 시면 충분히 세이프잖아. 아직 일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퇴근하려고 했는데…. 무슨 일인데?]“너 한국 들어와라.”
[이제야 미국 생활이 좀 적응되어가나 싶었는데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여기에서 A & R 팀을 맡아 줄 사람이 없어. 거긴 너 말고도 사람 많잖아.”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
전화기를 통해 들려 오는 목소리는 어이가 없다는 느낌의 말투였지만, 한국에서 A & R 팀을 이끌어 갈 사람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니까.
수원의 목소리에서 진한 한숨이 느껴졌다.
[언제까지 가면 되는데?]“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마리에게 말해 놓을 테니까, 적당히 정리하고 넘어와.”
[알았다….]전화를 끊고 나서 워커홀릭인 마리에게 전화를 걸어 수원이 자리를 비울 것이라고 말을 하니, 마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렇습니까.]“네, 그러니까 마리가 다시 그곳의 책임자가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그녀는 별다른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알았다고만 말했다. 혹시 감정을 못 느끼는 싸이코패스 같은 게 아닐까.
머릿속으로 마리가 싸이코패스 살인마로 등장하는 스릴러 영화를 상상하며, 혼자 즐거워하고 있을 때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덜컥-
경호원이 차의 문을 열어 주고, 지하 주차장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사무실로 올라가는 평범한 하루의 시작.
이제는 수원이가 한국에 들어오는 것만 기다리면 되겠지. 그러면 아티스트들의 일정도 내가 결정하지 않게 될 것이다.
아무런 손을 대지 않더라도 알아서 굴러갈 회사. 이제는 좀 편하게 놀고먹을 수 있지 않을까? 어릴 적의 꿈처럼 말이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
홍대 입구의 많은 인구들은 인디 밴드들의 연주를 보기 위해 클럽이 아닌 LJH 공개홀로 향했다.
LJH 공개홀의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며 금전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생겼으니, 바로 음식점들이었다.
내부에서 음식이나 음료를 판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공연을 보고 나서 공개홀 주변의 음식점을 찾는 일이 늘었다.
반면에 수입이 줄어든 곳도 있었다.
바로 기존의 공연 클럽.
이들은 깨끗하고 관람하기 쉽게 만들어진 LJH 공개홀을 따라갈 수가 없었기에, 자신들의 수입이 줄어든 것에 살기 힘들다며 불만을 토로하기 바빴다.
하지만 아무리 대기업이 주변 상권을 죽인다고 말을 해도, 주 고객층이었던 사람들은 이들의 말을 들어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들이 운영하던 공연장의 환경이 워낙에 안 좋았었기 때문이었다. 클럽을 자주 방문하던 사람들은 모든 클럽들의 시설이 깨끗하지 않았고, 낡아 있었기에 비교 대상이 없어서 불평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LJH 공개홀이 등장하고 나서 비교할 대상이 생기자, 어떤 것이 좋고 안 좋은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아, 오늘도 진짜 재밌었다. 다음 주말에는 유지현도 온다며?”
“그래? 예약도 안 받으니까 티켓 구매하는 거 완전 지옥이겠네.”
공연을 관람하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건물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그들은 입구 주변 알림판에 붙어 있는 공지 사항을 보게 되었다.
“응? 뭐야 무브먼트 슈퍼 페스티벌?”
“락페 같은 건가?”
“아니야. 락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잘 봐봐 스노우 데이도 온다고!”
“와…. 아이돌하고 락 그룹이 한 무대에 선다고?”
유지현과 샤미라 그리고 몬스터 엔터테인먼트의 간판 아이돌 스노우 데이가 함께 나와 있는 무브먼트 슈퍼 페스티벌의 홍보용 포스터.
이 언밸런스한 조합의 포스터에 나와 있는 아티스트들의 목록을 보며,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출연하는지를 확인했다.
기존에 한국에 존재하던 많은 연합 콘서트의 장르는 한 가지로 고정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슈퍼 페스티벌은 장르가 한두 가지로 좁혀져 있지 않았다.
메이저 장르 아이돌 그룹과 마이너 장르인 인디 락 그룹. 게다가 그 사이를 메우는 수많은 래퍼들까지도 목록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래퍼들도 있어. 와….”
“숨겨진 초대 손님은 누구일까?”
목록의 마지막에 나와 있는 글. ‘숨겨진 초대 손님을 슈퍼 페스티벌에서 만나 보세요!’를 보며 사람들은 상상력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정현의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시에스타나 에릭을 떠올렸고, 괜히 별것 아닌 사람이 오지만 홍보 문구로 넣은 것이라는 추측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별거 아니겠지. 홍보용으로 만든 포스터인데 사람들이 더 많이 오게 하려면 확정을 짓고 말해 줘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런가?”
홍보용 포스터에서도 밝히지 않은 초대 손님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그렇지만 9월에 시작되는 페스티벌의 티켓을 꼭 사고야 말 거라는 마음만은 같았다.
그 시각 LJH 뮤직 컴퍼니.
A & R 팀의 팀장이 된 김수원은 페스티벌의 일정표를 작성하다, 마케팅 실장에게 달려가 물었다.
“아니, 마케팅 실장님은 아실 것 아니에요. 대체 숨겨진 아티스트가 누군데요?”
“저도 몰라요. 사장님이 말씀을 안 해 주시는데 어떻게 알겠어요.”
질문을 들은 마케팅 실장은 지쳐 있는 표정으로 수원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작은 한숨은 덤.
“에휴…. 우리한테도 숨겨진 아티스트가 누구냐는 문의 전화가 하루에도 수백 통씩 걸려 와요. 궁금해서 잠을 못 자겠다고. 근데 우리도 모르는 걸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정현이 아니 사장님한테는 물어보셨어요?”
“당연히 포스터를 만들면서 물어봤죠. 숨겨진 아티스트라는 말을 넣으라고 했던 것이 사장님인데. 그런데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 주셨으니 우리도 모를 수밖에요.”
회사에 소속된 사람의 일정이라면 A & R팀이 기획하는 것이기에 수원이 모를 수가 없었다. 당연히 회사의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람이라는 추측을 한 수원.
“우리 회사 사람은 아닌데….”
“회사 인원은 총출동하는데 당연히 아니겠죠.”
자신의 손에 쥐어진 페스티벌의 일정표에는 정현이 표시해 둔 마지막 날 두 시간가량의 시간을 비워 두라는 말이 있었고, 다른 시간에 대한 것은 전혀 이야기가 없었다.
일정을 짜는 중간에 궁금해져 마케팅 실장은 혹시 알까 싶은 마음에 달려와 물어보았지만, 그 역시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회사 안의 사람들은 궁금해진 마음에 저마다 다른 부서로 찾아가 물어보기 바빴다. 혹시나 다른 부서에는 언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숨겨진 아티스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수원은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자신의 친구 정현의 이름을 바라보았다.
“아, 왠지 궁금해하면 지는 것 같은 기분인데….”
혼잣말로 투덜대면서도 전화를 거는 손가락은 거침이 없었다.
***
수원이가 한국에 들어오며 좀 여유가 생겨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아직도 회사 일에 치이며 살고 있을 뻔했다.
사장이라는 게 일정만 세워 주고 빠져야지 실무를 하면 정말 끝도 없다니까.
오랜만에 제주도의 한옥집에 내려와 나무로 된 마루에 누워 뒹굴거리는 시간. 이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들려 오는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외출 준비를 잔뜩 하고 있는 메건의 모습이 보였다.
“쉬고 있어요. 요즘에 많이 시달렸었잖아요.”
“많이 바빴었죠.”
가볍게 대답을 하며 내 옆으로 와서 눕는 메건. 메건을 향해 팔을 뻗자 머리를 얹어 왔다.
“여기 기분 좋네요. 바람도 잘 통하고.”
“메건은 아직 한국의 더위를 안 느껴 봐서 모르겠지만, 이제 곧 더워지면 여기에 나와 있지도 못할 거예요.”
항상 온화한 날씨인 영국. 런던에서는 겨울에 눈도 보기 힘들 정도로 따뜻해서 순한 맛이라고 한다면, 한국의 날씨는 말 그대로 캡사이신이 잔뜩 들어간 초 매운맛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봄이 끝나가는 5월 말의 날씨는 제법 선선하니 기분이 좋았다. 창문을 통해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이런 선선함이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폭염 지옥으로 바뀌게 된다는 걸 메건은 모르겠지.
그렇게 한참 동안을 마루에서 누워 있었다.
꼬르륵-
내 팔을 베개 삼아 누워 있는 메건은 모르는 척하고 있었지만, 귓가에 들려 오는 작은 소리.
“배고파요?”
“…조금?”
“나가죠, 점심 먹으러. 벌써 오후 세 시네.”
아침에 일어나서 마루에 누워 있던 게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러있었다.
메건이 배가 고파서 외출용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집에는 결혼하고 처음 와 보는 것이라, 음식을 만들 만한 재료들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나의 말에 수줍은 듯이 빨개진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숙이는 메건의 모습이 귀여웠다.
“미안해요. 쉬는데 방해해서.”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뭘 특별히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기지개를 살짝 켰다. 오랫동안 누워 있었기 때문인지, 몸이 찌뿌둥하게 느껴졌던 탓이었다.
Brrrrr-
그때 자리에 누우며 머리맡에 놓았던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급한 일 아니면 아무도 전화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나에게 전화를 걸 만한 사람이 없을 텐데…. 어머니인가?
마룻바닥에 놓인 휴대폰을 들어 화면으로 보이는 발신자를 확인했다. 발신자는 김수원. 방해꾼의 대명사가 전화를 걸었다. 그럼 그렇지, 매일 손주를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시는 어머니가 단둘이 있는 것을 방해할 리가 없지.
“무슨 일이냐.”
[아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고….]우물쭈물하며 말을 하지 못하는 수원. 얘가 왜 이래?
“용건만 빨리 말해. 나 지금 밥 먹으러 가야 해.”
[…대체 숨겨진 아티스트가 누구냐?]“뭐야, 숨겨진 아티스트가 왜 숨겨졌겠어. 모르지 인마.”
[행사를 주최하는 사람이 모르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지금 마케팅팀 전화기에 불났어. 사람들이 궁금해서 미친 듯이 전화를 하고 있다고.]“아, 몰라! 끊어!”
전화를 끊고 한참을 생각했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람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빼 두었던 건데, 사람들이 숨겨진 아티스트에 이렇게 관심을 갖는다고?
잘하면 이걸 이용해서 더 큰 홍보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나 배고파요….”
아차. 밥 먹으러 가려던 참이었지.
메건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얼른 가요. 오늘은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먹어요.”
정말 아직까지는 아무도 정해지지 않았었지만, 조금은 진지하게 숨겨진 아티스트를 섭외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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