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57
156화
계산기를 두드려 볼 시간이 없었다.
당장 슈퍼 페스티벌은 개막을 해 버렸고, 마지막 날까지 이제 겨우 이틀이 남았을 뿐이었으니까.
이것저것 따져가며 모든 일들을 처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곡을 만들어 주는 것쯤이야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엘리의 공연 비용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곡의 수임료치고는 너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 어차피 나 역시 곡의 저작권 수익을 계속 받을 수 있는 건데 말이지.
복잡해진 생각들을 정리하려 주변을 둘러보자, 커피숍치고는 꽤나 한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들어오기에 가격이 꽤나 세기 때문일까, 점심 무렵의 호텔 로비의 카페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네.
생각에 빠져 정신이 없던 그때, 테이블의 건너편에서 들려 오는 엘리의 목소리.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공연장의 분위기를 좀 보고 싶어요.”
“…지금 현장으로 가자는 이야기인가요?”
“직접 봐두고 싶어서요. 안 될까요?”
“안 될 건 없죠. 회사에 들러서 계약서를 쓰고 가요. 여기에서 멀지 않아요.”
그래. 곡 하나로 엘리 베일리쉬의 내한 공연을 유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싸게 먹히는 거다.
수년 전에 그래미에서 상을 받으며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던 사람인데, 이렇게 한국에서 연합 콘서트를 여는 것 자체가 이득이지.
많은 생각들을 뒤로한 채, 나와 엘리는 카페를 빠져나와 회사를 향했다.
***
슈퍼 페스티벌이 열리는 첫날이었기에 미디어의 대대적인 보도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엘리 베일리쉬의 방한.
그래미 상을 받기 전에 내한 공연을 펼쳤던 적이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전염병 때문에 해외 공연을 모두 취소했던 적이 있던 그녀였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이동하고 호텔에서 LJH 뮤직 컴퍼니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이 따라붙기를 포기했다.
워낙 미디어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정현이었기에, 차를 운전하는 경호원들이 솜씨 좋게 따돌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대놓고 한국에 들어와 정현과 함께 이동하는 엘리 베일리쉬였음에도, 사람들에게 그 소식이 빠르게 알려지지는 못했다.
각 미디어의 편집장들은 과거 평사원 시절 정현의 대규모 소송 사태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이용해 정현에 대한 기사를 내는 것에 무척이나 소극적이었기 때문.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이유에서 3일 차에 출연하는 숨겨진 손님의 정체가 알려지지 않을 수 있었다.
엘리와 정현이 페스티벌의 현장에 도착했을 무렵이 되었을 때에도, 사람들은 엘리가 한국에 도착한 소식을 전혀 알지 못했다.
[슈퍼 페스티벌의 오프닝 세리머니가 5분 뒤 메인 스테이지에서 시작됩니다.]사람들은 시계를 보며 무대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편하게 쉬고 있다가, 행사장 내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어떤 무대에서 누가 공연을 시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유지현 공연 얼마 안 남았대, 얼른 먹어.”
“야, 체하겠다. 천천히 먹고 들어가도 볼 수 있어.”
입구 근처에 설치된 음식 가판대는 사람들로 붐벼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
방송을 듣자마자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모두 빠져나가고, 그제서야 상인들은 한숨을 돌리며 서로 이야기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행사 매년 했으면 좋겠구만 하하하.”
“누가 아니래요! 오늘 매상만으로도 우리 가게 3개월 치는 나온 것 같은데!”
“힘들긴 해도 좋네요. 아시겠지만 저희 가게는 유동 인구가 적은 곳에 있어서 매상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거든요. 저는 3일이면 1년 치는 나올 것 같아요!”
예상되었던 것 이상의 엄청난 판매량.
정현의 회사에서 지역 상인들을 대상으로 매대의 권리를 판매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판매 허가를 받아내었던 김포의 지역 상인들은 함박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의 판매량을 알지 못해 재료를 여유 있게 준비하지 못한 상인들은 공연을 하는 사이, 소진된 재료들을 다시 가져와 판매를 준비했다.
3일로 예정된 일정에서 아직 첫 번째 공연이 시작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많은 사람들은 만족할 수 있었다.
정현이 치르는 대부분의 행사는 기자들의 초청이 이루어지지 않았었지만 이번 슈퍼 페스티벌은 예외였다.
워낙 한국의 언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정현이었지만, 이번에는 ‘프레스 패스’를 언론사에 뿌렸다.
이는 사실 정현의 판단이 아닌 실무진의 판단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언론은 이것을 정현이 앞으로 언론과도 친하게 지낼 것이라는 오해를 했다.
“오프닝 세리머니로 예정되어 있던, 유지현의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음식 가판대로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모두 메인 스테이지를 향했다. 송신!”
“다 썼으면 우리도 유지현 무대나 보러 가자고.”
입구 근처의 야외 테이블에서, 노트북 컴퓨터로 작성한 원고를 편집부로 보내며 만족감을 표하는 후배 기자를 향해 선배 기자가 말했다.
후배 기자는 컴퓨터와 장비들을 정리하며 주변을 둘러보다 상인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와, 이미 무대를 향해 몸을 돌린 선배의 등에 말을 했다.
“잠시만요. 상인들 인터뷰 좀 하고 가요.”
“그래, 그래.”
대규모 소송 사태 이후 인터뷰 한번 하기 힘들었던 이정현. 그가 이렇게 프레스 패스를 내줄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하고, 티켓을 어떻게 구해야 하나 싶었던 잡지의 기자들.
잡지사에 직접 기자 출입증을 가져다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하지 못했기에, 기자에 대한 적개심을 보이던 정현에 대한 반발심은 옅어졌다.
“녹음 다 떴어요.”
“그래, 이제 무대로 가자.”
행사에 참가한 상인들의 인터뷰를 하기 위해, 다른 관객들보다는 조금 늦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게 어디인가. 이미 행사 수개월 전에 매진이 되었던 티켓을 구하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이 무대 앞에 도착했을 때에도 아직 첫 번째 곡이 시작하지 않은 상황.
무대 앞에 조금 늦게 도착한 기자들은 가벼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무대를 바라보았다.
“오늘 유지현 표정 좋네요.”
철컥철컥-
“이야. 오늘 일면 정해졌다!”
“그걸 선배가 어떻게 알아요. 편집장님이 정하는 건데.”
“안 봐도 알아. 지금 저 표정 내가 기자 생활하면서 유지현을 몇 년을 봐왔는데.”
멀리 떨어져 잘 보이지도 않는 무대.
그렇지만 그 무대의 뒤에 커다랗게 설치되어있는 야구장 전광판 크기의 모니터에 유지현이 크게 비치고 있었다.
무대 앞에 몰려든 수만 명의 관객들의 가장 뒤에서 바라보아도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유지현의 표정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
사람들은 유지현의 밝은 표정과 인사말에 함성으로 화답했다.
[여러분! 즐길 준비 되셨어요?]““네에에에에!””
한참 동안 이어진 인사말과 행사에 대한 소개를 유지현이 하기로 했기에, 조금 늦게 도착한 기자들까지도 첫 곡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오늘 이 무대에서 오랜만에 여러분께 처음 공개하는 신곡! ‘페스티벌’!]““와아아아!””
첫 무대의 첫 곡이 아직 발매도 되지 않은 신곡이라는 소리에 팬들은 함성을 질러 대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기자들. 대한민국 최고의 디바라는 소리를 들었었지만, 망해 버린 체리 엔터테인먼트에서 빠져나와 LJH와 계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의 신곡 발표를 쇼케이스가 아닌 이런 자리에서 먼저 공개한다는 것에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신곡이라고 한 거 맞지?”
“네, 선배 저도 들었어요!”
“항상 날짜를 지정해 두고 발표했었는데,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네….”
“그런 건 나중에 느껴도 돼요, 선배. 일단 기사 보내야죠! 제목이 페스티벌….”
유지현이 신곡을 축제 현장에서 발매한다는 소리에 기자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
뚜루루 룽-
미디엄 템포의 리듬으로 공연장 전체를 가볍게 울리는 키보드의 소리. 고음에서 저음으로 가로지르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진다.
반복되는 키보드의 소리 사이로 끼어 들어와 박자를 가지고 노는 리드미컬한 드럼 소리.
둥두두둥~
베이스기타로 떨려 오는 가슴에 안정감을 찾은 반주 위에 유지현의 목소리가 겹친다.
[다른 일은 아무렴 어때, 나에게 다가와.지금 이 순간 다른 일은 모두 잊어버려.
네가 어디에 있건 상관없어, 즐기는 거야~]
마치 반주와 하나가 된 것처럼 잘 어울리는 유지현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눈앞에 관객들을 마주해서 조금 흥분한 것일까. 나와 함께 작업하던 그 순간의 목소리와는 조금 다른 느낌.
그렇지만 조금 어긋나는 것쯤은 상관없다. 이런 게 라이브의 맛이니까.
무대의 뒤편에 위치한 운영팀의 천막 안에서 보이는 모니터가 유지현의 얼굴을 화면 한가득 잡아서 보여 주었다.
“저기 촬영팀한테 얼굴 위주로 잡는 것도 좋은데 간간이 현장 느낌 날 수 있도록 전체 뷰도 잡아 달라고 해 줄래요?”
“네, 사장님.”
엘리와 함께 김포의 공연장에 도착해서 운영팀이 있는 천막으로 들어왔다. 나를 위해 따로 준비되어 있는 천막이 없던 탓이었다.
흥미로운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는 엘리. 현장을 보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사람들이 흥분하며 바라보는 곳에 그녀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혹시나 알아보고 실례가 되는 일을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현장을 카메라가 촬영하는 현장의 모습을 조금 더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뿐.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엘리가 이틀 뒤에 올라갈 무대예요.”
“Looks Amazing!”
기대했던 것과 같은지 아니면 그것보다 나은지 그런 대답은 아니었지만, 반응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엘리.
나 역시 그 옆에서 모니터를 보며 꽤나 괜찮은 공연, 공연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하는 공연 특유의 떼창이 나오지 못할 신곡이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열광적인 호응도 이상적.
내년에도 신곡 발표할 일이 있으면 여기에서 발표하자고 해 버릴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이 시선은 대체 뭣 때문일까 싶어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등을 떠밀리며 다가온 한 직원이 나에게만 들릴 것 같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 대표님. 저기 저 모니터 보고 계신 분. 엘리 베일리쉬 맞죠?”
“네, 맞아요.”
“와…! 대박….”
“비밀인 거 알죠?”
어찌나 놀랐는지 직원의 입은 다물어지질 않았다. 뭐 직접 얼굴을 봤을 때는 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지.
이 바닥에 있으면 언젠가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나를 찾아올 줄은 몰랐었거든.
“왜 비밀이에요? 그냥 놀러 오신 것 아니었어요?”
“응? 여기를 왜 놀러 와요?”
“그야 그래미 시상식에서 대표님이 옆에 있어서 친하다는 소문이….”
그건 뭔 소문이야 대체.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고 있었던 건가.
“그런 것 아니에요. 이번 행사 3일 차에 나갈 숨겨진 손님 역할을 엘리가 맡을 거예요.”
“헉!”
직원이 놀라며 두 손으로 입을 막을 때쯤. 무대 위에 올라간 유지현의 첫 번째 곡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들의 페스티벌, 모두 함께 즐기는 거야~]짝짝짝-
운영팀은 리허설하느라 여러 번 들었기에 박수를 칠 사람이 없을 텐데, 하이라이트 파트가 끝남과 동시에 마무리되는 곡에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와! 나 노래 부르고 싶어요!”
“하하하하. 조금만 참아요, 이틀 뒤에는 싫어도 무대에 올라가야 할 테니까.”
“아니 그런 말이 아니고, 저 사람이랑 같이 노래 부르고 싶어요!”
엘리 베일리쉬의 뜬금없는 소리에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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