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58
157화
“올라가는 건 그렇다 치고, 무슨 노래를 부르려고요?”
“몰라요. 그냥 저 예쁜 아가씨가 부르는 것에 코러스라도 넣고 싶어요.”
꽤나 즉흥적인 말이었다.
프로페셔널이라고 생각했던 그 세련된 슈퍼스타는 어디로 가고, 이렇게 진상이 찾아온 것인가.
흥겹게 어깨춤을 추며 모니터를 응시하며 대답하는 엘리의 모습.
그녀의 이런 모습을 알고 있었는지, 함께 온 매니저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다른 것보다 말려야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기껏 비밀로 여기까지 오게 된 엘리를 지금 공개하면 피날레가 맥빠지게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일단, 본인과도 이야기를 해 봐야 하지 않겠어요? 미리 이야기되지 않은 합동 무대를 갖는다면 상대편도 당황할 테니까.”
“아…. 그건 생각 못 했었네요….”
조금 전까지 그렇게 흥겨워하던 엘리의 어깨가 처지는 것은 유심히 보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었다.
거의 우울한 음악들만 가득한 그녀의 음악들. 그 음악들만 생각해서는 지금의 이 분위기에 적응을 못 하게 될지도….
모여든 운영팀은 내 등 뒤에서 자기들끼리 속삭이고, 눈앞에 있는 엘리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모니터만 보고 있는 상황.
총체적 난국이네 이거.
이제는 저 의기소침해진 어깨에 힘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 은근히 손이 많이 가네.
“그러지 말고 내가 오늘 저녁에 자리를 마련해 볼 테니까, 둘이 이야기를 해 봐요. 그러면 혹시 모르잖아요. 유지현 씨가 내일모레 엘리의 무대에 같이 올라가 줄지.”
“아…. 제 무대에 올라와 줄까요?”
“그건 둘이 이야기하시고,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애초에 내가 이래라저래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 그건. 유지현의 선택에 달린 문제.
보통은 동급의 아티스트가 아니고서야 같은 무대에 올라가는 일은 드물다. 카리스마가 강한 쪽이 약한 쪽의 무대 퍼포먼스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급이 딸리는 쪽에서 거절하는 일이 많다.
유지현 자신이 더 급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한걸음 뒤로 물러서지 않을까?
어차피 엘리와 무대 공연에 대한 계약을 맺은 상황이라, 내가 그것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알아서들 하겠지.
***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공연들도 재미있게 보고 돌아가세요!]““네에!””
메인 스테이지 앞에 모여든 사람들은 유지현의 마지막 멘트에도 열성적으로 환호해 주었고, 그녀는 손을 흔들며 무대의 뒤편에 연결된 계단을 통해 내려왔다.
비록 콘서트에서 보여 주는 세 시간가량의 퍼포먼스는 아니었지만, 한 시간 동안 아직 연습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신곡까지 선보이느라 지칠 대로 지쳤다는 느낌을 받은 지현.
그녀는 자리에 눕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했다.
“수고했어, 지현아.”
“응, 고마워. 언니 물 좀.”
매니저는 물을 찾는 지현에게 생수병을 가져다주며 가볍게 말했다.
“여기 물. 그리고 대표님이 저녁에 식사라도 하자던데?”
“정말? 왜? 여기 오셨어?”
“응. 아까 운영팀에 가니까 앉아 계시던데?”
“그래? 아직 저녁 먹을 때는 안 됐지만, 지금 가서 이야기해 봐야겠다.”
조금 전까지 지쳐 쓰러질 것 같았던 지현은, 매니저의 말에 소파에 반쯤 누웠던 몸을 바로 일으켜 세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지금 땀 때문에 메이크업도 다 지워지고 엉망이야. 그 꼴로 가려고?”
“뭐 어때? 열심히 무대 뛴 증거인데. 정현 님도 괜찮다고 하실걸?”
머리에서 흘러내린 땀이 턱까지 흘러내렸고 오랜 시간 공들인 메이크업들도 그 땀들로 거의 지워진 상태. 옷도 무대 의상 그대로였지만, 말리지 않는다면 지금 상태로 뛰쳐나갈 것 같은 지현.
매니저는 운영팀의 천막까지 향하는 그 길에 마주칠 다른 팬들을 위해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거기 안 계셔. 아까 돌아가셨어. 그러니까 좀 소파에 누워서 쉬어.”
“아….”
그 말 한마디에 지현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활기가 빠지며 소파에 자연스럽게 다시 누울 수 있었다.
“물도 좀 마시고. 여기 쿠키들도 있으니까 좀 먹어.”
“응. 고마워 언니.”
긴장이 풀린 유지현은 쿠키 하나를 다 먹기도 전에 잠에 빠져들었다.
지현이 잠들었다는 것을 확인한 매니저는 담요를 가져와 그녀의 어깨 위를 덮어 주었고, 먹고 남긴 쿠키를 정리했다.
무대 의상을 정리하던 코디는 그런 매니저의 모습을 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언니. 대표님 아직 계시지 않아요? 아까 운영팀에 있는 친구가 공연 모니터링하고 가실 거라고 하던데.”
“야, 이것아. 조용히 해. 지현이 들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니까.”
“그렇지만, 대표님은 결혼도 했잖아요. 지현 언니는 왜 유부남을 좋아하고 그런대….”
“좋아하고, 그런 거 아니야. 지현이가 음악을 시작한 계기가 대표님인 거지. 어릴 때 가족들끼리 공연을 보러 갔는데, 그때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봤었대. 지현이한테는 대표님이 아이돌이야 아이돌.”
누구라도 오해할 만도 했다.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은퇴를 할 것이라고 말을 했던 유지현을 말 한마디로 음악계에 되돌려놓은 사람.
그런 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따가울 법도 했지만, 지현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으니까.
매니저는 코디에게 입단속을 시키며 누워 있는 지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언니는 대표님이 노래 부르시는 거 본 적 있어요…?”
“아니. 대표님은 성악가였거든. 굳이 성악을 찾아가서 볼 만큼 그렇게 문화생활을 많이 하지는 않아서. 아, 대표님이 부른 노래 스트리밍 사이트에 올라와 있을 텐데 한번 들어 볼까? 제목이 뭐였더라…?”
정현의 음악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매니저가 무브먼트의 휴대폰 앱을 이용해 이름으로 검색을 하자, 수많은 음악들의 목록이 보였다.
“이건, 클래식. 이건 시에스타, 에릭, 재지. 지현이 노래도 있네…. 찾았다. 울게 하소서?”
“뒤에 있는 이건 뭐라고 읽어야 해요…?”
“라시아 치오 피앙가?”
“얼른 틀어 봐요, 언니!”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어였기에, 읽기도 어려운 제목. 울게 하소서 (Lascia ch’io pianga).
아주 오래전, 정현이 중학생 시절에 불렀던 성악곡이 튀어나왔다.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궁금했던 매니저와 코디는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주도 없이 들려 온 도입부에 소름이 돋아 버렸다.
“헐! 대박. 이게 대표님 목소리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 목소리인데….”
“…와…. 나도 처음 들어 봐.”
두 사람은 플레이어 안에 보이는 이름에 혹시나 여자의 이름이 있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찾아보았지만, 정현과 반주를 해 주었던 교향악단의 이름 외에는 찾을 수가 없었다.
제목인 이탈리아어 옆 괄호 안에 담겨 있는 숫자를 보며 코디는 까무러치듯 말했다.
“2018년이래요! 대박. 17년 전이네…. 지금 대표님 보면 상상도 안 되는데….”
“내 말이. 나는 대표님이 작곡만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곤히 잠들어 있는 지현의 옆에서 두 사람은 정현의 다른 음악들까지 들으며,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그 음악회를 하는 덕분에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도 없었다.
***
“프레드 몇 시야?”
“…다섯 시 삼십 분이야. 물어본 지 십 분도 지나지 않았어.”
호텔로 돌아온 엘리는 잠이라도 들면 빠르게 시간이 갈까 싶어 침대에 누웠지만, 아직 현장에서 돌아온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일어날 때가 되면 알려 주겠다고 말을 했지만, 십 분 간격으로 시간을 물어보는 엘리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따라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지?”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잖아. 지금까지 콜라보레이션도 많이 했었고.”
“그 음악을 듣고도 그렇게밖에 느낄 수가 없단 말이야? 조금 실망할 것 같은데.”
“괜찮은 실력이야 그래. 그렇지만 그렇게 네가 목을 매면서까지 매달려야 하냐는 거지.”
엘리의 매니저인 프레드는 불만이 가득했다.
매니저가 하는 일은 스케줄이나 잡무뿐만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컨디션 관리도 포함되었기 때문이었다.
엘리는 체력을 아껴야 한다는 자신의 말을 도무지 듣지 않았다.
자신의 팬들을 만나러 가겠다며 월드 투어를 한다고 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공연을 끝낸 지 일주일도 채 되질 않았는데, 바로 공연을 하겠다고 말을 하는 건 자신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미국 본토 내에서 공연을 할 때에도 1~2주간의 간격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것은 상상 이상의 체력 소모와 스트레스를 동반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공연한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미리 합을 맞춰 보아야 하는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한다는 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글쎄. 그 사람이 이정현의 디바라고 하던데? 그러면 그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어?”
“디바?”
“이정현의 곡을 무려 열네 곡이나 받았다고. 그 재지조차 단 두 곡이었는데 말야. 시에스타나 에릭도 그것보다는 적어.”
“흐음…. 많기는 하네.”
아직 엘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감을 잡지 못한 프레드는 그녀의 말에 조금 혹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조금은 시큰둥했다.
“생각을 해 봐, 프레드. 내가 유지현과 콜라보를 하게 된다면, 그가 음악을 더 만들어 주지 않을까?”
“오…. 그렇군. 자신의 디바가 나서서 앨범을 만든다면 이정현이 더 적극적으로 나설지도!”
침대 위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하던 엘리가 프레드의 말에 벌떡 일어나며, 푸른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게다가, 그 아가씨 완전 귀엽잖아!”
“그게 본심이었구나….”
야심을 풀어놓는 척하며 숨겨진 본색을 드러내는 엘리를 향해 프레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친해지고 싶다고…. 난 내 또래 친구들이 많이 없으니까.”
“그래 알았다, 알았어. 슬슬 준비해.”
홈스쿨링을 하며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엘리는 친구가 몹시 적었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 못 되었다.
음악적인 활동을 열네 살에 시작하며 천재 싱어송라이터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 유명세로 인해 오히려 친구들을 사귀기가 어려웠다. 대부분 자신에게 먼저 다가오는 사람들은 음악계에서 꽤 유명한 뮤지션들뿐.
그렇게 서른 중반이 될 때까지 편하게 이야기할 친구와 사귀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자신이 무대를 보며 반할 정도인 유지현을 친구로 삼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이게 잘 어울릴까? 어떻게 생각해?”
“옷 갈아입을 거면 나는 나가 있을게.”
갑자기 뜬금없이 옷을 갈아입겠다고 말을 하는 엘리에게 프레드는 짧은 말 한마디를 남긴 채 방에서 나갔다.
덕분에 방 안에 혼자 남게 된 엘리는 투어를 위해 세계 곳곳을 다니며, 예쁜 옷들을 담아 왔던 여행용 가방을 풀어헤쳤다.
그녀는 약속 시간이 다 되도록 가방 안에 담겨 있는 옷들을 모두 꺼내어 자신의 몸을 거울에 비춰 보았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