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59
158화
“인사하세요. 여기는 엘리 베일리쉬, 그리고 이쪽은 유지현.”
“안녕하세요, 유지현이라고 합니다.”
“엘리 베일리쉬예요. 엘리라고 불러 주세요.”
저녁 식사 자리에 나온 유지현은 조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정현과의 식사라고 즐겁게만 생각했던 자리에 처음 보는 사람, 그것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티스트인 엘리 베일리쉬가 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긴장감이 느껴졌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에 울렁증이 생겨 멀미가 날 정도였지만, 그래도 정현이 사적인 자리에 자신을 불러 주었다는 생각에 견딜 수 있었다.
이른바 ‘성공한 덕후’. 성덕인 유지현의 입장에서는 그런 사적인 자리에 자신을 불러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엘리는 왜 한국에 온 거지…?’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는 유지현이었기에 주변 사람들이 숨겨진 손님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었다. 전혀 정보가 없는 상황.
영어로 이야기하는 엘리의 말을 지현이 알아들을 수 없어, 정현이 통역을 해 주어야 했다.
한참 동안 열을 올리며 이야기하는 엘리와 담백하게 통역하는 정현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엘리가 3일 차 무대에 지현 씨와 함께 오르고 싶다고 하네요.”
“네? 저랑요? 왜요? 3일 차? 설마 엘리가 숨겨진 손님이에요?!”
“맞아요. 엘리가 숨겨진 손님이에요. 무대에 오를 때까지는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어제 지현 씨 무대를 보더니 같이 올라가고 싶다고 하네요.”
이제는 긴장감에 경계심까지 더해져 어질어질해질 정도. 간신히 정현의 번역으로 이야기를 알아들은 지현은 엘리가 그런 말을 하는 의도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엘리 베일리쉬가 숨겨진 손님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지현은 그 부분에서 깜짝 놀라고, 자신과 함께 무대에 오르고 싶다고 말을 했다는 점에서 두 번 놀라야 했다.
자신도 그녀의 곡을 몇 번 들어 보았지만, 전혀 다른 성향의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상상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세계 탑 티어급 가수와 콜라보레이션. 자신에게 이득이 될 것이 없을 수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체급에서 차이가 나는 사람과의 콜라보레이션은 얻을 수 있는 게 많이 없으니까.
‘저 사람이 저런 표정을 지을 수도 있구나…. 이것도 정현 님 영향인가?’
테이블의 건너편에 앉아 활짝 웃는 얼굴로 열을 내며 이야기를 하는 엘리의 모습이 조금 의아했다.
“I want to PLAY with you on the stage!”
“지현 씨와 무대 위에서 같이 놀고 싶다네요.”
“…논다구요?”
무대에 오르는 것을 노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유지현. 그 앞에는 무대에 오르는 것을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엘리.
“나도 무대가 즐겁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어요. 일이었으니까. 이런 마인드는 좀 부럽네요.”
“저도 비슷해요…. 무대는 항상 긴장될 수밖에 없잖아요, 관객들이 쳐다보는 눈이 많은데 실수해서 틀릴까 봐….”
“외국 사람들과 여러 번 일을 했던 입장으로 말해 주자면, 외국의 아티스트들은 틀리는 걸 걱정하지는 않아요.”
같은 테이블에서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정현과 지현. 그리고 그 말들을 알아듣지 못해 답답한 엘리.
두 사람 사이에 있는 벽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다.
***
“둘이 무대에 올라가시건 콜라보레이션 앨범을 내시건 그건 마음대로 하세요. 그건 개인의 선택이니까.”
“제가 결정해야 하는 건가요?”
“네. 엘리가 제안했고 지현 씨는 결정만 하면 되는 거예요. 어떠한 방향으로 결정을 하시건 회사는 지원을 해 드릴 거예요. 그게 회사가 하는 역할이니까.”
둘을 한자리에 불러모으는 것까지는 약속해 준 것이지만, 콜라보레이션을 유도하는 것은 약속한 적이 없었다.
엘리가 원했기에 유지현을 부른 것까지는 딱 원했던 대로 해 준 것뿐.
둘의 줄다리기는 지지부진했다.
엘리는 친구와 함께 뛰놀고 싶은 어린아이처럼 굴었고, 유지현은 자신의 급이 낮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경계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 바닥에는 급이 낮은 가수를 공연에서 희생양처럼 내세워, 자신의 우월함을 느끼려는 가수들이 적지 않으니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유지현은 한참 동안이나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을 거듭하다 입을 열었다.
“…할게요!”
“그래요. 그러면 저는 뒤에서 지원을 하도록 하죠. 자세한 이야기는 엘리와 나누셔야 해요.”
내가 하겠다고 말한 것을 엘리에게 알려 주자, 그녀는 온몸으로 기뻐했다. 그런데 이게 저 정도로 기뻐할 일인가?
솔직히 나는 엘리가 왜 유지현과 함께 무대에 올라가고 싶어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둘의 음악 성향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었으니까.
그런 것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한쪽이 크게 희생을 해야 하는데, 엘리가 그 희생을 감수하려 할까?
이미 결정은 났으니 개인 자격으로는 참견할 일이 아니지만, 사장이라는 입장으로서 걱정이 되어 말했다.
적어도 내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이상 내가 보호해 줘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엘리와 지현 씨는 급이 최소 한두 단계는 차이가 나는 상황이에요. 아마 엄청나게 끌려갈 수도 있어요. 무대 위에 올라가시면 그 줄다리기를 잘하셔야 해요.”
“음…. 네…. 그렇지만 이런 것도 경험이니까요. 정현 님도 무대 위에서 다른 분하고 함께한 적 많잖아요!”
“그건 아리아였으니까요, 아리아는 불러 주는 사람과 답해 주는 사람까지 둘이 있는 편이 더 좋거든요. 물론 혼자 부를 수도 있지만.”
아리아는 오페라에서 극과 극을 연결시켜 주는 곡이 많았기 때문에, 두 명이 호흡을 맞추는 일이 더 흔하거든.
게다가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맞추기를 어려워했지만, 내가 다른 사람의 보컬에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뭐, 지금 이 자리에서 클래식 곡의 형식을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들이 아리아를 부를 것도 아니고 클래식 콩쿠르에 나가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에서 끝. 뭐 혹시라도 나중에 둘이서 앨범을 내겠다고 한다면, 그때는 할 일이 더 생길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가 적당히 다 되었으면, 식사를 들이라고 하죠. 슬슬 배가 고파지네요.”
***
1일 차의 공연 이후 어느 정도 슈퍼 페스티벌에 대한 호기심이 옅어졌기에, 엘리의 기사들이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기사에서는 엘리가 현재 월드 투어 중임을 강조하며, 그 월드 투어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이정현과 손을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했다.
이번에 LJH 측에서 무대연출팀을 신설했고, 그 팀을 슈퍼 페스티벌에서 직접 운용한 것이 이번 공연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게 가장 많은 추론이었다.
엘리는 탑티어 월드 클래스 아티스트였기 때문에 수만 석의 티켓 완판은 기정사실처럼 여겨졌기에, 중간 수수료를 떼 가지 않는 공연을 여는 것은 단기간에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세 명이 한자리에서 식사를 하는 사진은 가쉽지뿐만이 아닌 저녁 뉴스까지 올라가며 화제가 되었다.
이것이 LJH나 무브먼트 슈퍼 페스티벌에는 좋은 영향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개막을 해 버렸기에 슈퍼 페스티벌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타이밍에 엘리의 기사로 다시 슈퍼 페스티벌이 언급되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아이돌계의 탑티어인 스노우데이. 이들은 내일 있을 2일 차의 오프닝을 준비하기 위해 한창 연습을 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스노우데이의 리더 유진은 휴대폰으로 자신들의 기사를 검색하려다, 검색어 상위에 랭크된 엘리 베일리쉬의 이름을 보고 궁금했을 뿐이었다.
뭔가 스캔들이 난 걸까 하는 호기심에 이름을 검색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정현과의 만남에 대한 기사들만 잔뜩 보였다.
“와, 우리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
“조금 속상하네….”
제목에 이정현의 이름이 보였기에, 내일 2일 차의 슈퍼 페스티벌의 오프닝을 하게 될 자신들이 언급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기사에서는 자신들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었던 것이었다.
“3일 차 라인업은 별로던데…. 마지막 무대는 누가 올라가는지 나와 있지도 않고.”
“맞아 이제 남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건 우리밖에 없는데, 왜 안 나오는 거야.”
얼마 전 공중파 TV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샤미라에게 밀렸던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스노우데이의 멤버들.
자신들은 공연을 하지도 않는 엘리의 방한 소식만 잔뜩 전파하는 기사들을 보며 속상해했다.
“그래도 이번에 같은 곳에서 공연을 했으니까, 지현 언니랑 한무대에 설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구? 설마 유지현?! 얘가, 미쳤니, 너? 그 언니가 우리를 상대라도 해 줄 것 같아?”
“혹시 모르잖아….”
“같이 무대에 올라가면? 관객들이 그 언니 옆에 있는 우리를 봐주기라도 할 것 같아? 우리 팬들 빼면 다 지현 언니 팬이야.”
아이돌계의 1, 2위를 다투고는 있지만 스노우데이와 유지현은 급이 달랐다.
게다가 솔로 가수의 압도적인 보컬 능력에 눌릴 것이 분명했기에, 무대 퍼포먼스에서 눈에 띄는 것도 불가능하다.
유진은 헛된 꿈을 꾸고 있는 막대 다솜을 깨우기 위해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어야 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현장에서 엘리와 유지현의 합동 무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
슈퍼 페스티벌의 2일 차.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저 2일 차의 테마인 아이돌에 맞게 아이돌 위주의 무대 공연이 펼쳐졌다는 것 정도.
급하게 영입했던 공연 설비팀의 인원들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잘해 주었다.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매일 공연을 마치고 회사에 가져다 두어야 하는 고가의 장비들 때문에 퇴근도 하지 못한, 공연설비팀장을 복도에서 마주쳤다.
“오늘 공연도 수고했어요. 운영팀이 많이 힘들 텐데 하루만 더 고생해 주세요. 내일 행사 끝나면 제가 회식비 쏠게요.”
“저희가 해야 하는 일인데요 뭐. 어차피 이번 일 끝나면 당분간은 외주 위주라서 괜찮습니다.”
건물을 짓는 것과 다름없는 설치형 공연장을 네 개, 그리고 출연자의 대기실로 쓰이는 천막을 수십 개를 짓는 일은 단기간에 하는 것이 불가능하니까.
결국에는 사람들이 갈려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 것이었다.
추가로 사람을 구하려 해 보았지만, 이상하게 지원하는 사람이 적었다. 왜지?
“그래도 회식비로 맛있는 거라도 먹으면서 해야죠. 몸 쓰는 일인데.”
“그나저나 사장님도 오늘은 늦게까지 남아 계시네요?”
공연팀장의 말에 나는 살짝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연습 끝나는 걸 기다리고 있어요.”
“아. 연습실에 지현 씨가 와 있나 보네요.”
“네….”
연습실에서 비공개로 합을 맞추는 엘리와 유지현. 그 둘의 무대 자체가 비밀이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도록 문지기가 되어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사람 한 명 정도는 알 수 있게 할걸…. 아 메건이 보고 싶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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