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6
015화
이정희가 연주한 곡들이 담긴 앨범의 이름은.
로 정해졌다. 여섯곡이 들어간 앨범으로 총 플레이 타임은 1시간 50분가량. CD 한 장의 용량인 74분을 넘어가는 시간이라 2장의 CD로 실물 앨범 1천 장을 발매하기로 하였다.
어차피 요즘에는 실물 앨범보다는 디지털 음원이 더 잘 팔리는 시대라 이정희는 실물 앨범에 대한 욕심이 없었지만, 상징적인 부분이라 생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여섯곡 중 네곡은 소나타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은 물론 연주 시간 25분 내외의 곡이었다. 나머지 두곡은 소품으로 다른 네곡보다 짧은 6분 정도의 곡이었다.
여섯곡 모두 굉장히 쓸쓸한 분위기의 곡이었기에, 겨울이라는 앨범의 이름이 절묘하다 싶을 정도로 잘 어울렸다.
앨범을 듣고 있으면 눈 쌓인 겨울이 눈 앞에 펼쳐진 것 같은 그런 차가운 느낌이 드는 곡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계약했던 이정희의 앨범보다 고등학교 밴드의 음원 편곡자로 먼저 저작권 협회에 올라가게 되었고, 안에 수록된 곡들의 저작권들은 그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올라가게 되었다.
***
“이정현이라… 이거 벗겨 봐야 하나?”
클래식 전문 잡지 의 기자인 원강현은 제보를 받았을 때, 어이가 없었다.
기존에 자신들이 써 놓았던 기사들에서 이정현을 물고 빨며 수도 없이 많은 말들을 했었지만, 그 안에 연주나 작곡에 대한 것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클래식과 관련된 많은 이들이 이정현에게 원했던 것은 딱 한 가지.
‘얼굴마담’.
성악계의 신성, 클래식의 구세주처럼 거창한 미사여구를 붙여 대며 찬양했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이정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클래식 전반적인 부흥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이슈를 만들었던 것이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렇게 열심히 미디어에서 물고 빨았음에도, 정작 이정현은 마지막 콩쿠르 이후에 1년 동안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아 이렇게 사라지는구나 했다.
클래식 바닥과 대중음악계가 동일한 것은 수도 없이 많은 별들이 나타나고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도 그렇게 다른 사람들처럼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당연하게 그 누구도 이정현이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 그런데 1년 만에 작곡과 편곡을 했다며 저작권 협회에 이름을 올렸다.
처음에는 ‘설마’, 라고 생각했었지만, 앨범이 발매된 지금 현실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많은 관계자들이 생각하듯이 클래식이 호황이 되면 자신들도 좋을 수밖에 없다.
관심이 많아져 대중에게 자신들의 잡지가 많이 팔리게 되면 성과급도 나올 테지.
하지만 그 호황이 범죄와 다를 바 없는 밀어주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자신은 정당하게 그것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원강현은 제보를 받고 현실을 마주한 순간 수도 없이 많은 질문들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며 고민했다.
그리고 손에 쥐어진 CD를 청음실의 오디오 장치에 넣으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원곡자가 있는 대중음악의 첫 번째 곡보다 온전히 그가 작곡자로 이름이 붙은 최초의 곡들을 들어 보고 싶었다. 이정현에 대한 의혹을 마주하기 전에 말이다.
그리고 이 곡들이 그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느껴진다면 파헤쳐 낱낱이 알려야 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클래식이 병들어 썩어들어 가기 전에.
***
이정현은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공연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본 공연은 이틀 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 시립 교향악단이 연습해 온 자신의 곡들을 듣고 싶지 않아서 연습에는 지금까지 불참했었다.
하지만 본 공연을 위한 리허설은 무조건 참석해야 했다.
교향악단의 리허설은 본 공연과 차이가 없다. 연습 때처럼 중간에 틀렸다고 한 부분만 미치도록 연습하거나 반복하지 않는다.
딱 본 공연과 똑같은 형태로 진행하는 한 시간의 리허설.
정현은 그중에 세 번째 곡의 리허설에만 참여했다. 어차피 공연에서 연주될 곡들의 완성도는 윤 교수가 이미 했을 테니 자신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세 번째 곡인 성악곡의 가사는 윤 교수가 붙여 주었다.
유명한 성악곡들은 다들 자신들의 언어로 가사가 붙는다. 한국인의 아이덴티티를 살린다며 한국어로 붙였는데 오늘 처음 가사를 받아 연습하고 리허설에 나섰음에도 아무도 태클을 걸지 않았다. 윤 교수조차도 말이지.
성악에서 언어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인데, 대부분의 성악곡은 오페라가 아닌 이상 번안하여 부르지 않는다.
간혹 원작자가 반대할 경우에는 오페라라고 하더라도, 원작의 언어를 따라야 한다.
그 유명한 오페라 ‘리날도’의 소프라노 아리아 ‘울게 하소서 (Lascia ch’io pianga)’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불렀으며 가사들도 번역이 많이 되었지만, 정작 실연에서는 누구도 한글로 번안하여 부르지 않는다.
이는 성악에서는 곡을 표현한 언어가 조금이라도 바뀌면 곡 자체가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클래식에서는 성악가 역시 목소리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가’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바꾼다는 것은 악보의 음표를 바꾸는 것과 같다. 실제로 대중음악에서도 단어의 발음의 차이로 발생하는 음 차이로 가사들을 바꾸곤 하니까.
윤 교수는 이 성악곡이 세계에 뻗어나갈 한국어 성악곡이 될 것이라며, 새벽부터 나와 정현에게 가사를 전달한 뒤 시간마다 가사 습득을 확인해 가며 귀찮게 하였다.
공연에서 연주할 곡은 3곡. 총 60분. 그 세 곡 중에 정현이 투입되는 것은 10분 정도의 세 번째 곡뿐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25분가량의 순수한 교향곡.
문제는 공연에 붙는 제목이다.
앞뒤 아무것도 없이 딱 저 세 글자다. 홍보용 포스터에는 정말 부끄럽게도 정현의 대표적인 흑역사, ‘자유다’ 사진이 쓰였다.
양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하는 바로 그 사진.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보통 홍보용 포스터의 가장 아래에 붙는 시간과 장소를 알려 주는 글.
‘미쳤네….’
흑역사와 자유라는 단어까지 섞어 버려서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알아서 잘해 달라는 말을 아주 그냥 반대로 알아듣고 거지 같이 만들어 왔다.
이제 포털 사이트에 이정현 세 글자를 검색만 해도, 자신의 프로필에 저 사진이 함께 보이게 될 것이다.
정현은 리허설을 마치고 가벼운 마음에 콘서트 홀 밖으로 나가다, 입구 옆 게시판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기분이 안 좋아졌다.
오늘 저 포스터로 인해 이불 킥을 예약한 느낌이었다.
***
광복절은 대부분의 공연장에 굉장히 중요한 날이다.
애국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가 볼까 하고 생각할 만한 공연을 해야 하는 날.
그래서 같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오페라는 광복절에 오페라 홀을 관중으로 가득 메운다.
정현의 공연은 5시에 시작한다. 광복절 기념 본 공연이 저녁 7시에 시작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 두 시간 전에, 한 시간짜리 공연을 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한정된 시간으로 공연의 끝인 앙코르를 받아 줄 수가 없다.
클래식 공연의 예의처럼 여겨지는 기립 박수 뒤에 찾아오는 앙코르를 받아 줄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것이다.
한 시간짜리 공연을 잡는다 쳐도 앞뒤에 더 붙는 시간과 다음 연주자들이 들어서고 관중들이 자리할 것을 생각하면 6시 30분 전에 공연장 전체를 정리해야 한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앙코르는커녕 본 공연에 쓸 시간도 빠듯하다.
현대의 대중음악과 성악을 접목한 형태의 음악은 이미 존재했다. 오페라의 한 부분을 떼어다가 대중음악의 선율 위에 얹는 ‘팝페라’가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정현의 공연이 팝페라의 한 갈래일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성악가들이 대중적으로 나설 때는, 오페라의 껍데기를 두른 팝페라의 형태로 나섰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유를 되찾는 날’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 역시 클래식이라는 형태를 벗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관중이 없어 공연장이 텅 비어 있을 것 같다’던 정현의 기대와는 달리 티켓은 판매 대행 사이트에 올라가자마자 2분 만에 매진되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기자들의 취재를 위한 티켓 요청이 있었지만 모두 거절되었다.
이 공연은 사실 일반적인 공연이 아닌 실황 음반의 형태를 갖는 앨범으로 만들기 위한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연을 시작하는 시간이 되어 2,500석의 좌석이 모두 들어찼다. 그중에는 정현이 초대권으로 초대한 가족들과 티케팅에 실패한 유 자매도 있었다.
다섯 시가 되어 공연장의 문이 닫히자 실황 녹음을 위한 스태프들은 공연이 시작하기 전 조율 시간에 마이크를 최종 점검했다.
기준 음이 되는 오보에의 개방 음인 A(라)음이 공연장에 울려 퍼진다.
녹음 엔지니어는 오디오 컴프레서를 체크하고 믹서에서 볼륨 레벨을 체크, 마지막으로 저장이 될 레코딩 장치를 점검한 뒤 오케이 사인을 낸다.
오케이 사인에 지휘자가 입장하며 콘서트 홀에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에 섞여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뭐야, 이정현은 어디 있어?”
무대 위에서 이정현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분명 이정현의 공연을 보기 위해 티켓을 구매했음에도 정작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이정현을 무대 위에서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공연에 대한 정보는 정말 전무했다. 아무 정보도 미리 알려진 것이 없었다.
이정현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 공연인지. 관중들은 그저 순수하게 이정현을 보러 왔을 뿐이었다.
박수 소리가 옅어지고 관중들의 술렁임이 커지자 오늘 공연을 위해 고용된 외부 스태프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관중들의 술렁임은 지휘자가 연주를 시작하기 전 관중석을 바라보며 인사를 하자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멈추었다.
그리고 지휘자가 다시 악단을 향한 뒤 지휘봉을 가볍게 움직이자, 정현이 만들어 낸 음악이 폭풍처럼 관중석을 집어삼켰다.
정현이 쏟아낸 백 수십여 곡들은 모두 우울함을 담고 있었다. 정현의 심리 상태가 우울함의 끝을 달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성악계의 신성이라는 이명 뒤에 가려진 정현의 심리 상태는 대중에게 알려진 바가 없었지만, 윤 교수는 그가 만든 곡들을 들어 보며 알 수 있었다.
그 백 곡이 넘는 음악들 중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우울한 곡이 오늘 공연의 첫 곡이었다.
관중들은 제목 같은 건 알 수 없었다. 공연 전 일반적으로 입장하는 관중들에게 제공하는 프로그램 팸플릿 자체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제목이나 주제 같은 곡의 단편적인 정보조차 접하지 못해 어떤 곡인지 대비하지 못한 채, 휘몰아치는 음악에 홍수에 떠내려가는 나뭇가지처럼 하염없이 쓸려 내려갔다.
몰아치던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갑자기 사라지고 한순간에 콘서트마스터의 바이올린 독주로 전환된다.
독주로 전환된 바이올린의 소리는 너무나도 가냘팠다.
온몸을 감싸는 세상 끝에서 혼자 마주하는 것 같은 그런 외로움이 바이올린 독주에서 흘러나왔다.
독주는 관중들에게 정신을 차릴 틈도 주지 않으려는 듯, 마치 세상에 혼자 남은 것만 같은 외로운 선율에서 도망가듯 빠르게 스타카토로 질주한다.
바이올린 독주가 짧은 호흡으로 강하게 달려 나오자, 관중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숨을 집어삼켰다.
무서운 것에 쫓기는 중인 것처럼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온몸을 뒤덮은 감정에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챌 수 없었다.
식은땀이 등 뒤를 조금씩 적셔간다.
분명 차갑고 외로운 느낌을 주는 선율이 담긴 곡임에도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느낌에 관중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바이올린 독주가 현악기 전체로 번져나간다.
현악기에서 관악기.
관악기에서 타악기.
다시 오케스트라 전체로.
무대의 뒤편 대기실에서 무대에 올라갈 타이밍을 기다리던 정현은, 리허설에서는 자신의 곡만 참여했었다.
그렇기에 정현은 대기실 모니터를 보며 처음으로 자신이 만들어 낸 첫 번째 교향곡의 실제 연주를 스피커를 통해 들어 볼 수 있었다.
정현은 자신의 몸을 휘감는 오케스트라에 몸서리치며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뭐야, 이거…? 미쳤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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