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63
162화
“와…. 저거 뭐야…. 진짜 지현 언니랑 엘리랑 콜라보하는 거야?”
“미쳤다 미쳤어….”
“유진 언니 말 듣기를 잘했네…. 지현 언니한테 무대 같이 올라가 달라고 했으면 우리 백퍼 잡아먹혔어….”
공연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무대인사를 위해 대기 중이었던 스노우데이. 이들은 대기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지현과 엘리의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바라보았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콜라보레이션은 이 정도로 굉장한 분위기가 아니라 적당히 유지현에게 묻어가려 했었던 것뿐이었는데, 이들은 마치 둘이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보여 주었다.
꿀꺽-
대기실 안은 이들이 삼키는 침 소리만 울려 퍼졌다.
스노우데이뿐만이 아니었다. 이 무대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대에서 조금 떨어진 기자 전용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던 기자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뭐, 뭐야 이거. 유지현한테 저런 모습도 있었어?!”
“선배 그렇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기사 송고해야죠! 카메라! 카메라!”
처음 보는 수준의 무대에 놀라 사진을 찍어야 하는 사진 기자가, 카메라를 손에서 놓아 버릴 만큼 놀랄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
“아, 그렇지! 고맙다. 깜박할 뻔했어.”
“오늘 무대는 좀 대단하네요….”
“조금이 아냐…. 십 년도 넘게 기자 생활해 왔지만, 이런 무대는 처음 본다….”
“그 정도예요?”
선배 기자가 놀라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인 무대를 바라보며, 후배 기자는 그의 말이 잘 와닿지 않았다.
“안됐다…. 네 기자 인생에 이만한 무대를 다시 보기는 어려울 거야…. 나도 이번이 두 번째니까. 쓸 말을 좀 아껴 둬. 나중에 뭐라고 써야 할지 안 떠오를 수도 있을 테니. 어제 생각해 봐.”
“아….”
그 말을 듣고 나서 이해할 수 있었다.
매번 똑같은 춤과 퍼포먼스 그리고 대사를 하는 아이돌의 무대는 언제 어디에서 보더라도 다를 것이 없었으니까.
방송국에서 보았던 똑같은 춤과 퍼포먼스를 축제 무대에서까지 보아야 했다.
다른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은 무대를 보며 오늘은 어떻게 기사를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던, 어제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제 보았던 무대를 떠올리자 선배의 말에 말문이 막혀 버려 무대를 멍하니 쳐다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무대를 바라보자, 공연을 펼치는 유지현과 엘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마주한 무대가 생에 두 번은 보기 힘든 공연이라는 것을.
두 눈으로 무대 위를 바라보느라, 기사를 송고해야 한다는 생각도 잊어 손가락도 멈춰 버리고 말았다.
“어이, 기사 안 보낼 거야?”
“네, 네? 아! 보내야죠.”
한참 동안이나 무대에 집중하느라 기사를 송고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아 버린 기자들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모두 무대를 바라보며 할 말을 잊은 채 집중할 뿐이었다.
관객들도 마찬가지.
조금 전까지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던 관객들은 더욱 빠르게 빠져들고 말았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목소리와 음악들은 그들의 귀를 사로잡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어느새 공연장에는 관객들의 함성이나 호응들이 전혀 들려 오질 않았다. 모두 가만히 멈춘 채 무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
“왜? 무슨 일인데?”
나는 정말이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수원이 그렇게 물어보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너 코피 나잖아!”
“뭐? 코피?”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은 내가 요즘에 피곤했던 일이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슈퍼 페스티벌이 열리고 나서는 아무런 일도 하질 않았기에, 전혀 피곤할 일도 없었다.
코피가 흐른다고 했던 수원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오른손을 들어 올려 코 주변을 만져 보았더니 뜨끈한 액체가 만져진다.
“뭐야 왜 이래, 갑자기….”
조금 전까지 멀쩡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코피가 흘러내린다는 것을 자각하자마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 느낌을 뭐라고 해야 하는 걸까.
무대 위에 집중하고 있던 메건이 내가 코피를 흘리는 것을 눈치채고 다가와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피곤한데 내가 괜히 보고 싶다고 했나 봐요….”
“아니에요. 이상하네, 왜 갑자기 코피가 나는 거지…?”
피가 흘러내리기 전에 보통은 자기 자신이 먼저 느끼지 않나? 코가 간질거린다든가 어지러움을 느낀다든가 말이지.
하지만 그런 것이 전혀 없이 갑자기 흘러내렸다. 아니 흘러내리는 것조차 느껴지질 않았다.
무대 위에 등장한 엘리의 퍼포먼스가 보였다. 유지현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마이크 하나만을 들고 등장한 엘리.
나는 손수건으로 코를 틀어막고 그 무대를 보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분위기. 서로 잡아먹을 것만 같았던 둘의 콜라보레이션은 둘 중 누구도 뒤로 물러서질 않았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더 완성도가 올라간 모습.
원곡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 우울하고 혼자 남겨진 것만 같았던 느낌에 유지현의 발랄함이 끼얹어졌다. 정말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두 개가 조합되자, 상상도 하지 못한 시너지가 느껴진다.
길게만 느껴지던 엘리의 파트가 끝이 나고, 조금 더 흥겨워진 분위기의 2절이 시작된다.
[I like it when you take control-]그 시작을 알리듯 변주가 시작되자 무대 위에 백댄서들과 달려들듯 등장하는 유지현의 모습이 보인다.
아무렇지 않게 합쳐지는 엘리와 유지현의 목소리가 묘한 화음을 만들어 내자 느껴지는 위화감.
뭐지 이 느낌은?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엘리와 유지현의 목소리.
묘하다고만 생각했던 그 목소리로 만들어지는 화음이 반복되는 음악에 관객들의 호응이 더해진다.
최근에는 비교적 내 마음대로 조절을 해 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들려 오는 소리는 조절을 할 수가 없다.
귓가에 들려 오는 함성들과 섞여 들어오는 머릿속의 연주.
베이스의 울리는 소리와 조금은 둔탁한 드럼의 조화가 나를 울렁이게 만들었다.
우욱-
끝도 없이 반복되는 것 같은 베이스 소리. 규칙적으로 들려 오는 메트로놈 같은 드럼에 빨려들어 간다.
“괜찮아? 병원 가야 하는 것 아니야?”
“응…? 뭐?”
“얘, 상태가 너무 안 좋은데…. 안 되겠다 병원 가자.”
“무슨 코피로 병원을 가. 괜찮아.”
그 미묘한 음악의 늪에 빠져가던 나를 깨워 주는 수원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위험한데…. 이런 음악 만들면 안 될 것 같은데 말이지.
그렇지만 머릿속에서 꺼내지 않으면 나 자신이 더 괴로워질 거다. 끝도 없이 빨려들어 가는 멜로디에 나 자신이 끊임없이 빨려들어 가고 있으니까.
무대 위에서 흥겹게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왜지?
나는 나름 많은 음악들을 들어 오며 살아 왔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집 안에 흐르던 음악들이 그렇게 지겨웠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엘리와 유지현의 공연은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둘의 목소리가 아닌 내 머릿속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가 다른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이들의 무대를 바라보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다른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
몸이 흔들리는 느낌에 어깨에 짚어진 손을 따라가 확인해 보니 흐리게 김수원의 얼굴이 보인다.
“…! ……고!”
입술이 움직이는 것이 보이지만 무어라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다.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음악 소리에 가려져 다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끝없이 들리는 음악. 이 곡들을 어디서 들어 보았더라? 처음 들어 보는 것은 아니야. 어디선가 들어 보았던 느낌이다.
눈을 깜박이자 보이는 것들이 흩어지고 다른 곳이 보였다.
귀에서 들려 오던 음악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어디선가 보았던 낯설지 않은 풍경, 어디선가 보았던 사람들.
정장의 재킷에 하얀색 셔츠를 입은 남자들과 그보다 조금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줄지어 하나의 건물로 향했다.
눈앞에 보이는 이들의 웅성대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모스크바 콘서바토리 앞의 넓은 광장.
이 안에서 콩쿠르가 진행될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미 한 번 경험했던 일이었으니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참가하기 위해 머물렀던 곳.
해외 콩쿠르였기에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서는 길에 어머니가 따라오지 않으셨었나? 어머니가 아니라 윤 교수였던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지금 이 광장에 서 있는 나는 혼자였으니 어쩌면 혼자 왔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러시아에 왔던가?
혼란스럽다.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라 주변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온몸을 꽁꽁 묶어 놓은 것만 같은 느낌.
[2018년도 성악 부문 우승자는 이정현!]어디선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 오는 러시아어. 내가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았던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는 거지?
그것보다 내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해는 2018년이 아니라 2017년이었던 것 같은데.
몸이 멋대로 움직이며 걷기 시작한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지만 주변의 광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눈앞에 보이던 광장은 시상식이 진행되었던 장소로 바뀌고, 귓가에는 박수 소리가 들려 온다.
나는 오른손으로 목을 조이던 나비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하며 무대를 향한 계단에 발을 얹는다.
누가 상을 주는지 얼굴을 마주했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린 것처럼 까맣게 채워져 있는 것만 같다.
그 보이지 않는 얼굴은 나의 목에 메달을 걸어 주고, 손에 액자를 들려 주었다.
까만 얼굴이 말한다.
“Поздравления”
축하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것 같다.
손에 쥐어진 네모난 액자 안에 러시아어로 쓰인 우승 증서가 보였다. 우리 어머니는 상장이라고 하던데, 상장이라니 참 멋없는 표현이지.
작게 푸념을 해 보았지만 들어 주는 사람은 없다.
단상 앞에 올라가 마이크를 마주한다. 내가 이때 뭐라고 했더라. 열심히 떠올리려 해 보았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Спасибо”
감사합니다.
아, 그랬던가. 내가 남긴 말은 그것뿐이었다. 상이나 상장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원했던 것은 돈뿐이었으니까.
몸을 돌려 무대의 뒤편의 다른 수상자들과 함께 나란히 서서 기념 촬영을 기다린다. 지루한 시간들만 남았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눈앞이 어두워졌다.
내가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여기는 어디인 걸까?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칠흑처럼 까맣게 변해 버린 공간에 남아 있지만, 혼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곳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
나는 그걸 알 수 있었다.
저 어둠의 건너편에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왜 그걸 알 수 있는 거지?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이 난다.
“…! ……려!”
누군가가 볼을 때리는 느낌이 난다.
“야! 정신 차리라고!”
그제서야 어둠이 물러가고 주변이 밝아졌다.
“…왜 때리고 난리야.”
“야, 인마! 이제 정신이 들어? 앰뷸런스 불렀으니까 그거 타고 병원 가자.”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하얗게 질린 메건의 얼굴. 그리고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주변 스태프의 얼굴과 멀리서 뛰어오는 유지현이 보였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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