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64
163화
“괜찮다니까….”
“그래도 병원에 왔으니까 정밀 검사 한번 받아 보자. 갑자기 코피 흘리고 그러면 뇌출혈일 수도 있대.”
갑자기 무서운 소리를 하는 수원과 충격을 먹었는지 내 옆에서 창백해진 얼굴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메건.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실려 와 응급실 침대에 앉아 커튼을 치고 있는 상황에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들.
-이정현 왔다며? 왜 무슨 일이래?
-몰라. 갑자기 코피가 나서 왔다는데?
-유명인은 응급실이 코피만 흘려도 오는 데인 줄 아나 봐?
부정적인 뒷담화들. 이래서 병원에 오기 싫다고 했었던 건데, 조금만 더 지나면 기자들에게도 제보가 들어가겠구만.
그렇게 열심히 이미지 관리를 하던 어릴 때와는 다른 상황이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안 좋은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가 지금은 그리 크게 들려 오질 않았기에 사람들의 말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공연장에서처럼 크게 들려 왔다면 아마 지금 눈앞에 있는 수원이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테니까.
“나 정말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조용히 하고 있어. 곧 어머니도 오실 거야.”
“집에도 전화했어? 야! 별일 아니라니까, 그런 걸로 전화를 하면 걱정하시잖아. 살면서 코피 한 번 안 흘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
“여기 병원이야. 목소리 좀 낮추자. 검사 받고 그때도 괜찮다고 하면 믿을게.”
평소와는 다르게 완고한 수원이 이상하다. 내가 하는 말에 이렇게까지 말했던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주변의 분위기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투웅 투웅 투웅 투웅-
어쩔 수 없이 받게 된 검사. 이름 모를 기계들에 들어가서 한참 동안 들려 오는 심장 소리 같은 기계음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이렇게 규칙적인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에서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져 들렸어야 하는데, 들려 오질 않았다.
귓가에 들려 오는 것은 심장의 박동 소리 같은 기계음과 공연장에서부터 따라오는 음악.
하지만 지금 이곳은 낯선 병원이라는 곳에 있기에 그런 것을 깊게 생각할 수 없었다.
“…결과는 언제 나온대?”
“한 시간이면 될 거라고 하더라.”
검사를 마치고 병실에 누워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지루하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게다가 누워 있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도 조금 부담이 되었다.
드르륵-
“현아! 현아!”
“저 괜찮아요. 소리치지 않으셔도 돼요.”
“오셨어요….”
수원의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오신 어머니와 누나들. 저녁 시간이었기에 크게 바쁠 만한 시간대가 아닌 게 다행이다.
혹시라도 낮이었다면 다른 일을 마치고 왔을지 마음에 걸렸을지도 모르니까.
평소에 그렇게 말이 많던 누나들은 병실에 누워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가까이 오셔서 침대의 옆에 붙어 있는 메건을 향해 다가가 끌어안더니 입을 열었다.
“아가, 많이 놀랐지?”
“저, 저는 괜찮아요….”
두 사람의 대화가 귓가에 들려 온다.
어머니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는 메건을 한참 동안 위로하고 나서 나를 바라보았다.
“현아….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않니?”
“응?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일 안 하고 집에서 쉬면 안 되겠느냐는 말이야….”
“…지금 제가 병원에 누워 있는 건, 일하다 힘들어서 온 게 아니라….”
나는 그저 코피가 났을 뿐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말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어머니의 눈에 고인 눈물 때문이었다.
그 눈물을 보고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내가 못나서 너 어릴 때부터 힘들게 만들었던 것 잘 아는데, 이제는 그렇게 열심히 일할 필요 없잖아.”
“어, 음…. 곧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서 결과 이야기해 주신다고 하니까, 결과 듣고 결정할게요. 그렇게 막 결정하기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고….”
회사에 내가 없으면 굴러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일을 안 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 현아, 누나도 요즘 잘나가잖아. 내가 너 먹여 살릴 수 있다니까?”
“정화야….”
누나들까지 어머니의 말에 동조하고 나섰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먹히지 않을 것만 같은 분위기.
내가 그렇게 힘들게 살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일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나 회사에서 놀고먹고 있는데 왜 자꾸 그쪽으로 몰아가는지 도무지 모르겠네….”
“진짜야 수원아? 우리 현이 안 힘든 거 맞아?”
“어머니, 힘든 건 제가 힘들죠. 정현이가 시키는 잡일이란 잡일은 다하고 있는데. 일 때문에 이런 건 아닐 거예요.”
“아니, 너는 또 내가 언제 부려먹었다고….”
드르륵-
그때 나의 말을 끊으며 병실의 문이 열렸다. 그 열린 문틈 사이로 내가 입고 있는 하얀색 환자복보다 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결과 나왔습니다.”
“어떻게 나왔나요, 선생님?”
방 안의 모두가 향해 있던 시선이 나에게서 의사에게 넘어가며 나는 조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솔직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니까.
의사는 손에 쥔 종이 다발을 쳐다보고는 내가 아닌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네요. 뇌출혈이 아닐까 의심되는 상황에서 뇌의 정밀 촬영을 해 본 결과도 크게 이상은 없어요.”
“정말이죠? 다행이다….”
한 시간가량을 기다려서 받은 정밀 검사의 결과는 이상 없음.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렸나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결과를 듣고 나자 조금은 안심되었다.
아무리 내 몸이라지만, 내가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 당연히 나도 내 몸이 걱정이 되었다.
“거봐요, 의사 선생님도 괜찮다고 하잖아요. 선생님 그러면 저는 퇴원해도 되는 거죠?”
“네. 입원을 하셔야 할 만한 특별한 이상도 보이지 않고, 돌아가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퇴원을 서둘렀다. 병원이라는 곳은 내가 아프지 않다고 하더라도 아픈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곳이니까.
솔직히 더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집에 가서 맛있는 것 먹고 푹 쉬자 현아. 응?”
“네, 네. 일단 저 옷 좀 갈아입게 다들 나가 주시겠어요?”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허전함을 느끼게 하던 하얀색 병원복을 어서 빨리 벗고 싶은 마음뿐.
게다가 조금 전 공연을 보면서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던 그 음악을 빨리 꺼내 놓고 싶었다.
이렇게 강렬한 곡은 빨리 꺼내지 않으면 꺼낼 때까지 계속해서 울리기 때문에, 또다시 잠을 잘 수 없게 될 테니까.
퇴원 수속을 밟고 병원에서 나가는 길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조금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병원의 지하 주차장에 향하는 길에 뒤에 따라오는 많은 사람들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차를 타고 가는 것은 많아 봤자 두 명뿐일 것이기에 차에 올라타기만 하면 된다.
항상 내가 타고 다니던 차의 앞에 멈춰 서자 경호원이 문을 열어 주어 차의 뒷좌석에 올라타며, 운전을 해 주시는 분에게 말했다.
“저는 회사에 내려주시고, 메건은 집으로 데려다주세요.”
“안 돼요…. 적어도 오늘 밤은 쉬고 내일 가서 하세요…. 부탁할게요.”
“어…. 알았어요. 그냥 집으로 가 주세요….”
“알겠습니다.”
퇴원을 하며 바로 곡을 꺼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다.
바로 회사로 돌아가서 컴퓨터로 작업을 하려던 나를 말리는 메건의 얼굴이 너무 안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최대한 빨리 모든 것을 끝내 놓고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내 뜻대로 할 수만은 없었다. 지금 나는 홀몸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제 마음 같아서는 아서를 이곳으로 부르고 싶을 정도예요.”
“…미안해요. 그냥 집에 가서 푹 쉴게요.”
아서가 한국에 와서 내 건강을 생각해서 하는 것이라며 엄청나게 참견해 댈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
그럴 바에는 그냥 시키는 대로 집에서 쉬고 난 다음에 해야지.
***
“먹고 읽어. 굳이 밥 먹으면서 신문 읽을 필요는 없잖니.”
“네, 그냥 혹시나 해서요.”
다행히 다음날 신문 기사에 내가 병원에 실려 간 것은 나오지 않았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의사가 말을 했기에 실려 간 것이 나왔어도 크게 상관은 없었을 테지만, 나는 되도록 조용히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랐으니까.
어머니의 말에 신문을 내려놓고 식탁에 앉아 조용히 밥을 먹고 있던 그때, 내 옆에 앉아 있던 메건이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는 제가 같이 다닐 거예요, 어머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 네가 같이 다녀 주면 든든하지.”
어색한 말투.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평소에 메건이 한국어를 하는 그 말투가 아니었다. 이렇게 연기를 하고 있는 게 티가 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이거 미리 이야기를 하고 밥 먹을 때 꺼낸 이야기 같은데.
“…그렇게 어색한 연기 안 하셔도 돼요. 그렇게 걱정되시면 어머니가 같이 다니셔도 되니까.”
“으, 응? 연기? 엄마가 이 나이에 연기할 만큼 외모가 되기는 하지, 호호호. 많이 먹어 현아. 엄마가 너 좋아하는 갈비 준비했어.”
당황한 목소리로 대응하는 어머니의 말투로 내가 없는 자리에서 미리 결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큰누나가 나에게 곡을 달라고 말했던 그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이런 건 어릴 때부터 변하지 않는단 말이지.
어색했던 아침 식사를 마치고 메건과 함께 차에 올라타 회사로 향했다.
“처음이네요. 이렇게 같이 출근해 보는 건.”
한창 도로를 달리고 있는 차 안에서 뜬금없는 말을 꺼내는 메건의 말이 정말인지 생각해 보았지만, 회사에 같이 출근했던 기억은 없었다.
“그러네요. 런던 공원에서 소극장을 만들 때도 같이 출발하지는 않았으니까.”
“그것도 엄청 오래전 이야기 같은데 아직 1년밖에 지나질 않았어요.”
메건이 오래전 이야기라고 하는 말에 어제저녁에 보았던 러시아의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던 콩쿠르의 시상식.
갑자기 그 일이 떠올랐던 이유는 뭘까.
회사에 도착해 바로 작업실을 향하면서도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그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중학생 때 보았던 그곳이 다시 떠오르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로직 프로를 실행시켰다.
귓가에 들려 오는 음 하나하나를 천천히 마우스로 찍어 내려가는 과정.
일일이 음 하나하나를 마우스로 길이를 조절해 가며, 텅 비어 있는 작업 공간을 조금씩 채워나간다.
가장 기본이 될 반복되는 신시사이저의 기계음에 오토튠을 먹인 짧은 트랙을 복사해 길게 늘어뜨리는 것을 시작으로, 드럼을 채워 넣는다.
전체 길이가 4분 정도의 길이밖에 되질 않는 짧은 곡. 신시사이저와 드럼의 트랙을 다 채웠을 때쯤, 나를 건드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뭐예요 이건?”
메건이 울먹이는 얼굴로 내게 건넨 것은 몇 장 겹쳐 있는 티슈.
“또 피가 나고 있어요….”
이 코피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빠르게 작업을 끝내는 것뿐이라는 걸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고마워요. 그리고 괜찮아요. 금세 멎을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말뿐이었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끝내는 수밖에….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니까.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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