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65
164화
지금까지 머릿속에 있는 음악을 쏟아 내며, 이만큼 힘들었던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윌리엄 5세의 대관식에 쓰였던 음악을 만들었던 그때. 다 만들고 나서 배가 고파 쓰러졌었더랬지.
그래도 그때는 만드는 도중에는 힘든 걸 알아채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온몸이 떨려 온다. 마우스로 클릭을 하는 것 자체가 힘겹게 느껴질 정도.
딸깍-
스윽-
마우스 클릭 한 번에 코에서 흘러나오는 코피를 한 번씩 닦아야 했다. 이러다가 수혈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
빨리 끝내고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비어 있는 공간을 채워 나갈 때, 메건이 등 뒤에서 나를 껴안았다.
“저기 오늘은 그만하는 게 어때요…? 벌써 다섯 시간째예요. 점심시간도 한참 지났다고요.”
“그럴까요….”
나는 지금 당장 끝내겠다고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예전이었다면 그렇게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메건은 혼자 남겨질 테니까.
텅-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어지러운 느낌에 책상 위에 손을 짚었지만, 의자를 쓰러뜨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바라본 메건이 다급하게 다가와 나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나는 괜찮아요. 안 괜찮은 건 의자죠.”
“지금 같은 때에 농담이 나와요?”
“미안….”
다른 때 같으면 웃어 주었을 테지만, 메건은 농담을 받아 주기는커녕 화를 내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에 나도 메건이나 어머니가 아프다고 생각하면, 농담을 하더라도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테니까.
“나가서 맛있는 거 먹고 집으로 가요.”
“…입맛이 없는데 그냥 집에 가서 쉬면 안 될까요?”
“안 돼요!”
어린아이를 다그치는 듯한 메건의 모습이 조금 생소했지만, 워낙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어 하자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나가죠. 음식점에 사람들이 많이 없으면 좋겠네요.”
곡을 완성한 것은 작업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다른 곡들을 만들 때는 보통 쉬는 시간을 갖지 않고 한 번에 만들었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다른 것은 상관없었지만, 이 곡을 작업을 할 때는 흘러나오는 피를 멈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교향곡을 만들 때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려 버렸다.
힘들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쏟아 냈다는 홀가분함.
그 홀가분함을 느끼며 작업실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쉬고 있던 그때 들려 오는 목소리.
“야, 괜찮아?”
“어? 수원이 네가 여기 왜 있냐.”
“왜 있긴 회사니까 여기 있지. 나 네 회사 직원이야.”
“아…. 그랬지.”
메건이 불러온 건가. 수원의 옆에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메건이 보였다.
“괜찮아.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끝났으니까.”
“제수씨가 너 좀 말려 달라고 나한테 왔더라. 저렇게 예쁜 사람을 울리면 어떻게 하냐?”
“…그러면 안 예쁘면 울려도 되는 거냐?”
“그런 말이 아니잖아 인마!”
수원이도 평소와는 다르게 농담 한 번을 안 받아 주네.
인상을 쓰며 말하는 수원의 얼굴. 원래도 못생겼지만 인상을 쓰니 더 못생긴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 홀가분하다.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던 음악 소리가 더 이상 들려 오질 않았으니까.
다 꺼내 놓았다.
“내가 만든 곡 들어 보고, 라이브 세션이랑 가사 쓸 사람이나 찾아 줘. 내가 가사 쓰는 재주는 없거든.”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제수씨 데리고 회사에서 나가. 걱정하게 하지 말고.”
“야, 내 회사야. 그런데 주인보고 나가라고 하는 게 말이 돼?”
“그 주인이 지금 손가락으로 건드려도 쓰러질 몰골이니까, 얼른 가라고.”
작업실에서 쫓겨나듯 나왔다. 그렇지만 뭘 해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멍한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았다.
어쩌면 곡을 완성하느라 너무 많은 힘을 쏟았던 것이 아닐까 싶은 정도.
그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렸을 때는 돈이 많으면 건물을 사서 입주자들에게 월세 받으면서 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돈이 많은데도 이렇게 힘들게 작업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우리 놀이공원 갈래요? 동물원도 괜찮고….”
“그렇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작업하던 건 정말 다 끝났으니까.”
하얗고 작은 손으로 내가 입고 있는 셔츠를 잡아당기며 말하는 메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작업을 끝냈다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메건. 하지만 나는 즐거웠다. 듣고 싶지 않아도 귓가에 들려 오던 음악이 이제는 들려 오지 않았으니까.
***
“미쳐 버리겠네, 진짜….”
“응? 팀장님 뭐 하세요?”
수원은 정현이 말한 대로 가사를 붙이기 전에 곡을 들어 보는 중이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작사가를 찾는 일은 평소에도 숱하게 해 왔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 일이 자신을 막막하게 만들었다.
“아, 경찬 씨 마침 잘 왔네. 여기 와서 이 곡 좀 들어 봐.”
“곡 쓰신 거예요?”
경찬은 상관인 수원의 말에 별생각 없이 그가 내미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음악 회사에서 하는 일은 대부분 가장 먼저 음악을 듣고 나서 시작하는 일이 많았기에,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곧이어 재생되는 음악.
27년 인생에 처음 들어 보는 스타일의 곡. 목소리가 들어가 있지 않은 음악이었지만, 끊임없이 자신에게 무어라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귓가에 속삭이는 누군가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느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싹하거나 무섭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
‘이게 뭐지…?’
분명 박자가 그리 빠른 곡이 아니었는데, 음악이 순식간에 귓속을 파고들어 오는 느낌.
숨이 가빠오는 것이 느껴진다.
그 느낌에 너무 놀라 정신을 차린 경찬은 그제서야 자신이 숨을 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억, 허억!”
“숨 쉬어! 숨 쉬라고! 아이씨. 이럴 줄 알았어.”
하루에서 수십 곡을 듣는 것이 일이지만, 이 곡은 심상치 않았다.
수원 자신도 처음에 이 곡을 들으면서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게 뭐예요? 누, 누가 만든 거예요? 혹시 팀장님?!”
“내가 이런 곡을 만들 수나 있겠냐….”
“사, 사장님?”
“그래. 그 잘난 사장님이 만든 곡이다!”
“엄청나네요….”
“너무 엄청나서 문제지…. 이런 곡을 어떻게 대중에게 들려 주냐고….”
음악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들었을 때도 압박감을 느낄 정도의 곡을 대중에게 공개했을 때,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수원은 감도 오질 않았다.
게다가 보컬이 들어가 있지도 않은 연주곡 상태지만 어떻게 가사를 붙일지 아무것도 느껴지질 않았다.
“사장님이 여기에 가사를 붙여 달라고 하는데, 누가 이 곡에 가사를 쓸 수 있을까?”
“저는 잘….”
“경찬 씨는 여기가 첫 직장이라고 했지? 아는 작사가가 없겠네.”
수원은 이 엄청난 곡에 가사를 붙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간 곡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지현 씨는 아는 작사가가 있지 않을까요? 아는 사람 많잖아요.”
“나도 아는 작사가가 적은 편은 아닌데….”
“그래도 지현 누나 아니 유지현 씨 곡에 붙은 가사들은 전부 좋잖아요. 최근에는 가사들 대부분 본인이 쓸 정도로 실력도 좋고.”
“일단 한번 물어보기나 하자.”
수원은 유지현의 팬으로 의심되는 경찬의 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물어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일주일 전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며 성공리에 마무리된 슈퍼 페스티벌 이후, 휴식을 취하고 있던 유지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르르-
전화기 너머로 들려 오는 신호음이 짧게 이어지다 끊어지며 이내 유지현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네, 김 팀장님.]“쉬고 계시는 중에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무슨 일이세요?]“저기, 정현이, 아니 사장님이 부탁하신 게 있어서요….”
정현의 광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수원은 밑밥을 깔며 대화를 시작했다.
[부탁? 저에게요?!]“아뇨, 저에게…. 죄송해요. 사장님이 만드신 곡에 가사를 붙여 줄 만한 사람을 찾고 있는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 혹시 좋은 작사가가 있을까 해서요.”
[흐음…. 제가 아직 곡을 들어 보질 않아서 추천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곡에 따라 어울리는 가사를 붙이는 사람들이 다 다르니까 말이죠.]“그런가요…. 혹시 바쁘지 않으시면 회사에 한 번 나오실래요? 이게 발표되지 않은 곡이라 회사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가 없거든요.”
[지금 갈게요!]평소 같으면 한두 번은 거절하며 뺄 만도 했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회사로 향했다.
지현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수원의 부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정현이 만들었다는 곡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지현이 회사에 도착하고 작업실 의자에 앉아 헤드폰을 귀에 꽂았다.
꿀꺽-
아직 곡을 재생한 것도 아니었지만, 긴장이 되었는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귓속을 파고드는 멜로디에 지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반복되는 신시사이저와 베이스의 소리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고, 간간이 들려 오는 알 수 없는 소리들은 누군가가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순식간에 끝나 버린 곡.
가사가 없는 연주곡 특성상 곡이 조금 더 짧은 느낌을 주는 것이 당연했지만, 음악을 들었던 시간이 마치 한순간에 끝난 것처럼 짧게 느껴졌다.
“…저, 정현 님이 이 곡을 만드셨다고요?”
“네…. 오늘 아침에 완성된 곡이에요. 저에게 가사를 부탁하셨고…. 어때요? 가사를 쓸 만한 사람이 떠오르나요?”
“어, 어…. 이 곡에 가사를 붙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역시 그렇죠…?”
수원과 지현은 서로를 마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들이 들어 보았을 때, 이 곡은 누군가의 가사나 목소리가 들어가지 않아도 이미 완성된 상태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수원은 이 곡은 지금 상태 그대로 발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저히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갈 만한 곡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정현이 아니 사장님이 이 곡에 가사를 붙이라고 한 건, 이 곡에는 보컬이 들어갈 거라는 소리잖아요. 분명 이대로 발표할 수도 없고….”
“엘리를 불러 볼까요? 엘리라면 가사를 붙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엘리가 누구…. 아, 엘리 베일리쉬요? 아직 한국에 있었나요?”
“사실 이건 비밀인데, 오늘 우리 집에 오기로 했어요.”
“부탁드릴게요. 이 곡에 가사를 붙일 수 없다는 말을 사장님에게 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저만 믿으세요!”
슈퍼 페스티벌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던 엘리가 한국에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수원은 그녀가 이 곡에 가사를 붙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엘리는 데뷔 후 지금까지 난해한 곡들을 즐겨 써 왔고, 그 난해한 곡들에 걸맞은 가사들도 자신이 직접 써 왔던 천재 아티스트 중의 한 명.
수원은 거기에 희망을 걸어 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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