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66
165화
“Damn….”
작업실에서 음악을 듣고 난 다음에 엘리가 내뱉은 첫말이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특유의 무표정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 놀라 입을 벌린 채 한참 동안이나 아무런 말도 하질 못했다.
“어떻게 이런 곡을 만들 수가 있지?”
“어때요…? 가사를 붙일 수 있겠어요?”
“할게요! 내가 하고 싶어요! 그리고 내가 부르고 싶어요!”
정현의 곡을 들으며 엘리는 어려운 퍼즐을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본능처럼 알 수 있었다. 자신은 할 수 있다는 것을.
“곡을 부르는 것은 일단 사장님께 물어봐야…. 응? 그러고 보니까 사장님이 누가 부를 건지 말을 안 해 주셨네요. 잠시 사장님께 물어보고 올게요. 가사를 쓰더라도 누가 부를지 알아야 녹음을 하니까.”
이상한 기분이었다. 보통 가사를 붙이는 것은 정현이 하지 않는 일이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보통 곡을 만들면 매번 누가 부를 거라는 말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노트패드 하나만 가져다주세요. 그리고 연필. 볼펜 말고 연필로.”
엘리 역시 아직 누가 부를 건지 들은 것도 아니었지만, 빨리 가사를 쓰고 싶다는 마음에 들떠 노트를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물론 영어로 말했기에 주변에서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수원이 전화를 걸기 위해 자리를 비우자,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서 한참 동안이나 설명을 해야 했다.
수원은 작업실 앞의 복도에 나와 정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전화기를 통해 들려 오는 신호음이 영원처럼 느껴질 정도로 오랫동안 이어졌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예상했던 대로 한 번에 전화를 받지는 않았기에 수원은 몇 번을 더 걸어 보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
‘뭐야,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지?’
답답해진 마음으로 정현의 어머니인 김지숙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응, 수원아. 무슨 일이니?]“안녕하세요, 어머니. 정현이랑 통화가 안 되어서요.”
마음이 급했기에 평소처럼 인사치레로 하는 말들을 모두 생략하고 본론부터 꺼내는 수원.
그렇지만 김지숙은 그런 수원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여유 있는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우리 현이 요즘 전화기 안 들고 다녀. 기다려 봐, 내가 메건 전화번호를 알려 줄게.]“감사합니다, 어머니!”
김지숙과의 통화로 정현이 지금 집에 없다는 것과 전화기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어딘가로 여행을 가는 일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수원 자신도 힘들게 일을 마치고 나면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수원은 김지숙이 알려 준 메건의 전화번호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마음은 급했지만, 전화의 신호는 길게 이어졌다.
[Hello, 여보세요?]“안녕하세요, 제수씨. 저 수원입니다.”
[안녕하세요. 아, 잠시만 기다리세요, 바꿔 드릴게요.]정현이 전화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메건은 자연스럽게 정현을 바꿔 주었다.
[수원이 네가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했냐.]“작사가는 구했는데, 이거 누가 부를 곡이냐?”
[응? 그런 거 생각 안 해 봤는데….]“어…?”
수원은 당황했다. 대부분 작곡가들이 곡을 쓸 때는 노래를 부를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작곡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까.
구체적인 이미지가 있으면 목소리를 구체화하는 것에도 도움이 되기에, 당연히 곡을 만드는 것이 훨씬 쉬워지기 마련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자신이 통화를 하고 있는 정현은 일반적인 사람의 범주 안에서 생각할 수 없었다.
“후우…. 그러면, 지금 가사를 쓰고 있는 사람이 엘리거든? 엘리가 부르고 싶다는데 괜찮아?”
“그래 알았다.”
이렇게 얼렁뚱땅 넘겨 버릴 만한 수준의 곡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수원이었지만, 정현에게서 돌아온 건 그런 것은 관심 없다는 듯한 대답.
정현의 말에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수원의 마음은 허탈했다.
수원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닿을 수 없는 수준의 곡이었음에도, 정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작업실 안에 들어오자 헤드폰을 쓰고, 노트에 열심히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는 엘리가 보였다. 손을 뻗어 엘리가 바라보고 있는 노트 앞에 흔들었다.
수원은 집중하고 있는 엘리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부르고 싶다고 말했던 엘리였기에 알려 줘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귀를 가리고 있던 헤드폰을 내리며 엘리가 수원을 바라보았다.
“엘리와 지현 씨가 듀엣으로 부를 곡이라고 하네요.”
“그럴 줄 알았어! 고마워요!”
엘리는 수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헤드폰을 고쳐 쓰며, 조금 전보다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평소처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맹한 모습이 아닌, 광기까지 느껴지는 눈빛으로 노트를 바라보는 엘리의 모습.
수원은 독서실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의 작업실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
[언제 올 거야? 가사는 다 썼고, 이제는 녹음만 남았는데.]“네가 알아서 녹음해…. 나는 좀 쉬려고.”
[그래…. 알았다.]녹음 현장에 나를 부르는 이유는 대충 알 수 있었다. 곡을 만든 사람이 의도한 대로 보컬 녹음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작곡가는 항상 녹음실의 사운드 엔지니어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말해 주며, 곡의 방향을 정해 주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회사의 녹음실까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를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제주도까지 내려와서 쉬는 것이 일주일이 넘게 지났지만,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누구 전화예요? 수원 씨?”
“네. 언제 오냐고 물어보네요.”
“오늘 날씨가 정말 좋은데, 바다 보러 같이 안 갈래요?”
“우리 차 타지 말고 걸어서 가요. 날씨가 좋으니까 산책할 겸.”
나의 말에 생긋 웃어 주는 메건과 함께 바다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침에 일어나 마루로 나가 햇볕을 쬐고, 산책을 하며 아무런 고민 없는 시간들을 보냈던 며칠.
나는 내 생에 처음 맞이하는 듯한 평화로운 날들을 만끽했다.
끊임없이 들려 오는 음악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마음에 항상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어야 했던 내 머릿속에서, 이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적당히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완전히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런 평화가 영원할 것이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 달도 되지 않아 끝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평소처럼 메건과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10월의 어느 날.
제주도의 한옥집에서 나를 맞이한 것은 수원.
“잘 쉬고 있었어?”
“응….”
“오셨어요? 저는 차라도 한 잔 준비해 드릴게요.”
한 달 만에 얼굴을 보는 것이었지만,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얘가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여기에 올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때?”
“뭐가?”
뭘 물어보고 있는 거지? 어떻긴 뭐가 어때?
“지금 듣고 있는 곡 어떠냐고. 가사는 엘리가 썼고 유지현이랑 둘이 불렀어. 네가 말했던 대로. 녹음 끝내고 LA 스튜디오에서 마스터링한 음원이야. 오늘 받았어.”
“…….”
“사람들이 듣기 시작하면 아마 멈출 수가 없겠지. 처음에는 이런 곡을 발표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으니까.”
“…….”
“야, 정현아. 듣고 있어? 가사도 괜찮은 것 같지 않아? 왜 말이 없어?”
나는 수원의 말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아직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의 귀에는 수원의 목소리 외에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니까.
간간이 목소리 사이에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는 들려왔다. 그렇지만 그것에 대한 감상을 바라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장난을 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 둘 다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런 기분이 들었을 수도 있지.
내가 수원이의 마음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쳐 주기로 했다.
“응, 그래 좋네.”
“…그게 다야?”
“나한테 뭘 기대하는 거냐.”
“에휴…. 말을 말자. 그래도 나는 네가 기다리고 있을까 봐 마스터 음원 오자마자 제주도로 날아왔는데, 반응이 너무 시원찮으니까 그렇지.”
그 순간 실망한 것 같은 수원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어렸을 때부터 봐 왔던 그 얼굴. 장난을 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면, 나는 한순간에 눈치챌 수 있었을 거다.
그렇기에 오히려 지금 하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을 알아챘다.
꿀꺽-
나한테 어떤 이상이 생긴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원이를 얼른 돌려보내야 한다.
“제수씨 기다리겠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뭐?”
“제수씨가 집에서 기다리겠다고.”
“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 와이프랑 지유 미국에 있잖아. 한국에는 나 혼자 왔는데.”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지금 이 상황도 슈퍼 페스티벌이 끝나갈 때 보았던 그 환상 같은 것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던 세상과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내가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미안.”
“너, 정말 왜 그래. 괜찮아?”
“뭐 사람이 살다 보면 착각도 하고 그러는 거지. 뭘 심각하게 물어보고 그러냐.”
“그래…. 착각할 수도 있지.”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
어릴 때는 아무런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둘이 있던 시간이 많았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침묵은 어색함이 느껴진다.
다행히 그 침묵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쟁반을 들고 등장한 메건 덕분이었다.
“저녁이니까, 커피보다는 차가 나을 것 같아서 밀크티를 타 왔어요.”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와, 그런데 누가 부른 거예요? 지금까지 제가 들었던 음악하고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했었는데, 보컬이 들어가니까 또 다르네요.”
“얼마 전에 슈퍼 페스티벌에서 보셨던 엘리와 유지현 씨가 불렀어요. 마스터링 끝나고 막 들어온 따끈따끈한 신곡이죠. 정현이 소감 좀 들어 보려고 했는데, 말해 주질 않네요.”
그제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이곳에 음악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둘의 귀에는 들리고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이 공간 안에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나는 도저히 낄 수가 없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니까.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이 사실을 알아챈다면 걱정하고 나설 것이 뻔했으니까.
내가 음악을 들을 수가 없다고? 나는 내 머릿속에서 들려 오는 소리만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 한 달 동안 TV도 멀리하고 휴대폰도 손에 쥐는 일이 없었기에, 음악 소리라는 것을 들을 일이 없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메건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현 씨 지금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없어요.”
알고 있었던 거야…?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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