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67
166화
“네? 음악을 들을 수 없다고요?!”
수원은 메건에게 되물었다.
“네…. 지금 여기에 틀어 놓으신 이 음악을 작업하고 난 뒤부터….”
나도 알지 못하는 사실을 메건이 알고 있었다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사람들의 목소리는 이렇게 또렷하게 들리는데 음악 소리만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었다.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소리를 아예 못 듣는 것도 아니고 음악 소리만 못 듣는다뇨!”
“말이 되고 안 되고는 문제가 아니에요. 사실이니까. 저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 남편이 더 이상 음악 작업을 하며 지쳐 가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요!”
눈앞에서 펼쳐지는 수원과 메건의 대화가 오간다. 그 주제가 나를 향해 있음에도 나는 그 대화의 끼어들지 못했다.
애초에 지금 저들이 하는 말이 실감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메건의 눈가에 고인 눈물이 보였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모습에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음악 회사의 CEO가 음악을 들을 수가 없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거짓말이지? 내가 음악을 못 들을 리가 없잖아요.”
“…처음 의심했던 건 병원에서 퇴원한 날이었어요. 내가 설거지를 하면서 휴대폰으로 틀어 두었던 음악에 아무런 말도 없는 것을 보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죠….”
메건은 평소 같으면 음악이 들리는 곳으로는 절대 오지 않을 내가, 몇 번이나 부엌을 왔다 갔다 하는 모습에 의심을 시작했다고 했다.
음악이 흐르는 곳에 가면 머릿속에 또 다른 음악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생긴 일종의 버릇 같은 것이었다.
“조금씩 늘려 갔어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어 두고 가까이 가보기도 했죠. 그렇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그때 알았어요. 음악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걸.”
그 말에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아, 그저 멍하니 메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 미리 말해 주지 않았어요…?”
“말해 주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제주도에서 둘이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았거든요.”
“어흠, 어흠.”
아, 수원이 옆에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지금은 내가 상태가 안 좋은 것 같네. 나중에 들어 보자.”
“회사 사람들의 반응은 좋아. 이대로 일단 발매를 할 테니까, 너는 병원에 가 봐.”
“병원?”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런 걸 테니까 병원에 가서 상담을 좀 받아 보라고.”
수원은 그 말을 끝으로 돌아가고, 나와 메건은 단둘이 남겨졌다.
“미리 말해 주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차라리 모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도 생각했죠.”
“괜찮아요.”
물어보지 않은 것에 미리 대답을 하기 시작하는 메건. 차라리 그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메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둘 사이에 흐르는 공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아침에 서울로 돌아가요. 병원에 가 보죠.”
어색해질 대로 어색해진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
“오랜만에 뵙네요.”
“어머, 저를 기억하고 계셨어요?”
“그럼요.”
생에 단 한 번 있었던 신경 정신과에서 상담했던 기억이 그렇게 쉽게 잊혀질 리는 없었기에, 당연히 오래전에 보았지만 기억할 수 있었다.
벽에 걸린 액자에 내가 해 주었던 사인이 보였다. 여기에 왔었다는 기록 같은 느낌이다.
마치 여기에 왔던 것이 한두 달 전이었던 것만 같았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이정현 님?”
“…음악이 들리질 않아서요.”
“예전에는 음악이 끊임없이 들려 와서 오셨고, 이번에는 들리지 않아서 오셨네요.”
“네.”
고개를 숙인 채 메모패드처럼 생긴 곳에 볼펜으로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는 의사 선생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언젠가 한 번 보았던 것만 같은 데자뷔를 느껴 피식하고 웃었다.
“음악이 들려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셨었는데, 안 들리게 되면 좋은 것 아닌가요? 이제는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불면증이 오지는 않을 것 아니에요.”
“불면증은 없어진 지 오래됐어요. 지금은 음악 회사의 사장이니까 들리지 않으면 불편할 것 같아서요.”
다른 이유는 없었다. 내 삶에 음악이 없어진다고 해서 엄청나게 불편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의사 선생의 질문에 불편할 것 같아서 왔다고 답했다.
상담실의 안에는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오가질 않았다.
무언가를 고민하던 의사 선생은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항상 괴로워했잖아요. 지금은 어때요?”
“나쁘지 않아요. 괜찮은 것 같아요.”
질문의 방향을 알 수 없었다. 무엇을 물어보는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질문.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말을 조금 길게 늘였다.
“저는 괜찮은데, 지금은 제가 혼자가 아니거든요. 수백 명이 일하는 회사의 사장이 되어 버려서.”
“그렇죠…. 저도 잘 듣고 있어요. 특히 이번에 나온 엘리와 유지현이 내놓은 곡. 분위기가 진짜…. 험험. 아무튼 그 곡도 이정현 님이 만드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음악이 들리지 않는데도 그런 곡을 만드신 건가요?”
“그 곡을 만들고 난 뒤부터 들리지 않게 된 거예요.”
“마치고 난 다음부터…. 음…. 말씀하시는 걸 들어 보면 그 곡을 만들면서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으셨던 것 같네요. 한동안 쉬면서 여행이라도 다녀 보는 건 어떠실까요? 마음이 안정되면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여행이라. 여행이라는 걸 해 본 게 언제였더라.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예전의 기억들을 떠올려 보았다.
도망치듯 떠났던 한국 땅에서 세계의 곳곳을 가 보았던 것도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나는 프레스턴에 자리를 잡은 이후로는 여행이라는 것을 가 본 적이 없는 것이 된다.
“여행을 가 봐야겠네요.”
“잘 생각하셨어요. 일단 마음을 편하게 하시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요.”
오랜만에 마주한 의사 선생의 말에 나는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바로 실행에 옮길 수는 없었다.
내가 만들어 놓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이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경영진을 세워 놓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삼성동의 LJH 빌딩에 들어온 나는 가장 먼저 실장급의 사람들을 모두 모은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아서 경영을 대신해 줄 사람을 세울 거예요.”
“네? 자리를 비우신다고요? 이제 돌아오셨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회사를 비워 두었었기에, 다른 사람을 세울 것이라는 이야기에 동요하는 사람들.
그렇지만 내가 없이도 회사가 알아서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붙어 있는 경영자라는 타이틀을 떼야 했다.
언제 다시 음악을 들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LJH 뮤직 컴퍼니 코리아의 CEO는 김수원 A & R 팀장님께 맡기겠습니다. 미국은 제가 전달하겠지만, 마리 지미아노비츠 매니저실장님께 맡길 거고요.”
“뭐?! 아니, 네? 그게 무슨….”
“새롭게 선출된 CEO에게 박수 부탁드립니다.”
대여섯 명밖에 없는 실장급 인원들은 박수를 쳤지만 수원의 얼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LJH 뮤직 컴퍼니는 주식회사가 아닌 개인 회사였기에, 주주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난 다음, 수원은 예상대로 사장실로 찾아와 물건을 정리하는 내게 물었다.
“이게 갑자기 무슨 말이야. CEO라니!”
“그 자리 그렇게 대단한 자리 아니야. 네가 하던 거에 일 조금만 더 하면 돼.”
“대단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넌 어디 가려고!”
“나? 의사 선생님이 여행을 다니면서 마음을 편하게 가져 보라고 해서 여행갈 거다.”
당황해 있는 수원에게 나는 웃으며 답했다. CEO라는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이렇게 홀가분할 줄은 몰랐다.
진작에 그만둘걸.
말문이 막혀 버린 수원을 뒤로한 채 나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어김없이 차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경호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더는 음악을 들을 수 없는 내게 이들의 경호가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얼굴이 알려져 있으니 별수 없으려나.
“양재동 집으로 가죠.”
“예, 알겠습니다.”
작게 엔진음만 들려 오는 고요한 차의 뒷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조수석에 앉은 경호원이 말을 걸었다.
“CEO에서 물러나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회사 그만두고 메건하고 둘이서 여행 다닐 거예요.”
“일정이나 방문지는 생각해 두신 것이 있으신지요.”
“아직은 없어요. 결정이 되면 바로 알려 드릴게요.”
집으로 향하는 남부순환로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차들을 바라보며, 경호원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내가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렇게 즐거워하시는 건 처음 보네요. 여행 가신다고 벌써 들떠 계신 건가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늘따라 표정이 밝아 보이셔서 말이죠.”
“아…. 하하하.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도착한 양재동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메건과 어머니는 내가 집에 돌아와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런 점이 고마웠다. 나라면 상대의 기분이 어떻든 그런 것은 상관없이 궁금해서 물어보았을 것 같았으니까.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요. 어머니께 음식 만드는 걸 배우고 있었어요.”
“어서 와라, 배고프지?”
“어, 음….”
어머니는 음식을 잘하지 못하는 분인데 음식을 배운다고 하는 메건을 말려야 하나 잠시 고민해야 했다.
그래 이렇게 고부간이 사이가 좋으면 된 거지 뭐. 나중에 조미료의 사용법을 알려 주기로 하자.
“의사 선생님이 여행을 다니면서 푹 쉬는 게 도움이 될 거래요. 우리 여행이나 가죠.”
“어디로 갈 거예요?”
“메건이 정해요. 나는 따라갈 테니까.”
평소에 어디를 가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나보다는 메건이 정하는 것이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가 본 곳은 대부분 콩쿠르와 관련된 곳이었기에 그런 곳과 상관없는 곳이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오히려 아예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메건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니까 내가 전혀 떠올릴 수 없는 곳으로 행선지를 정해 줄 것이다.
“잠시 전화 좀 하고 올게요.”
“네에~ 오는 길에 손도 씻고 오세요. 식사하셔야죠.”
유니버설의 마커스에게 내가 CEO에서 물러난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했다.
나는 어머니와 메건이 있는 주방에서 벗어나 전화를 하기 위해 거실로 향했다.
Brrrrr-
[Hello.]“마크, 저예요. 이정현.”
[오! 오랜만에 전화를 주시는군요. 이번에 엘리와 함께 발매하신 신곡은 잘 듣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호응이 엄청납니다.]“하하하하. 고마워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번에 회사의 CEO에서 물러나기로 결정을 해서 전화를 드렸어요.”
전화기 사이로 흐르는 잠시 동안의 무거운 침묵. 마커스는 내가 CEO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해 본 적이 없다는 듯,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들어드려야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정현 경이 하시는 말씀인데.]“영국 지사를 경영해 줄 사람이 필요해요. 사실 영국 지사는 미국 지사에서 발매한 음악들을 유통하기만 하는 회사지만, 제가 만든 회사들의 본사거든요.”
[제가 괜찮은 사람을 찾아본 뒤에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갑자기 왜 물러나시는 건지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사실을 말해 주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해 왔던 사람 중의 한 명이었고, 영국에서 에릭의 음반을 발매했던 그때 나에게 유리한 계약을 체결해 주는 등의 친절함을 보여 주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음악을 더 이상 만들 수 없다고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마커스가 친절하게 대해 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답은 아니오 였다.
마커스뿐만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매개가 없이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볼 수는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금까지 내가 해 왔던 일들은 거의 모두 음악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들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마커스에게 진실을 말해 줄 수 없었다.
“메건하고 여행을 떠나려고요. 결혼하고 나서 신혼여행도 제대로 다니질 못해서.”
[오! 그렇죠. 하하하. 즐거운 여행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전화기 너머로 호탕하게 웃는 마커스의 웃음소리가 들려 왔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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