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68
167화
마커스와의 전화를 끊으면서 나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마주했다.
어릴 때는 항상 집에서 흐르는 음악이 싫었다. 듣고 싶지 않아도 언제건 어디서건 들려 왔다.
아버지가 언제나 바이올린을 연습하기 위해 레퍼런스가 될 만한 음악을 집 안 어디에서건 들을 수 있도록 틀어 두셨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아버지처럼 음악을 위해 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음악을 싫어하던 내가 막상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 능력을 되찾으려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혹시라도 과거의 내가 알게 된다면 좋아하려나?
결국 음악을 제외하고 나 자신이 이룬 것은 남이 만든 설계도에 따라 나무를 세우고 못질을 하는 것뿐.
음악을 만들며 목수 일을 열심히 해 왔다면,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고 안심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렇게 열심히 하다 후대에 널리 알려질 엄청난 건축물을 만들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해서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마커스에게 마지막으로 하려던 말이 떠올라서 끊어진 전화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음악을 빼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구요….”
“할 줄 아는 게 없다뇨. 만들었던 음악들이 지금은 전부 손에 꼽히는 명곡이잖아요.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라구요.”
아이, 깜짝이야. 메건이 다가온 것도 모르고 혼잣말을 내뱉었나.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면 더 이상 만들 수가 없잖아요. 내가 무슨 베토벤도 아니고….”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내가 일을 하면 되니까요. 내 남편이잖아요. 이상한 생각하지 마시고, 식사 준비 다 되었으니 얼른 손 씻고 오세요.”
“예이~”
식사 준비가 끝날 때까지 꽤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했었지만, 메건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 더 빨랐다.
통화는 제법 일찍 끝났다 생각했었는데, 그 이후에 생각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던 걸까.
복잡해진 머릿속을 털어 버리려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나오자, 식탁 위에 얹어진 화려한 음식들과 그 식탁 옆 의자에 앉아 있는 어머니와 메건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산더미처럼 만들면 누가 다 먹어요.”
“너도 있고 메건도 있잖니.”
도무지 세 명이서 다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 아침부터 내가 병원과 회사에 다녀오는 긴 시간 동안 이 음식들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억지로라도 먹어야 했다.
어머니를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젓가락을 들고 조금씩 입에 넣고 있던 그때, 어머니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꺼냈다.
“엄마는 말이지, 네가 성악을 한다고 처음 말했을 때 불안했단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불안하다니. 아버지랑 누나도 음악을 했잖아요. 다를 것 없지 않아요? 성악으로 번 돈으로 이 집도 샀는데.”
처음 듣는 이야기. 내가 처음 콩쿠르에 나가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그 어떤 반대도 하지 않았었으니까.
“네 아빠나 누나는 원해서 음악을 배운 뒤에 그 길을 걸은 거지만, 넌 아니었잖아. 그러니까 걱정을 할 수밖에 없잖니?”
“그렇게 걱정하셨으면 하지 말라고 하지 그러셨어요.”
“말렸지. 말렸는데 하겠다고 했던 건 너였잖니. 엄마가 걱정해서 윤 교수한테 물어봤더니, 윤 교수가 몇백 년 만에 등장한 천재라며 어찌나 극성이었는지….”
“조금만 더 말리셨으면 안 했을 수도 있을 텐데, 하하하.”
오랜만에 들어 보는 옛날이야기. 만약 그때 어머니가 강하게 말리셨다면, 내가 콩쿠르에 나가지 않았을까? 그러면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게 있었을까?
지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지나간 시간이니까.
과거로 돌아갈 방법을 알지 못하는 이상 바뀌는 것은 없다.
“지금 네 이런 모습을 보면 더 말릴 걸 그랬나 싶기도 한데, 메건을 보면 안 말리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갑자기 거기에서 메건은 왜 나와요?”
어머니는 옆에 앉은 메건을 향해 살짝 눈길을 주며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 되묻자,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 엄마가 볼 때 너는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결혼 안 하겠다고 버텼을 거야. 네 작은누나만 봐도 알잖니. 아직 만나는 사람도 없다던데.”
“하하하.”
이게 자식을 대하는 어머니의 마음인가. 뭐든 다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 내가 뭘 할 거라 생각하셨는데요?”
“글쎄…. 지금이야 네가 음악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걸 떠올리기는 어렵지…. 그래도 너 어릴 때는 음악은 아닐 거라 생각했어.”
“식겠어요. 얼른 드세요.”
오래전 이야기를 시작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이 길어질 것 같은 느낌에 식사를 하자는 이야기를 하며 손에 쥔 젓가락을 움직였다.
고개를 숙여 밥공기에 손을 대는데 얹어지는 갈비. 나는 그 갈비를 바라보다 고개를 들며 말했다.
“나, 애 아니에요. 이런 거 올려 주지 않으셔도 돼요. 알아서 먹을게요.”
“아니, 나는 그냥 우리 현이 오늘 콩쿠르 나가니까 힘내라고….”
“네?”
어머니의 답변에 어머니보다 내가 더 당황을 해 버렸다. 그러고 보니 앉아 있는 곳이 양재동 집에 놓여 있던 그 식탁이 아니었다.
서초동에 있는 좁디좁은 빌라에 살던 때 쓰던 그 식탁.
눈가에 짙어졌던 주름이 없어진 어머니의 모습에 어색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보니, 누나들이 나를 바라보며 이상한 눈초리로 흘겨보고 있었다.
“엄마가 없는 살림에 현이 너 주겠다고 갈비까지 구웠어.”
“그래 밥상에 갈비 올라오는 게 얼마 만인데…. 좋아하는 척이라도 해 줘야 엄마가 나중에 또 해 주지.”
대학생인 큰누나와 고등학생인 작은누나.
나는 한참 동안이나 둘을 바라보았다. 곧 40대인 큰누나와 30대의 후반을 넘어가는 작은누나가 나보다 어린 느낌이라니.
나도 모르게 둘의 말에 피식하며 웃어 버렸다.
“알았어. 내가 누나들 갈비 매일 먹어서 질리게 만들어 줄게.”
“네가? 네가 어떻게?”
“글쎄, 매일 해 달라고 조르지 뭐.”
“푸하핫! 그 전에 네 밥 위에 얹어진 갈비부터 먹어. 엄마 서운해하면 국물도 없어.”
화기애애한 식탁. 이런 식탁에 앉았던 적이 언제였던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벌어진 그 일 이후로 이렇게 화기애애한 식탁은 없었다.
아니다. 애초에 내가 해외 콩쿠르를 위해 자주 출국하던 그 시기부터 이런 분위기에서 식사를 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먹으면 먹을수록 옆에서 열심히 챙겨 주는 어머니의 손이 더 바빠진다.
밥그릇을 거의 다 비우고 밥보다 많아지는 갈비까지 모두 먹으니, 속이 더부룩해질 만큼 불러왔다.
그러고 보니 이 기억은 언제지?
어릴 때는 워낙 콩쿠르를 자주 나갔었다. 그래서 그냥 콩쿠르라고 말을 하면, 어떤 콩쿠르를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밥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변의 풍경이 변했다.
“정현아. 레퍼런스를 알아야 콩쿠르에 나가지 않겠니?”
“레퍼런스요?”
“그래 들어 본 적도 없는 곡을 부를 수는 없으니까.”
“그런 건 모집 요강에 있지 않나요?”
윤 교수가 나에게 레퍼런스를 아느냐고 물어본 적은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윤 교수의 사무실 풍경이 흩어지고 주변은 콩쿠르를 주최하는 단체의 건물 앞으로 바뀌었다.
편리하네. 이렇게 하나하나 보여 주는 것 말야.
조금 전에 레퍼런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주최 측 운영 위원회에 그걸 물어보러 왔다는 거겠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복도를 따라 걷자 운영 위원회의 사무실 팻말을 달아놓은 달린 문이 보였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야 하나 고민을 하는데 문안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 … 이거 넣어 두시고 우리 애 잘 좀 부탁드려요.
– 험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 얼마 안 돼요. 넣어 두세요.
이 대화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음악이 싫다고 생각했던 이유 중에 하나. 뒷거래였다.
기억나는 과거의 광경. 어딘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왜 이런 기억을 보여 주는 걸까.
사무실 문 앞에서 돌아서자 주변의 풍경이 다시 변했다.
콩쿠르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대기하는 대기실. 이 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한 명도 보이질 않는다.
뭐지, 사람도 없는데 대기실을 보여 줄 필요가 있나?
대기실에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자, 멀리 누군가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 온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소리가 들려 오는 쪽으로 걸어갔다.
“아니, 그 이정현인지 뭔지 하는 애가 왜 우승인데요? 누가 봐도 우리 애가 훨씬 나았는데!”
“저 빼고 다른 심사 위원분들의 만장일치 수상 결정이었어요! 저 한 명만으로는 뒤집을 수가 없었다구요!”
“이번에 이 대회에서 상 못 타면 우리 애 대학교 특차는 물 건너간다구요! 책임지세요! 아니 걔는 중학생이라면서 왜 이런 대회를 나와서! 속상해 진짜.”
“그걸 제가 왜 책임을 져야 합니까?”
“돈 받으셨잖아요!”
그래, 이런 일도 있었더랬지.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 국내 콩쿠르는 대학교에 가기 위한 티켓을 얻는 장소였기에, 처음 나가 보았던 중학교 1학년 때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너는 중학생이면서 왜 대회에 나와?
나를 보며 울먹이며 말하던 여학생.
-너 때문이야!
사전 인터뷰에서 우승 후보로 꼽힌다는 말에 자신만만해하던 사람.
-네가 뭔데 우리 애 앞길을 망쳐?
자신의 아이가 실력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하는 수험생의 어머니까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첫 국내 대회에 우승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들.
그렇기에 어느 순간부터 국내 대회에 나오지 말아 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조금은 서운했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로 나가게 된다면 그들의 언어를 알지 못해서 저런 말을 듣게 된다 하더라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씁쓸함이 감도는 기억을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콩쿠르가 열렸던 시립 체육관의 입구를 열고 나가자 서초동 집의 거실이 나왔다.
“이런 미친….”
검은 소복을 입은 어머니와 누나들. 그리고 어머니가 챙겨 놓은 아버지의 바이올린.
아버지는 옷과 바이올린을 제외한 다른 개인 물품 따위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기껏해야 음악 CD 정도일까.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가족들이 아버지의 물건들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나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저 초라한 유품들을 보았던 것이 음악을 싫어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가장 큰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나와!”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거실에 모여 있던 가족들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나오라고! 어떤 놈이야!”
주위를 둘러보며 한참 동안이나 악을 쓰자, 어디론가 가 버린 것인지 가족들은 사라져 보이질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소리를 지른 탓에 목이 아프고 온몸에 힘이 없어지려던 그때였다.
등 뒤에서 어디선가 들어 본 것만 같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넌 분명 음악이 싫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내 삶에서 음악이 싫어졌던 때를 짚어서 모두 보여 주는 건가?”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말을 했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들리지 않게 해 주었던 것뿐인데, 왜 이제 와서 다시 그걸 원하는 거지?”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