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69
168화
“그럴 거면 애초에 내가 불면증을 겪던 고등학생 때 가져갔으면 되잖아! 왜 이제 와서 가져가는 건데?”
처음 음악이 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막상 이게 다른 누군가의 의지로 자신이 바뀌어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네가 뭔데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쉬어 버린 목소리.
내 목소리가 쉬었던 적이 있던가? 나조차도 들어 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 들어 보았다.
눈앞에 보이던 서초동 집의 형태도 사라지고 이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끊임없이 소리치고 욕을 해 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없다.
얼마나 넓은 건지 가늠도 되지 않는 메아리조차 들리지 않는 공간.
“왜? 맛이 별로야?”
귓가에 들려 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주변의 풍경이 조금 전까지 앉아 있었던 양재동 집의 식탁으로 변해 간다.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
고개를 숙이자 내 손에 쥐어진 젓가락과 밥 위에 얹어진 갈비가 눈에 들어왔다.
손을 움직이자 젓가락이 따라 움직인다.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별일 아니에요.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혹시나 했던 쉬어 있던 목소리는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밥부터 먹고 해. 식겠다.”
“네.”
식탁 위에 놓여 있던 갈비를 모조리 먹어 치워 배가 부르다고 생각했던 게 조금 전이었던 것만 같은데, 그 배가 불러 더부룩한 느낌은 더 이상 들지 않았다.
대단한 환상이네.
분명 진짜 같았던 광경이었는데, 지금 내 배 속에 들어간 것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식탁을 바라보며 메건과 어머니의 앞에서는 괜찮다고 말을 했어도, 기분이 좋을 수는 없다.
이 느낌을 뭐라고 말을 할까. 어쩌면 내가 미쳐 버린 걸지도 모르지.
미친 듯이 화가 났던 그 순간의 감정이 지금까지도 내 몸을 감싸고 있었기에, 추스르는 것에 시간이 걸렸다.
아직까지 내 안에 남아 있는 화를 몰아내고 싶은 마음에 샤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욕실로 향하며 조금 큰 목소리로 집 안에 외쳤다.
“나 샤워할 거예요.”
거실에 울리는 목소리.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평소처럼 욕실에 들어가 옷을 벗어 두고 세면대에 다가가 이를 닦기 위해 물을 틀었다.
치약을 짜내어 칫솔 위에 얹은 뒤에 거울을 바라보며 칫솔질을 한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처음 마주하는 것만 같이 생소하다.
한참 동안 이를 닦고 입을 헹궈낸 뒤 세면대 위에 채워진 물로 세수를 하려고 두 손을 물에 담갔던 그때.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의 내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너야.”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일부러 모르는 척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째서 나 자신이 나에게 음악이 싫어졌었던 이유들을 집요하게 보여 준 걸까.
다시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던 부분들을 보여 주었으니 말이다. 그 점은 이상했다.
“왜 그토록 싫어했던 음악을 다시 듣고 싶어 하는 거지?”
“안 들리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남들은 다 들리는데 나에게만 안 들리는 거라고.”
나의 말에 거울 속의 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그런 건 집어치우고 너만 생각해. 왜 다시 듣고 싶어 하는 거지? 나는 이해가 잘되지 않아서 말이야.”
“그러면 너는 왜 내가 계속 음악을 싫어하기를 바라는 거지?”
“괴로웠으니까. 잠도 잘 수 없을 만큼 괴로웠으니까. 그러니까 끝까지 싫어했으면 됐잖아. 왜….”
“됐어. 듣고 싶지 않아. 돌려주지 않아도 돼. 필요 없으니까.”
돌려줄 생각도 없으면서 말장난만 치고 있는 나 자신이 혐오스럽다.
거울 앞에서 등을 돌린 채 샤워기를 향하는 중에 등 뒤에서 들려 오는 끊임없는 말들을 무시했다.
돌려주고 싶지 않다면 주지 않아도 된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다른 생각들을 털어 내려 애써야 했지만, 샤워를 마치자 아무런 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다.
음악이 들리지 않는 이유를 알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다른 외적인 요인보다 더 까다로울지도 모르지.
나 자신을 설득하려고 시도하는 것보다는 그냥 포기하는 게 맞는 걸지도….
수건으로 몸에 묻어 있는 물기를 말리며 한참 동안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욕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욕실의 문 앞에서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메건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밝게 웃어 주는 붉은 입술을 마주하며 나도 밝은 미소를 보여 주었다.
그래, 이런 걸 누구에게 말할 수 있겠어….
두 팔에 안긴 메건이 내가 지금 현실에 있다는 증거일 뿐이었다.
***
“와…. 이렇게 눈이 많이 쌓인 걸 보는 건 처음이에요.”
“엄청나네…. 한국도 눈이 많이 온다고 생각했지만 여기는 진짜 장난이 아니네요.”
유럽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스위스의 융프라우산의 정상까지 연결되어 있는 기차 안에서, 나와 메건은 창밖에 보이는 풍경을 보며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경호원들은 이런 풍경에 관심도 없다는 듯 주변만을 살피고 있었지만, 모든 곳이 눈에 덮여 있는 모습은 이 세상 풍경이 아닌 것만 같았다.
“랭커스터는 겨울에도 눈이 오지 않을 때가 많거든요.”
“바닷가라서 그런 거 아닌가요? 소금기가 있으면 금방 녹아 버리니까.”
“맞아요. 그래서 눈이 보고 싶었어요.”
“하하하하.”
융프라우산의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한참 동안이나 풍경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하얗게 보이는 것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렇게 여유를 부려 보았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쫓기듯 한국을 떠났던 그때는 이런 여유 같은 건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만약 내가 음악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이렇게 스위스까지 와서 한가롭게 지낼 수 있을까? 아니겠지.
분명 얼마 전 발매한 엘리와 유지현의 듀엣 싱글을 발매하고 판매량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회사 사람들과 그다음을 준비하고 있을 거다.
아예 음악에 대한 일을 하지 않고 여전히 목수로 지내고 있다면, 프레스턴 근방의 어딘가에서 집을 만들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지금 내가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어 버린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다고 해야 할까?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나를 깨운 것은 메건의 말이었다.
“저기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있어요!”
“와…. 여기에서 스키를 탈 수도 있다니….”
고개를 돌려 메건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자, 깎아내린 산등성이에 쌓여 있는 하얀 눈 위로 꽤 많은 사람들이 스키를 즐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도 타 보고 싶어요….”
“저는 스키를 타 본 적이 없는데…. 그냥 구경만 해도 될까요?”
다시 생각해 봐도 나는 살아오면서 해 본 것이 많이 없구나. 창밖에 보이는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스키나 스노보드도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었다.
음악을 제외하면 할 줄 아는 게 있기는 한 걸까.
“저도 타 본 적 없는데요?”
“네? 하하하하.”
메건이 스키를 타 본 적이 없다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메건은 승마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안에서 떠오르는 메건은 대부분의 레저 스포츠를 즐기며 살아온 귀족집 딸이라는 이미지였지만, 말은 타 보았어도 스키를 타 본 적이 없다니!
의외의 모습에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나도 해 보지 못했던 것을 메건과 처음으로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을지도.
“스키장에 가서 강사가 있나 한번 물어보죠.”
우리는 라운지 꼭대기에 있는 커피숍에서 내려와 스키장으로 향했다.
생에 첫 경험을 한다는 것에 조금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스키장에 도착해 장비를 빌려주는 접수창구에서 직원에게 물었다.
“저희가 스키를 타 본 적이 없어서 그런데 혹시 가르쳐 주시는 분이 있을까요?”
“아…. 이곳은 대부분 숙련자가 오는 곳이라 인스트럭터를 구하시려면 몇 주 전에 예약을 하셔야 해요….”
“아, 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었기에, 강사를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숙련자만 오는 곳이라는 답변에 나는 접수창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조금은 아쉬움이 남았다. 밖에 보이는 설경 위에서 즐겁게 스키를 타는 상상을 했었는데 말이지.
“괜찮으시다면 제가 가르쳐 드려도 될까요, 이정현 경.”
옆에 서 있던 경호원은 아쉬워하며 접수창구를 벗어나는 내게 말을 걸었다.
의외였다. 평소에 말을 걸기 전에 먼저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키 타실 줄 아세요?”
“대부분의 스포츠는 할 줄 압니다.”
“가르쳐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몇 년 동안이나 가까이 있어 주었던 사람이 보여 주는 의외의 모습을 느끼며 감탄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구나.
마치 바닷가의 모래사장에서 진주를 주운 것만 같았다.
나는 다시 접수창구로 달려가 메건과 나 그리고 경호원, 세 명분의 장비를 빌렸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 스키였지만, 막상 눈 위에서 움직이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질 않아 어려웠다.
그래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렇게 몸을 움직였던 것은 살을 빼기 위해 자전거에서 페달을 굴리던 것 외에는 전혀 없었으니까.
아, 훈련소도 있었구나. 그건 뭐 내 자의에 의해서 했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제외하자.
조금 익숙해진 뒤 초보자 코스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왜요? 초보자 코스잖아요.”
“스위스의 초보자 코스는 다른 리조트의 상급자 코스보다 더 가파르거든요…. 제 생각에는 조금 더 연습을 하고 올라가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만.”
“에이 괜찮을 거예요. 열심히 연습했으니 어쩌면 꽤 잘 탈지도 모르죠. 하하하.”
허벅지에 쥐가 나는 것처럼 아팠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연습했는데 설마 무슨 일이 있겠느냐는 생각.
그래, 그런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코스에서 내려오며 멈출 수 없다는 걸 알아채기 전까지.
“으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
나와 메건은 총알처럼 눈 위를 날아가 안전 요원에게 구조되었다.
중간에 꽤 스릴이 있기는 했지만 재밌게 보냈다고 생각한 하루였다.
온몸이 녹초가 되어 호텔로 돌아온 나와 메건. 경호원은 옆에서 그렇게 열심히 가르치고 스키를 함께 즐겼음에도, 전혀 지치지 않은 내색이었다.
저러니까 경호원을 할 수 있는 거구나.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는 스위스가 아닌 다른 곳의 리조트에서 타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여기는 어렵기로 소문난 코스라 매니아들만 찾아오는 곳이거든요.”
“하하. 처음에 연습 좀 더 하라는 말을 들을 걸 그랬어요.”
경호원은 나와 메건을 호텔 방에 남겨 두고 자신의 방을 향했다.
깊어 가는 스위스의 밤.
한국을 떠나온 지 2주가 되어 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귀에 음악은 들려 오질 않는다.
길거리나 호텔의 로비와 카페에서 흘러나올 음악들도 전혀 들리질 않았다.
적막.
멀리서 개가 짖는 소리나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 온다.
나에게서 음악을 가져가 버린 또 다른 나는 음악을 다시 싫어하게 되기를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음악을 싫어하게 되면 다시 들려 올지도 모르지.
창밖에 보이는 커다란 달을 바라보며 이런 이상한 생각을 했다.
지금의 나는 음악을 조금은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작업을 하며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었으니까.
벌컥-
“큰일 났어요!”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던 메건이 뛰쳐나오며 소리를 쳤다. 씻는 도중에 전화를 받았던 것인지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고, 수건으로 몸을 감싼 채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메건이 이런 모습을 보여 주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뒤에 들려 온 그녀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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