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7
016화
공연장에 들어온 2,500명의 관객들은 첫 번째 곡이 끝난 뒤에도, 두 번째 곡이 끝난 뒤에도 박수를 보내지 않았다. 아니, 손뼉을 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으니까.
연달아 몰아치는 음악의 폭력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관객석에 앉아 있는 2,500명의 사람들 중에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대화하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녹음을 하는 스태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름값이 높은 대학교는 한국 대학교. 하지만 ‘예술’ 부문으로 한정한다면 그 이름값은 국립 예술 종합 학교도 한몫한다.
그 국예종 음악원의 작곡과 3학년인 정혁진은 티켓을 구하지 못해 교수님을 통해 어렵게 얻은 레코딩 스태프 중 한 명이 되어, 컨트롤 룸 엔지니어 옆에 앉아 ‘이정현’의 공연을 보고 있었다.
21세기 최고의 성악가 ‘유망주’라고 여겨지는 이정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그의 목소리를 자신이 만든 음악 안에 녹여내고 싶다는 욕심이 담긴 속마음이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시립 교향악단이 연주한 두 곡을 들은 뒤,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타인과의 공감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그리고 정혁진은 대한민국 예술의 정점은 단연코 국예종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었고, 그곳의 학생인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다.
바꿔 말하자면, 그는 타인과의 공감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사람이라는 거다.
혁진은 볼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지 못했다.
음악에서 전해진 감당하기 어려운 큰 슬픔에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 눈물이 고여 시야가 뿌옇게 변했지만 그는 무언가를 보고 있지 않았기에 알아챌 수 없었다.
“후우….”
그는 겨우 숨을 토해내며 정신을 차렸다. 너무 놀라서 눈을 감지 못한 탓에 건조하게 말라 버린 눈을 감으니 조금은 뻑뻑한 느낌과 약한 고통이 밀려왔다.
혁진은 안경을 벗고 마른세수로 눈을 비비며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괜찮아. 괜찮아.’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던 슬픔이 끝났으니 이제는 괜찮을 것이다.
무대 위로 이 공연의 주인공인 이정현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너무 커다란 슬픔이 지나간 뒤라, 더 이상 곡에 감정 이입을 할 수 없지 않을까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자신의 감정이 이미 모든 걸 쏟아냈다고 느꼈으니까.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윤주란 교수가 이번 공연 실황 앨범의 제목을 로 정해 놓고 곡을 구성했다는 것을.
앨범 구성을 인간의 대표적 기본 감정인 희로애락을 따라가려 했으나, 이정현이 만들어 놓은 음악에는 분노와 슬픔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곧이어 몰아칠 쓰나미에 비해, 앞서 연주된 두 곡은 겨우 잔잔한 산들바람에 불과했다는 것을.
무대에 올라오는 이정현을 보며 사람들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그가 지휘자와 악수를 한 뒤 관객석을 향해 고개를 숙일 때 박수를 보냈다.
스태프의 역할을 하기 위해 오늘 콘서트 홀을 방문한 혁진 역시 그래서는 안 되지만, 자신도 모르게 박수 소리에 떠밀려 손뼉을 쳤다.
‘드디어 주인공이 올라오는군…. 그런데 이렇게 공연을 할 거라면 왜 이정현의 이름을 붙인 거지?’
마음속으로 작은 의문이 들었지만 그 생각을 길게 가져갈 수는 없었다.
세 번째 곡의 전주가 울려 퍼졌다.
***
3천 번이 넘는 외적의 침입이 있었던 나라, 대한민국.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민들은 자신들을 말할 때 간혹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한 (恨) 이 많은 민족’.
그 한이라는 것이 수천 년에 걸쳐 쌓여 왔겠지만, 가장 최근에 쌓였던 시기는 언제인가 묻는다면 대부분의 한국인은 일제 강점기를 꼽을 것이다.
김유정, 이상, 이육사, 윤동주, 한용운과 같은 이름이 알려진,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모든 작가들이 그 한을 품은 글들을 발행하며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말하며 독립을 갈구했다.
그렇게 일제 강점기의 한복판에서, 작가들은 소설과 시에 자신들의 눈물과 민족의 애환을 담았다.
윤주란 교수는 정현의 첫 번째 자작 성악곡의 제목과 가사를 여기에서 따왔다.
광복절로 발표일(녹음일)을 정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의 저항 시인 이상화 시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시를 정현의 목소리로 듣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도 담겨 있었지만, 클래식의 변방국이라는 서러움에서 독립하는 데에 이만큼 임팩트가 있는 가사도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쓸쓸함이 조금 묻어 있는 선율로 반주가 시작되는 그 순간, 윤주란은 곡을 온전히 담기 위해 눈을 감았다.
플루트의 구슬픈 선율이 흐르는 위로 정현의 목소리가 중저음의 바리톤으로 포개진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간주가 조금 흐른 뒤에 테너의 톤으로 올라간 목소리가 겹쳐진다.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꿈속을 걸어가듯 어느새 베이스의 목소리로 바뀐 정현이 가사를 읊조리듯 내뱉었다.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
1인 4색. 남성 성악가가 낼 수 있는 목소리 네 가지.
카운터 테너부터 테너, 바리톤, 베이스까지 혼자 아우르는 정현의 목소리는, 무대 위에 네 명의 성악가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한 명의 성악가가 여러 목소리를 내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문화된 목소리의 톤이 아니라면, 조금이라도 어설픈 소리를 만들어 낸다면 무대 위에 설 자격이 없다.
그리고 정현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남성 성악가의 모든 목소리를 최고의 퀄리티로 낼 수 있는 성악가였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윤주란은 이정현이 낼 수 있는 모든 목소리로 곡을 표현해 주기를 바랐다. 가사 없는 연주곡인 노트북의 음원을 처음 듣던 그 순간에, ‘정현의 모든 역량을 담은 곡이 세상에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정현에게 편곡을 주문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는 그 속에 담긴 한을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관객석으로 던지고 있었다.
기존에 수도 없이 많은 가곡과 민중가요라는 틀 안에 갇혀 있던 제목과 가사만 같은 곡과는 다르게, 정현의 목소리에 담긴 특유의 ‘마음을 울리는’ 느낌이 공감을 배가시켰다.
그의 태평양처럼 넓은 음역대는 끝없이 오르내리면서 듣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구름이 떠 있는 하늘까지 띄웠다가, 땅바닥으로 내리꽂듯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콘서트 홀에 퍼져나간 정현의 목소리는 앞서 두 곡의 교향곡으로 인해 무방비가 되어 버린 관중석에 앉은 2,500명의 가슴을 쥐어짜듯 누르며, 그들의 심장에 나라를 잃었다는 비수를 꽂고 흔들어 강제로 말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중저음인 바리톤으로 시작된 음을 중음의 테너로 들어 올리고, 저음의 베이스로 떨군다.
곡의 하이라이트에서 메조 소프라노에 버금가는 힘이 실린 카운터 테너의 톤과 화려한 오케스트라로 화룡점정을 찍은 뒤, 처음 시작보다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는 바리톤으로 마무리.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성악 파트가 온전히 종료되고 그 뒤를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따른다.
목소리가 잘 들리게 하기 위해 약하게 연주되었던 연주가 콘서트 홀을 채우며 마무리되는 곡.
정현의 목소리는 공연을 기획하고 곡을 지정했던 윤주란 본인의 마음조차도 흔들어 버리고 있었다.
‘최고야…. 이 곡은 세계를 울리게 될 거야!’
윤주란은 그제야 눈을 뜨고, 무대 위에 있는 이정현이 아닌 자신의 옆에 앉은 친구 김지숙을 바라보았다.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이자 이정현의 어머니인 김지숙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지숙아, 왜 이렇게 울어….”
지숙은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대답했다.
“주란아…. 우리 아들…. 나 때문에 고생만 한 내 아들이… 이렇게나 컸어….”
이 둘은 서로의 대화를 마무리 짓지 못한 채, 관중석에 울려 퍼지고 있는 다른 이들의 박수 소리에 함께 박수를 보내고 웃으며 울었다.
정현은 지휘자, 콘서트마스터와 인사를 하고 무대 앞에 서서 크게 인사를 한 뒤 웃고 있었다.
***
“어후, 죽겠다….”
평소에 연습은커녕 음악도 듣거나 따라부르지 않는 정현으로서는 굉장히 무리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성악곡치고는 가사도 많았고 음역의 폭도 넓었기 때문이다. (정현은 가사가 된 시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음역을 변환할 때 가장 고통스러운 점은 다른 것보다 체력이다.
몸통을 울리듯 써야 하는 베이스에서 쥐어짜 내는 소리를 내야 하는 카운터 테너까지 끌어 올리는 것은 온몸의 근육을 써야 할 만큼 체력 소모가 컸다.
그것은 평소에 운동 같은 건 전혀 하지 않는 정현에게는 험난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정현은 배만 안 나왔다 뿐이지 일반적인 중년 아저씨와 비슷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 저질 체력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공연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온 정현은 공연을 위해 입고 있던, 턱시도를 벗을 생각조차 못 하고 소파에 가로로 길게 엎어지며 목에 걸린 나비넥타이만 풀어 헤쳐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안 해! 이제 이딴 거 안 한다고. 아, 진짜 힘들어 죽겠다.”
정말 본격적으로 쉴 거라 다짐하며 윤 교수의 꼬임에 넘어간 자신을 다시 한번 원망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더 이상의 공연은 없을 것이라 행복 회로를 돌리며 안도의 숨을 돌렸다.
“윤 교수님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관리는 어차피 윤 교수가 다 알아서 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아직 일주일이나 남은 여름 방학 기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앞으로 남은 일주일을 세상에서 가장 게으르게 보내기 위한 계획을 짜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눈을 감는 순간, 대기실의 문이 노크도 생략한 채 벌컥 열리고 말았다.
“현아!”
이씨 집안의 행동 대장 정화를 앞세운 가족들과 윤 교수가 들이닥쳤다.
그 흔한 꽃다발은커녕 음료수도 없이. 정현은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 소파에 엎드린 채로 살짝 몸을 돌려 대기실 문을 바라보곤, 이곳에 들이닥친 재앙을 마주하며 작게 혼잣말을 했다.
“젠장….”
이것이 정현이 대기실에서 내뱉은 마지막 말이 되었다.
그리고 공연을 마친 정현과 정현의 가족들은 외부의 모든 연락을 차단한 채, 휴가를 보내기 위해 제주도로 향했다.
정현의 가족들이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제주도에 머물고 있던 그때, 인터넷 포털에는 연예란이 아닌 사회면에 훗날 온 나라를 뒤흔들 만큼 큰 논란을 불러오는 기사가 올라왔다.
바로 정현의 능력을 의심하며 저격하는 기사였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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