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71
170화
머리가 울린다.
내가 만들었던 악보의 소리들이 창이 된 것처럼 귀를 찔러 들어온다.
“으윽-”
귀가 터져 나가는 괴로움에 머리를 양손으로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음악 소리가 내 귀를 비집고 들려 왔다.
그리고 찾아온 순간의 정적.
조금 편해진 느낌에 머리를 감싸 쥔 손이 느슨해지고,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또각또각
한 남자가 걸어가는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손에 낡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있는 남자.
그리고 서너 살쯤 되었을 사내아이가 아무것도 없던 그의 왼손에 나타났다.
[이다음에 크면 뭐가 되고 싶어?] [아빠처럼 바이올린 연주하는 사람?]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말했을 리가 없다.
“글쎄, 정말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을까?”
[하하, 우리 현이 때문에라도 아빠가 더 열심히 해야겠는데?]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저렇게 다정한 말로 나를 대했던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네가 존경할 수 있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어서 그렇게 미친 듯이 연습했던 거야.”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아버지를 싫어했는지도.
“네가, 아니 우리가 음악을 싫어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는 거지.”
나는 한참 동안 걸어가는 아버지와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린 나는 아버지의 손을 흔들며 즐거운 듯이 앞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와 아버지는 저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적이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어렸을 때는 음악을 좋아했었구나. 좋아하다 싫어진 거라면, 싫은 것도 좋아할 수 있게 될 수 있지 않을까?
“…….”
안 그래?
-칫, 잘해 봐라.
몇 주 만에 나 자신의 환각을 마주했다. 뭘 잘해 보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는 체념한 듯 기운이 빠져 있었다.
“괜찮아요?”
메건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한동안 멍한 느낌을 벗어날 수 없었다.
장례식이 한창 진행 중인 수백 명의 작위 보유자들이 가득 들어찬 세인트폴의 예배당 안은 주교의 목소리만 들려 왔다.
한참 동안이나 진행된 장례식은 주교의 축복 기도로 마무리가 되었고, 그 많았던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메건과 나만 남았다.
단상 위에 있는 여왕의 관이 보였다.
한참 동안 멍하니 관을 바라보다 옆에 있는 메건을 향해 말했다.
“좀 걸을까요?”
메건은 같이 걷자고 하는 나의 말에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 런던에서 꽤 오래 있었는데도, 메건과 길거리를 걸었던 적이 없었다. 나갈 일이 있을 때는 차를 이용했고, 워낙에 돌아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거의 집에만 있었지.
메건의 손을 잡고 세인트폴을 나섰다.
세인트폴 성당에서 템즈강으로 가는 길에 있는 광장을 지나 밀레니엄 브릿지에 오르자, 멀리 모던 테이트 뮤지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앞의 넓은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도 보였다.
“곧 있으면 겨울인데, 이 날씨에 버스킹을 하네.”
“열정적인 사람인가 보죠.”
11월이라는 쌀쌀한 날씨는 버스킹을 하기에 썩 좋은 날씨는 아니었기에, 제대로 연주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두 곡을 연주하고 나면 추위에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을 날씨였으니까.
오늘 세인트폴에서 여왕의 장례식이 진행되었던 것 때문이었는지 밀레니엄 브릿지 위에 몰려 있는 인파가 엄청났다. 그 때문에 옆에 붙어있는 경호원이 밀착하듯 붙어있었다.
“이정현 경. 혹시라도 모던 테이트에 들어가고 싶으신 거라면, 오늘은 안 됩니다. 저 하나로는 경호 인력이 부족합니다.”
“아, 꼭 거기를 가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좀 걷고 싶었던 거라서….”
기왕 온 김에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했지만, 안 된다고 말하는 경호원의 말에 나와 메건은 발길을 돌려 대관람차 런던 아이를 향했다.
“런던 아이 타 본 적 있어요?”
“아뇨….”
“한번 타 볼까요?”
우리 둘 다 런던 촌놈이구나. 여기에 집이 있는데도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런던 아이를 타 본 적이 없었다.
런던 아이를 타 보자는 나의 말에 메건은 고개를 끄덕였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올라탈 수 있었다.
“진짜 타 보고 싶었는데, 같이 올 사람이 없었어요!”
“하하하하.”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메건을 보니 잘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덜컹-
대관람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런던 시내를 모두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의 높이로 올라갈 것이다.
지금 막 움직이기 시작해 볼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메건의 눈은 창밖에 고정되어 움직이질 않았다.
“메건.”
“네?”
“나 이제 다시 음악이 들려요.”
“네?!”
그제서야 메건의 얼굴은 나를 향했다. 어찌나 놀랐는지 그 큰 눈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는 회사의 대표도 뭣도 아니라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뭘 어떻게 해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지금 우리가 런던 아이를 타고 있는 것처럼.”
활짝 웃어 주는 메건의 얼굴을 보며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뭐예요?”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는 대답을 하기 위해 한참 동안 생각해야 했고, 대관람차는 어느새 90도를 지나는 중이었다.
“음…. 내가 만들었던 음악을 들어 보고 싶어요. 엘리와 유지현의 목소리가 들어간. 어떤 느낌인지 아직 들어 보지 못했으니까.”
“그러면 여기에서 들어요.”
메건은 휴대폰을 꺼내 음악을 틀었다.
내 귀는 내가 적어 내려갔던 악보를 답습한다.
멜로디가 들려 오며 슈퍼 페스티벌이 열렸던 그 날의 열기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 이런 곡이었구나….”
내가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가 의도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씌워져 있다는 건 생소한 느낌이었다.
이미 발매를 했으니 더 나은 방향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수정하기에는 늦었지만, 누가 프로듀싱을 했는지 몰라도 듣기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대관람차가 한 바퀴를 모두 돌아 다시 땅으로 내려올 무렵 음악은 끝났다.
작은 문이 열리고 나와 메건은 다시 땅 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
전 세계 각지에서 장례식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방송을 시청하던 사람들은 터져 나온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여왕을 존경해서?
아니, 관을 운구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온 장송곡 때문이었다.
“이런 미친, 왜 멈추질 않는 거야!”
장례식을 마친 뒤 각국 대표 사절들이 모인 버킹엄궁의 홀.
이곳의 분위기는 심상치가 않았다.
보통 국장으로 치러지는 장례식 이후에는 대부분 경제 협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그다지 많은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오히려 협력 같은 것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비통한 분위기였다.
영국과 관계가 전혀 없는 나라의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크게 상관이 없었지만, 문제는 커먼웰스에 속해 있는 국가들이었다.
장례식 이후 순차적으로 현 국왕인 윌리엄 5세보다 영향력이 컸던 엘리자베스 2세의 흔적을 지우면, 커먼웰스의 방향을 유럽 연합의 경제 교류 목적의 단체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국가의 대표들.
이들은 자국 국민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에 강경하게 진행할 수가 없었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전 한때는 자신들의 나라를 식민지로 부린 곳이 영국이 아니냐며 거친 항의를 하던 일부 국민들이, 이후에는 잠잠해졌기 때문이었다.
“크흠….”
“이틀 전에는 그렇게 말을 잘하시던 분이 왜 지금은 아무런 말씀이 없으십니까?”
장례식이 시작하기 이전에는 탈퇴를 해야 한다, 단체의 이름을 바꾸자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기양양하게 이들에게 말을 하는 사람들은 호주와 뉴질랜드처럼 왕국령에 속해 있는 국가들이었다.
이틀 전만 하더라도 단체의 이름을 바꾸자는 측의 공세에 밀려 수비만 하던 이들이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말 한마디 못하는 이들에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여왕님처럼 우아하고 위엄 있는 장송곡 아니었습니까?”
“맞습니다! 그분이 살아 계실 때처럼 기품이 느껴지는 그런 곡이었죠.”
어느덧 자리의 주제는 장송곡으로 넘어갔다.
각국의 국장에서 연주되는 장송곡은 거의 모두 다른 곡을 사용하였지만, 대대로 영국에서 연주되었던 곡과는 전혀 다른 곡이라는 것을 이들은 느끼고 있었다.
“이 곡을 이정현이 작곡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정현이요? 윌리엄 5세의 대관식곡도 만들었다던데….”
각국의 정치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는 정현이 대화의 주제가 되자,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까지도 끼어들며 대화가 진행되었다.
정현이 만든 음악이 와해되려던 커먼웰스를 지켜 낸 것이었다.
물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커먼웰스의 성질이 바뀌지도 않았기에, 이후 그 누구도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다.
***
살짝 고민이 된다.
다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주변 사람에게 말을 해야 할까?
이 고민을 메건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어도, 지난번처럼 나를 위해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어 줄 것이라고 믿었다.
다시 회사의 운영 때문에 바빠지는 것은 사양하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무슨 고민거리가 있으십니까?”
“아이 씨, 깜짝이야. 기척 좀 하시라니까…. 한동안 안 왔더니 더 놀랐잖아요.”
“허허, 한국에서 오래 계시더니 약해지셨군요.”
예전과 다름없이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아서 때문에 심장이 멎어 버리는 것만 같았다.
이 인간 100퍼센트의 확률로 나를 놀리는 데 재미를 들인 것이 분명하다.
“식사 준비가 되었습니다. 가시지요.”
식당에 도착하자 메건이 미리 도착해 앉아 있었다.
한국에서 지냈던 집은 이 집처럼 큰 편이 아니라서 얼굴을 자주 마주칠 수 있었는데, 이 집에서는 하루 종일 지내더라도 얼굴을 마주치는 일이 드물었기에 조금 낯선 기분이 들었다.
“왠지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요.”
방도 같이 쓰는 부부 사이에 오랜만에 본다고 인사를 하다니. 이게 무슨 경우야.
“그러게요…. 메건은 오늘 바빴나요?”
“아뇨. 고민거리가 있는 것 같아서 일부러 조금 피했어요.”
처음에는 눈치가 참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몇 년 같이 있다 보니 눈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빨랐다.
“어떻게 알았어요?”
“네? 누가 봐도 알 수 있었을걸요? 얼굴에 나 고민 있음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니까.”
나름 잘 숨긴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정도로 티가 나는 얼굴이었나.
수원이 말고는 주변에 아무도 없던 예전에는 다르게, 지금은 내 고민거리를 상담해 줄 수 있는 메건이 있었다.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있다고 말을 할지 말지 고민이에요.”
“음…. 그걸 왜 고민하세요?”
“말하면, 다시 회사 맡으라고 할까 봐…?”
“네?”
한참 동안을 깔깔거리며 웃던 메건은 나를 보며 말을 했다.
“내 남편이지만 가끔 너무 엉뚱한 거 알아요?”
“그게 왜 엉뚱한 거예요.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음악을 듣지 못하는 걸 아는 사람은 저와 어머니, 그리고 수원 씨랑 의사 선생님밖에 없잖아요. 그걸 굳이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 다른 사람들은 다 모르고 있구나.”
이런 단순한 걸 갖고 혼자서 끙끙 앓았다니.
“저는 또 빈 필하모닉과 협업 때문에 그러시는 줄 알았잖아요.”
“아…. 그것도 있었네….”
완전히 까먹고 있었잖아. 젠장.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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