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73
172화
TV나 영화 같은 미디어에서 보는 연기와 눈앞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기는 다르다.
물론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조금 까다로운 면이 있다.
그 이유는 소리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마이크를 가져다 대고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발성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TV 드라마에서 보이는 연기자들이 연극 무대에 올라서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제랄딘은 오늘도 자신이 일하는 맘마미아 무대를 바라보았다. 극장의 청소부로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티켓을 사지 않더라도 연극을 볼 수 있다는 것.
언제나 청소가 끝나면 매일 같은 연극을 본다. 무대에 올리는 레퍼토리가 바뀔 때까지는 같은 연기를 보게 되지만, 매번 색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언제쯤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
그 무대를 바라보며 자신이 올라갈 때를 그리는 제랄딘.
아무리 작은 무대라고 하더라도 관련된 학과를 나오지 않은 사람을 극단에 입단시켜 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연기의 기초가 되지 않은 사람을 극단의 멤버로 받는 것은, 극단의 질을 떨어뜨릴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간혹 학교를 나오지 않고도 엄청난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사람들은 연극 무대에 머무르지 않고 TV나 영화로 전향한다.
연극 무대는 돈이 되지 않으니까.
그래도 제랄딘은 언젠가 자신이 연극 무대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비록 지금은 대학교나 아카데미를 다닐 만한 금전적인 상황이 되지 않았기에, 이렇게 청소부를 하며 다른 이들의 연기를 흡수하고 있다고.
학비가 비싸기 때문에 그 학비를 벌고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연극 무대를 바라보던 제랄딘. 배우들이 무대 인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늘도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라고 생각했지만, 조금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 청소를 하려던 그녀에게, 맘마미아 극장의 주인인 프레드가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제랄딘. 너, 이정현 경의 사인을 받았다지?”
“네, 지난번에 오셨을 때 받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요?”
극장 맘마미아의 주인인 프레드는 손에 쥔 신문을 가볍게 흔들며 말을 이었다.
“네가 사인을 받는 장면이 이렇게 대문짝만하게 신문에 났는데, 내가 모를 수가 있겠어?”
“아…. 신문….”
“그 사인은 어딨지? 당장 가져와!”
“네? 사인은 왜요?”
마치 훔쳐 간 자신의 물건을 가져오라고 말하는 듯한 프레드의 말에 제랄딘은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분명 그 사인은 자신의 것이었으니까.
프레드는 이정현이 오는 당일 긴장이 된다며 얼굴도 비추지 않았었다.
“왜냐니? 내 극장에서 받은 사인이면 당연히 극장 소유지. 극장은 내 소유고. 그러니까 그 사인은 내 꺼라고.”
“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이정현 경이 종이에 ‘제랄딘에게’ 라고 써 줬다구요. 당연히 제 꺼죠.”
“어허, 이럴 거야? 극장에 유명인이 방문하면 사인을 받아 놓고 전시를 해 놓아야 한다고. 그래야 손님이 많아지고, 너도 주급이 올라가지 않겠어?”
“그게 제 주급하고 무슨 관계가 있죠?”
제랄딘은 프레드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의사의 자식일 테니까.
이미 제랄딘의 이름으로 받은 사인은 자신의 것이라는 논리로 이야기하는 프레드에게,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앞에서 제랄딘의 말은 아무런 힘이 없었다.
결국 사인을 가져오지 않으면 자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프레드에게, 끝까지 줄 수 없다고 말하던 제랄딘은 극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억울했다.
그렇기에 노동부에 이야기를 해서 배상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알아보았지만, 자신은 근로 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용직으로 고용된 입장이었기에 그것마저 불가능.
결국 제랄딘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일을 당하는 거야….’
그저 팬의 입장으로 사인을 받았을 뿐이었지만, 그로 인해 극장에서 잘리게 된 제랄딘.
그 억울함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풀어놓았다.
살길이 막막하다는 생각으로 하소연하듯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신의 입장을 풀어놓았던 글은 순식간에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상에 정현의 사인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밖에 나돌아다니질 않아서 마주치는 것이 불가능하고, 마주친다 하더라도 경호원들이 둘러싸고 있는 특급 보호 요인이라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사인을 받았다는 제랄딘의 글은 순식간에 성지가 되어 불타올랐다.
[뭐? 이정현의 사인? 말도 안 돼. 이정현이 사인을 해 줬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도 없다고.] [난 있어. 예전에 미국에서 해 줬던 적이 있는 걸로 알아.]처음에는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한 덧글들. 그들은 모두 사진을 찍어 증명해 보라 말했다.
게시글에 글만 올렸더니 덧글에는 증거 사진이 없으면 자작극이라며, 사기 글에 장작을 넣지 말라는 덧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관종에게 먹이를 주지 맙시다.]자신의 글에 달린 덧글들을 확인하던 제랄딘.
‘증거가 없으면 안 되는 건가…?’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정현에게 받은 사인을 사진 찍어 덧글로 달아 놓았다.
[여기 증거예요. 저기 ‘제랄딘에게’ 라고 써 놓은 거 보이시죠? 제가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요. 오늘 일자리도 잘렸는데.]그 순간 증거를 내놓으라던 사람들이 모두 돌변했다.
[100파운드에 삽니다.] [110파운드!] [120파운드!]구할 수도 없다는 이정현의 사인이었기에,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사겠다고 달려들었던 것이었다.
“어? 어떻게 하지…?!”
돌변한 사람들의 반응에 제랄딘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애초에 팔겠다고 글을 올렸던 것이 아니라, 그저 직장에서 잘린 것을 하소연하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제랄딘이 그렇게 당황하고 있을 때도 덧글에 쓰인 가격들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
“뭐? 내 사인 한 장에 15만 파운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거실 소파에 누워 휴대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었는데, 내 사인이 15만 파운드에 경매가 되었다는 기사가 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먹을 수도 없고 어디 다른 데 쓸 수도 없는 사인 한 장에 15만 파운드라니. 그 돈이면 프레스턴 같은 시골구석에는 이층집도 살 수 있다고.
기사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소파에서 일어나 자세를 고쳐 앉으며 생각했다.
그 정도로 비싸면 내가 사인을 직접 써서 팔아 보는 건 어떨까…? 이거 최고의 아이디어 같은데…?
“그러게 평소에 팬서비스를 좀 잘하지 그러셨어요. 그러면 사인이 경매에 올라가는 일도 없었을 것 아니에요.”
“…험.”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던 메건이 나를 바라보며 하는 말에 나는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팬서비스라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서비스하는 의미로 사인을 팔아 보는 건….”
“어머, 제가 처음 뵈었을 때보다 농담이 많이 느신 것 같아요. 호호.”
“그, 그렇죠. 농담이죠. 세상에 자기 사인을 파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하하.”
활짝 웃으며 당연히 농담일 거라고 말하는 메건의 모습에, 나는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던 검은색 마커들을 비우는 것은 물론 마음속으로 세웠던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휴우…. 말하기 전에 주문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나저나 내 사인이 경매에 올라오다니. 그 정도로 희소성이 있었다는 소리인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내가 최근에 해 준 사인이라고 하면, 레스터 스퀘어의 극장 로비에서 해 준 것밖에 기억나질 않았다.
사인 용지처럼 두껍고 보존하기 좋은 종이가 아닌, 그냥 일반 복사 용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종이를 경매에 올릴 생각을 하다니.
대단한데…?
“그렇게 감탄만 하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정현 경.”
“응? 그건 무슨 소리예요?”
뭐, 언제나 그렇듯 소리소문없이 다가온 아서가 진지한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인은 일종의 팬을 위한 증정품이나 선물쯤으로 여겨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사인을 팔았다는 것은 이정현 경의 성의를 무시한 것으로….”
“에이, 사인 한 장 갖고 너무 심각해지지 말자구요 우리.”
“험험. 어쨌거나 그 사인이 15만 파운드의 값어치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가짜 사인들까지 판을 치게 될 겁니다.”
“응…? 가짜요? 그건 사기잖아요. 범죄라구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겁니다. 진위를 떠나서 사기꾼들이 극성을 부리게 될 거라는 말이죠.”
젠장. 정작 사인의 주인인 나는 팔아먹지도 못하는 걸 사기꾼들이 팔아서 돈을 번다고?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막아야지.
안 된다, 이놈들아!
그 뒤 한참 동안 고민을 해 보아도 답이 나오질 않아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소파에 누워 TV를 틀었는데, 거기에서 내 사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전문가들이 서로의 의견을 말하는 토론 프로그램 같은 것이었는데, 이들은 한 치의 물러남도 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쌈박질을 했다.
[이게 이정현 경의 진짜 사인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애초에 사인을 해 줬다는 증거가 없는데.] [신문 기사에 난 사진은 깡그리 무시하시는 겁니까? 이게 바로 증거죠. 무려 가디언지 1면에 난 사진이란 말입니다.]한쪽에서는 가짜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선 110년이나 된 영국내 유력 신문의 1면을 보이며 사인을 하는 장면이라 말했다.
[그 사진만으로 진위를 판별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사인을 해 주는 건지 아니면, 그림을 그리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 말이 더 우습죠. 이정현 경이 그림을 그린다고 한 적이 있습니까? 그 사람은 음악가란 말입니다.] [그게 더 억지 아닐까요? 애초에 우리는 이정현 경이 음악을 발표하지 않을 때는 무얼 하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 하고 음악만 만든단 말입니까?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밥도 먹고 놀러 다니고 여러 가지를 합니다. 한 가지만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어요.]주먹과 발차기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팝콘과 콜라가 절실하게 필요한 방송이었다.
서로 각자의 주장을 하느라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저 이야기의 주인공이 여기 이렇게 소파에서 누워 빈둥대고 있다는 걸 저 사람들이 알기나 할까요?”
피식하고 웃으며 말하는 메건의 말에 나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내 머릿속에서 음악을 꺼내었던 시간들은 내 인생에 있어서 극히 적은 시간이었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딴짓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걸 알면 저런 낯뜨거운 이야기를 생방송으로 하겠어요?”
긴급 토론이라며 생방송으로 띄워 놓는 방송국도 참 이상하단 말이지. 저게 돈이 되려나?
싸움이 격해지는 것 같아서 아서에게 팝콘을 가져다 달라고 말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전화벨 소리가 들려 왔다.
Rrrrrr-
있는지 없는지 존재도 알기 어려워 혹시 그냥 데코레이션 상품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던, 소파 테이블 위의 집 전화가 울렸던 것이다.
뒤에서 조용히 방송을 함께 보고 있던 아서가 재빨리 다가와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아서는 조금 심각한 얼굴로 한참 동안 전화 속의 상대와 대화를 하더니 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지금 보시는 방송의 PD라고 하는데, 혹시 전화 인터뷰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