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74
173화
湖
[그래서 저희가 특급 게스트를 모셨습니다. 비록 유선상으로 모시긴 했습니다만….]
[우리 말고 누가 이 자리에 더 온다는 겁니까? 안 그래도 지금 개판인데 더 개판이 되겠구만.]
진행을 하는 MC는 귀에 꽂힌 무선 이어폰으로 들려 온 PD의 지시대로 말하고 있었지만, 이미 링 위에 올라간 격투기 선수처럼 싸우고 있던 패널들은 그런 MC의 말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며 말했다.
[지금 여러분이 싸우고 있는 그 이유가 된 사람. 바로 이정현 경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정현 경.]“아, 넵 안녕하세요. 이정현입니다.”
솔직히 메건이나 아서가 보는 앞에서 전화 인터뷰를 하는 것에 약간의 부끄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TV를 바라보며 전화로 말하는 것에는 약간의 시간차가 있어 불편했기에, 나는 전화기를 들고 거실을 벗어나 부엌으로 이동한 상태.
팝콘을 먹으면서 시청하려던 계획이 무산된 건 안타깝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 때문에 사람들이 싸우는 걸 말려 달라고 PD가 하소연하는 통에, 전화기를 손에 잡을 수밖에 없었다.
[에,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며칠 전에 경매에서 팔린 사인의 진위 문제입니다. 그 사인이 진짜가 맞습니까?]“팔린 것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극장의 로비에서 사인을 해 준 것은 맞습니다.”
[뭐야, 진짜래. 그러면 최소한 사기는 아닌 거네?]내가 진위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 버리자, 전화기 너머로도 느껴지는 관객석의 술렁거림.
[그렇다면 본인의 사인이 그 가격에 팔린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15만 파운드라는 돈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 않습니까.]“팔고 사는 것은 제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인을 해서 넘겨준 이상, 그것은 제 것이 아닌 받은 분의 것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저 역시 그 가격은 과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석적인 답변이다. 대외적으로 보이는 나의 모습에도 흠이 나질 않고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좋은 대답.
내가 한 말이었지만, 만족스러웠다.
[팔고 사는 것은 상관없으나, 그 금액은 너무 비싸다는 말씀이시군요.]“가격을 정한 것은 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조금 전 레이디 메건과 이야기를 하면서 직접 사인을 팔아 볼까 하는 농담도 했었습니다. 솔직히 종이 한 장에 15만 파운드면 음악을 만드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돈벌이가 될 테니까요.”
[와하하하하하!]관중석에서 터져 나온 웃음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 온다.
[마지막으로 그 사인을 팔았다고 하는 제랄딘이라는 아가씨에게 할 말이 있으시다면 한마디 해 주시겠습니까?]“그렇게 비싸게 팔 수 있다면 저 역시도 팔았을 겁니다. 그 돈으로 맛있는 거라도 사 드셨으면 좋겠네요.”
로비에서 마주했던 지저분한 그녀의 옷차림이 떠올랐다. 새 옷이라도 사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조금은 나은 살림살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유쾌한 답변 감사합니다.]“별말씀을요.”
평범한 인사를 하며 짧은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너무 과열된 것 같아서 그 분위기를 조금은 식힐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게 먹혔으면 좋겠는데….
***
영국인은 가쉽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국민성을 갖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근대에 들어오며 두 번이나 왕정을 폐지하자는 찬반투표를 했지만, 과반수가 넘는 찬성표를 얻으며 왕정을 유지한 이유가 바로 가쉽 때문.
국민들은 왕실의 이야기를 보며 동화 속에서 나오는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 속에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정현의 사인도 그 가쉽의 중심에서 쉽게 벗어나질 못했다.
“이, 이게 진짜 돈이야?!”
제랄딘은 휴대폰에 찍힌 자신의 통장 잔고를 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사인을 팔라고 하는 덧글들이 하도 많이 올라와서 시달림을 당했던 그녀였지만, 그 시달림의 끝에 경매 사이트에 올리게 되는 과정이 마치 미리 계획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통장에 찍힌 금액은 경매 사이트의 수수료 10%를 제외한 13만 5천 파운드가량.
매주 내야 하는 방세도 고민이었는데 통장에 찍혀 있는 돈이 그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연기를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대학교에 가질 못했던 제랄딘. 돈이 생기자 학교에 가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후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자신의 계좌를 보며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고 나서 인터넷으로 자신이 갈 수 있는 학교를 찾으며 행복한 꿈에 젖어 들었다.
연극 무대를 바라보며 꿈만 꿀 때와는 달리 지금은 자신의 꿈이 한층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언제든 자신이 꺼내 쓸 수 있는 돈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방송에서 제랄딘이 정현의 사인을 팔아 큰돈을 벌었다는 것이 알려진 그때, 사람들의 비난이 시작된 것이었다.
끊임없이 울려 대는 댓글 알림을 확인한 제랄딘은 당황했다.
자신이 올렸던 게시물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 글로 뒤덮여 있었다.
애초에 사인을 팔고 싶어서 팔았던 것도 아니었고 팔라고 통사정을 했기에 팔았던 것뿐이었는데, 사람들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 팔았는지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작성했던 글에 달린 덧글에서 그저 자신을 비난하고 싶은 사람들의 악의가 느껴졌다.
그 악의는 제랄딘을 당황해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평소에도 인터넷 활동을 그리 많이 했던 것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것도 있었고, 그 대부분이 비난 글이라는 것 또한 그녀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불과 몇 분 전 덧글을 확인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행복한 꿈에 젖어 있었는데, 지금은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고 있는 것처럼 우울한 느낌이었다.
제랄딘 자신은 입금된 돈을 아직 단 1파운드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경매 사이트의 수수료로 빠져나간 돈이 있기에, 15만 파운드가 되질 않아 다시 되사는 것도 불가능.
머리가 아파왔다.
이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도무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지금 와서 아무리 후회를 해 봤자, 그 후회로 모든 것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어떡하지….”
복잡한 마음에 괴로웠지만 조금이라도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에 TV 리모컨을 손에 쥐었다.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안 좋은 생각들만 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악플은 제랄딘을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삑-
한참 동안 방송을 보며 기분 전환을 하며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그때였다.
[마지막으로 그 사인을 팔았다고 하는 제랄딘이라는 아가씨에게 할 말이 있으시다면 한마디 해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비싸게 팔 수 있다면 저 역시도 팔았을 겁니다. 그 돈으로 맛있는 거라도 사 드셨으면 좋겠네요.]제랄딘은 귓가에 들려 오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비록 자신이 극장 로비에서 마주했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보적으로 아름다운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는 그 순간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맛있는 거를 사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정현의 목소리에 제랄딘은 깊고 깊은 우울함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고마워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욕하는 덧글들은 금세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이미 자신은 정현이 한 말에 의해 구원받았기 때문이었다.
사인을 해 준 본인이 상관없다는데, 그걸 누가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사인 한 장에 한화로 2억이 넘는 가격에 팔리며 화제가 되었던 이 일은 잊혀지는 듯했다. 적어도 가쉽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
특별한 일이 하나도 없이 크리스마스까지 지나가 버리고, 새해가 시작된 지도 한참 지난 2036년의 여름. 만으로 서른네 살이 되었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나는 빈 필과의 계약을 지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미 계약을 한 지 2년이 지났고, 빚쟁이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도무지 어떤 음악을 만들어야 할지 감조차도 오질 않았다.
예전에는 음 하나만 들려 와도 그 음에 대한 음악이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연주를 시작했었는데, 이제는 연주가 들려 오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해서, 머릿속의 연주까지 들려 왔던 것은 아니었다.
예전처럼 자동적으로 떠오른 음악이 아니라, 복잡하게 계산까지 해 가며 수십 시간을 들여서 만든 음악은 무난했다. 그렇지만 그 무난한 음악에 내 이름을 붙여 발표하는 것은 쓸데없이 올라간 나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하아…. 그냥 계약 파기해 버릴까.”
어차피 계약금이 걸린 것도 아니었고, 계약이 완료되는 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기에 파기를 해도 나에게 불이익이 되는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 계약이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을 지도 모른다. 숨이 조여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지 않아요? 계약 조항에 언제까지 끝내야 한다는 것도 없는데.”
“그렇긴 하죠.”
“게다가 재촉하는 일도 없고 말이죠.”
“오히려 그게 더 신경 쓰여요. 차라리 ‘언제까지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라며 독촉이라도 했으면 마음 편하게 계약을 파기할 텐데….”
정말 너무 조용했다. 마치 계약한 일을 잊고 있는 것처럼 빈 필하모닉 측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기분 전환하게 영화나 보러 가요.”
“그럴까요?”
얼마 전 다시 영화 음악 일을 시작한 메건은 종종 영화를 보러 가자는 말을 했다.
예전에는 내가 외부에 나가는 것을 꺼린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이렇게 권하는 일이 없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지금은 꽤나 적극적으로 어디에 가자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이 귀찮았을 뿐이었으니까.
어쩌면 어릴 때의 트라우마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의 관심은 오히려 나에게는 독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내 사인이 15만 파운드에 팔렸다는 것이 알려진 이후 조금은 외부 활동을 늘렸다. 내 사인이 그만큼 비싸게 팔렸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요청하는 사람들에게는 해 줄 수 있는 만큼 사인을 해 주었다.
그만큼 과열되어 있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내 이름은 조금 희석되어 사인의 가치가 떨어졌지만, 그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지난번의 그 일은 사회적 이슈가 될 정도로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에이 몰라. 복잡한 생각하지 말고 영화나 보러 가자.
나는 어떤 영화가 상영 중인지 그런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지만, 영화를 보는 그 시간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런 마음이었다.
자주 가던 극장의 스크린에서 언젠가 한 번 마주쳤던 얼굴을 다시 보게 될 때까지는.
“어? 쟤가 왜 여기서 나와?”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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