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76
175화
클래식에 다른 음악 장르를 혼합하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
메탈리카나 스윗박스 같은 그룹들이 클래식과 자신들의 음악을 합쳐서 음악을 만들었던 것이 대표적.
그렇지만 그런 음악들이 크게 인기를 끌었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적당한 선에서 인기를 얻긴 했지만, 음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킬 정도라고 보기는 어려웠으니까.
보통 크게 인기를 끌고 난 뒤에 유행처럼 많은 사람들이 따라 하는 메가 히트급 인기를 얻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페터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팝을 좋아하냐고 물어보았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정현의 입에서 뜬금없는 동화가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는 좋아했겠죠? 지금은 아니지만.”
[당연히 그러시겠죠. 하하. 동화라는 것은 아이들을 위한 거니까.]“무엇 때문에 그런 걸 물어보시는 겁니까?”
[별건 아니에요. 아, 그렇다면 아이들이 공연장에 오는 일은 흔한가요?]페터는 제대로 답변을 해 주지도 않고 자신의 질문만 이어가는 정현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답변을 해 주기 위해 머릿속으로 잠시 생각해 보았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악기는 거의 의무 사항에 가깝다.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악기를 선택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악기를 연주하는 수업을 들어야 했다.
평균적으로 악기를 시작하는 나이가 다섯 살에서 여섯 살.
그리고 악기 연주를 시작하면 공연장에서 음악을 듣는 것이 당연하기에, 콘서트홀을 찾는 어린이들도 흔했다.
“흔하죠. 관객 비중이 꽤 높은 편입니다. 가족 단위로 오는 일도 많구요.”
[답변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어요.]“저, 다시 한번 여쭤보겠습니다만, 대체 왜 그런 걸 물어보시는 겁니까?”
[동화책처럼 아이들을 위한 클래식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네?”
어린아이들을 위한 클래식은 생각보다 많다. 대표적인 곡을 꼽자면 모차르트의 작은 별이나 슈베르트의 자장가.
그렇기에 어린아이들을 위한 클래식은 희귀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동화라니.
동화와 클래식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대체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인지도 모를 답변을 남긴 채 전화는 끊어졌다.
“사무총장님 이정현이 갑자기 왜 전화를 건 겁니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네.”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들을 잔뜩 들었던 기분이 들었다.
“천재들은 다 이 모양인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페터는 이미 끊어져 답변을 들을 수 없는 전화의 수화기를 바라보았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는 말이야.”
***
클래식뿐만이 아니라 모든 음악은 스토리텔링에 가깝다.
비교적 가볍게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하이라이트 그리고 엔딩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이야기.
“자기네들이 그렇게 많이 연주하는 사계만 보더라도 네 개의 이야기를 나열해 놓은 거잖아. 그런데 왜 못 알아듣는 거냐고.”
전화를 끊었지만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빈 필하모닉의 사무총장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빈 필에서는 뭐래요?”
“응? 뭐라뇨?”
“어떤 노래를 만들지 상의하려고 전화하셨던 것 아니에요?”
“아…?”
그걸 안 물어봤네…. 어쩐지 계속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물어보더라.
뭐 상관없겠지.
“읏차!”
요즘에는 거의 거실의 소파에서 누워서 지냈던 것만 같은 기분이다. 가끔은 산책도 해 줘야지.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정원과 연결된 문을 열고 촉촉하게 젖은 저녁의 풀 내음을 맡았다.
런던의 겨울은 차갑고 건조한 한국의 겨울과는 다르게 조금은 포근함이 있다.
10도 안팎으로 오르내리는 기온이 가을 같은 느낌이다.
정원에 펼쳐진 끝없는 잔디밭이 눈에 들어와 신고 있던 실내용 슬리퍼를 벗어 가지런히 놓아두고 맨발로 잔디를 밟았다.
차갑다. 만약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면 발이 닿자마자 바로 떼어 버렸을 것이다.
“뭐 하세요?”
메건이 열린 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내게 물었다.
“한번 해 보고 싶었어요.”
나는 고개를 돌려 활짝 웃어 보였다.
빗물이 고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 차마 잔디 위에 누워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드넓은 정원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사람이 나 혼자라는 것이 꽤 마음에 들었다.
바쁘게 살 때 그렇게 갖고 싶었었던 여유를 이제서야 가질 수 있었지만, 이 여유를 이렇게 온몸으로 느껴 본 것이 처음인 것 같았다.
“메건도 이리 나와서 잔디를 밟아 봐요. 기분이 좋다구요.”
내 말에 이끌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녀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실내화를 내가 놓아둔 곳 옆에 가지런히 놓아두고, 잔디밭으로 내려와 나의 손을 잡았다.
“앗, 차가워!”
“하하하하. 미안해요 차갑다는 말을 까먹었었네.”
차갑다고 가볍게 소리를 지르는 메건의 볼이 부풀어 오르지 않은 것을 보면, 다행히도 화가 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래 왕국에서 뛰쳐나와 이렇게 맨발로 잔디밭을 밟았겠지. 아니 애초에 공주가 아니면 뭐 어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여자아이의 얼굴에는 세상을 처음 마주한 것처럼 신기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반짝이는 눈동자와 놀라서 다물어지지 않는 작은 입. 도톰한 입술과 커다란 눈망울.
지금 나의 손을 잡고 있는 메건처럼 말이지.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하늘, 그 구름 사이사이로 빛나는 별들이 보였다.
***
남편인 정현은 평소에도 늦잠을 자는 일이 많았지만, 메건은 아침 일찍 일어나는 편이었다.
얼마 전 다시 시작한 영화 음악 일을 하기 위해서는 스튜디오에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음악들과는 다르게 영화 음악을 만드는 것에는 제약이 많다.
요청 사항으로 스크립트만 보고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촬영된 영상을 보며 작업하는 일이 더 많았기에, 다른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처럼 자유롭지는 않다.
배경 음악이 입혀지지 않은 영상은 스튜디오 외부로 반출이 금지되어 있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아직 자신의 옆에서 잠들어 있는 정현을 바라보았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칼을 헝클어뜨린 채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잠들어 있는 모습. 평소 남편이 보여 주던 모습 그대로였다.
메건은 손을 뻗어 머리칼을 살짝 정리해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현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걸었다.
“일어나셨습니까, 사모님.”
“안녕하세요 아서.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은 비가 오니 식당에서 식사를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할게요.”
언제나 극진히 챙겨 주는 아서의 말을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뭇가지에 빗물이 떨어져 흔들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이곳에서 저 풍경을 마주했을 때는 자신이 여기에서 살 것이라고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어느새 사모님이라고 불리는 것조차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살짝 웃음이 났다.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수업 때 들었던 곡을 만들었던 사람을 만나 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남편은 어젯밤에도 예전에 자신과 함께 작업했던 그 공간에서 밤늦도록 작업을 하다 침대로 들어왔다.
함께 정원에 나가 한참 동안 어린아이들처럼 맨발로 뛰어다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작업실로 뛰쳐 들어갔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계산적이지 않은 모습이 좋았다.
그런 모습 때문에 몇 번 만나 보지도 않은 정현과 결혼을 결심했을지도 모른다.
드르르르르-
아서가 음식이 얹어진 트롤리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왔다. 쟁반에 가져와도 좋으련만, 언제나 두 손으로 들고 다니는 일은 없었다.
“토스트와 베이크드 빈 그리고 베이컨입니다. 차에 우유를 넣으시겠습니까?”
“네, 부탁드려요.”
식탁에 앉은 메건의 앞에 놓이는 접시와 찻잔.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아침.
“이정현 경께서는 어제도 밤늦게 주무신 것 같더군요. 언제쯤 깨우는 게 좋겠습니까?”
“혼자서 일어날 때까지 두세요. 많이 피곤할 거예요. 어제 오랜만에 음악 작업을 하셨거든요.”
메건은 최근에는 TV를 보다 소파에서 잠드는 일이 많았던, 생활 패턴이 많이 흐트러진 정현을 대신해 말해 주었다.
“오, 다시 시작하신 겁니까? 그렇지만 지난번처럼 쓰러지시는 일이 생길지도 몰라 걱정이군요.”
“그러니 제가 집에 없는 동안 잘 챙겨 주세요.”
말하지 않아도 아서가 옆에 붙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메건은 정현을 걱정하지 않았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음악 작업을 하는 정현의 곁을 언제나 지켜 주었으니 말이다.
메건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샤워를 마친 뒤 드레스 룸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 정현은 일어나질 않았다.
출근을 하기 위해 현관을 나서기 위해 1층에 다시 내려왔을 때, 약간의 충동이 일어났다.
지난밤에 정현이 만들어 놓은 곡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회복이 된 이후 처음인데…. 괜찮으려나…?’
메건은 컴퓨터가 있는 작업실을 향해 걸었다. 조심스럽게 걸어갈 필요는 없었다.
이 저택의 안주인이었으니까.
지나치는 사용인들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것들을 몇 번 받아 주며 작업실의 문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비가 와서 어둑어둑해 보이는 바깥 풍경이 보이는 곳 앞에 놓인 컴퓨터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그렇듯 전원은 꺼 두지 않은 상태다.
남편인 정현은 작업이 끝나기 전에 컴퓨터의 전원을 내리는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메건은 아직 작업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마우스를 살짝 움직인 뒤 수면 상태인 컴퓨터에 전원이 돌아와 모니터가 켜지기를 기다렸다.
잠시 뒤 회색빛 DAW의 화면이 들어왔다.
“흐응…. 80BPM에 4분의 4박자네…?”
메건은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정현이 만들어 왔던 음악 중에 이렇게 느린 템포를 갖는 음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96BPM부터 시작되었던 그의 음악에서 이렇게 느린 음악은 없었다.
느린 것이 문제는 아니다. 단지 대부분의 작곡가는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박자를 벗어나는 일이 드물다는 것이 메건을 의아하게 만든 점이었다.
빽빽이 늘어선 트랙에 채워진 노트들을 바라보며 한참을 망설였다. 완성이 되질 않은 곡을 들어도 되나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꿀꺽-
음악을 재생시키기 위해 키보드의 스페이스 바에 가져가던 메건의 손이 멈칫했다.
세상이 수백 년에 한 번 나올 천재라고 칭송해 마지않는 남편이 만든 곡이 혹시 전과는 달리 평범하다면?
다른 사람들은 정현이 음악을 듣지 못했던 모습을 알지 못하기에 그렇게 생각할 일이 없겠지만, 메건 자신은 항상 옆에 붙어 있었기에 오히려 더 걱정이 되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남편이야. 내가 믿어야 해.’
한참을 망설이던 손을 다시 움직여 스페이스 바를 눌렀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프로그레스 바가 트랙들을 훑고 노트들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어, 어?”
들려 오는 음악 소리에 메건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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