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78
177화
꿈뻑꿈뻑.
메건의 커다란 눈이 깜박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눈의 크기가 커도 깜박이는 속도는 작은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당연히 예전의 곡보다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박자를 맞춰 주는 드럼이나 중후하게 기본을 잡아 주는 베이스의 소리도 없이 멜로디만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악기인지는 알 수도 없는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는 가냘픈 멜로디.
허공에 떠 있는 멜로디를 손으로 잡아 컴퓨터에 넣는다는 기분으로 작업을 했다.
“…곡이 더 좋았다구요?”
“너무 좋았어요. 죄를 짓는 기분이 들 만큼. 그래서 그 죄를 고백하려 한 거예요.”
이런 걸 고백이라고 말을 하다니. 하마터면 오해할 뻔했잖아.
아니 애초에 왜 시선을 피한 거야.
“나는 또, 뭐라고. 메건은 내 부인이니까 내가 작업하는 걸 들어도 괜찮아요. 그런 걸 왜 그렇게 심각하게 말해요. 오해할 뻔했잖아요.”
“바람을 피웠다고 오해했단 말이죠…? 어떻게 내가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오늘 회사에서 하루 종일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데. 일도 하나도 못 하고 고민만 했단 말이에요.”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이럴 때는 꼭 아서가 보이지 않는다. 평소에는 그렇게 자주 등장하더니…. 젠장.
무슨 말을 해야 이 순간을 넘길 수 있을까…?
“이, 이 곡을 빈 필하고 협업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요?”
“현악 5중주를 교향악단하고 협업하시겠다구요?”
“계약 얼른 치우고 싶어서요.”
“으음….”
메건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오케스트라가 현악 5중주를 하게 된다면 백여 명의 단원들 대부분은 무대에서 빠져야 한다.
교향악단이라는 힘이 빠지게 된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계약 사항에는 꼭 교향곡이어야 한다고 하지는 않았잖아? 다음에 만드는 곡이라고 했었지.
아주 다행이다. 이렇게 고민을 하게 된다면 내가 했던 말은 쉽게 잊혀지겠지.
어쩌다가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을 해서….
에휴. 다 내 업보지.
“아, 아침에 들어 봤다면 서장만 들어 봤겠네요. 뒤에도 거의 다 됐는데 한번 들어 볼래요?”
“정말요? 안 그래도 하루 종일 그 숲속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었는데!”
메건은 벌떡 일어나며 나를 향해 소리를 치듯 말했다.
숲속? 그걸 어떻게 그걸 알았지?
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찬 의문들을 해소할 수는 없었다. 메건이 나를 바라보며 어서 빨리 가자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세워 메건과 함께 작업실로 향했다.
***
아침에 정현의 음악을 듣고 회사에 갔던 메건은 하루 종일 몰래 완성도 되지 않은 곡을 들어 보았다는 죄책감과, 그 뒤에 이어지는 곡을 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뒤섞여 복잡한 마음이었다.
“어서 와요 메건.”
“…다녀왔어요.”
집에 도착해서 현관 앞에 차를 세우고 쉽게 문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 정현이 갑자기 문을 열고 자신을 맞아 주는 것에 당황한 나머지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살면서 가장 오랫동안 얼굴을 마주할 남편에게 죄지은 기분으로 지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미 죄를 지어 버린 느낌이었다.
차마 눈을 마주칠 수 없어 재빠르게 2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으며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실수로 봤다고 해야 하나…? 아냐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아. 사실대로 말해야겠어.’
마음을 굳게 먹고 거실 소파에 누워 있는 정현의 옆으로 다가가 고백했다. 자신이 몰래 완성되지 않은 당신의 곡을 들었노라고.
어렵게 고백했는데, 남편은 별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더니 뒤에 이어지는 부분을 들어 보겠느냐고 물었다.
“아, 아침에 들어 봤다면 서장만 들어 봤겠네요. 뒤에도 거의 다 됐는데 한번 들어 볼래요?”
“정말요? 안 그래도 하루 종일 그 숲속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었는데!”
아침에 한 번 들어 보았을 때 숲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앞에 머물다 현실로 돌아왔던 메건은,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쳐 버렸다.
거실의 자리에서 일어나자 멀뚱히 자신을 쳐다보는 정현의 얼굴이 들어왔지만, 지은 죄가 있다고 여겼기에 차마 정현을 재촉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초원을 걸어 다니는 그 평화로운 기분을 다시 느껴 보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어 정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메건의 가슴속은 한여름에 불어오는 바람이 일렁이는 것만 같이 설레어 왔다. 조금 전에 남편이 했던 바람을 피웠느냐는 말은 조금도 기억나질 않았다.
정현이 이번에 만든 곡은 그만큼 중독성이 있었다.
아직 음악을 듣지도 않았지만, 자신이 초원을 뒤덮은 잔디밭을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멈출 수가 없었다.
메건이 윌리엄 5세의 대관식에 쓰일 곡 작업을 할 때부터 정현의 작업실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지만, 이정도로 설레었던 적은 없었다.
작업용 컴퓨터에 연결된 모니터가 밝아지며 정현이 항상 사용하는 로직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보았을 때보다 길어진 플레이타임이 보였다. 박자는 여전히 80BPM. 화면을 아래로 내려보지는 않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랙의 수도 비슷해 보였고 달라진 것은 길이뿐.
꿀꺽-
가뭄으로 갈라지는 것 같은 목에 침을 삼켜 축여 보지만 좀처럼 편해지지 않았다.
끝없는 갈망을 느껴야만 했다.
한겨울이었지만, 여름날의 향기를 느끼고 싶었다.
정현이 책상 앞의 의자에 앉고 메건 자신은 그 옆에 놓인 스툴에 앉았을 때, 마우스를 움직이는 정현의 손놀림이 슬로모션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왜 이렇게 천천히 움직이는 거지…?’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느낌. 하지만 좀처럼 귓가에 음악이 들려 오지는 않았다.
딸깍-
“아침에 들었던 것과는 조금 다를 거예요.”
“…….”
정현의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랑이는 여름 냄새가 불어왔다.
한겨울 코트를 입고 목도리까지 하며 회사에 다녀온 지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질 않았는데, 따뜻한 햇볕을 느낄 수가 있었다.
땀이 날 정도로 뜨겁지는 않지만 조금은 습한 듯한 여름의 향기가 느껴진다.
산책하듯 잔디 위를 거닐어 언덕을 내려가 숲속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나무들의 사이사이로 떨어지는 햇살이 보였지만, 조금은 서늘해진 듯한 숲속의 오솔길.
그 길을 걸어 작은 연못 앞에 이르렀다.
두 손으로 연못의 물을 떠 마시자 그때까지 느껴졌던 갈증이 씻은 듯 사라지는 이상한 느낌.
그렇게 한참 동안 숲속을 걷고 때로는 쌓여 있는 풀 위에 눕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건…. 메건!”
귓가에 들려 온 정현의 목소리에 메건은 정신을 차렸다.
“네, 네?!”
“침대에 가서 자는 게 어때요?”
“침, 침대요?”
주변을 둘러보자 아무것도 없는 카펫 바닥 위에 누워 있었다.
‘분명 조금 전에 스툴 위에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힐링.
그 숲을 거니는 것은 힐링이었다. 몸과 마음을 모두 치유해 주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메건의 눈에 자신을 걱정하듯 바라보는 정현의 얼굴이 보였다.
***
메건이 음악을 듣다 잠들었다.
바닥에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길래 고개를 돌렸더니, 스툴에 앉아 있던 메건이 카펫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옆으로 몸을 세워 누워 있는 메건의 입가에 흘러내리는 침이 보인다.
깨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살짝 된다. 회사 일이 그렇게 힘들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 침까지 흘리면서 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메건을 흔들어 깨웠는데도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자신이 잠들었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다.
“이 곡…! 너무 좋아요!”
“…자느라 제대로 듣지도 않았잖아요.”
“아니에요. 이 곡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줬기 때문이에요!”
저렇게 예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흘러내린 침이 하얗게 굳어 가는 것이 보인다.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을 하니 괜찮은 것 같기는 한데,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만든 동화의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니까.
“아직 다 만든 것도 아니에요. 악당도 안 나왔고, 악당을 물리치는 부분도 안 넣었는데….”
“악당이요?”
“이거 동화거든요. 동화에는 악당들이 나오잖아요. 아기 돼지 세 마리에는 늑대가 나오고, 백설공주에는 나쁜 여왕이 나오는 것처럼.”
“그냥 이대로 끝내는 게 낫지 않아요…?”
이상하다. 지금까지 메건이 내가 만드는 음악에 무언가 말을 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말은 내가 만드는 음악에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한 적이 없었다는 소리다.
그런 메건이 나에게 음악을 이대로 끝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한다.
“그러면 동화가 아니잖아요. 위기가 없이 그냥 엔딩이 나 버리는데.”
“위기 없는 잔잔한 동화도 많아요. 닥터 수스가 쓴 아이들을 위한 책에는 악당 같은 거 전혀 안 나온다니까요?”
닥터 수스의 책은 영미권 아이들이 글을 배울 때 읽는 책. 거기에는 말장난 같은 단어들의 나열만 있고 위기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지.
아직 글도 제대로 못 읽는 아이들에게 악당을 보여 줄 필요가 없으니까.
악당을 집어넣지 않으면 크게 변주되는 부분이 사라지기에, 음악이 너무 단조롭지 않나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마침 다행이다 싶기는 했다.
악당을 떠올리다 제대로 이미지가 잡히질 않아서 작업하기 전.
“흐음…. 정말 그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네! 확신해요!”
거참. 이렇게 자신의 주장을 자주 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이렇게까지 말하니 믿어 보는 수밖에 없나.
내가 누구의 말을 그리 잘 따르는 사람은 아니지만, 메건이 이러는 것은 처음이라 한 번쯤 숙여 주는 것도 괜찮겠지.
“그래요, 그럼. 슬슬 곡 마무리를 지어야겠네. 전화기가 어디 있더라…?”
“전화기는 왜요?”
“빈 필에 전화해 줘야죠. 곡 완성되면 협연하기로 했는데.”
“아….”
***
“네, 빈 필하모닉 사무총장 페터 반 데르크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정현입니다.]퇴근을 하려고 책상 위를 정리하던 페터는 아무 생각 없이 전화의 수화기를 집어 들었는데, 전화를 건 상대방이 정현이었다.
‘이번에는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조금씩 불안해지는 마음이 목소리에 묻어나지 않도록 다잡아야 했다.
불과 며칠 전에 전화를 해서 이상한 소리를 하던 이정현이었는데, 설마 이번에도 비슷한 말을 한다면 당황하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 다름이 아니라 계약 사항 확인 좀 해 보려고요.]“계약이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페터는 하도 손으로 만지작거려 때가 타서, 이제는 군데군데 얼룩이 져 버린 계약서를 서류함에서 꺼내어 펼쳤다.
“네, 말씀하십시오. 제가 지금 계약서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거 꼭 교향곡일 필요는 없는 거죠?]정현의 말에 계약서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꼭 심포니 오케스트라여야 한다는 말은 적혀 있질 않았다.
“심포니가 아니라도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 곡 작업을 시작하시는 건가요?”
[아뇨, 끝났어요.]며칠 전에 전화를 걸어 동화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던 이정현이었다.
그렇기에 ‘이제 슬슬 작업을 시작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물어보았는데, 끝났다는 대답이 들려와 당황스러웠다.
교향악단이 작곡가들과의 협업 계약을 하는 일도 극히 드문 클래식 판. 신곡이라는 것이 나오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이 클래식계였다.
계약이 없으니 표준 업무 협약이라는 것도 있을 수가 없지만, 일반적인 음악 시장을 생각해 보아도 이런 일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은 분위기나 장르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고 작업에 들어가지 않던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살짝 불신감이 솟았다.
작곡에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예상을 했기에 몇 년이나 기다려 준 것이었는데, 이렇게 며칠 만에 만든 곡을 넘겨줄 거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네? 죄송합니다만, 제가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국제 전화라 통신 상태가 안 좋은가…. 제가 조만간 빈 필하모닉으로 갈게요.]페터는 이번에도 정현이 자신이 할 말만 하고 끊어 버려 통화 종료음이 울리는 수화기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