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79
178화
전화가 온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빈 필하모닉은 혼란에 빠졌다.
계약한 지 2년이나 지나 버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제는 거의 포기하고 있었던 이정현이 곡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이뤄질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던 그 날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에 놀랐고, 이정현이 직접 빈으로 찾아오겠다는 것 역시 의외였다.
콘서트마스터는 연습 중에 직접 사무총장을 찾아와 진위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사무총장님, 이정현 씨가 언제 방문한다는 이야기는 없었나요?”
“…조만간이라고 하던데요.”
확실한 날짜를 정해 두지 않았다는 것에 관계자들은 기대감을 무너뜨리며 확연하게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지만 정현이 빈 필하모닉에 방문한 것은 다음 날. 이렇게 빨리 올 것이라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빠르게 찾아왔다.
“2년 만에 뵙네요.”
“…하하하. 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페터는 갑작스레 방문한 정현에 당황했다. 적어도 출발하기 전에 연락을 줄 것이라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똑똑똑-
벌컥.
“이정현 씨가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그리고 정현이 빈 필하모닉에 방문했다는 소리를 듣고 콘서트마스터와 지휘자인 뢰베까지 찾아와, 좁은 사무총장실은 오랜만에 사람이 가득 들어찼다.
“이번에 만든 곡은 피아노와 2대의 바이올린 그리고 비올라와 첼로로 이루어진 현악 5중주입니다.”
“응? 오케스트라가 아니었나요?”
당연히 심포니 오케스트라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뢰베는 얼굴 가득 의문을 품고 페터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그 대답은 페터가 아닌 정현에게서 나왔다.
“사무총장님께는 오케스트라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아….”
질문을 했던 뢰베가 아닌 콘서트마스터의 표정이 굳어 갔다. 교향악단 100여 명을 대표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5중주라는 말에 당황한 모양.
다섯 명이 연주를 하는 동안 나머지 인원들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뢰베 역시 아쉬움을 말했다.
“흐음…. 개인적으로는 지난번에 만드셨던 교향곡을 기대했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시간적으로는 무리였나 보군요.”
불멸의 악성이라고 불리는 베토벤조차 평생 단 아홉 개의 교향곡만을 남겼다. 하나의 곡을 만드는 것에 수년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이 교향곡이었던 것이다.
1, 2년 만에 쉽게 나올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현악 5중주로 돌아올 것 역시 마찬가지.
“시간은 상관없습니다. 편곡을 하면 교향곡으로도 만들 수 있을 테지만, 5중주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판단한 것뿐이죠.”
사무총장을 맡기 전 페터 역시 연주자였던 시기가 있었기에, 정현이 하는 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악기를 하나 늘린다는 것은 단지 숫자만 늘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화음과 음계 그리고 다른 악기와의 조화를 생각하며 만들어야 하는 게 당연한데, 그것을 별것 아니라고 말을 하는 정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페터는 자신의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말을 아꼈다.
가장 큰 권한을 가진 것은 콘서트마스터. 연주자가 대부분의 것들을 결정하는 것이 전통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사무총장의 역할은 일종의 매니저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경우에는 상임 지휘자가 연주자를 대표하는 역할을 맡지만, 빈 필하모닉은 상황이 달랐다.
정현이 계약을 하고 난 2년 사이에 연주자들의 투표로 새롭게 선임된 콘서트마스터 존은 한참 동안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일단 악보를 보고 실제 연주를 해 본 뒤에 판단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시죠. 악보는 여기 있습니다. 가상 악기로 만든 음원이 있는데 혹시 들어 보실 건가요?”
정현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적이더니 작은 USB 드라이브를 하나 꺼내 테이블에 올린 뒤 말을 이었다.
“저는 악보를 먼저 쓰지 않기 때문에, 가상 악기를 사용해 디지털 음원을 먼저 만들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수백 년 전부터 이어 온 전통을 21세기인 지금까지 고수하는 빈 필하모닉과 완벽하게 대치되는 방법을 사용하는 이정현.
테이블에 올려진 USB 드라이브를 바라보는 페터와 뢰베, 그리고 존의 표정이 조금 굳어 가기 시작했다.
“저도 당연히 실제 연주를 더 좋아합니다만, 작곡은 가상 악기가 훨씬 편하거든요.”
“…….”
빈 필하모닉의 관계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가상 악기로 인해 음악계가 꽤 움츠러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다지 좋은 인식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정현은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가지고 온 자신의 랩톱을 꺼내 USB를 연결했다.
정현의 손이 움직여 키보드를 누르자 가벼운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 왔고, 페터의 기억은 끊어졌다.
***
계약을 완료하기 위해 악보만 가져오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음원을 USB로 옮겨 왔다.
최근에는 클래식 작곡을 가르치는 수많은 학교에서도 디지털 작곡 프로그램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웬걸. 빈 필하모닉의 관계자 세 명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이럴 때는 일단 틀어 보고 시작하자.
“들어 보시면 연주하실 때 참고는 될 겁니다.”
나는 재빨리 손을 움직여 스페이스 바를 눌렀다.
다른 현악 5중주들이 콘트라베이스나 첼로로 저음부를 잡고 시작하는 것과는 달리, 바이올린의 가벼운 음으로 시작하는 도입부.
내가 만든 동화의 시작.
거의 모든 동화가 그렇듯 밝은 분위기에서 주인공이 기분 좋게 걸어가는 모습을 표현했다.
“어때요, 가상 악기로 들어 봐도 꽤 괜찮죠?”
모니터에서 눈을 돌려 페터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자, 그는 눈을 감고 입을 벌린 채 잠들어 있었다.
페터뿐만이 아니었다. 뢰베와 콘서트마스터도 마찬가지.
뭐야, 왜 이래?
혹시나 테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페터의 코밑에 손을 대 보았지만, 숨은 잘 쉬고 있었다.
“컥컥-!”
“드르렁~”
소파 위에 쓰러진 듯 잠들어 있는 세 명을 바라보며 가스라도 누출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금세 생각을 바꿔야 했다.
나는 멀쩡했으니까.
음원 공급 계약이라는 것은 받아들이는 쪽이 오케이를 해야 계약이 완료되는 것이기에, 계약을 한 빈 필하모닉의 대표인 사무총장의 승인이 필요했다.
플레이타임이 아직 10분이 넘게 남아 있는데, 이걸 들어야 결정을 할 것 아닌가.
만약 이 자리에서 계약 완료 사인을 받지 못한다면, 나는 다른 곡을 만들어야 한다.
고민이 됐다. 깨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메건이 잠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많이 피곤했나 싶었기에 기왕 잘 거면 침대에서 자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세 명이 한꺼번에 잠든 것에는 뭔가 이유가 있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혹시 내 음악을 듣고 잠이 든 건가?
수면제 못지않은 성능을 가진 즉효성 수면 음악. 멋지다. 그런데 이런 곡을 발표해도 되는 건가?
누가 운전할 때 듣기라도 하면 사고 유발 음악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나중에는 보험사에서 소송을 걸지도 모른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작은 일이 아니구나 이거.
내가 한참 동안 고민을 하던 중에 음악이 끝났지만, 내 앞의 세 명은 여전히 잠들어 있다.
위험하다. 혹시 범죄자들이 이 노래를 악용할 수도 있잖아.
도둑질을 하기 위해 집 안에 작은 스피커를 넣어서 음악을 틀고 집 안 사람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물건들을 훔쳐 나오는 장면이 떠오른다.
안 돼. 그럴 수는 없지. 아무리 계약을 빨리 끝내고 싶다고 하더라도, 이런 위험한 곡을 넘길 수는 없다.
나는 페터에게 다가가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사무총장님! 일어나세요!”
“…숲! 숲속에! 응? 제가 언제 잠을….”
“곡이 시작하자마자 잠드시던데요.”
“요즘에 스트레스가 쌓여서 잠을 제대로 못 잤었는데….”
음악을 만들 때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 기본이다. 그 이미지에 맞춰서 음악이 나오니까. 분위기나 상황 설정 같은 것들을 모두 음악에 맞춰서 만든다.
이번 곡은 동화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언덕에 살던 아이가 숲속으로 모험을 떠나는 이미지를 상상했었다. 물론 모험하는 파트는 메건의 만류로 넣을 수 없었지만.
숲이라…. 메건도 같은 소리를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숲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가?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애당초 나는 며칠 전에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기억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사람이다.
당당하게 말할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그걸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다고?
“이 곡은 보류하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네, 네? 왜 보류를 합니까? 이 곡은 기존에 존재하던 곡들과는 결이 다른 곡입니다.”
“운전하는 사람이 음악을 듣고 잠드는 장면을 생각해 보세요. 저는 교통사고 유발자가 되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렇지만, 이런 곡이 있다면 불면증 환자들에게는 아주 즉효 약이 될 텐데요! 혁명입니다. 아시잖습니까 수면제와 같은 약들이 얼마나 몸에 좋지 않은지.”
나 역시도 불면증을 겪어 봤기에 그 괴로움을 잘 안다. 하루에 한 시간도 잠들 수 없는 그 괴로움은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겠지.
아주 심한 경우에는 수면제를 처방해 강제로 잠잘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렇지만 소수의 불면증 환자들을 위해서 많은 운전자들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 수는 없다. 나에게 손해 배상이라는 커다란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르니까.
나는 뢰베와 콘서트마스터도 깨웠다.
“…음악이 들려 오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잠든 순간조차 알지 못했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숲에 들어서는 순간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는 도무지….”
두 명의 고백에 가까운 경험담. 마치 임사 체험이나 최면을 경험한 것만 같은 진지한 말에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그 덕에 빠르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 곡은 발표되어서는 안 된다.
만들었던 시간이 아깝기는 하지만, 이로 인해 내가 입을 손해를 생각하면 지금 바로 봉인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보를 만들자마자 빈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지만, 돌아가서 다른 곡을 떠올려야겠다. 그게 맞는 것 같아.
“처음에 제 와이프 메건이 음악을 듣다 잠들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피곤해서 그랬나보다 싶었는데 말이죠. 여러분이 잠드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이 곡은 위험합니다.”
“끄응…. 부정적인 면만 바라보면 위험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인 면을 생각해 보세요.”
“맞아요. 스트레스만 가득한 현대사회에 힐링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짧은 시간 동안 깜박 잠이 들었을 뿐인데, 피로가 싹 가시는 걸 보면 말입니다.”
처음에는 현악 5중주라는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불편한 듯한 표정을 보이던 세 명은 음악을 듣고 난 뒤, 발표를 하지 않겠다는 나를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리기 시작했다.
이런 장면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데….
“제가 깊게 생각해 봤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말리고 있을 때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페터는 진지한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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