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81
180화
“아이를 재우려 동화책을 읽어 주는 모습을 생각하다 이런 곡이 나왔으면, 놀러 간다거나 맛있는 걸 먹어서 행복하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고 만드는 거죠!”
“…….”
“…행복하고 즐거워지는 곡은 별로인가요?”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한다고 행복하고 즐겁게 만드는 곡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이런 곡이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르는데 메건은 마치 내가 그런 생각만 하면, 도깨비방망이에서 보물이 나오듯 뚝딱하면 나올 거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딴지를 걸 수도 없는 게, 너무나도 해맑은 표정으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죠! 누가 만든 건데요!”
너무나도 맹목적인 믿음.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억지로라도 딴지를 걸어야 했다. 메건이 파괴 전차가 되어 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이 곡이 모든 사람을 재운다고 볼 수도 없잖아요. 특정한 조건이 있어야 적용이 되는 걸 수도 있는데….”
“그러면 조금 더 실험을 해 보죠.”
메건의 실험 개요는 단순했다. 아는 사람을 부르고 아무런 설명 없이 음악을 틀어 보고, 만약에 잠들면 깨워서 설명을 해 준 뒤에 다시 틀어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실험을 피시험자의 동의 없이 실행해도 되는 건가…?
이러다 나중에 쇠고랑 차는 것 아니냐고!
***
에릭은 오랜만에 영국에 돌아와서 조금 들떠 있었다.
자신이 살던 보육원을 자신의 돈으로 좋게 확장 공사를 하는 계약을 맺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삐걱-
보육원에 들어가는 대문에 손을 대자 녹이 슬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에릭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지만, 정겹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소리가 보육원의 시설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알려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에릭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차며 대문을 밀어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과 연결되어 있는 보육원의 시설은 오래된 성당만큼이나 낡아 있었고, 그것을 눈으로도 확연히 알아볼 수 있었다.
“어? 에릭 형아다!”
“에릭 형아!”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와 에릭에게 안겨 왔다.
“어이쿠. 너희 너무 많이 큰 것 아니야?”
“형이 너무 늦게 온 거야!”
미국에서 바삐 살며 영국에 돌아올 시간도 없었고,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여유 있게 보육원에 방문할 수 없었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미안, 미안. 너무 바빴거든.”
몇 년 만에 돌아온 집.
보육원에서 머물렀어야 하는 나이에 나가게 되어 아직도 자신의 집처럼 여겨지는 에릭이었다.
매일 부대끼며 살던 아이들도 성당의 신부님이나 수녀님들도 자신의 가족처럼 느껴졌다.
“오늘부터 여기를 더 좋게 만드는 공사를 시작할 거야.”
“형아가 더 좋게 만들어 주는 거야?”
“하하하. 직접 하는 건 아니고. 전문가들을 불러야지.”
오랜만에 만나서 할 이야기도 많은 아이들과 즐겁게 이야기하는 에릭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직접 씻겨 주기까지 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뛰어놀았고, 몇몇은 낯을 가리며 다가오기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에릭이 보육원의 전경을 바라보며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를 고민하던 그때였다.
“에릭, 사장님께 전화 왔습니다.”
전담 매니저인 마리가 전화기를 들고 보육원 안으로 들어왔다.
“사장님은 마리잖아요.”
“그건 그저 명목상이죠. 저는 에릭의 매니저인데요.”
마리의 고집은 알아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에릭은 전화를 받아들었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너 지금 여기 올 수 있어?]오랜만에 통화를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지내느냐는 말도 없이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오라고 말하는 정현.
그렇지만 에릭은 이런 정현의 말투에 이미 수년간 길들여져 있었기에, 크게 기분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거기가 어딘데요, 사부님…?”
[런던.]“에휴, 알았어요. 여기 일 마무리 짓고 런던으로 갈게요. 저녁에는 도착할 거예요.”
***
“에릭도 저녁에 온대요.”
“그러면 에릭하고 마커스, 그리고 우리 할아버님과 리처드 경으로 확정인가요?”
“그렇겠죠?”
“아서에게 말해서 다과를 준비해 달라고 해야겠어요.”
에릭은 프레스턴에 있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런던에 있었기에 부르기가 어렵지 않았다.
순식간에 실험장이 다과회가 되어 버릴 것만 같았지만, 메건을 말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진짜 실험실처럼 비커와 플라스크들을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호들갑을 떨며 아서에게 달려가는 메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평소처럼 거실 소파에 엎어졌다.
아직 점심시간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허기가 지는 것만 같았다.
“어후, 스트레스!”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뛰쳐나왔던 한국이었는데, 영국에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아이러니함.
이런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방 뛰며 즐거워하는 메건을 바라보며, 솔직히 나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이런 곡을 또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으니까.
우연하게 이런 곡을 만들게 된 건 아닐까?
영감이라는 것이 느껴지면 그제서야 움직여지는 다른 사람들과 이제는 크게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만든 곡도 제랄딘을 TV에서 보지 못했다면, 아마 떠오르지 않았을 테니.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평소처럼 머리를 소파 구석에 끼워 넣고 있던 그때 메건이 돌아왔다.
“점심 드셔야죠!”
“벌써 점심시간이에요?”
평소에는 항상 아서가 찾아왔었는데, 한 번 쓰러진 뒤에는 더 이상 찾아오질 않았다. 뭐 고작 며칠 사이니까 크게 겁을 먹거나 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조금 서운하네….
“메뉴는요?”
“크럼펫일 거예요. 오늘 점심은 조금 가볍게 먹고 저녁에 조금 거하게 차려 달라고 했거든요.”
크럼펫은 영국 전통 음식. 구멍이 송송 난 팬케이크 같은 것에 버터를 올려 오븐에 익혀 나오면 버터 맛이 구멍 안에 배어 들어가서 꽤 맛이 있어 자주 먹는 편이었다. 게다가 가격도 싸고.
뭐 지금이야 식재료를 사는 데에 쓰이는 돈을 걱정할 만큼 가난한 어릴 때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그런 것이 생활에 배어 있어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데 나는 벌기만 하고 쓰지를 않네….
평일 점심을 메건이랑 같이 먹는 게 엄청 오랜만인 것 같았다. 주말 이틀은 보통 같이 먹는 편인데 오늘은 평일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까 오늘 평일인데 회사는 안 가는 거예요?”
“이 바닥이 그렇잖아요. 출근을 한다고 작업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의뢰가 들어오기 전에는 아무 일도 없는 거니까.”
애매하게 대답하는 메건. 혹시 회사에서 짤린 건가…?
더 물어보면 나에게 안 좋은 이야기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까 싶은 마음에 나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보기에는 무척이나 밝은 표정인 메건이었지만, 혹시나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꽤 맑은 날이라 정원의 테이블 앉아 조금 기다리자 아서가 아닌 다른 사용인이 크럼펫 몇 조각과 밀크티를 가져다주었다.
“아서는요?”
“조금 전에 병원에 가셨습니다, 이정현 경.”
“병원이요?”
“며칠 전에 이정현 경께서 작업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시다가 정신을 잃으셨다고….”
어쩐지 안 보인다 싶었다.
중세 시대에나 볼 법한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사용인의 말에 따르면, 아서는 정신을 잃은 것으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병원에 갈 거면 바로 갔어야지 왜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가는 거야.
테이블에 잔뜩 놓인 크럼펫을 자신의 접시에 옮겨 담는 메건을 보며, 나도 접시에 세 조각을 올려놓았다.
이렇게 참 평화로운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나에게도 있었지.
쿠다다당-
점심을 먹고 대략 여섯 일곱 시간이 지난 지금, 내 눈앞에는 아비규환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고 거실로 옮겨 와 가벼운 다과를 먹으며 음악을 들려 주는 실험을 하자고 했던 메건.
그녀의 주장을 행동으로 옮긴 결과는 처참했다.
“…내가 그러게 이런 실험하지 말자고 했잖아요….”
에릭과 마커스, 알버트와 리처드가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메건이었다.
실험을 해 보자고 말을 꺼낸 사람이 가장 먼저 뻗었다.
일단 오디오를 꺼야 한다.
한 가지 큰 문제가 있다면, 거실에 설치되어 있는 오디오는 메건이 자신의 랩톱에 블루투스로 연결을 해 놓은 상태라는 것.
그리고 그 랩톱은 현재 화면 보호기가 펼쳐져 있었다.
“대체 비밀번호가 뭐냐고…!”
키보드를 한참이나 두드렸지만, 화면 보호기는 화면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평소에 비밀 번호를 엄격하게 걸어놓는 나였기에 열리지 않는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만, 지금은 긴급 상황. 음악을 끄기 위해서는 컴퓨터의 화면 보호기를 종료해야 했다.
그냥 컴퓨터를 꺼야 하나? 강제로 종료하면 하드디스크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벌컥-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정현 겨….”
털썩- 쿵-
아서가 두 번째 쓰러졌다.
윽, 이번에는 푹신한 카펫 위가 아니라 대리석이라 조금 아플 것 같은데….
아, 몰라. 일단 전원을 끄자.
랩톱의 전원 버튼을 오랫동안 누르고 있자 음악은 금세 멈췄다.
“저기, 아무도 없나요~?!”
크게 소리를 쳐 보았지만, 지금은 아서를 제외한 나머지 사용인들이 모두 퇴근을 한 시간.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진짜 어떻게 해야 하냐 이걸….
하나하나 옮겨야 하나? 아니면 어깨를 흔들어서 깨울까?
탁탁탁탁-
재빠르게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려 왔다. 아, 경호원이 있었구나.
집에서 상주하는 두 명의 경호원.
“무슨 일입니까, 헉! HQ, HQ 여기 사람이….”
거실의 입구에 쓰러져 있는 아서를 발견하고, 지금 당장이라도 본부에 증원 요청을 할 것 같이 호들갑 떠는 경호원에게 손을 내밀어 멈추게 한 뒤 나는 말을 이었다.
“다들 제 음악을 듣고 잠들었어요. 며칠 전에 아서가 그랬던 것처럼.”
“아….”
나는 일단 테이블에 놓여 있는 전화로 영국의 응급 구조 전화인 999 에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안녕하십니까, NHS 응급 구조 센터입니다.]“아, 안녕하세요. 제가 이런 것에 처음 전화를 걸어 봐서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사람이 쓰러졌어요.”
[지금 전화 거신 곳이 어디죠?]“여기가…”
집의 위치를 설명하자 구조 요원들이 곧 도착할 것이라는 이야기만 남기고 전화는 끊겼다.
잠든 거긴 하지만 쓰러졌다는 것이 거짓말은 아니니까 괜찮겠지?
테이블 위에 있는 비싼 과자들이 너무 아깝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 먹고 하자고 하는 건데….
찌이이이이-
대략 5분 정도가 지나자 대문에서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 와 인터컴으로 문을 열어 주었다.
그 후 약 1분 뒤.
나는 미리 열어 놓은 현관으로 들어오는 구조대원들을 맞이했다.
“이정현 경! 환자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복도를 따라 쭉 걸어가시면 됩니다. 다섯 명이에요.”
메건은 2층의 침대에 옮겨 놓았으니, 남아 있는 것은 다섯 명.
“다섯 명이요? 테러입니까?”
“테러요? 아뇨 테러 같은 건 아니에요. 자세한 이야기는 저기 계시는 경호원님께 물어보시겠어요?”
함께 거실에 있었다면 경호원들도 모두 잠들었을 텐데, 다행히 집에서는 자신들의 방에서 대기하다 가끔씩 순찰을 돌러 나갔기에 멀쩡했다.
경호원들은 응급 구조원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음악에 대한 것만 제외하고.
적어도 이런 음악을 만들고 사용한 죄로 쇠고랑은 차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봉인하고 싶었던 내 마음과 달리, 이 음악은 생각보다 널리 쓰이게 되었다. 젠장.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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