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82
181화
“그 곡을 구매하고 싶다구요?”
알버트가 병원에 가 있던 사이에 비서인 필립이 집으로 찾아왔다.
“네, 그렇습니다. 알버트 경께서 말씀하시기를 혁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무기….”
“물론 이정현 경께서 그런 것을 의도하신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테러리스트를 제압할 수 있는 획기적인 무기라고 생각됩니다.”
“…….”
솔직히 말해서 기분이 나빴다.
아이들에게 들려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는데, 그걸 테러리스트 제압용으로 쓰겠다고 말을 하면 어느 누가 좋아할까.
한순간에 나의 동화가 테이저건으로 탈바꿈을 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알버트가 병원에 실려 간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상황. 알버트에게 전화를 해서 당신이 시킨 것이 맞느냐고 물어보기에도 살짝 애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병원에서 전화를 받으면 각종 의료용 전자 장비들이 오작동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으니까.
필립은 특유의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의 말을 들은 뒤에 바라봐서인지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진짜 나쁜 범죄자를 잡는 데만 쓰시는 것 맞죠…?”
“물론입니다. 정보부에서 다른 곳에 사용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믿겠습니다.”
사실 정보부라는 곳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경찰이나 검찰도 아니고 어떻게 민간인이 정보부의 일을 파악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알버트나 장인어른인 다니엘의 경우에는 정보부의 관계자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폐기하는 것을 제외하면 이것이 최선인 것만 같았다.
나는 필립이 내민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백만 파운드라는 큰돈이 곡비로 주어졌지만, 그 계약서에 쓰여 있는 계약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략적 무기 인도 계약서’
조금 전 필립의 말에서 무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 계약서로 그것을 확인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현대사회에서 국가 간의 전쟁이 일어나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전략 병기로 사용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감정의 변화를 보여 주어서는 안 되는 앵커가 흥분을 하며, 생명을 해치지 않고 테러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어 버렸다며 한참 동안이나 떠들어 댔다.
“저걸 진짜 실전에 써 버리네….”
“그래도 할아버님이 좋은 곳에만 사용한다고 약속하셨으니까 지켜 주실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제 생산적인 이야기를 해 보죠.”
TV 리모컨을 손에 들고 전원을 꺼 버린 메건이 몸을 내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생산적이라뇨?”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음악을 만드신다면, 영화나 연극도 한층 다채로워질 거란 말이죠.”
그럴싸한 말이었다. 내가 떠올리고 싶은 대로 떠올린다고 그게 들려 올까 하는 게 문제지.
애초에 나는 정보부가 가져간 음악도 제랄딘이 아니었으면 떠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뭐, 떠오르기만 한다면 말이죠.”
“제 생각은 달라요.”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멜로디가 문제가 아니라 만드실 때 떠올리는 이미지가 겹쳐지는 느낌이라는 말이죠. 주 멜로디인 바이올린과 피아노만 있을 때는 제가 잠들지 않았었거든요.”
메건은 내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내 컴퓨터를 조작해서 음악을 들어 봤던 걸 말했다.
그게 진짜 위험한 일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혹시나 조금 더 완성된 상태였다면, 아서처럼 쓰러지며 어딘가에 부딪힐 수도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부딪힌 부위가 좋지 않다면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테고.
어쨌거나 흥미로운 이야기다. 멜로디만으로 잠들지 않았었다는 건, 음악이 완성체가 되어야만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일 테니까.
은근히 만화에 나오는 미친 과학자처럼 이상한 실험정신이 강하단 말이지….
“알았어요. 해 볼 테니까. 배경 음악이 없는 영화를 좀 구해 봐 주세요.”
“꺄아아아아~! 정말이죠?”
메건에게 돌고래 성대가 숨겨져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갑자기 질러 댄 비명에 진짜 아서가 놀라게 하는 것보다도 더 놀라 버렸다.
이후 며칠 동안 나는 음악이 전혀 나오질 않는 영화를 보아야만 했다.
배경 음악이 없는 영화를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는데, 메건이 영화 음악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짤린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아직 일하는 중.
“흐아아암.”
그나저나 배경 음악이 없으니 굉장히 지루하네.
효과음이나 대사까지 없었으면 잠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팝콘이랑 음료수라도 먹으면서 봐야지 이거….
소파에서 일어나 거실 밖의 복도를 걸으며 부엌으로 향했다. 이 집은 이게 불편하다.
양재동 집은 거실에서 부엌까지 열 걸음도 채 되지 않는데, 이 집은 거실에서 부엌까지 수십 미터는 걸어가야 했다.
그런데 평소라면 몇 명이라도 마주쳐야 하는 복도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서, 어딨어요? 아서!”
“찾으셨습니까.”
등 뒤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에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자 어디에서 나타난 건지 아서가 등장했다.
며칠 전에 머리를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는 바람에 아직 커다란 반창고를 붙여 놓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어디 갔어요?”
“아…. 사모님께서 이정현 경이 작업하실 때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을 하셔서, 모두 일찍 퇴근했습니다.”
점심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퇴근을 하는 직장이라니 얼마나 좋은 직장인가.
물론 그 안에 있는 나에게는 영 좋은 소리가 아니었지만.
“혹시 팝콘 어딨는지 알아요?”
“거실에 계시면 제가 만들어다 드리겠습니다. 더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콜라! 제로슈가 말고 설탕 꽉 든 걸로….”
“설탕은 몸에 좋지 않아, 집에 있는 것은 모두 제로 슈가입니다만…?”
부엌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팝콘 하나 튀길 수가 없어 사용인에게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다.
게다가 아서는 내 몸에 대한 걱정을 너무 심하게 하는 편이라, 콜라를 원할 때마다 무설탕을 가져다주었다.
“어쩔 수 없죠…. 다음에 장 보러 갈 때는 꼭 보통 콜라로 사다 주세요!”
“알겠습니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또 무설탕을 사 올 거다.
설탕이 몸에 안 좋고, 소금이 몸에 안 좋고. 결국 한국에서 어머니가 만들어주는 음식과도 크게 차이가 나질 않았다. 조미료도 양념도 약한 밋밋하고 담백한 맛의 음식들.
간혹 잼 같은 건 꽤 괜찮은 편이었지만, 하루 종일 잼만 먹을 수는 없는 노릇.
에휴. 돈이 많아 봤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잖아.
회사 몇 개를 가지고 있으면 뭐 하나. 콜라도 하나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데.
착잡한 마음을 품고 다시 거실로 돌아와 멈춰 두었던 영화를 틀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영화는 일종의 스릴러 영화로 범죄자를 추적하는 경찰에 대한 이야기.
영화의 내용이 조금 폭력적이기는 하지만, 특출나게 재미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미국보다 투자금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영국에서는 블록버스터 영화들보다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많이 만드는 편이었는데, 이 영화는 꽤나 잘 만든 블록버스터였다.
“오히려 배경 음악이 없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배경 음악이 들리지 않으니 영화의 세세한 부분이 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메건이 나에게 기대했던 것은 영화를 특별한 무언가로 만들어 줄 만한 배경 음악이었지만, 영화를 보면 볼수록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았다.
어쩌면 떠올리려 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냥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귀로 들려 오는 것을 듣기만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음….”
“뭐가 잘 안 되십니까?”
고민을 하던 그때 팝콘과 콜라를 가져온 아서가 들어왔다.
역시나 팝콘에도 버터를 듬뿍 넣지 않아 색이 하얀색 강냉이 같은 느낌.
“어떤 음악을 넣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합.”
“뭐, 제가 음악을 만드는 작업을 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영감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떠오를 수는 없지요.”
그런가? 쉽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었나?
나는 그 말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 음악이라는 것은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떠오르는 그런 것이었으니까.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흠…. 확실히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합.”
영화는 멈춰 놓았지만 그릇에 담긴 팝콘은 서서히 줄어나갔다.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라….
나는 멈춰 놓은 영화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하루 종일 개고생하는 경찰. 내가 만약에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면 나는 저런 고생만 하는 경찰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될 수만 있다면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고 싶다.
“제가 경찰이었던 적이 없어서 몰입이 잘 안 되네요. 다른 걸로 바꿔 봐야겠어요.”
“좋은 생각이십니다. 아무래도 본인의 경험과 가까울수록 떠올리기가 쉽지 않겠습니까.”
나는 아서의 조언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메건이 가져다 놓은 블루레이 디스크들을 살피며 괜찮아 보이는 제목이 없나 찾아보았다.
아직 영화가 완성되지 않아 개봉도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디스크에는 그림이 인쇄되어 있지 않은 채 글씨만 쓰여 있다.
아웃브레이크. 이건 아무래도 뭔가 깨지고 부서지는 블록버스터나 범죄물 같고.
포쉬 레이디. 딱 영국스러운 제목이다. 고급스럽다는 뜻을 갖는 포쉬에 레이디를 붙인 제목. 이걸로 가 볼까.
블루레이 플레이어의 버튼을 눌러 들어 있던 디스크를 꺼내고 포쉬 레이디라는 제목이 쓰여 있는 디스크를 넣었다.
아직 제대로 삽입곡이 들어가 있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영화 제작사의 로고송은 잘 들리는구만.
어두운 화면에서 매혹적인 목소리가 들려 오더니 침대의 다리가 보였다.
카펫 위에 놓인 철제 프레임 침대. 그 아래로 보이는 다리의 주인이 여자의 목소리가 물어보는 사람이겠지.
다리의 주인은 안절부절못하듯 왼쪽과 오른쪽을 왔다 갔다 하더니 난데없이 두 발이 사라졌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흔들리는 침대.
이거 19금이었냐…?
영화가 시작한 지 3분 만에 이런 외설스러운 연출을 보여 주다니. 이건 다른 의미로 대단하구만….
“어흠, 어흠. 저는 나가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아서. 아서~!”
내가 부르는 것도 무시하고 아서는 거실에서 사라졌다.
아서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에도 TV에서는 외설스러운 소리들이 들려 왔다.
이런 장면을 아서에게 보이다니.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 것만 같은 기분….
그런데 그때, 귓가에 야릇한 멜로디가 들려 왔다.
나는 다시 TV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얼마나 격렬하게 움직이는지 아래층의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야 할 영화의 배경 음악이 내 귓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 왜! 왜 이런 영화여야 하냐고!”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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