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83
182화
TV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 소리와는 별개로 멀리서 들려 오는 것 같은 멜로디가 다가왔다.
나는 조금 허탈한 마음이었다.
오늘만 하더라도 영화를 서너 편은 본 것 같은데, 이렇게 멜로디가 떠올랐던 영화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평소에 보지도 않던 성인 영화에 이렇게 떠오른다고?
차라리 이 영화를 틀기 전에 보았던 블록버스터 영화가 낫지 않았을까.
대체 이 영화에서 나오는 누가 포쉬하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녀왔….”
등 뒤에서 익숙한 메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설마 벌써 퇴근할 시간이 된 건가?
나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더니 메건의 표정이 가볍게 굳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오, 오해하지 마요, 메건의 말대로 이것저것 보고 있을 뿐이니까.”
“오해 안 해요. 이런 영화가 취향이었어요?”
부부 사이라서 그런 건지 메건은 조금 전에 조용히 사라진 아서와는 다르게, 소파의 옆자리에 와서 앉으며 물었다.
취향이라니. 로맨틱 코미디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가볍게 집어 들었던 영화인데, 게다가 이 영화는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겠다며 몰입하지 않았는데도 바로 멜로디가 들렸다고.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이렇게 말을 하면 아마 나를 변태처럼 보지 않을까?
“어흠…. 취향이라기보다는 제목이 괜찮은 것 같아서 틀어 봤던 거예요.”
“하하하. 그나저나 어때요 오늘 밤?”
메건이 먼저 나를 유혹하다니. 이런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그렇지만 일단 이쪽보다는 영화에서 들려 온 멜로디에 대한 걸 이야기하는 것이 먼저다.
“오늘 영화를 네 편인가 봤는데 그중에서 음악이 떠오른 영화가 이것뿐이었어요.”
“동화 다음에는 성인 영화라…. 꽤 먼 거리를 단숨에 뛰어올랐군요.”
“하하하. 블록버스터와 스릴러 영화들을 먼저 봤었는데, 그 영화들에서는 전혀 떠오르지 않더라구요.”
“더 원하면 말씀만 하세요. 제가 가져다드릴게요.”
더 가져다준다고 말하며 활짝 웃는 메건의 얼굴.
이제는 장난인지 아닌지 거의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기에, 나를 놀리고 있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평생 에로 영화만 보여 줄 셈인가?
“아직 판타지 같은 건 시도도 안 해 봤다구요. 영화 길이가 대부분 두 시간은 되니까. 하루에 볼 수 있는 양도 정해져 있고. 그렇지만 한가지 알아낸 건 있어요.”
“뭘 알아내셨는데요?”
“들리는 영화는 거의 도입부부터 들려 와요. 도입부에 집중할 수 있는 영화라면 바로 알 수 있을 거예요.”
“아하, 성인 영화에는 바로 집중이 되셨다는 거군요. 미안해요. 제가 요즘에 너무 바빠서….”
아니, 그런 게 아니라니까!
메건은 아무래도 나를 놀릴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평소에 이런 성격이 아닌 것 같았는데….
아닌가? 평소에도 이런 성격이었는데, 한국에서는 내가 바쁘게 회사를 다니느라 이럴 수가 없었을 뿐이었나.
그다음에는 요양하느라 제주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였으니, 놀릴 수가 없었던 것뿐일지도.
어쩌면 지금 보여 주는 것이 메건의 본래 성격인지도 모른다.
젠장. 초등학교 때 화장실에 가지 못해 바지에 실례를 한 수원이처럼, 평생 놀림거리가 될 수는 없다고.
“이 영화에서 떠오른 음악으로 일단 만들어 볼까요? 어떻게 생각해요?”
“음…. 자기가 만들고 싶은 거라면 나는 찬성이에요. 하고 싶은 걸로 하세요. 영화에 무조건 삽입해야 한다 라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나를 놀리던 표정에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 메건의 얼굴. 다행히도 그녀의 놀림이 더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서는 이런 내 상황도 모르고 그냥 도망가 버리고….”
“네? 아서가 있을 때 이 영화를 켜신 거예요?”
메건은 그 상황을 상상한 것인지 한참 동안이나 깔깔대며 웃었다.
나는 우리 집이 다른 집과 붙어 있지 않다는 것에 감사했다. 거실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 소리에 분명 다른 집에서 항의를 했을 테니까.
일단 만들어나 보자. 메건의 말대로 영화에 넣고 마는 것은 그때 가서 선택하면 되는 거니까.
***
곡을 만드는 것에 긴 시간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다만 악기를 선택하는 것에 조금 망설일 수밖에 없었는데, 판타지나 역사극 같은 것이 아니라서 내가 주로 사용하는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것이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야한 영화에 배경 음악이 보통 들어가던가…?
다른 야한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애초에 친구들이 포르노를 볼 시간에 나는 콩쿠르 때문에 비행기에 있었으니 말이지.
사춘기 때 그런 걸 많이 봐뒀어야 지금 상황에서 도움이 될 텐데….
어릴 때 일을 지금 생각해 봐야 뭐 하겠어. 바꿀 수도 없는 걸 지금 와서 떠올려 봐야 죽도 밥도 되질 않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이것 역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오는 버릇이 되어 놔서 쉽게 고칠 수가 없다.
가끔은 꼬리를 무는 생각이 주제를 벗어나 삼천포에 빠지더라도 그걸 다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악기를 고르는 일.
영화에 배경 음악이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그런 것이 중요한 건 아니지.
지금 중요한 것은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다. 그리고 그 음악이 지난번의 동화처럼 듣는 사람에게 어떤 작용을 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급하다.
나는 일단 기억나는 멜로디를 잡아서 로직에 넣어보았다.
트랙을 만들기만 하면 악기를 바꾸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하니까, 평소에 만들던 대로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악기를 지정하지 않으면 기본 악기인 피아노가 할당된다. 귀에 들려 온 소리대로 트랙을 만드는 것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똑똑-
“들어오세요!”
웬일로 이 집에서 노크를 하는 사람이 생겼나 싶었는데, 아서가 방에 들어오고 싶지 않은 표정으로 작업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이정현 경. 식사 시간입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요?”
자리에서 일어나 아서를 따라 식당으로 갔다.
“원래대로라면 제가 작업실에 들어가서 이정현 경을 살펴야 하는 것이 맞는데….”
“괜찮아요. 이제는 무리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제가 너무 집중할지도 모르니까 지금처럼 간간이 들여다봐 주세요.”
“험험.”
머리에 여전히 반창고를 붙이고 헛기침을 하는 아서의 모습에서, 작업실에 들어오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제는 내가 쓰러질 정도로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변했으니까.
예전처럼 생각만 하더라도 음악 소리가 들려 오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집중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메건이나 다른 가족들이 나를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으니, 보험을 드는 기분으로 아서에게 말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서 곡을 만드는 일로 돌아갔다.
멜로디에 어울리는 악기를 찾는 것보다 일단은 필요한 화음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새로운 트랙을 만들고 거기에 조금씩 화음을 쌓아 나갔다.
***
“영 불편하네….”
완성이 된 것은 메건이 퇴근할 무렵이었다.
물론 이렇게 하루 종일 매달려서 만들 만큼의 볼륨을 가진 곡은 아니었는데, 악기를 고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렇게 고른 악기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가 쌈박한 악기가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영화에 어울릴 만한 악기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난번 그 곡처럼 현악 5중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선택일 수 있지만, 현대 배경으로 하는 음악에 들어가는 악기였기 때문이었다.
간혹 활을 바이올린처럼 사용한다던가 하는 영화 음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떠올려 봐도, 그 사람들은 기상천외한 것들을 모두 악기로 사용했다.
아마 그들도 알고 있던 거겠지. 일반적인 악기가 요즘에 나오는 영화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웹사이트에 들어가 로직용 가상 악기들을 찾아보았다.
가상 악기 수만 하더라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종류가 있었지만, 수백 개가 넘는 가상 악기들을 모두 들어 보고 구매를 하는 건 무리.
그냥 장바구니에 쓸어 넣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자동으로 다운로드가 되어 설치를 시작한다.
똑똑-
“들어오세요.”
다시 한번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 와, 나는 들어오라고 말을 한 뒤에 악기들의 리스트를 점검하였다.
“저 왔어요. 작업은 잘 되어 가세요?”
“끝났어요. 지금 어울리는 악기를 찾느라 설치 중이었어요.”
“어울리는 악기라뇨?”
“열심히 만들었는데 영화의 분위기와 기존 악기들이 전혀 어울리는 것 같지 않더라구요.”
귓가에 들려 왔던 멜로디도 꽤 단순했고, 화음으로 쌓아 놓은 것도 복잡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런 에로에로한 분위기와 복잡한 화음이 어울리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 들어 봐도 되나요?”
“응? 아! 미안해요. 하하. 악기를 골라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서 들어 보라는 말을 못 했었네.”
나는 내가 앉아 있던 자리를 메건에게 양보하고 옆에 있는 작은 스툴 위에 걸터앉았다.
“메건을 위해 자리를 따듯하게 만들어 뒀어요.”
“하하하. 그런 말도 하실 줄 아셨네요. 왜 몰랐지?”
가볍게 웃으며 키보드에 손을 가져가는 메건.
그녀의 기다란 손가락이 스페이스 바를 누르자 프로그레스 바가 움직인다.
가볍게 때리는 드럼 소리. 오토튠을 먹여 놓아서 소리가 살짝 뭉개지는 느낌이었지만, 이런 소리가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드럼 소리가 너무 두드러지게 들리면 영화의 화면에 집중을 하지 못할 테니까.
들려 오던 드럼 소리 위에 얹어지는 피아노 소리. 이 역시 신시사이저튠이라 정확하게 떨어지는 피아노 소리는 아니었다. 페달 효과도 없었기에 울리거나 늘어지는 느낌은 나지 않았다.
어쩌면 EDM에 가까운 음악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도로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악기를 바꾸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 거예요.”
“하아, 하아.”
“메건?”
모니터를 바라보던 중에 메건에게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와 고개를 돌렸다.
메건은 빨개진 얼굴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의 초점은 흐려진 상태.
나는 급하게 스페이스 바를 눌러 음악을 정지시키고 메건의 어깨를 붙잡아 흔들었다.
“괜찮아요? 아서! 아서!”
“아서, 부르지 마요….”
“그렇지만, 흡.”
갑자기 덮쳐 오는 메건의 입술에 뒤에 이어지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벌컥-
“무슨 일입니까, 이정현 경…?”
“웁웁! 웁웁!”
격정적으로 나에게 키스를 하고 있는 메건.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평소보다 조금은 붉어진 것만 같은 아서의 얼굴.
“험험. 2세 계획이 없으신 것 같아 걱정했는데, 다행이군요.”
그는 붉어진 얼굴을 살짝 옆으로 돌리며 문을 닫고 나가려 했다.
“흐아~! 그런 게 아니라구요. 메건의 상태가 이상…. 흡.”
“그러면 좋은 밤 되십시오. 늙은이는 조금 일찍 퇴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서가 작업실의 문을 닫고 나가자, 메건은 한 마리의 짐승이 된 것처럼 나를 탐하기 시작했다.
나의 입술에 닿아 번져 버린 립스틱과 땀으로 얼룩진 화장, 그리고 항상 단정하던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이러지 마요 메건…. 하더라도 맨정신에 해야지….”
“하아…. 하아….”
눈의 초점이 이미 풀어진 상태였기에 무슨 말을 해도 들릴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어떻게 저렇게 풀린 눈으로 정확하게 내 입술을 찾는 거지….
쫘악-
비싼 셔츠라고 이거! 가격은 모르지만 아무튼 비싼 거라고!
메건의 손은 거침없이 내가 입고 있던 셔츠를 찢어 버렸다. 그냥 단추만 풀었어도 됐을 텐데….
그날 밤 나는 한 마리 맹수에게 나의 몸을 내주어야 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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