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84
183화
“정말 미안해요….”
“괘, 괜찮아요….”
“내가 왜 그랬지…. 잘 모르겠어요.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메건의 잘못이 아니에요. 내가 만든 곡을 듣고 그렇게 된 거잖아요.”
메건이 정신을 차린 것은 모든 것이 끝났을 무렵이었다.
그녀의 눈에 초점이 돌아온 것은 한차례의 태풍이 불고 난 뒤였고, 태풍이 멎기 전까지 메건은 짐승 그 자체였다.
마치 술을 마셔 필름이 끊겨 버린 사람처럼 자책하는 메건을 향해, 나는 일단 메건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밖에 해 줄 수가 없었다.
찢겨져 버린 나의 셔츠는 돌아올 수 없을 테지만, 남아 있는 메건은 원상태로 돌려 놔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 만든 곡도 너무 위험한 것 같네요.”
갑자기 이성을 잃고 다른 사람을 덮치게 하는 곡이라니, 너무 위험하잖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있어요.”
“사용이라…. 이것도 왠지 지난번 곡이 무기로 사용된 거랑 비슷한 뉘앙스인 것 같은데 말이죠….”
“부부 클리닉! 성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들려 주면 최고일 것 같아요!”
지난번에는 불면증 이번에는 부부 클리닉이냐….
점점 정신과에 다가서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평범한 곡이 나오질 않는 걸까.
게다가 우리가 대화를 하고 있는 장소는 침실의 침대 위. 야심한 밤에 이런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일단 오늘은 자고 용도를 고민해 보는 건 내일 하도록 하죠.”
“…그냥 이렇게 주무시려고요?”
음악도 틀지 않았는데, 메건의 눈이 심상치 않았다.
마치 예전에 보았던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먹이를 포착한 매의 눈과 같았다.
꿀꺽-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느껴진다.
다큐멘터리 안에서는 작은 토끼 따위가 목표였지만, 그녀의 목표가 나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만든 곡의 위력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만으로 끝나지 않는 건가…? 악기도 제대로 고르지 않았는데….
예전에 보았던 어떤 영화에서 ‘여보 그게 무슨 말이야. 씻다니 왜?’라고 말하는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대사와 함께 입고 있던 재킷의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렸었지.
문제는 내 몸에 걸쳐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렸다. 전혀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집 안에 몇 번의 태풍이 불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다만 이번 곡 역시도 일반에 공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의 마음은 그리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두 곡 연속으로 이상한 효과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 나를 실망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조금만 약하게 효과를 내더라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지….
“다른 방향으로 편곡을 해 보시는 건 어때요?”
“이 음악들은 나한테는 효과가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알고 편곡을 할 수 있겠어요?”
“제가 옆에 있을게요.”
흠칫.
이 곡을 작업할 때 메건이 옆에 있는다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살짝 오한이 도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신혼인 것치고는 평소에 그렇게 부부 관계를 썩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런 포식자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설렘보다는 당혹스러움에 가까웠으니까.
그렇지만 메건과 나는 부부다.
작업할 때 모르는 사람이 옆에 있다가 사고가 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서가 옆에 있었다고 생각해 봐…. 어우…. 소름이 돋았다.
“부탁할게요. 효과를 반 아니 그 이하로 떨어뜨려야 할 것 같지만….”
“걱정 마세요!”
왠지 메건이 입술을 혀로 적시는 것마저 에로하게 보인다. 아무래도 나에게 음란마귀가 씌였나 보다.
***
“됐어요! 이번에는 살짝 두근거리는 정도라구요!”
“그, 그래요? 다행이네….”
주 멜로디는 내버려 두고 화음 파트를 완전히 갈아엎었다.
메건은 회사에 전화를 걸어 음악 작업을 집에서 하겠다고 말을 했는데, 별 태클을 걸어오질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
정상적인 회사가 아닌 게 아닐까?
그렇지만 이 효과는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 화음을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 갈렸다.
이걸 미리 알았더라면, 지난번 곡을 작업할 때 약하게 만들어서 일반인들에게 공개할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쉬움이 남았지만 지금은 이미 늦어 버렸다. 이미 판매를 해 버렸으니까.
“이 정도라면 영화에 삽입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영화라면…. 포쉬 레이디?”
“네! 메인 테마곡으로 넣어볼게요!”
“그걸 마음대로 정할 수 있어요? 음악 감독이 있을 거잖아요.”
영화에는 생각보다 많은 감독들이 있다. 촬영, 미술 그리고 음악과 모든 것에 관여하는 총감독까지.
보통 생각하는 감독은 총감독이라는 말을 메건에게 전해 들었는데, 음악 감독이 이 곡을 사용하는 것에 동의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곡과 영화의 장면을 보고도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음악 감독을 할 자격이 없는 거라구요.”
“너무 단호하게 말하는 것 아니에요?”
평소의 부드러운 메건으로 돌려놓으란 말야! 이 나쁜 음악아!
나는 애꿎은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았다. 그 모니터 안에는 겹겹이 쌓인 트랙들만 보였다.
***
한 달이 지난 뒤 런던 시내의 한 극장가.
데이트를 하러 나온 리즈는 남자친구인 유진과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 중이었다.
“아웃브레이크! 이거 괜찮을 것 같지 않아?”
“유진~. 우리 지금 데이트하러 온 거라고. 데이트하러 나와서 때리고 부수는 영화를 봐야겠어?”
아웃브레이크의 포스터는 런던 시내가 완전히 박살 난 모습에 한 사람의 등을 비추는 형태.
누가 보아도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어때? 포쉬 레이디.”
“리즈, 로맨틱 코미디는 요즘에 너무 많이 보지 않았어?”
제목만 봤을 때는 완벽하게 로맨틱 코미디였다. 과거에 크게 흥행했던 프리티 우먼이라는 영화처럼.
“이거 인터넷으로 찾아봤는데 평이 좋더라고.”
리즈는 자신의 휴대폰의 검색 기록을 유진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어? 로맨틱 코미디가 R-18이잖아. 알았어. 이번에는 재밌기를 빌어야지. 하지만 지난번 영화는 너무 지루했다고. 이번에도 지루하면 다음에는 내가 보자고 하는 거 보는 거다?”
“알았어.”
R-18 등급은 미성년자 관람 불가 등급.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12세나 15세 이상 관람가인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조금은 더 과감한 표현을 한 것을 뜻했다.
유진은 아이들이 보는 것만 같았던 여타 로맨틱 코미디보다는 조금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보자고 말했다.
그렇게 둘은 영화 티켓 발권기에서 포쉬 레이디의 티켓 두 장을 끊은 뒤, 팝콘과 음료수를 사서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불이 환하게 들어와 있는 극장에서 자리를 잡은 둘.
하지만, 자리를 채우는 사람들의 숫자가 심상치 않았다. 빈자리가 하나도 없이 모든 사람이 앉았던 것이다.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
“거봐, 지금 인기 최고라니까?”
“모르지 마케팅 때문일지도. 개봉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 걸 수도 있잖아.”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였기에 유진은 리즈의 말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이윽고 극장 안의 불이 모두 꺼지고 스크린에 다른 영화들의 예고편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런던의 상징인 타워 브릿지와 런던아이가 부서지는 장면이 나오며 영화의 타이틀이 올라왔다.
“쩝….”
유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웃브레이크를 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자아이들이 아무리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블록버스터 영화는 남자들의 로망이니까. 만약에 리즈가 싫다고 말하면 다음에는 혼자서라도 보러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제작사의 로고송이 들려 오고 나서 바로 시작하는 영화.
영화관 안은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심장 박동 소리를 연상케 하는 드럼 소리가 들려 오자 유진의 가슴도 함께 뛰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고혹적인 목소리가 들려 오더니 화면이 밝아지며 침대의 다리가 보였다.
피아노 소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악기의 소리가 들려 오자 땀이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다.
마치 자신이 저 발만 보이는 남자의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만 같다.
남자가 침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길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강해졌다.
“헉!”
남자의 발이 침대 밑 공간에서 사라져 그 위로 올라갔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던 그 순간,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흔들리는 침대 소리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유진은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리즈의 손을 자신도 모르게 꽉 쥐고 말았다. 이렇게 흥분되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그 흥분이 폭력적이거나 한 것이 아니라 에로 씬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렇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유진은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극장 안에 불이 켜지고 퇴장을 알리는 불빛이 출입구 위에 켜졌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거의 보이질 않았다.
평소에는 주인공이 예쁜지 안 예쁜지 그런 것만을 생각하던 유진이었지만, 주인공의 얼굴은 제대로 기억도 나질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너 손 완전 축축해.”
“뭐?”
영화가 끝날 때까지 유진은 자신의 손이 흥건히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리즈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손을 점퍼 위에 문질러 닦았지만, 흥분이 가신 것은 한참 지난 뒤였다.
그것도 직원들이 어서 나가 달라고 말을 할 때가 되어서야 극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출구 앞에 놓인 쓰레기통에 산더미처럼 쌓인 팝콘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런 것에 신경쓸 겨를은 없었다.
“이렇게 두근거리게 만든 영화는 처음이야. 그런데 로맨틱 코미디는 아닌 것 같더라.”
“…….”
재잘재잘 말을 하고 있는 리즈의 목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마치 현자 타임에 찾아오는 이명이 들리는 것 같은 기분.
물속에 머리를 담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유진! 괜찮아?”
“잠깐, 앉아서 쉬고 싶어….”
“아니야…. 빨리 돌아가자. 오늘 우리 부모님 여행 가셨거든.”
“그래…?”
유진은 고개를 돌려 리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 역시 불그스름하게 달아 있는 것이 유진의 눈에 들어오자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둘은 땀이 흘러 축축하게 젖은 손을 떼지 않고 지하철역으로 들어가 집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탔다.
***
말세다 말세야. 에로 영화가 박스 오피스 1위라니.
솔직히 1위를 할 정도로 재미가 있지는 않던데, 왜 저렇게 인기가 많은 거야.
TV의 연예 채널에서 알려 주는 정보에 나는 기가 찼다.
내가 관여를 했건 하지 않았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번 기대 수익이 엄청나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요…?”
“저런 촬영 예산도 적은 B급 영화가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음악을 러닝 개런티로 계약했으니까, 관객 수가 많을수록 자기한테는 좋은 거예요.”
“…….”
메건의 말에 나는 얼굴이 조금 뜨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저 영화에 들어간 음악들을 만들며 내 몸까지 불태웠던 그 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저 영화를 보고 얼마나 많은 커플들이 밤을 불태웠을까. 그 숫자가 저 박스 오피스에 그대로 나온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
“아직 배경 음악이 없는 영화는 많은데…. 성인 영화 위주로 가져다드릴까요?”
“아, 아뇨! 영화는 이제 됐어요.”
“흐음…?”
메건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가늘어진다. 언제까지 나를 놀리고 싶어 할지는 모르겠지만, 저 눈빛에 담긴 장난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연극이나 뮤지컬로 해 볼래요.”
연극은 공개적인 무대에서 하는 거니까 야한 건 없겠지…?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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