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85
184화
“그렇죠. 연극하고 접목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날 거예요. 안 그래도 현장감이 강한 연극인데, 자기가 만든 음악으로 입체감을 준다면? 와, 상상만 해도 짜릿하네요.”
“그, 그렇죠….”
저 짜릿하다는 말에 강세가 있는 것이 왜인지 모르게 불안하다.
내가 알던 메건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한 꺼풀 벗어 버린 느낌이라고나 할까. 솔직하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예전의 그녀와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번 포쉬 레이디 건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귓가에 음악이 들리질 않아서, 능력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이건 완전 업그레이드가 된 사기 능력이었다.
음악으로 사람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다니, 누가 들으면 미친 사람으로 볼지도 모른다.
물론 당연히 그 과정이 쉽지는 않다.
전처럼 내가 이미지를 떠올리면 바로 들려 오는 것이 아니라, 약간은 수동적으로 들려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니까.
아니다. 혹시 모르지. 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속적으로 노력하면 마음대로 떠올릴 수 있게 될지도.
“그러면 이번 주말에는 연극이나 보러 갈래요?”
“그래요. 예약은 부탁할게요.”
어떤 극장에서 어떤 연극을 하는지 어떤 뮤지컬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기에, 그런 분야에 관심이 많은 메건에게 전적으로 맡기기로 했다.
뭐 알았다고 하더라도 맡겼겠지만. 나는 여자만 셋 있는 집에서 자라다 보니, 내가 하고 싶다는 것에 고집을 피운다고 들어 먹히질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연극에서 음악을 사용하던가?
나에게는 그런 사전 지식 같은 것도 없었다. 솔직히 연극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 일단 가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지난번에 봤던 연극도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으니까.
한참 동안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눈앞에 있는 메건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왜, 왜 그래요!”
“제가 처음에 말했었죠. 서른이 되기 전까지 아이를 갖고 싶다구요.”
꿀꺽-
젠장. 그 영화를 보는 게 아니었어! 내가 괴물을 깨워 버렸다고!
***
[그러니까, 제랄딘…. 네가 극단을 설득해서 우리 극장에서 상연할 수 있게 해 주면 안 되겠냐는 거야, 내 말은….]“프레드. 저 이제 맘마미아의 직원 아니에요. 아시죠? 제가 왜 그만뒀는지.”
극장 맘마미아에서 쫓겨나듯 그만둔 제랄딘. 그녀를 쫓아냈던 장본인이 낯짝이 두껍게도 전화를 해서 극단을 설득해 달라 말했다.
[맘마미아가 장사가 안 되는 건 네 탓도 있잖아! 네가 인터넷에 그렇게 글을 써 놓지만 않았어도…!]“지금도 제 탓을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애초에 저에게 사인을 달라 말하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 아니에요. 어쩌면 지금도 제가 거기에서 일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고맙네요. 쫓아내 줘서.”
[그러지 말고 옛정을 생각해서 극단에 한 번만 말해 주면 안 될까…?]“옛정이요? 그런 게 우리 사이에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사인을 달라는 소리만 안 했어도 극단에 말을 해 봤을 텐데 말이죠.”
제랄딘은 어이가 없었다. 프레드가 아무리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못했는지는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대와는 달리 프레드는 자신의 입장만을 말하고, 제랄딘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상반된 입장만을 이야기하다 전화를 끊었다.
둘의 입장은 이제 완전히 달라졌다.
제랄딘은 떠오르는 스타였고, 프레드는 망해 가는 극장의 주인.
지난번 조연으로 출연했던 영화가 예상치 못한 흥행을 하게 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 제랄딘이었기에 소속사는 다른 영화에 출연하기를 원했다.
이번에 소속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연극 무대에 오르기로 결정한 것은 연극 무대에 대한 환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연습만 하던 그녀가 연극 무대에 올라가는 초연일이었다.
조연이기는 했지만 영화에 나왔던 배우가 연극 무대에서 모습을 보인다는 것에 사람들은 기대감이 컸고, 매진은 아니더라도 꽤나 많은 티켓이 팔렸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것들이 제랄딘을 더욱 기분 좋게 만들었다. 자신이 꿈꾸던 연극 무대에 올라가는 것에, 그녀의 자격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무대를 향한 갈망이 그녀의 목을 더 타들어 가게 만들었다. 아무리 연습을 하더라도 그 갈증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직 본무대에 올라야만 시원하게 목을 축일 수 있을 것만 같은 갈증.
‘어서 올라가고 싶어!’
무대 아래에서 빗자루를 들고 극장의 곳곳을 청소하던 그녀는 이제 무대에 올라갈 시간만을 기다리는 배우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벌컥-
연습실의 문을 열고 단장이 들어오며 외쳤다.
“오늘 이정현 경이 우리 극장에 방문하신대!”
“정말요?”
“와….”
유명인이 극장에 방문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다. 제랄딘이 속해 있는 극단은 셰익스피어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일념하에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 있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극단의 배우들은 하나같이 밝은 표정으로 단장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현이 그렇게 자주 외출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 그가 만들었다고 하는 영화 음악 역시 초대박을 내며, 한차례 이슈가 된 적이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연습실에 모여 있는 열몇 명의 단원들은 모두 상기된 얼굴로 더욱 완벽한 무대를 보여 주겠노라 다짐하는 모습이었고, 그 단원들 사이에 제랄딘도 끼어 있었다.
‘이번에는 빗자루를 들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어!’
제랄딘 역시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주먹을 쥐며 완벽한 무대를 보여 주겠다고 다짐했다.
“자, 그러니까 오늘 초연 제대로 보여 주자고!”
“예, 단장!”
단장의 말에 의욕을 불태우며 연습이 다시 시작되었다.
***
“로미오와 줄리엣?”
“네. 오늘 보러 갈 연극이에요.”
고전 중의 고전. 집안이 반대하는 사랑의 끝에 자살해 버리고 마는 비극적인 이야기.
역대 최고의 극작가로 알려진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만든 희대의 명작.
식상하다.
연극 같은 걸 보지도 않는 나였지만, 이미 그 내용을 모두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실망한 티를 보여서는 안 된다.
티켓을 예약한 메건의 눈이 기분 좋게 휘어져 있는 것이 보였으니까.
그래. 한 번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연극을 보고 음악이 떠오르는지 안 떠오르는지만 알게 된다면 다시는 연극을 보지 않아도 되겠지.
연극을 보러 간다고 오페라나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가는 것처럼 정장을 차려입을 필요는 없었다.
“이거 어때요? 오늘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주세요.”
다만 내가 집에서 늘상 입고 있는 것처럼 후드티에 추리닝 차림은 좀 곤란하다는 생각에, 적당히 메건이 꺼내 주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메건이 꺼내 준 옷은 슬랙스에 깔끔한 셔츠. 이 정도면 충분하다 여겼는데,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 드레스룸에서 시계까지 가져왔다.
‘시간은 휴대폰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굳이 손목 무겁게….’라는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그 말을 입에 담기에 나는 용기가 부족했다. 미안하다 손목아.
유부남들은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부인이 옷을 꺼내 주며 ‘이거 어때요?’라고 물어본다면 닥치고 그걸 입으라는 소리다.
뭐 고민할 필요도 없고 좋지.
자신이 골라 주는 옷을 순순히 입는 나를 바라보며 메건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옷을 좀 사러 가야겠어요. 입을 만한 옷이 많이 없는 것 같더라구요.”
“아, 네.”
이미 옷방이 두 개나 있다. 봄, 여름과 가을, 겨울. 두 개의 방을 옷으로 채워 놓고 옷이 부족하다고 말을 하는 사람이 내 눈앞에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옷을 사러 가는 현장에 나를 데려가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한번 쇼핑하러 나가면, 몇 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걸어 다니니까.
적당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 때쯤 나는 아서를 불러 차를 준비시켰다.
“오늘은 세단을 타고 갈게요.”
“어떤 세단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롤스로이스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벤츠?”
“벤츠로 하죠. 롤스로이스는 너무 눈에 띄니까.”
“알겠습니다. 준비되시는 대로 내려오시지요.”
차는 뭐가 되었건 아무래도 좋았지만, 롤스로이스는 왕이 타던 차라서 그런지 크기가 커서 너무 눈에 띄었다. 100미터 밖에서 보더라도 내가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가장 싫은 것은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안 타고 다닌 지가 몇 년 된 것 같은데 팔 수도 없다. 왕의 하사품이니까.
뭐 그 대신 돈으로 받았지만….
이런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잡생각을 하며 현관에서 기다리는데, 메건이 계단으로 우아하게 내려왔다.
“가실까요?”
“푸훗!”
오늘 볼 연극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해서, 조금은 고전풍으로 에스코트를 하는 흉내를 냈더니 메건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게 차를 타고 런던의 시내에 있는 극장으로 향했다.
이제는 제법 데이트를 많이 했던 커플들처럼 자연스럽게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길이 어색하지만은 않았다.
여전히 경호원들이 따라붙고 있었기에, 그들이 먼저 안전을 확인한 뒤에 들어가야 했지만 익숙해져서인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 뒤에야 극장의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연극 무대와 가장 가까운 앞줄의 가운데 자리. 이런 자리는 보통 VIP들한테나 주는 자리 아니었나.
관계자라든지 배우의 가족들이라든지 말이야.
중간쯤에서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앞자리가 좋지만은 않았지만, 메건은 꽤나 좋아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자리를 찾아 들어오는 관객들의 대화 소리에 웅성거리던 실내의 불이 꺼지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꺼번에 조용해지는 극장.
덜컹-
조용한 극장 안을 울리는 커다란 조명 소리가 들려 오고 한 줄기 스포트라이트가 무대 위를 향했다.
“아~ 여기는 물이 별로네.”
“물은 무슨 물이야. 바닷가에 왔으면 수영이나 하고 갈 것이지.”
“로미오. 바닷가에 왔으면 여자들을 꼬셔야지, 수영은 무슨 수영이야.”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대사들과는 전혀 다른 말들이 들려 왔다. 이거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며…? 왜 동네 양아치들이 헌팅할 때 쓸 것 같은 말을 내뱉는 건데?
살짝 벙쪄서 멍하니 무대 위를 올려다보았다.
무대 위에 올라온 배우들의 차림새가 중세 시대의 그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요즘 사람들이 입을 것 같은 청바지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들어오기 전에 팸플릿을 좀 읽어 보는 건데…. 전통적인 로미오와 줄리엣만 생각하다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였다. 로미오의 옆에서 여자들을 꼬시자고 말하던 배우가 관객들을 향해 등을 돌리고 서 있는 긴 머리의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저 뒷모습 좀 봐. 예쁠 것 같지 않아?”
“적당히 해, 그러다가 일행이 있으면 어쩌려고.”
“어이! 거기 긴 머리 아가씨!”
말투는 제법 촌스럽다. 아가씨라니. 요즘에는 전혀 쓰이지 않을 것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연극 무대이기 때문이겠지.
양아치의 말에 등을 돌리고 있던 여자가 관객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저요? 저를 부르신 건가요?”
놀랍게도 등을 보이고 있던 배우는 나도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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