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86
185화
무대 위에서 등을 돌리고 서 있던 여자는 제랄딘이었다.
얼마 전에 영화에 나왔었다는 것은 내가 보았기 때문에 알고 있었지만, 연극 무대에 오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
대부분의 배우들은 연극배우를 하다가 영화로 전향을 하면 돌아오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제랄딘은 연극 무대에서 영화로 진출을 한 것이 아니라, 연극이 상연하는 극장의 청소부에서 영화로 진출을 한 것이었지만.
“아, 제랄딘이었구나.”
“응? 몰랐어요? 나는 자기도 아는 줄 알았는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며 나도 모르게 입에서 터져 나온 말에 메건이 조용하게 속삭였다.
평소에 TV를 달고 살기는 하지만 연예 프로그램이나 음악 프로그램은 전혀 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연극 무대에 올라간다는 건 전혀 알지 못했다.
어쩌면 서프라이즈 이벤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메건은 내가 아는 줄 알았다고 하는 걸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말이지.
“네, 맞아요. 당신. 너무 예쁘시군요.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양아치가 줄리엣으로 분한 제랄딘에게 연락처를 달라 말했다.
“내가 예쁘지 않았다면, 연락처를 물어보지도 않았겠죠?”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여자를 꼬시면서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가 있을까. 길거리 헌팅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내가 보더라도 저렇게 꼬시면 넘어오지 않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 연극 무대를 연출한 극작가가 연애 경험이 없는 것이 틀림없다.
어색한 대사야 연극이기 때문이라고 쳐도, 지금 막 만난 사람한테 연락처를 달라고 말을 하면 줄 사람이 어디 있겠어.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비웃음을 입에 담았다.
“저렇게 여자를 꼬시면 넘어오나….”
“…그러면 어떻게 해야 넘어오는데요?”
“그야, 당연히…. 나는 모르죠.”
하마터면 유도 신문에 걸려들 뻔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결혼식까지 치른 여자라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무대에 집중했다.
***
무대 위에 올라서면 위에서 내려오는 조명 때문에 객석에 앉은 관객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가장 가까이에 앉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윤곽만 보일 뿐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자세하게 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제랄딘은 무대에 가장 가까운 곳에 앉은 정현을 알아보지 못했다.
어쩌면 그게 그녀에게는 더 다행인 일일 수도. 만약 정현을 알아보았다면 제대로 된 연기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연극배우들이 원하는 TV스타가 되기 직전에 제랄딘은 연극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이 연극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영화의 조연으로 나온 것보다 더 기뻐했다.
그리고 지금 무대 위에서 그녀는 줄리엣이 되었다.
“오~ 로미오! 당신의 집이 아무리 찢어지게 가난하더라도 저는 상관없어요.”
“줄리엣…. 나도 당신만 있으면 상관없지만, 당신의 아버지가….”
이렇게 작가가 개판을 쳐 놓은 대사를 입에서 내뱉는 순간에도 제랄딘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간간이 이런 대사들을 배우들이 내뱉을 때마다, 객석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영화 촬영장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관객과의 호흡에, 제랄딘은 더욱 기쁘게 연기를 할 수 있었다.
무대가 끝날 때까지.
[오늘의 무대를 빛내 준 배우들에게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짝짝짝짝- 휘이익~!
장내 스피커로 전달되는 배우들의 무대 인사에 관객들이 크게 호응해 주었다.
비록 연극이라는 것이 영화나 TV 드라마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제랄딘은 이런 현장감을 생에 단 한 번이라도 느끼고 싶었다.
그제서야 자신이 쓸고 닦던 맘마미아 극장보다 두 배는 더 큰 무대 위에, 청소부가 아닌 배우로 올랐다는 실감이 났다.
뚝뚝-
소리 없는 울음과 무대 위에 떨어지는 눈물.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아냐…. 내가 왜 이러지.”
당연히 기쁨의 눈물이었겠지만, 동료 배우들은 당황하며 제랄딘의 어깨를 감싸 무대 뒤의 대기실로 데려왔다.
소파에 앉아 한참 동안 울었다.
울음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뤘다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오히려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하는 것이, 커다란 카메라 앞에서 유명한 영화배우들과 연기를 했던 것보다 더 크게 와닿았다.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때쯤,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 울었어요?”
“네….”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보이며 울고 있었기에, 앞에선 남자의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고급스러운 수제화. 그러고 보니 바지의 재질도 가격이 결코 싸 보이지는 않았다.
남자가 내민 손수건으로 눈물과 콧물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을 때, 제랄딘은 더 이상 갈 곳도 없는 소파 뒤로 올라섰다.
“악! 보셨어요?”
“메건 말로는. 아, 메건은 제 부인입니다. 메건 말로는 이름까지 대면서 예약을 했다고 했는데, 제가 온 걸 모르신 건가요?”
“알았죠, 알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대기실까지 찾아오실 줄은 몰랐죠.”
제랄딘은 소파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내려오며 정현의 말에 대답했다.
손으로 얼굴을 만져 보았다. 정현에게 콧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모두 닦아 냈다고 생각했을 때, 자신의 손에 있는 손수건을 바라보았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버린 고급스러운 손수건.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건네주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사람이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 준 정현이었기에 그대로 돌려줄 수가 없었다.
“세탁해서 돌려드릴게요….”
“하하하. 괜찮아요. 이건 선물.”
정현은 뒤로 감춰 두었던 꽃다발을 제랄딘에게 건네며 호탕하게 웃었다.
“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덕분에 좋은 연극 잘 봤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정현 경 덕분에 꿈을 이룰 수 있었어요….”
“아, 그쪽 이야기인가.”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라는 듯이 넘겨 버리는 정현을 바라보며, 제랄딘은 자신과 같은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만나게 되면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그렇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감사하다는 말에 모든 기운을 다 쏟아 버린 것만 같았다.
“노래는 어때요, 좀 하시나?”
“자, 잘 모르겠어요. 제대로 불러 본 적이 없어서.”
지금까지의 대화와는 전혀 맞지 않는 맥락의 질문. 제랄딘은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나를 가수로 데뷔시키시려는 건가…?’
어쩌면 자신에게 곡을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그 일을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는 없었다.
자신이 배우가 될 수 있었던 것이 모두 정현의 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과 정현이 만들어 주는 곡이라면 불러 보고 싶다는 마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단장은 어딨나요? 제가 좀 만나 보고 싶은데.”
“단장님이요? 오늘이 초연이라 극장 사무실에 계실 거예요.”
“알려 줘서 고마워요.”
정현은 싱긋 웃으며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제랄딘은 정현이 빠져나간 대기실의 출입구를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원래 이정현 경이랑 아는 사이였어?”
“응? 아, 아니에요. 모르는 사이.”
“그런 것 치고는 엄청 친해 보이던데?”
“진짜 모르는 사이예요.”
한참 동안이나 동료 배우들에게 시달림을 당해야 했지만, 제랄딘의 기분은 구름 위에 올라탄 것처럼 좋기만 했다.
***
“극장 사무실에 단장이 있을 거라고 하네요.”
“그냥 만드셔도 되는데 꼭 단장을 만나셔야 하나요?”
“뭐, 그냥 만들어도 이쪽에서 쓸지 안 쓸지는 모르는 거니까요. 미리 이야기를 해 두는 편이 낫겠죠.”
극단의 단장에게 말을 해서 연극에서 내가 만든 음악을 쓸 수 있게 만들고 싶다는 말에, 메건은 조금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당연할 수밖에 없나.
두 번 연속으로 크리티컬 히트를 맞아 버렸는데.
사람을 재우고 흥분시키는 곡이라니, 절대로 정상적인 곡들은 아니지.
그렇지만 앞의 두 번은 연습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도 꺼내면 꺼낼수록 점점 다채로운 음악이 나왔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에 꺼냈던 곡이 피아노 독주곡이었던 것처럼. 맞나? 교향곡이었나?
오래되어서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가장 처음 음원으로 만들었던 것은 피아노곡이었다는 것은 기억이 난다. 큰누나에게 주었었으니까.
복도를 걸어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쓰여진 문 앞에 섰다.
똑똑똑-
“들어오슈.”
노크를 하자 안에서 작은 목소리로 들어오라는 말이 들려 왔다.
달깍-
문을 열고 들어가자 출입구를 바라보던 두 사람이 깜짝 놀라며 펄쩍 뛰었다.
“헉!”
“이, 이정현 경!”
나는 소파에 올라선 두 사람을 향해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이정현입니다. 여기 이쪽은 제 부인인 메건입니다.”
“안녕하세요 메건 리입니다.”
“어이쿠. 오늘 오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이렇게 사무실까지!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정현 경! 극단 햄릿의 단장 토마스 베이커입니다!”
사무실의 소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상급자가 갑자기 방문한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자연스럽게 비어 있는 소파의 자리에 앉아 둘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 네! 물론이죠! 뭐든 물어보십시오.”
“오늘 상연한 연극, 사실 연극이 아니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을 해서 썩 재밌는 연극은 아니었다.
희대의 명작이라고 불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저렇게 망쳐 놓을 수도 있구나 싶은 느낌이랄까.
애초에 연극을 위해 만들어진 대사들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 말할 정도로 내가 연극을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대사들이 어색했다.
확실하다. 그건 연극 대본이 아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영화 의 느낌으로 만들어 놓은 느낌이었다. Summer nights, We go together 같은 희대의 명곡을 극 중에 넣어놓은 그 뮤지컬. 그런데 그리스는 뮤지컬이지 연극이 아니다.
다시 말해 오늘 보았던 것은 음악이 없는 뮤지컬이라는 소리였다.
뮤지컬은 장르명에 Music이 들어가는 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극. 거기에서 음악을 뺀다는 건 크림빵에 크림을 뺀 것과 똑같다. 돈가스에 돼지고기가 없는 것과 같은 거지.
“크흠….”
“원래는 뮤지컬 아니었습니까? 그걸 왜 연극으로 올린 겁니까?”
“당연히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무대를 비울 수는 없습니다. 런던 시내에서 매일 수익을 내는 무대를 만들 수가 없다면, 자리를 비워 줘야 할 수밖에 없거든요.”
“수익을 내기 위해서라…. 그러면 오히려 더욱 뮤지컬로 만들었어야 할 것 같은데. 재미가 없더라구요. 대사도 어색하고.”
내가 질러 버린 말에 두 명의 남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연극이나 뮤지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한눈에 알아챌 정도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었지만, 이 두 사람에게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뮤지컬로 올리시죠.”
“그러기에는 예산이…. 아시겠지만 곡을 만드는 것도 쓰는 것도 돈이 들어갑니다.”
뮤지컬, 오페라 모두 음악을 기반으로 올리는 극이다. 무대 위에서 행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음악을 사용하지만, 연극의 경우에는 효과음을 제외한 다른 것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당연히 배우들의 일당 외에도 음악을 만드는 비용과 사용하는 비용이 들어간다. 이렇게 단순하게 계산해봐도 연극에 비해 복잡하고 비쌀 수밖에.
그렇다면 내가 그 짐을 조금 덜어 드리지.
“곡은 제가 만들어 드리죠.”
“정말이십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단, OST 수익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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