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87
186화
“OST를 발매하실 생각이십니까? 뮤지컬인데요?”
“뮤지컬은 OST 내지 말라는 법 있나요?”
“…그런 법은 없죠.”
“그럼 내는 거죠.”
별다른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음악이 들어가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 되었건 사운드 트랙을 발매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많이 팔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음반이라는 게 최근에 유행하는 곡이 아닌 이상 대부분은 발매를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정도만 판매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손해를 볼 수는 없지. 내가 뮤지컬에 들어갈 음악을 만들어 준다고 하더라도 내 손에 남는 게 없으니, OST 판매 수익이라도 챙겨야겠다는 마음도 한편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단장이라는 사람이 한숨을 푹 내쉬며 내게 고해성사를 하듯 말을 하기 시작했다.
“배우들이 대사를 모두 외우고 있으니 다른 건 상관없는데, 보컬 트레이닝은 조금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흠…. 그렇겠네요. 연극을 하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뮤지컬을 하라고 말을 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트레이너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솔직히 널리고 널린 게 보컬 트레이너다. 세상은 넓고 가수를 지망했던 사람들은 많으니까.
그중에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이 드물다는 게 함정이 될 수 있긴 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많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괜찮은 배우를 찾아내는 것보다 보컬 트레이너를 구하는 게 더 쉬울 거라 생각하는데.
“조금 전과 같은 문제 아니겠습니까. 책정된 예산이라는 것을 벗어나면서 일을 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아….”
돈이 없으면 어쩔 수 없지.
뮤지컬과 오페라는 단순히 연극과 비교해도 그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니까.
“뭐,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니까 제가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제가 누구를 잘 가르치는 편이 못 되어 놔서…. 좀 아쉽네요.”
“정말이십니까? 이정현 경이 보컬 트레이닝을?”
“해 주는 건 어렵지 않죠. 그런데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누구를 가르쳐 본 적이 없다니까요?”
“왕립 음악원에서 교수도 하셨으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뇨…. 겸손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이정현 경!”
이런 상황에 ‘나는 음악원에서 뭔가를 가르친 적이 없고 지적질만 했습니다’라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단장인 토마스라는 사내가 덩치에 맞지 않게 감격에 겨워 닭똥 같은 눈물까지 찔끔 흘렸기 때문이다.
그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할 말을 잊고 말았다.
“…OST 판매 수익에 대한 계약 서류를 작성하죠.”
“여부가 있겠습니까!”
***
“들었어?”
“뭘?”
“우리 연극, 뮤지컬로 바꾼대.”
“뭐? 갑자기 왜?”
배우들은 혼란에 빠졌다. 연극에 대한 반응이 그리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거의 한 달 동안 연습을 해 왔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초연에서 좋지 않은 반응이 있었다고 즉시 극을 철회하고 뮤지컬로 전향한 사례는 없었다.
각자의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극단이 손실을 볼 것을 알면서도 진행하는 공연은 있을 수가 없고, 한 달 동안 기를 쓰며 외워 놓은 대본이 하루아침에 쓸모가 없게 될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딸깍-
의외의 소식에 가라앉아 있던 연습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마저 크게 울리는 듯했다.
한창 시끄럽게 떠들며 연습을 해야 하는 시간에 들려 왔던 소식에, 모두 각자의 입장을 생각하느라 연습에 몰두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목! 새로운 소식이 있다.”
단장인 토마스 베이커가 연습실의 문을 열고 들어와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평소에 성적이 좋지 않으면 지렁이가 기어가듯 작은 목소리로 의기소침해진 것과는 영 딴판이었기에, 배우들은 조금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반응이 별로라고 다 갈아엎는다며. 왜 저렇게 밝은 건데…?”
“반응 안 좋다는 거 뻥 아냐?”
“나 보고 이야기하지 마. 내가 말했던 것 아니니까. 아까 말했던 거 누구야?”
너무나도 밝은 단장의 모습에 배우들은 잘못된 소식을 가져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습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제랄딘은 그저 한쪽 구석에서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조용! 조용!”
어수선해진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단장의 말에 다시 연습실은 조용해졌고 그제서야 단장은 말을 이었다.
“이번에 우리 로미오와 줄리엣은 뮤지컬로 전환한다.”
“네?! 갑자기요?”
“바꿀 거라면 사전에 말씀은 해 주셨어야죠!”
대다수의 배우들은 뮤지컬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연극배우가 되는 과정에 발성에 대한 것은 연습을 했지만, 연극식 발성과 뮤지컬의 발성은 래퍼와 발라드 가수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배우들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불평불만으로 바꿔 쏟아내기 시작했다.
“끝까지 들어! 말을 끝까지 듣고 나서 불만이 있으면 그때 말해도 늦지 않으니까.”
““…네….””
“너희 대사는 다 외우고 있으니까 다른 대본을 외울 필요는 없다. 그걸 그대로 뮤지컬로 바꿀 거야.”
““휴우….””
곳곳에서 나오는 안도의 한숨 소리.
연극에서 연기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대본을 외우는 것.
TV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리 끊어 갈 수 있는 부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 가야 하기에, 두꺼운 대본을 모두 외워야 하는 것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꿀꺽-
모 회사의 전 CEO를 흉내 내는 단장의 제스처에 배우들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
“극을 위해 음악을 만들어 주시고,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 주시기 위해 이정현 경이 직접 나서기로 하셨다!”
“에엑? 단장! 진짜예요?”
“에이, 이정현 경이 이런 누추한 곳에 왜 와요. 국립 악단이랑 하시겠지.”
배우들은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기에 사실이 아니라고 의심하며 단장의 말에 딴지를 걸었지만, 단장은 그런 것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너희 이번에는 진짜 잘해야 해…. 이정현 경이 직접 나서시겠다는 말에 내가 감격해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뻥 치시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데.”
““와하하하하!””
개중에 단장과 친한 배우가 농담을 던지자 배우들은 언제 우울했었냐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 주부터 여기에 나오셔서 보컬 트레이닝에 들어갈 테니까 그렇게들 알고 이번 주 남은 3일은 휴가로 삼아.”
“단장! 그러면 무대는요? 저희가 안 올라가면 수익 못 내는 것 아니에요?”
“극장주가 이번에 보수하기로 했어. 이정현 경 이름이 올라가는데 허름한 채로 둘 수는 없다면서 말이야.”
그렇게 불안에 떨던 배우들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 이 연습실 안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화기애애하게 다음 주를 기대하는 말들을 나눴다.
“암튼 나는 갈 테니까, 잘 쉬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보자고!”
연습실을 나서는 단장을 향해 인사를 하는 배우들은 없었다.
다들 정현을 만난다는 기대감과 그가 뮤지컬을 위해 음악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것에 흥분해, 단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기대감은 정현을 만나는 그 순간 철저하게 부서지고 말았다.
“아니, 이걸 왜 못해요?”
“…….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아니고 잘 듣고 따라 해 봐요. 다 할 수 있는 거라니까? C3 플랫,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악! 콜록콜록!”
보컬 트레이닝을 하기 위해 불러온 사람이 보컬의 신이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정현이 보이는 시범을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전에 목 풀기도 하지 않은 상태로 표정 하나 찡그리지 않고 3옥타브를 넘나드는 시범을 보이는 정현을 바라보며, 극단의 단원들은 얼어붙고 말았다.
그 상황을 처리한 것은 정현의 부인인 메건이었다.
“…보컬 트레이닝은 제가 할 테니까, 자기는 자기 작업 먼저 해요.”
“메건, 이건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거라니까요. 이렇게 쉬운데! 왜 못하지?”
“…네. 그건 저도 못 해요.”
“에이, 메건은 작곡 전공이잖아요. 이 사람들은 발성 연습을 하는 연극배우라구요.”
“하아…. 자기는 기준을 좀 낮출 필요가 있어요.”
정현이 보컬 트레이닝을 맡을 거라는 소리에 크게 기대하고 있었던 배우들의 기대감은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다.
배우들의 앞에서 했던 대화였기에 사람들은 둘의 대화를 모두 듣게 되었고, 정현이 진짜 모든 사람이 3옥타브는 쉽게 넘나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메건에 의해 정현이 쫓겨나게 되자, 연습실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아아…. 메건 여신님!”
“왜 여신이야?”
“이정현 경 별명이 뭐냐, 음악의 신이잖아. 신하고 결혼했으니까, 여신이지.”
이상한 논리로 배우들 사이에서 여신으로 등극해 버린 메건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 별명을 알지 못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그런데 저렇게 쌩쌩한데 왜 노래를 부르지는 않는 걸까? 소문으로는 성대가 망가져서 더 이상 노래를 못 부른다고 했었잖아.”
“글쎄. 노래를 안 해도 먹고살 수 있으니까?”
“그런 이유라면 수많은 가수들이 전부 그만두겠다. 이미 다들 벌 만큼 벌어서 먹고살 수 있잖아.”
보컬 트레이닝을 나와서 답답한 나머지 시범만 보이고 쫓겨나 버린 정현이었는데, 그 시범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혼란에 빠져버렸다.
***
“아니, 발성 연습을 좀 제대로 했으면 쉽게 할 수 있을 것 아냐…. 그걸 왜 못하냐고. 다들 건성으로 연습하니까 못하는 거지.”
“마실 거라도 가져다드릴까요?”
“응? 저는 커피가 좋아요. 고마워요.”
로비에 있는 벤치에 앉아 메건이 나오길 기다렸지만,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의 보컬 트레이닝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작업실에서 쫓겨나 복도로 나오게 되자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물론 경호원이 두 명이나 붙어 있었지만, 이들은 나와 대화도 잘 하지 않으려 했으니까.
나 대신 보컬 트레이닝을 하는 메건을 두고 혼자서 집에 돌아갈 수도 없고, 이미 지난 3일 동안 연극에 들어가는 음악을 모두 만들었기에 해야 할 작업도 없었다.
물론 출시를 하기 전에 마스터링 작업을 거쳐야 하기는 하지만, 보컬을 입히지 않고 마스터링을 할 수는 없었다.
결국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지루하네….”
“…….”
음료수를 가져다준 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경호원들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 여기 나와계십니까? 보컬 트레이닝은 어쩌시구요?”
“안녕하세요. 성함이…. 베이커리 씨였나?”
“베이커입니다. 토마스 베이커.”
“아, 베이커 씨. 보컬 트레이닝은 제 부인인 메건이 하고 있어요. 저는 그게 끝나길 기다리고 있구요.”
“이정현 경의 부인께서도 음악을 전공하셨나 보군요.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누가 들어도 아부하는 것 같은 목소리에 나는 기분이 살짝 나빠졌다.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을 반복해서 하는 것은 무언가 나에게서 뜯어갈 것이 있는 느낌이었으니까.
“음악 작업은 어떻게 되어 가십니까?”
“그건 지난주에 받아 갔던 대본을 보고 끝냈어요.”
“벌써요? 지난주 금요일이었잖습니까!”
“…안 되나요?”
할 일이 있으면 여기에서 이러고 있겠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나는 상식이 있는 사람이니까.
“험. 안 되긴요. 참. 이정현 경이 참여하셨다는 것을 듣고 각계각층에서 초연에 참여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뭘 어떻게 해요. 오라고 하면 되지.”
나는 이 말이 불러올 참사를 이때 눈치챘어야 했다. 각계각층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범위가 엄청나게 넓다는 것을.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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