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88
187화
OST를 발매하는 것은 녹음을 거쳐야 한다. 실황 녹음을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음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에 나는 녹음실을 택했다.
[오~ 로미오!]목소리가 얹혀지기 전 미디로 만들어진 음악이 흘러나올 때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는데, 보컬을 얹으며 고민이 늘었다.
아…. 저기에서 조금만 더 가성을 섞으면 될 것 같은데….
오른손이 토크백 마이크로 향하는 것을 몇 번이고 의식적으로 멈춰야 했다.
가수도 아닌 일반인의 수준에서는 발성의 높낮이뿐만이 아니라, 음량도 모자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음색은 어떤가. 배우들이기에 딕션은 굉장히 좋은 편이었지만, 음색을 변화시키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들려 와 나는 불편함을 느꼈다.
조금만 더 신경 쓰면 그 한계를 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한계점이 너무 낮아 답답하다.
“으….”
“왜 그러세요?”
듣기가 너무 괴로워서 이를 악물고 이 상황을 견디려는 나를 향해 엔지니어가 물었다.
“조금만 더 신경 써서 감정을 넣으면 될 것 같은데, 여기에서 더 해 보라는 말을 못 하겠네요.”
“음…. 지금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요?”
“제가 원하는 것보다 조금 모자라요….”
“아….”
녹음실에 붙어 있는 콘솔룸은 보는 눈이 많다. 다음 녹음을 위해 대기하는 인원들도 있고, 지금 콘솔에 손을 올리고 있는 엔지니어까지.
나는 다시 한번 시켜 봐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발성의 방법을 모르는 이상 몇 번을 시켜도 마찬가지겠지. 그 방법을 깨닫는 것은 연습량에 비례하지만, 인간의 성대는 소모품이다.
녹음을 위해 목소리를 사용하면 할수록 더 안 좋아질 거다.
고민이 된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 모자라다 싶으시면 꼭 배우가 녹음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응? 그건 무슨 말이에요?”
“어차피 얼굴을 보여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라이브도 아니고. 목소리만 쓸 거면 굳이 배우들이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
유레카!
내가 생각하지 못하던 걸 엔지니어가 떠올렸다.
왜 진즉 이 생각을 못 했을까. 나는 지금껏 배우가 직접 노래를 불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OST니까. 사람들에게 대외적으로 보여 주는 무대와 달라지면 안 된다고 느꼈던 거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 굳이 배우들이 이걸 직접 할 필요가 없었다.
그 후로는 고민하지 않았다.
마음을 바꿔 먹으니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두 번 이상 테이크를 잡아먹는 부분이 없었다.
말을 해서 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도 굳이 배우들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던 것.
이틀이 지나가기 전에 녹음을 모두 끝낼 수 있었다.
문제는 추가 녹음을 위한 아티스트 섭외.
“아니, OST를 실제 뮤지컬처럼 해서 올릴 거라니까. 실황처럼. 우리 애들 중에 시간 남는 애들 없냐고.”
[…그런 걸 할 거였으면 미리 이야기를 했어야지. 스케줄 다 잡힌 다음에 연락을 하면 어떻게 해.]“아예 안 돼? 인디 밴드들은 스케줄 많이 없지 않아?”
내가 만든 것에 내 발목이 잡혀 버렸다.
수원이가 담당하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에릭이나 씨에스타도 마찬가지. 이미 일정이 잡혀 버린 상태라 런던으로 들어와서 녹음을 하는 것은 안 된다는 이야기만 돌아왔다.
어떻게 하지…?
엔지니어도 퇴근해서 텅 비어 있는 콘솔룸의 시설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녹음실은 내 소유가 아니라 빌려서 사용하는 것이기에, 나중에 추가 녹음을 한다 치면 추가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다른 아티스트들을 불러서 녹음을 한다면 그리 손해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는데, 누구도 일정이 맞지 않는다.
뮤지컬 OST가 추가 비용을 들이는 만큼 팔릴지는 의문이라 사실 손익 분기가 어떻게 나올지 아직은 알 수 없어도 전망은 굉장히 부정적.
이럴 줄 알았으면 런던에도 녹음실을 만들어 두는 건데….
쓸데없이 받아 가는 런던의 혼잡 통행료만큼이나 녹음실 사용료가 아깝게 느껴졌다.
배우들 중 누군가가 녹음을 마치고 두고 간 듯한 테이블 위에 놓인 가사가 적힌 종이. 내가 지적했던 부분이 빼곡하게 볼펜으로 쓰여져 있는 것을 보니 조금 한숨이 나왔다.
고개를 돌리자 콘솔에 연결된 컴퓨터 안에 보이는 트랙들이 눈에 들어온다.
잠깐만.
얼굴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남아 있는 녹음실 사용 시간은 두 시간.
뮤지컬 전체 러닝 타임은 한 시간 30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를 향했다.
여러 개로 쪼개져 있던 곡들을 모두 하나로 합쳐 순서에 맞게 나열했다.
나는 꺼져 있는 녹음실의 불을 다시 켜고 DAW 프로그램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
정현이 보컬 트레이닝과 녹음, 그리고 연습을 위해 생각해 두었던 시간은 2주.
그 2주 동안 극장은 새 단장을 마쳤다.
어쩌면 교활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정현이 참여했다는 것을 주된 홍보 수단으로 삼아 티켓은 불티나게 팔렸다.
“한 달 동안 매진이야! 아직 초연도 안 했는데 말이지. 하하하하.”
“저희한테 인센티브도 챙겨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당연한 것 아니겠나 토마스! 우리는 한배에 올라탔는데!”
“하하하하!”
워낙에 공연 관람료가 비싼 런던이었기에, 매진되는 사례가 극히 드물었었다. 그런데 한 달 분량이 통으로 매진이 된 것에 극장주와 단장은 웃음이 멎질 않았다.
“그런데 그 OST는 어떻게 되어 가는지 소식이 있나?”
“글쎄요. 저희 초연하는 것과 동시에 공개한다고 하시던데….”
“그것도 잘되어야지! 우리에게 돈다발을 안겨 준 것이 바로 이정현 경인데!”
“에이, 이정현 경이 만든 OST인데 당연히 잘 팔리겠죠.”
극장의 한쪽 구석에 있는 사무실에서 두 명의 남자가 웃음꽃을 피우고 있을 무렵, 초연을 관람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향했다.
알버트와 다니엘은 바로 오늘 저녁에 있을 뮤지컬 관람을 위해 경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국왕인 윌리엄 5세가 정현이 관여했다고 알려진 뮤지컬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왕에게 보이기 위한 연극이나 뮤지컬은 버킹엄궁의 홀에서 행해졌기에, 일반 극장에 행차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윌리엄 5세는 궁에서 공연하는 것을 기다릴 수가 없어, 직접 극장에 가는 것을 택한 것이다.
“근위병들을 모두 극장 외부에서 대기시키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건 폐하가 불편해하시네. 최소한의 인원만을 데려가자고 하시니 그렇게 알게.”
“하지만…. 아버지.”
“괜찮아. 런던 내부에서 움직이는 것 아닌가. 게다가 나도 함께 갈 거고 필립도 함께니 걱정할 필요는 없네.”
혼잡한 런던 시내에 근위병들이 돌아다닌다면 오히려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근위병도 대동하지 않았다.
그저 극장의 입구에 금속 탐지기를 든 몇 명의 보안 요원들만 배치했을 뿐이었다.
영국의 왕이 가족들을 대동하고 뮤지컬을 관람할 거라는 소식에 티켓의 암표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현대에 이르러 커다란 권력을 갖는 왕이 아닌 상징적인 위치가 되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군주는 군주였기 때문이었다.
암표를 파는 암표상과 입구를 지키는 보안 요원까지, 극장은 혼란의 도가니가 되어 버렸다.
“아, 밀지 마!”
“아저씨, 표 얼마예요?”
“200!”
예매를 하지 못한 사람들은 암표상에게 가격을 묻기 바빴고, 가장 먼 자리에서 관람하는 가장 싼 20파운드짜리 티켓의 가격이 200파운드가 넘어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티켓을 사기 위해 아우성쳤다.
암표상들의 입꼬리가 올라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크지 않은 극장 앞에 수용 인원의 몇 배나 되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며 극장주와 단장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러 댔다.
애초에 매진조차 되는 일이 극히 드문 영국의 극장 공연에서 암표상이 등장한 것도 수십 년 만의 일이었다.
“그레이트 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과 그 밖의 국가와 영토의 왕, 커먼웰스의 수장이자 신앙의 수호자이신 윌리엄 5세 국왕 폐하가 드십니다!”
근위병의 커다란 목소리에 사람들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국왕이 극장 앞에 세워진 차에서 내려섰다.
왕실의 행사에서 입는 옷이 아닌 일반적인 정장을 입은 왕과 왕비, 그리고 그들의 뒤를 따르는 제1왕자 조지와 제1공주 샬럿, 루이 제2왕자.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를 대비해 가족 다섯 명 전원이 움직이는 일은 없는 왕실이었지만, 이번은 예외적이었다.
문화의 부흥을 위해서 큰 힘을 쏟을 거라고 말했던 윌리엄 국왕이었기에, 자신의 자식들 역시 문화의 힘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국왕이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며 극장에 들어간 이후에 일반 관객들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하하. 이정현 경이 뮤지컬이라니. 기대가 되는군요. 아니 그렇습니까, 알버트 경.”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폐하.”
윌리엄 5세의 옆에 앉은 알버트는 자신의 손녀사위가 만들었다는 것에 뿌듯해하며 대답했다.
“그런데 그 주인공은 오늘 안 오시는 겁니까?”
“초연에 맞춰서 OST 공개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부득이하게 그 일로 인해 극장에 오지 못했습니다, 폐하.”
“오오 OST. 그렇지요. 이정현 경은 음악가니 말입니다.”
화기애애한 왕과 신하의 대화를 뒤로한 채 무대 전체를 가리고 있던 붉은 커튼이 열리기 시작하며, 객석을 채우던 밝은 불빛이 잦아들었다.
텅-
스포트라이트가 무대의 한쪽을 비추자 그곳에 등장하는 남자 배우 두 명.
“아~ 여기는 물이 별로네.”
“물은 무슨 물이야. 바닷가에 왔으면 수영이나 하고 갈 것이지.”
“로미오. 바닷가에 왔으면 여자들을 꼬셔야지, 수영은 무슨 수영이야. 잘 들어 봐.”
배우들의 티격태격하는 대사가 오간 뒤 작은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오오~ 저기 있는 예쁜 아가씨의 뒷모습을 봐~]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배우가 노래를 시작하자, 마치 바닷가의 백사장에 와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다.
쏴아-
파도가 밀고 들어왔다 나가는 소리가 들리며 노래는 이어졌다.
[이 친구야~ 일행이 있으면 어쩌려고 이러는 거야~] [로미오, 이 겁쟁이. 용기가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는다네!]음악이 없었다면 과장되어 어색해 보일 만큼 과도한 몸짓도, 들려 오는 음악에 맞는 안무처럼 느껴질 정도.
관객들은 모두 새로운 로미오와 줄리엣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헤이! 거기 긴 머리 아가씨!]둥둥~
시작되었던 음악이 끊이지 않고 들려오다 처음으로 멈추며 하이라이트라는 것을 알리는 그때.
““아아….””
조명이 어두운 곳에서 등을 돌리고 있던 그녀의 풍성한 치마가 빙그르르 돌아가자 관객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 탄성 사이로 제랄딘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저요? 저를 부르신 건가요?”
한 시간 반으로 예정되어 있는 공연이 시작된 지 이제 겨우 5분.
관객들은 이미 무대 위에서 보여 주는 배우들의 공연에 빠져들어 있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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