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89
188화
경박하기 그지없는 사내가 바닷가를 거닐다 눈에 띈 여자에게 말을 건다.
귓가에 들려 오는 파도 소리가 지금 바닷가에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정보부에서 일을 하기 위해 젊은 날, 얼마나 많은 훈련을 받았던가.
알버트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미친! 이게 무슨 일이지?!’
분명 조금 전까지 국왕의 곁에서 뮤지컬의 무대를 바라보았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바닷가에 와 있었다.
푸른 물결과 황금빛 모래가 자신의 발을 적시는 느낌이 들었다. 소금기가 섞인 바람이 불어와 코를 간지럽힌다.
런던에서 가장 가까운 바닷가가 있는 브라이튼은 최소한 몇 시간은 걸릴 거리였고, 그 브라이튼에는 자갈밭만 있지 백사장에서 보이는 모래는 있지도 않았다.
대체 어느 틈에 자신을 바닷가로 데려왔단 말인가.
혼란에 빠져 있던 그때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바닷가의 풍경이 사라졌다.
음악이 멈추었던 것이다.
“저요? 저를 부르신 건가요?”
달콤하게 들려 오는 매혹적인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무대가 눈에 들어왔다.
바닷가에 와 있다고 느꼈던 알버트였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자신의 자리에서 전혀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던 것.
압도적인 현장감에 할 말을 잃은 알버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허···! 어떻게 이런 일이···.”
그리고 그렇게 탄식을 내뱉은 사람은 알버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국왕 윌리엄 5세와 왼쪽에 앉아 있던 필립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
“으음···.”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는 두 사람을 보며, 알버트는 그제서야 자신의 손녀사위가 이 뮤지컬의 음악을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때 다시 귓가에 부드러운 음악 소리가 들려 왔다.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주는 것에 먼바다에서나 만나 볼 수 있다던 세이렌의 전설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 바닷가로 떠밀려가야만 했다.
***
[아니 그러니까, 다 됐으면 그냥 올리면 되는 거지 그걸 왜 전화를 하고 그래요.]“사장님, 한 시간 반짜리 음원이에요. 이걸 트랙도 안 나누고 바로 출시하시겠다구요?”
LJH 뮤직 컴퍼니의 유일한 사운드 엔지니어인 스티브는 당황했다.
악기들의 볼륨과 디테일을 조절하는 믹싱을 할 때도 이상한 환상이 보여서 개고생을 했는데, 마스터링을 마치고 나니 온몸의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4분짜리 음원을 판매하는 수익과 한 시간 반짜리 음원을 판매하는 수익이 다르지 않다. 당연히 트랙을 나눠서 발매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
그런데 정현은 한 시간 반짜리 음원을 트랙도 나누지 않고 통으로 발매를 하겠다고 한다.
[저 이제 사장 아니에요. 아무튼 그거 다 됐으면 바로 유니버설에 보내요. 트랙 나눌 필요 없으니까.]“이거 발매해도 되긴 하는 겁니까? 귀신 씐 음악 아니냐구요. 눈앞에 헛것들이 잔뜩 보이는데···.”
[···내가 만든 거예요. 귀신이라니···.]“험···. 어쨌거나 뒷일은 책임 못 집니다.”
스티브는 단호하게 말을 했다.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눈앞에 이상한 것이 보여서 이게 뭔가 싶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며칠. 아마 열 번도 넘게 들었던 것 같았다.
그제서야 환상을 보면서도 콘솔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게 되어, 작업을 마칠 수가 있었다.
겨우겨우 마스터링을 마친 스티브였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이미 마커스에게 말해 놨어요. 스티브가 책임질 일 없을 거예요.]“알겠습니다.”
스티브는 전화를 끊고, 컴퓨터 화면에 보이는 프로젝트를 저장한 뒤 음원으로 뽑아내었다.
평소였다면 1, 2분이면 될 일이었지만, 무손실 음원인 WAV로 뽑아내는 시간만 하더라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이씨, 이건 왜 또 안돼!”
이메일로는 첨부가 안 되는 거대한 용량.
스티브는 USB 드라이브에 파일을 옮기고 A & R 팀의 안젤리나를 호출했다.
“이거 유니버설에 가져다주라고 하니까, 네가 가져다줘.”
“이게 뭡니까?”
“나도 몰라. 사장님이 부탁한 거.”
“알겠습니다. 그냥 가져다주기만 하면 되는 거죠?”
CEO의 자리에서 물러난 지 한참 되었지만, 직원들은 여전히 정현을 사장이라고 불렀다.
한국으로 떠난 뒤 긴 시간 동안 얼굴도 볼 수 없었던 정현. 그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 안젤리나는 유니버설에 가져가기 전에 자신의 자리에서 한번 들어 봐야겠다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래. 아, 절대 들으면 안 돼!”
“……???”
회사 내에서 작곡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현의 곡을 뜯어 보며 공부를 했다. 그렇기에 정현이 만들었던 것들과 비슷한 곡들을 만들어 내며, 씨에스타와 에릭의 음원들을 지속적으로 히트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음원을 자기 손으로 조절했던 사람이 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니, 안젤리나는 더더욱 호기심이 강해졌다.
사운드 엔지니어실에서 자신이 일하는 A & R 팀의 사무실로 돌아온 안젤리나.
손에 쥐고 있는 USB 드라이브의 내용물이 궁금해 미칠 것만 같았다.
컴퓨터에 USB 드라이브를 끼우고 헤드폰을 머리에 썼다.
폴더를 찾아 들어가니 음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더블 클릭을 하며 재생시켰다.
툭툭-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건드리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 있는 것은 회사의 CEO 마리.
안젤리나는 헤드폰을 벗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 해? 퇴근 안 해?”
“···퇴근이요? 아직 4시밖에···.”
“4시? 무슨 소리야.”
컴퓨터 모니터에 보이는 시계를 바라보자 저녁 6시. 음원을 들어 보기 위해 클릭을 한 것뿐이었는데 시간이 삭제되었다.
자신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이미 모두 퇴근한 지 오래. 불이 켜져 있는 자리는 안젤리나의 자리뿐이었다.
“큰일 났다! 이거 유니버설에 가져다줘야 하는데!”
“아, 그것 때문이었구나.”
안젤리나는 허겁지겁 자신의 짐을 챙기고 USB 드라이브를 컴퓨터에서 분리해 가방 안에 넣었다.
마리는 자신의 눈앞에서 허둥대는 안젤리나를 바라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가, 그녀가 사무실을 나서려는 그때 입을 열었다.
“로비에 와 있어. 네가 만나야 할 사람.”
“네?”
“유니버설 직원이 가지러 와 있다고.”
정현이 만들었다는 음원이었기에, 마커스의 특별 지시를 받은 직원은 메일이 도착하지 않아 회사까지 찾아왔던 것이었다.
안젤리나는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왜 갑자기 그렇게 빠르게 흘러간 것인지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사무실의 불을 끄고 로비로 내려가 벤치에 앉아 있던 유니버설의 직원에게 USB를 건네주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여기 안에 음원이 들어 있어요.”
“아, 네.”
남자는 USB 드라이브를 챙기며 별다른 대답이 없었지만, 안젤리나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등을 돌려 건물을 빠져나가려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절대 들어 보시면 안 돼요. 아셨죠?”
“……??”
남자는 안젤리나가 스티브의 앞에서 지었던 표정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
[음원이 출시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마크.”
내가 마스터링을 위해서 프로젝트 파일들을 보냈던 것이 2주나 지났는데, 왜 이제서야 음원이 올라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출시되었다.
원래의 계획은 뮤지컬이 공연을 시작함과 동시에 음원을 출시하는 것이었지만, 이상하게 소요되는 시간이 길었다.
마커스는 CEO니까 그런 걸 물어봐도 대답해 줄 수 없을 거라 생각한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조금 늦었으면 어때. 출시만 되면 된 거지.
“저기···.”
“응? 왜요?”
“할아버님이 오늘 자기가 만든 뮤지컬을 보러 극장에 가신다고 하는데, 같이 가실래요?”
“아니에요. 저는 집에서 좀 쉬고 싶네요.”
극장에 가자는 말을 하는 메건을 향해 집에 남아 있겠다고 말을 했다.
솔직히 극장에서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녹음실에서 수도 없이 들어 보았기에, 더 들었다가는 귀에서 피가 날지도 모른다.
그런데, 알버트는 첫날에도 다녀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에이 몰라. 뮤지컬을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지.
매일 일에만 치여 살던 사람이 취미 생활을 갖는 건 좋은 거니까.
“아, 맞다. 메건. 음원 출시됐대요.”
“정말요?”
어린아이처럼 꺄악거리는 소리를 내던 메건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메건이 이번 음원을 발매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배우들의 보컬 트레이닝은 음원에 도움이 전혀 되질 않았지만, 그래도 무대에는 도움이 되었을 거다.
아예 발성 자체가 틀려먹은 사람들을 그래도 조금은 쓸 만하게 고쳐 놓았으니까.
평소처럼 거실에서 뒹굴거리던 그때 달콤한 것이 먹고 싶어지는 마음에 아서를 찾았다.
“아서~”
“찾으셨습니까, 이정현 경.”
역시나 쥐도 새도 모르게 나타나는 건 여전하구만. 어디에 있었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부르면 순식간에 나타난다.
“혹시 도넛 같은 거 없나요? 달콤한 게 먹고 싶은데.”
“설탕은 몸에 안 좋다고···.”
아, 나에게 제로슈가 콜라를 주는 사람이었지. 잊고 있었네. 이런 사람에게 단 걸 가져다 달라고 말을 하려던 내가 미친놈이었다.
“잠시 바깥 좀 다녀올게요.”
“아, 알버트 경을 만나러 가시나 보군요. 준비해 놓겠습니다.”
아서의 눈에 띄지 않도록 직접 나가서 사 먹는 게 답이다. 이 노인은 나에게 절대로 짠 것과 단것을 주지 않으니까.
현관을 나서서 차를 타고 시내를 향했다.
가까운 데 도넛 가게가 어디에 있더라···?
“근처에 도넛 가게나 빵 가게가 있으면 거기로 가 주세요.”
“네? 극장에 가시던 게 아니었나요? 저희는 그렇게 들었는데···.”
“나는 어디에 간다고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아서가 마음대로 그렇게 생각한 거지.”
“아···.”
내가 무슨 엄마 몰래 불량식품 먹는 꼬맹이도 아니고 이렇게 숨어서 먹어야 하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먹고 싶은 걸 먹어야 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달달한 도넛을 먹을 수가 있었다.
집에 싸가고 싶지만, 절대로 반입이 안 되겠지. 아쉽지만 다음에 또 먹기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다녀왔습니다~”
“오셨어요···?”
응? 조금 전에 공연을 보러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왜 집에 있어요? 알버트 경을 만난다고 하더니?”
“알버트 경을 만나러 가셨던 게 아니었습니까, 이정현 경?”
아이씨, 깜짝이야.
방금 들어와서 등 뒤에는 현관밖에 없는데 자꾸 어디에서 나타나는 거야.
“시내에 볼일을 보러 갔었어요. 그나저나 메건은 왜 집에 있어요?”
“···못 갔어요···.”
“왜요?”
“정신을 차려 보니까, 이미 약속 시간이 지났더라구요···.”
응? 왜지?
메건은 배우들의 보컬 트레이닝과 녹음을 하면서 엄청나게 많이 들어봤기 때문에, 더 이상 음악에서 환상을 진하게 보지 않았다.
처음에는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었는데, 수십 번이나 들어 본 지금은 그럭저럭 정신을 차린 상태로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왜 저에게 말을 안 하셨어요?”
뭘요···?
혹시 나 혼자 도넛을 먹으러 나갔다 오는 바람에 화가 난 건가···?
뜬금없는 메건의 질문에 나는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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