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91
190화
“…얼마를 올리시려구요…?”
“글쎄. 지금의 배는 받아야 하지 않겠나?”
토마스는 경악했다.
런던에서 극장을 빌리는 것이 워낙에 비싸다고는 하더라도 두 배를 낸다고 치면, 최고급은 못 되어도 고급 시설이 깔린 극장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돈을 내면서 여기에 있으라는 말이요? 허….”
“흠흠…. 그 정도는 받아야 타산이 맞지 않겠나 이 말이야.”
토마스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까지 해 줄 생각은 없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였고 극단이 어려울 때도 붙어 있었던 극장이었지만, 배우들에게 일당을 주지 못할 때도 칼같이 사용료는 받아 갔었으니까.
“지금 예약받은 부분까지만 하고 나가겠습니다.”
“…다른 극장에 가겠다는 건가?”
“그건 차차 생각해 봐야겠죠.”
“알았네!”
쾅-
극장주가 신경질을 내며 있는 힘껏 문을 닫고 나간 곳을 바라보며 토마스는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른 극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개월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다른 극단과의 상도덕을 지키기 위해서 쉽게 극장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극단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모여 만든 것이다 보니 다른 극단과 부딪칠 일을 만들지 않아야 이 좁은 바닥에서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까지 극본을 팔면서 나오는 수익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던 토마스.
단 한 순간에 행복한 고민에서 우울한 고민으로 주제가 바뀌어 버렸다.
“휴우…. 어찌 되었건 이정현 경에게는 알려 드려야겠지….”
전화기를 들어 정현의 이름을 눌렀다.
공연 기간이 짧아진다면 그만큼 뮤지컬의 생명력이 짧아진다는 소리였으니, 핵심 관계자라고 볼 수 있는 정현에게는 알려야 했다.
“늦은 저녁에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무슨 일인가요?]“저희가 현재 예약되어 있는 날까지만 공연을 하고 극장을 사용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극장주가 사용료를 올려 달라고 해서요.”
[흐음…. 더 하실 생각은 있나요?]정현은 그만두겠다고 말을 하는 토마스를 향해 공연을 더 이어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명작이라고 꼽히는 뮤지컬들은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나도 상연을 한다. 이나 의 경우에는 전용 극장도 있고 1년 내내 같은 뮤지컬을 상연한다.
토마스는 자신들이 상연하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그런 명작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제 생각을 물어보시는 거라면 당연히 더 할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러 와 준다면 몇 년이고 더 해야죠.”
[그러면 잠깐만 기다려 봐요. 내가 금방 다시 전화해 줄게요.]“네? 여보세요?”
정현은 토마스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어쩌지…? 내가 이정현 경을 실망시킨 건가…?’
토마스는 혹시나 정현이 화가 나서 극본을 파는 데 자신의 음악을 빼 버리겠다고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지금은 소극장을 만들어 많은 음악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외부로 알려진 정현의 이미지는 굉장히 단호하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망연자실한 마음에 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막막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아가야 할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한창 물이 오른 극단원들에게 상연이 한 달 내에 종료될 것이라고 말을 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궁핍했던 연극배우들이 이제서야 입에 풀칠을 하며 살 수 있게 될 것 같았는데, 하루아침에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말을 해야 했으니까.
가슴이 답답해지며 나아졌다 생각한 위궤양이 도진 것만 같았다.
“어디다 뒀더라….”
토마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챙겨 두었던 약을 찾기 시작했다.
책상과 서랍을 뒤져도 찾을 수가 없어 가슴은 더욱 답답해졌고, 신물이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Rrrrrr-
구석진 곳을 찾아보던 그때 테이블에 올려 두었던 전화기가 울렸다.
쿵-
“으악!”
급하게 몸을 일으키다 책상 모서리에 허리가 찍혀 버리고 말았다.
허리에 느껴지는 강렬한 고통에 세상이 노랗게 변하는 것 같았지만, 전화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 여보세요?”
[네, 저 이정현입니다.]“으…. 네, 급하신 일이 있으셨나 봅니다. 아무튼 극장에서 공연하는 것은 한 달 안에 마무리가 될 것….”
[제가 전화 끊으면, 로열 내셔널 시어터로 연락하세요. 거기로 옮겨서 공연할 테니까.]국립 극장 로열 내셔널 시어터. 짓는 데만 20년이 걸린 런던에서 가장 큰 대극장이었다.
네 개의 무대가 있고, 그중에 가장 큰 무대는 1,160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올리비에 극장. 가장 작은 무대도 225명이나 수용할 수 있어, 지금 토마스의 극단이 올라간 150명 규모의 극장과는 차원이 다른 곳.
“내, 내, 내, 내셔널 시어터요? 갑자기…?”
[폐하가 좋게 봐주셨다고 하니까, 거기 계약 끝나면 바로 옮길 수 있게 미리 준비해야 돼요. 무대가 넓으니까 미술팀 추가로 고용하고.]“폐… 하….”
[그럼 저는 이만. 아, 그 극본 팔렸다고 일일이 전화할 필요 없어요. 알아서 돈만 보내 주면 됩니다.]뚝-
토마스는 끊어진 전화를 귀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국립 극장에서 상연하는 것은 영국 내 최고의 극단이나 해외의 극단을 초청해서 이루어지는 일이었는데, 주로 발레단들이 많이 올라가곤 했었다.
국내에서 이제 막 상연하기 시작한 극단이 올라갈 수 있는 무대가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미친 듯이 아프다고 생각했던 허리가 전혀 아프질 않았다. 그리고 도졌다고 생각한 위궤양까지도 느껴지질 않았다.
천천히 손을 내려 허리를 짚어 봐도, 답답했던 가슴까지도 전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 안 아프네…. 역시 꿈인가…? 언제 잠든 거지?”
벌컥-
사무실의 문이 열리는 것을 느꼈지만,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단장! 공연 끝났는데 술 한잔 사 줘요. 애들 기다리고 있어요. 어? 바닥에 앉아서 뭐 해요?”
“어…? 어…. 사야지….”
“진짜 사 주는 거예요?”
“나도 오랜만에 술 좀 마시고 싶네….”
넋이 나간 토마스는 배우들에게 이끌려 펍으로 이동해 몇 년 만에 술을 마셨다. 극단 운영에 받은 스트레스로 위궤양이 생긴 뒤 처음 마셔 보는 술이었다.
“아…. 영원히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
“깨긴 뭘 깨요. 아까부터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하시네.”
“지금 여기도 꿈이잖아. 조금 전에 이정현 경이 다음 달부터 국립 극장에서 상연하라고 하셨거든. 너무 행복한 꿈이었어.”
““국립… 극장…?””
눈이 풀린 채로 맥주를 들이켜던 토마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주변에 몰렸던 모든 사람이 놀랐다.
“내가 아는 그 로얄 내셔널 시어터…?”
“그래. 미술팀도 더 고용해서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하시더라고. 어찌나 실감 나는 꿈이었는지….”
““미술팀을 고용해서 미리 준비하라 그랬다고?””
“그렇다니까. 국립 극장 무대는 지금 무대보다 두세 배는 더 클 테니까 세트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잖아.”
벌컥벌컥-
토마스를 둘러싸고 있던 배우들은 손에 들고 있던 맥주잔을 단체로 들이켜기 시작했다.
“크-아-! 여기서 뭐 해! 얼른 가서 세트 만들어야지!”
“으, 응? 세트를 만들어? 나 꿈속에서도 일해야 하는 거야?”
“꿈은 무슨 얼어 죽을 꿈이에요, 단장! 이거 현실이니까 돌아오라고!”
배우들에게 펍으로 끌려갔던 토마스는 맥주 한 잔도 비우지 못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야 했다.
***
“음악판이나 연극판이나 극장주들 꼬장 부리는 건 똑같구만.”
“다행이네요. 마침 국립 극장 일정이 비어 있어서.”
나는 토마스에게 걸려 온 전화에 화가 났다. 내가 소극장을 만들었던 이유가 바로 극장주들의 꼬장 때문이었으니까.
재능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가 거지처럼 살아야 하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지금은 런던 어디에 가더라도 소극장에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전까지 그들은 한 달에 한두 번 무대에 올라 그 쥐꼬리도 안 되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잘됐잖아요. 이제 화 푸세요.”
“…이렇게 핫라인을 쓸 기회를 날려 버리면 나중에 정말 큰일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하죠?”
이제 왕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간 것 아닌가…?
어차피 동네 친구처럼 자주 전화를 걸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사소한 일로 전화를 걸 기회를 날린 게 아쉽다.
“런던의 실태가 그런 걸 어떻게 하겠어요. 아니면 연극이나 뮤지컬도 작은 극장들을 만드시겠어요?”
“그건 무리죠. 땅도 없고.”
“잘하신 거예요. 지금 아니면 언제 써 보겠어요. 그리고 이걸 부탁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영국의 ‘마스터피스’를 위한 건데.”
메건의 말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조용히 있을 때는 꽤 차가워 보이는 인상인데, 말은 굉장히 따듯하게 한다.
어쩌면 이런 갭이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는 걸지도 모르지.
물론 마스터피스라는 것에 강세를 준 것이 조금 거슬리긴 했다.
내가 생각하는 마스터피스는 이런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위대한,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것 같은 이미지가 있으니까.
“할아버님도 엄청 좋아하셨어요. 원작인 로미오와 줄리엣도 영국의 마스터피스인데, 리메이크된 것도 영국의 마스터피스가 될 거라고 말이죠.”
“아무리 그래도 셰익스피어와 비교하는 건 좀….”
마스터피스가 될지 안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 기준이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니 말이다.
그렇지만 어딜 영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작가인 셰익스피어와 허접한 리메이크를 비교해.
아무리 메건이라고 하더라도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만큼 리메이크라는 것은 원작을 뛰어넘기가 어렵다. 원작이 뛰어날수록 평가도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다른 작품이 아니라 원작과 비교를 하게 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리메이크된 로미오와 줄리엣은 2차 창작물에 가깝다. 만화책이 애니메이션이 된다든지 하는 것처럼.
메건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가만히 바라보았더니 조금 살이 찐 것 같았다.
그렇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예전보다 조금 후덕해진 것 같은데…. 옷이 엄청나게 끼어 보인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메건 요즘에 나 몰래 뭐 먹는 것 있어요?”
“몰래? 지난번에 자기가 먹었던 도넛처럼?”
“하하하. 생각난 김에 도넛이나 먹으러 갈까요? 시간은 좀 늦었지만 아직 가게는 열려 있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요즘에 입맛이 좋아서 자꾸 먹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유혹하지 마요.”
아직 가을도 오지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먹기 시작하면 가을에는 살이 엄청 찌는 거 아닌가…?
적당한 선에서 입을 닫고 있기로 했다. 본인이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수도 있잖아?
나는 솔직히 메건은 너무 말라 살을 찌우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니까.
Brrrr-
이 시간에 나에게 전화를 할 사람이 있었나?
극장 일도 모두 해결되어서 더 이상 전화 올 곳도 없을 것 같았는데, 갑자기 예고도 없이 울리는 전화기.
액정 위에 떠오른 이름에 나는 더욱더 당황했다. 나에게 생전 전화도 잘 안 하던 사람이니까.
뜬금없이 놀러 오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 전화를 받기 전에 긴장해야 했다.
“응, 누나.”
[현아.]“왜 전화했어?”
작은누나는 내가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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