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92
191화
[메건, 혹시 아이 가졌니?]“뭐어? 그건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야.”
[방금 자다가 일어났는데 꿈이 좀 이상해서 말이야.]“지금이 몇 신데 이제 일어나. 여기가 일곱 시니까 거기 아침 열한 시 아냐?”
열한 시에 일어나는 삶이라니. 부럽다. 나는 아서가 매일 아침마다 찾아와서 깨우는데….
이상하게 그 아저씨는 내 수면 시간까지 다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언제 잠들건 여덟 시간쯤 되면 깨운단 말이지.
[들어봐. 내가 강가에서 캠핑을 하는데, 커다란 복숭아가 떠내려오는 거야.]“자면서 복숭아가 먹고 싶었던 건 아니고…?”
과일 귀신인 작은누나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꿈속에서도 과일을 찾을 만큼은 되어야 과일 귀신이라는 칭호를 얻을 자격이 있으니까.
[아 쫌! 아무튼 그 복숭아를 가지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물속으로 들어갔지. 그런데 엄청나게 커서 내가 복숭아를 타고 바다로 가는 꿈이었어.]“처음부터 끝까지 복숭아라니. 한결같아서 좋네. 이해하기도 쉽고.”
[그래서 그 꿈을 엄마한테 말했더니 태몽이라는 거야. 근데 너도 알다시피 나 남자친구 안 만든 지 한참 됐거든. 그러니까 당연히 나는 아닐 거고….]“그래서 메건이…. 응?”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하다.
메건이 평소보다 살이 쪄 보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른 때라면 자신의 식단을 알아서 조절할 정도의 메건이었는데, 요즘에는 먹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는 듯이 먹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살이 찐 거라면 내 생각보다 더 많이 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 그 꿈 어디에 정리해서 글로 써놔 줘. 녹음을 하든가. 알았지?”
[뭐, 왜?]“나 끊는다.”
[야! 현아! 이정현!]만약에 사실이라면 누나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전화를 급하게 끊은 나는 메건을 바라보며 말했다.
“메건, 잠시 나갔다 올게요. 혹시 뭐 먹고 싶은 거 있나요?”
“어…. 글쎄요 생각을 안 해 봐서…. 그런데 어디 가시려구요?”
“금방 올 거예요.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문자하세요. 아서! 차 좀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메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다지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내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게 뭐 하루 이틀도 아닌데 그런 걸 일일이 다 신경 쓰지는 않겠지.
그렇지만 한창 소파에서 뒹굴거려야 하는 시간에 내가 몸을 일으킨 것이 조금 신기했을지도 모른다.
현관으로 나가 차에 올라탔다.
“일단 테스코로 갑시다. 익스프레스 말고 큰 매장으로.”
“알겠습니다, 이정현 경.”
대형 마트인 테스코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났기에 사람들이 많이 없었으니까.
테스코의 장점이라면 두통약이나 감기약 같은 일반 약들을 일반 식료품처럼 살 수 있다는 것.
나는 의약품 코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임신 진단기를 두 개 사서 카트에 담았다.
“엑? 사모님이 임신하셨습니까?”
“그냥 테스트예요. 아직은 몰라요. 알버트 경에게는 보고하지 마세요. 직접 말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조용히 뒤만 따르던 경호원이 입을 열게 만들 정도로 이 일은 정말 의외의 일일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작은누나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아마 신경도 못 쓰고 넘어갔을걸?
어쨌거나 나에게 붙는 경호원들은 모두 알버트에게 주기적으로 보고를 하고 있었기에, 입단속부터 시켜야 했다.
설레발 엄청 치다가 혹시 아니면 어떻게 해.
그렇게 임신 진단기를 담고 식품 매장 쪽으로 향할 때 메건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직 아이를 가졌다고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문자를 본 내 기분은 묘할 수밖에 없었다.
작은누나가 말했던 꿈처럼 복숭아를 원하는 메건의 문자에 나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태몽을 다른 사람이 꿔 주는 경우가 있다고 했는데, 이런 일이 진짜 있구나….
과일 코너에서 복숭아를 담고 제과 코너에서 내가 먹을 도넛을 몇 개 챙긴 뒤 계산대를 빠져나왔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사모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아, 참. 혹시 안락의자 같은 것 좀 거실에 놓을 수 있을까요?”
“준비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소파가 있지만 배가 불러오면 앉기 불편할 테니 나는 안락의자를 먼저 준비해 달라고 말했다. 만약에 잘못 짚은 거면 내가 쓰면 되지 뭐.
복도를 따라 걸으며 거실을 향할 때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 왔어요.”
“응? 진짜 금방 왔네요?”
항상 반듯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서 TV를 시청하던 메건이 내가 항상 누워 있던 자리에 나처럼 누워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거실에 들어가자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냥 누워 있어요. 여기 복숭아.”
“그건 뭐예요? 복숭아 옆에 있는 거.”
“…이건 도넛….”
“그것도 하나 주세요.”
역시 도넛을 먹고 싶어 할 줄 알았지. 하나가 아닌 여러 개를 사는 나의 선견지명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메건은 누워 있는 상태로 복숭아 하나와 도넛 두 개를 먹었다.
“그거 다 먹고 이거 한번 해 볼래요?”
“그게 뭔데요? 임신 진단기?!”
뜬금없이 들이민 임신 진단기에 메건의 표정은 경악에 물들었다.
갑자기 아무런 말도 없이 나갔다 온다고 하더니 임신 진단기를 사 왔으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누나가 태몽을 꿨대요. 그런데 나는 그게 아무래도 우리 이야기 같거든.”
“무슨 꿈이었는데요…?”
나는 자리에 누워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메건에게 누나가 말해 주었던 태몽을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니까, 그 꿈이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는 꿈이다…?”
“좀 이상한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믿거든요.”
서구권에서는 태몽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애초에 꿈 풀이 같은 것도 한국에서나 하는 일이니까.
그렇지만 메건은 열심히 설명하는 나의 말에 감동을 한 것인지 아니면 미신을 신봉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내민 임신 진단기를 들고 화장실을 향했다.
“집의 온도를 높일까요? 임신을 했을 경우 따뜻한 환경이 좋다고 합니다.”
“아이씨, 깜짝이야. 진짜 어디에서 나오는 거예요.”
여름이 다 되어가는 마당에 집의 온도를 높이겠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아서가 더 놀랍다.
“일단 2~3도 정도 높여 놓도록 하겠습니다.”
“아서! 아서!”
아서는 혼자서 결론을 내리고 목이 터져라 부르는 나의 말에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대체 뭐 하는 노친네야.
게다가 내가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결론을 내고 가 버리는 건 무슨 경우람.
-꺄아아아아아아!
아서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화장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 왔다.
“뭐야?!”
나는 깜짝 놀라 먹던 도넛을 내려놓으며 화장실로 달렸다.
벌컥-
“무슨 일이에요!”
“나….”
“메건? 왜 그래요?”
“나…. 엄마가 되나 봐요….”
메건은 그 예쁜 얼굴을 눈물과 콧물이 뒤덮은 모습으로 손에 쥔 진단기를 나에게 내밀었다.
선명하게 그어진 두 개의 줄이 눈에 들어온다.
“내, 내가 하나 더 사 왔거든요. 혹시 몰라서? 그것도 한번 해 볼래요?”
“네…!”
나는 거실에 놓아두었던 봉투 안에 들어 있는 임신 진단기를 가져와 메건에게 내밀었다. 메건은 떨리는 손으로 박스를 열어 임신 진단기를 꺼내더니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안 나가요?”
“아…?”
“안 나가냐구요.”
“아…!”
화장실에서 밀려 나오는 순간에도 가슴이 떨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바뀌며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누나에게 전화를 받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긴가민가했었는데, 확정이 되어 버렸다.
내가…. 아빠가 된다고…?
쏴아아-
메건이 들어가 있는 화장실에서는 처음 크게 소리를 질렀던 것과는 다르게, 물이 내려가는 소리밖에 들려 오질 않았다.
딸깍-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와서 고개를 들었더니 활짝 웃는 메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하하하. 지금 나 못생겼죠?”
“아뇨. 너무너무 예뻐요.”
눈물과 콧물 자국을 지우기 위해 세수를 하고 나온 듯한 메건. 나는 퉁퉁 부어 있는 눈과 빨갛게 익어 있는 볼까지도 사랑스러웠다.
양손으로 들어 올린 두 개의 임신 진단기가 모두 두 개의 줄이 그어져 있는 모습에 드디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어머니께 전화 드려야겠네요.”
“아…. 나도 알버트 경에게 전화해야겠어요.”
우리 둘은 홀린 듯 거실로 돌아가 소파에 앉았다.
털썩-
평소에는 항상 곧은 자세로 앉아 있던 메건이 나의 다리에 머리를 대며 누웠다.
나는 그런 메건의 얼굴에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한 손으로는 휴대폰의 연락처에서 알버트의 이름을 눌렀다.
뚜루루루-
길게 이어지는 신호음이 귓속을 파고드는 것처럼 울렸다.
[늦은 밤에 무슨 일이십니까, 이정현 경.]“알버트 경. 아니 할아버님.”
[허허. 그냥 이름을 불러 주시는 게 편….]“메건이 아이를 가졌습니다.”
고위 귀족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을 끊는 무례함을 저질렀지만, 그런 것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메건의 집은 대대로 손이 귀한 집안이었기에, 우리 어머니인 김지숙 여사처럼 대놓고 아이를 원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도 얼마나 기다렸을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화기에서는 아무런 말도 들려 오지 않았다. 숨도 쉬지 않고 있는지 숨소리조차 들리질 않는다.
나는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괜찮으세요?”
[헉! 컥컥! 제가 지금 그곳으로 가겠습니다.]처음 들어 보는 알버트의 격한 목소리가 들려 오고 전화가 끊어졌다.
그때 내 다리에 누워 있던 메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여보세요?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도 오신대요?”
“네….”
“알버트 경도 오실 거예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고 다음은 감격스러웠는데, 지금은 멍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메건이 켜 놓은 TV 소리가 다른 세계에서 들려 오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투타타타타타타-
이게 무슨 소리야.
멀리서 들려 오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에 정신이 들어 TV를 봤더니, 토크쇼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벌써 토크쇼를 할 시간이 된 건가.
어느새 나의 다리를 베고 잠든 메건을 깨웠다.
“메건, 올라가서 자요.”
“우웅….”
올라가서 자라는 말에 메건은 몸을 움츠리며 나에게 파고들었다. 이거 각도가 조금 이상한데…. 누가 보면 오해라도 하겠어.
쿠콰콰콰콰-
드드드드드-
멀리서 들려 오던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집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TV 뒤 창문으로 보이는 정원 한가운데에 헬기가 내려왔다.
아, 헬기 소리였구나. 난 또 지진이라도 난 줄 알았지 뭐야.
헬기? 갑자기 헬기가 왜 우리 집에…?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머리칼을 휘날리며 집을 향해 달려왔다. 어찌나 빠른지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이 순식간에 뒤처졌다.
남자는 정원 한가운데에서 순식간에 거실과 연결된 문 앞까지 다가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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