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93
192화
쿵쿵쿵쿵쿵-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소리만 들려 오는 게 기분이 묘하다.
메건이 내 다리를 베고 잠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움직일 수가 없으니, 조금 무서운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테러인가?
아니다. 테러였다면 경호원들이 나서서 저지를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집 마당에 헬기를 타고 들어올 수 있을 만한 사람은 딱히 기억나질 않는다.
있다면 알버트 정도…?
“메건, 메건! 일어나요!”
“아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를 끌어안고 있지는 않았기에 머리만 살짝 내려놓으면 벗어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나의 몸통을 베개를 끌어안듯이 양손으로 안은 상태라 벗어날 수가 없다.
흔들어 보아도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메건.
깊게 잠들었는지 이름을 부르고 흔들어 보아도 일어나질 않는다.
쿵쿵쿵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조금 더 격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험험.”
아서가 헛기침을 하며 등장했다.
평소 같으면 이런 신호는 절대로 주지 않았을 텐데, 메건이 홑몸이 아니라고 지금 차별하는 건가?
억울하긴 하지만 상황이 급박하니 일단 메건을 떼어 놓는 것에 집중했다.
팔은 얇은데 왜 이렇게 힘이 센 거야. 내 등 뒤에 깍지를 끼듯 잡은 두 손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전거만 타지 말고 근육 운동도 하는 건데….
절체절명.
빨리 떼 내야 한다.
그렇지만 메건은 내가 떼 내려 하면 할수록 더욱 파고들어 왔다. 코에서 나오는 뜨거운 숨이 나의 배를 간지럽힌다. 아악! 바지 속에 숨 불어넣지 말라고!
평소 같으면 절대로 거부하지 못할 테지만, 지금은 평소와 다르다. 불과 조금 전에 임신 진단에서 양성 반응을 보지 않았던가.
최대한 조심해야 하는 시기라는 걸 어딘가에서 본 적이, 아니지. 지금은 조심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다.
바로 옆에 아서가 있잖아!
나와 메건이 아웅다웅하고 있는 모습을 지나쳐, 거실을 그대로 가로지른 아서는 벽에 살짝 가려진 곳에 있는 정원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 주었다.
아저씨 누구인지 확인은 하고 열어 줘야지 그냥 그렇게 열어 주면….
“메건!”
“어서 오십시오.”
“메건…. 메건은 어디 있습니까.”
“거실에 이정현 경과 함께 계십니다.”
잠깐. 이 목소리 어디선가 들어 봤는데…? 어디서 들어 봤더라….
익숙한 목소리였다. 문제는 너무 흥분한 상태라는 점….
“하악! 하악! 회의를 하다가 갑자기 뛰쳐나가면 어떻게 하느냐 다니엘….”
한참 뒤에 뒤처져 있던 남자가 먼저 들어온 남자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장인어른… 과 알버트.
메건은 주위가 시끄럽다고 판단한 것인지 나에게 더 파고들었다. 아앗! 안 돼! 그 이상은 위험하다고!
“메건!”
거실로 들어온 장인어른의 목소리가 거칠게 메건을 찾았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뒤따라 들어온 알버트가 장인어른의 뒤에서 나와 메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
“…….”
“자, 장인어른, 알버트 경 이건….”
네 명의 남자는 거실에서 눈만 끔벅거리며 서로를 마주 보았다.
누가 말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닌데, 어색한 분위기에 입을 열 수가 없다.
“험험. 차를 준비해 드릴까요?”
하지만 아서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얼어붙은 듯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럼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배신자.
조금이라도 이 오해를 해소해 주고 가야 할 아서가 혼자서 자문자답을 하더니 거실에서 빠져나갔다.
이제는 거실에 나를 포함한 세 명의 남자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귓가에 흘러내리는 땀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렇게 흘러내리는 땀과는 다르게 몸은 싸늘하다. 나를 바라보는 두 남자의 시선이 싸늘한 것이다.
유일하게 뜨거운 느낌이 드는 배와 아랫도리는 오히려 차가워지기를 바랐지만, 메건의 뜨거운 입김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구요. 지금 메건이 자고 있어서 깨울 수가….”
“…….”
나의 유창한 변명에도 두 남자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평소 같으면 나와 농담 따먹기라도 할 아서까지 차갑게 바라보니, 나의 입은 얼어붙은 듯 도무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기….”
“우웅…. 뭐야….”
잠에서 깨어난 메건이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눈을 비비자, 두 남자의 싸늘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메건에게 다가와 앉으며 말했다.
“오오, 메건….”
“아빠? 할아버님?”
“…….”
억울하다. 일어날 거면 조금만 더 빨리 일어나지. 나 혼자 저 둘의 차가운 눈빛을 받아 내야 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버트와 다니엘은 메건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에휴….”
얕은 한숨을 내쉬던 그때, 복도를 걸어오는 가벼운 발걸음이 들려 왔다. 아서의 발소리겠지?
이렇게 평소에도 발소리를 내면서 걸어 다녔으면 좋겠는데, 왜 평소에는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 걸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않다.
지금 나의 역할은 토템.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
“따듯한 차를 준비했습니다. 사모님은 카페인이 들어 있지 않은 핫초코입니다.”
거실의 분위기가 좋아지자마자 배신자 아서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본인이 항상 사용하던 트롤리 카트가 아니라 쟁반을 들고 온 것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나는 할 수 있는 최대한 차가운 눈빛을 날려 보았지만, 아서는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유유히 거실을 빠져나갔다.
아오! 진짜 언젠가 복수할 거야!
“달다….”
“하하하. 메건, 뭐 먹고 싶은 것은 없느냐.”
“엄마는 내일 오전에 오기로 했다. 아니면 네가 랭커스터로 갈래?”
“아뇨. 어머님도 오시기로 하셔서 여기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알버트는 평소와 다른 만화 속 산타클로스 같은 말투로 메건에게 말했다.
다니엘이 저렇게 길게 말하는 것도 처음 보았다. 결혼식에서도 저렇게 길게 말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예쁜 메건과 미중년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나는 대화에 안 끼워 주는가.
메건의 옆에 앉아 있는 나에게는 아무도 신경을 써 주지 않았다. 인생은 외로운 거구나.
나는 테이블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앗 뜨거!”
***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의사가 집으로 왔다.
영국은 병원에서 진료를 보려면 한국의 보건소와 같은 GP라는 곳에서 진료 신청을 먼저 한 뒤, 진단을 받고 나서 병원에 들어갈 수가 있었기에 왕진하는 의사가 많은 편이었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왕진은 예약이 따로 필요하지 않으니까.
책상 테이블만 한 초음파 기기로 메건의 배를 문지르던 의사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호호. 예쁜 공주님이네요.”
“하하하. 메건을 닮았으면 좋겠네요.”
영국에서는 성별을 알려 주는 것이 불법이 아니었기에 걸 그룹이네 보이 그룹이네 하며 돌려 말하지 않았지만, 메건을 닮았으면 좋겠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메건은 세상의 누구보다 예뻐 보였으니 말이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는 메건의 손을 잡아 주었다.
“현아, 이름은 정했니?”
“아뇨. 임신한 것도 어제 알았는데요. 미리 준비할 틈이 없었죠.”
“누나들한테 물어볼까? 아! 내 정신 좀 봐. 애들한테 말을 안 하고 그냥 왔네.”
“…아….”
그제서야 작은 누나에게 말을 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태몽까지 대신 꿔 줬는데 미안하네.
그렇지만 지금은 전화를 할 수가 없다. 휴대폰을 어디에 두었는지도 까먹었고, 내 손을 붙잡고 있는 메건이 손에 힘을 꽉 준 채로 잠이 들어서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어제 전화를 하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오셨는지 새벽에 집으로 찾아오신 어머니는 이름부터 정해야 한다며 수선을 떨었다.
침대를 둘러싸고 있던 양가 부모님들은 흐뭇한 표정으로 메건을 한참 동안이나 잠들 때까지 바라보다, 나와 메건을 내버려 두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고마워요.”
얼굴에 올라온 머리칼을 쓸어넘겨 주며 말하자, 메건은 뒤척이며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처음 만났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할 무방비한 모습에 가벼운 웃음이 나왔다.
마치 내 손을 잡는 것에 모든 힘을 쏟고 있는 듯 조금씩 피가 안 통하는 것 같이 저려 왔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를 아버지로 만들어 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내 아이의 어머니가 될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메건의 손을 잡은 채로 침대에 엎드린 채 잠을 청했다.
***
“이 가위를 들고 여기 가운데를 잘라 주시면 됩니다.”
“아, 네….”
아이의 배꼽에 연결된 기다란 탯줄이 메건의 몸과 연결되어 있는 광경에 나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보호자분. 괜찮아요. 그냥 자르시면 돼요.”
말은 쉽지. 어떻게 살덩어리를 자르냐고.
분만실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쉽지 않다.
애초에 아이를 낳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 봤는데, 탯줄까지 자르라고 하니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가위로 탯줄을 자르는 느낌은 종이를 자르는 것과는 달랐다. 의료용 가위는 몹시 날카롭다는 생각에 가위를 오므려 보았지만 쉽게 잘려 나가지는 않았다.
어머니와 태아의 굳건한 결속을 그리 쉽게 잘라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슥-
“잘하셨어요.”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에 간호사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웃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몇 번의 가위질을 했기에 단면이 그리 깨끗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성공할 수 있었다.
“이름은 정하셨어요? 태그에 빠르게 입력해야 신생아실에서 다른 아이와 바뀌는 사고가 나질 않거든요.”
이름 짓는 센스는 나만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 아이들 이름은 모두 애 아빠가 지어서….
나를 비롯해 누나 둘까지, 아이를 셋이나 낳은 어머니 김지숙 여사도.
– 다니엘과 메건 둘 다 떠나 버린 제 와이프가 지어 준 거라….
증조할아버지가 되어 버린 알버트도 네이밍 센스라고는 1도 없었다. 물론 나도 없지만.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임신 3개월 차에 알게 되고, 나머지 일곱 달 동안 생각한 이름들은 모두 메건에게 퇴짜를 맞았다.
“겨울, 아니 윈터입니다.”
“네, 윈터.”
간호사는 검은색 펜으로 네임 태그에 휘갈겨 쓰더니 아이의 발목에 감아 주었다.
한국명 이겨울. 영국명 윈터 랭커스터-리.
아이의 엄마인 메건이 지어 준 이름.
단순하게 태어난 것이 겨울인 1월이었기 때문이었지만, 다른 가족들은 모두 침묵했다.
그 단순한 이름조차도 생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으앙으앙-
크게 울음을 터뜨린 겨울이는 간호사의 손에 모포 같은 것으로 몸이 감겼고, 잠시 뒤 메건의 품에 안겼다.
“겨울아, 엄마야. 우리 겨울이 너무 예쁘네….”
10시간이 넘는 진통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제왕절개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메건은, 자신의 몸이 힘든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간호사는 엄마와 인사를 마친 아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고생했어요. 고마워요, 메건.”
“하하하. 앞으로 고생 좀 해야 할 거예요. 내가 아니라 자기를 닮은 것 같으니까.”
태어난 지 5분도 안 됐는데 누굴 닮았는지 어떻게 알아. 그렇지만 분만을 마치고 누워 있는 메건을 향해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 뒤 몇 주간의 산후조리를 마치고 집에 들어왔을 때,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우- 아- 으-”
“와~ 우리 겨울이 노래 잘하네~? 엄마 노래도 따라 불러 볼까?”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설마 메건이 나를 닮았다고 했던 말이 이런 의미였나…?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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