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94
193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메건과 거실에서 놀면서 겨울이의 입에서 나온 것은 분명 멜로디였다. 그것도 높낮이가 확실한.
아직 옹알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은커녕 단어도 모르는 아이가 노래를 부른 것이다.
“하하하. 확실히 이정현 경의 아이인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저렇게 노래를 하는 걸 보면 말이죠.”
“…….”
알버트의 말에 뭐라고 대답할 기운도 없다. 겨울이의 입에서 나온 것에 가장 놀랐던 것이 바로 나일 테니 말이다.
“아니에요 사돈 어르신. 우리 현이가 노래를 부른 건 변성기가 끝나갈 무렵부터거든요. 겨울이가 훨씬 빠르죠! 호호호.”
“오오…. 그러면 아빠보다 더 뛰어난 음악가가 될 수 있겠군요!”
어머니의 말에 알버트가 박수를 치며 더 크게 기뻐했다.
저 고슴도치들 같으니. 부모들은 다들 자신의 아이들이 천재라고 생각한다는데, 우리 집은 할머니와 증조할아버지가 저런 말을 하고 있다.
이 양반들은 한 달째 내 집에서 머무르고 있다. 프리랜서 동화 그림 작가인 어머니는 그렇다 치고, 알버트는 정보부를 이끈다는 양반이 하루 종일 아이에게 까꿍만 외쳐 대니 내가 겨울이를 만질 수가 없다.
장인어른인 다니엘도 남아 있고 싶어 했지만, 안타깝게도 알버트가 출장을 보내버려 눈물을 흘리며 떠나갔다. 그 차가워 보이는 양반이 눈물을 흘릴 줄은….
다른 건 아무래도 좋은데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분명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음악 소리를 듣는 거라면, 무조건 불면증에 시달리게 될 테니까.
아이들은 무조건 잘 자야 한다고 들었는데 혹시라도 잠을 못 자면 어떡하지는 개뿔, 너무 잘 잔다.
“겨울이 잠들었는데, 담요 좀 가져다줄래요?”
“네.”
고양이도 아니고 하루에 20시간은 잠들어 있는 것 같다. 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다른 아이들은 두 시간마다 깨서 밥 달라고 칭얼댄다는데, 겨울이는 겨울잠을 자듯 한번 잠들면 네다섯 시간을 잤다.
하루는 너무 잘 자는 겨울이를 걱정했던 메건이 병원에 데려갔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상입니다. 잠을 자는 것은 아이들마다 편차가 있으니까요.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루에 스무 시간 가까이 자는데요…?”
“…보통보다는 조금 많이 자기는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 겁니다. 하하하….”
의사의 목소리에 불안함이 묻어나왔다.
***
2년이 지나 겨울이가 두 살이 되었을 무렵 로미오와 줄리엣은 국립 극장을 벗어나 전용 극장을 만들었다.
“인기가 꽤 많은가 보네. 전용 극장도 만들고.”
“인끼가 모에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야. 저기 예쁜 언니를 사람들이 엄청나게 좋아하는 걸 인기가 많다 라고 하는 거지.”
“사람들이 왜 조아해여?”
“…….”
입이 너무 빨리 트인 겨울이가 자신의 지정석인 소파의 내 옆자리에 앉아서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한번 하면 끝장을 보는 이 질문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질문 공세가 멈출 때까지 대답을 해 주어야 했다.
만약에 대답을 해 주지 않으면 해 줄 때까지 따라붙으니까.
“대답 성실하게 해 주세요.”
“네에….”
게다가 대충해 주고 돌아서려고 하면 어느 틈에 메건이 다가와 나에게 대답을 해 주라고 말을 한다.
이럴 거면 메건에게 물어보면 좋을 텐데, 이상하게 겨울이가 질문을 하는 대상은 나뿐이다.
메건이나 아서, 김지숙 여사나 알버트에게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때 아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어야 했다.
***
겨울이가 네 살이 되던 해.
“겨울이 귀가 이상해요.”
“귀? 왜? 무슨 일 있어?”
가을이의 연갈색 눈에서 눈물이 통통한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에게 다가오며 울먹이는 겨울이. 이런 모습을 처음 보았기에 나와 메건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신생아 때부터 너무 울지 않아서 걱정을 할 정도였던 아이가 울먹이는 것을 보는 것은 신기한 것이 아니라 경악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 겨울이 괴로워요.”
“병원에 가 보자!”
병원에 가 보자고 호들갑을 떠는 메건과 울상을 지은 겨울이.
겨울이는 귀를 얼마나 만져 댔는지 빨갛게 부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손톱으로 긁어 댔는지 자그마한 상처들도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겨울이가 나와 같다는 걸.
“메건. 내가 알아서 할게요. 병원에 갈 일 아니에요.”
“네에? 애가 아프다는데 병원에 갈 일이 아니라뇨!”
“아프다고 한 적 없잖아요. 이상하다고 했지.”
“아…?”
아마 세상에서 저것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일 거다. 저 일을 경험해 본 사람이 나뿐이니 말이다.
나는 겨울이와 메건의 손을 잡고 작업실을 향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거의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작업실.
그렇지만 아서가 관리를 잘해 준 덕인지 작업용 컴퓨터나 신시사이저, 스피커에 먼지가 쌓여 있지는 않았다.
“겨울아. 귀에서 들려 오는 소리들을 이 컴퓨터로 내보내면 되는 거야. 그러면 더 이상 안 들릴 거고, 겨울이가 괴로워할 일도 없어지는 거지.”
“우….”
“아빠가 어떻게 다루는지 가르쳐 줄게. 알았지?”
“네에….”
나는 컴퓨터의 전원을 올렸다.
오랜만에 바라보는 로직을 켜고 마우스로 이것저것 눌러 보며 설명을 해 주었다. 가끔은 신시사이저를 쳐 주기도 했다.
겨울이는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와 자신이 같다는 것을.
아이들은 민감하니까.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걸.
두 살 무렵에 나에게만 질문을 하던 그때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너무 늦게 알아채고 말았다.
만약에 조금 더 일찍 알게 되었더라면, 겨울이가 자신의 귀에 상처를 내 빨갛게 붓게 되는 일도 없었겠지.
내가 너무 늦게 눈치를 채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외면하려고 했던 걸지도 모른다. 이 아이에게 재능이 있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시달림을 당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다 자랄 때까지는 내가 지켜 주어야 한다.
나는 작은 손으로 신시사이저의 건반을 눌러 보는 겨울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결심했다.
“이제 겨울이가 해 볼게요!”
“아, 응. 벌써?”
나는 자신감 있게 말하는 겨울이를 바라보며, 의자에서 내려와 자리를 내주었다.
작은 몸으로 마우스를 클릭하며 이것저것 시도하는 겨울이. 아직은 익숙해지지 않았기에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간간이 신시사이저에도 손을 올리며 작업 속도를 올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다 됐다!”
“다 됐으면 아빠랑 한번 들어 볼까? 겨울이가 만든 걸 들어 보려면 여기 이 버튼을 누르면 돼. 쉽지?”
“네!”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재생 버튼을 겨울이의 작은 손이 얹어진 마우스가 움직이며 누르자 연주가 시작되었다.
발랄하고 깜찍한 외모인 겨울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웅장한 도입부.
웅장한 일렉트릭 베이스 위에 피아노의 멜로디가 겹쳐지자, 두 개의 악기는 화음이 되어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왔다.
콘트라베이스가 아닌 일렉 베이스를 사용한 것은 악기의 종류를 잘 모르기 때문이리라.
피식-
내가 듣기에는 한없이 어설픈 음악이었다.
퍼커션 계열의 리듬 악기나 관악기가 전혀 쓰이지 않은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조금 더 완성도 있게 만들려면 이 곡은 교향곡이 되어야 했다.
그렇지만 단순하게 하나나 두 개의 악기가 아닌 일곱 개의 악기를 사용해서 화음을 만드는 것은 아이가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볼 수 없었다.
모차르트가 네 살에 첫 교향곡을 만들었다고 했던가.
어쩌면 겨울이도 곧 교향곡을 만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악기 종류부터 가르쳐 주어야겠지만.
뒤에서 누군가가 껴안는 느낌에 정신을 차려 고개를 돌려 보니, 메건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자기 딸이 맞긴 한가 봐요….”
“내가 낳은 게 아니라 메건이 낳은 거라구요.”
“이번 주말에 런던 필하모닉 공연 보러 갈래요?”
“이렇게 갑자기요…?”
겨울이가 태어난 뒤에 외출을 하는 일이 많이 없었기에, 조금은 갑작스럽지 않나 싶은 마음이었다.
“악기들을 보여 줘야죠. 그래야 더 자유롭게 표현할 것 아니에요.”
“…….”
아이가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저 현상이 더욱 강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가장 심할 때는 집의 초인종 소리만 들어도 음악이 만들어진다.
그걸 겪어 보지 못한 메건은 겨울이에게 더 많은 악기들을 들려 주자 말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반대의 입장인데, 차마 말을 할 수가 없다.
“이제 겨울이 이상한 소리 안 들려요!”
“그으래~? 이번 주말에 엄마랑 아빠랑 겨울이랑 같이 큰 극장에 음악 들으러 갈까?”
“네에!”
너무나도 밝게 웃는 겨울이의 표정 때문이었다.
***
“이정현 경. 오랜만에 외출을 하셨는데, 그간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별일 없었습니다. 육아하느라 정신이 없었죠.”
“새로운 곡을 발표하지 않으신 지 4년이 넘었는데, 작업에 진전은 있으셨는지요?”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아이를 보면 정신이 없지 않습니까? 질문도 끊임없이 해서 답변해 주느라 바빴습니다.”
““하하하하!””
런던 필하모닉의 공연을 보기 위해 오랜만에 방문한 사우스뱅크 센터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혹시라도 겨울이의 얼굴이 외부에 알려질까 걱정되었던 나는 조심스럽게 인터뷰에 응하며 메건과 겨울이를 안으로 먼저 들여보냈다.
평소 같으면 인터뷰 자체를 거부하거나 무시했을 테지만, 내가 그렇게 행동하면 아이와 함께 움직이는 사진이 찍혀 나와 얼굴이 알려질 가능성이 있어 조심스러웠다.
“다음 작업을 런던 필하모닉과 하시는 겁니까? 알려지기로는 빈 필하모닉이라고 들었었는데 말이죠.”
“오늘은 그저 기분 전환을 하러 나온 겁니다. 매일 집 안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 안사람은 그렇지 않거든요.”
기자들이 몰려든 것치고는 꽤 수수한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들만 들려 온다면 대답하기 편할 테지.
그때 내 심기를 거스르는 질문이 들려왔다.
“따님이 이정현 경만큼 음악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 딸에 대한 것은 노 코멘트하겠습니다. 질문은 저에게 한정된 것만 해 주시면 좋겠는데 말이죠.”
기분 좋게 대답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적어도 겨울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으니까.
한번 살짝 엄포를 놓았더니 그 뒤로는 한참 동안 나에 대한 질문을 해왔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음원 수익이라든지 실제로 녹음한 사람이 누구냐 같은 일반적인 질문들.
“더 이상 질문 없으시면 저는 이만 공연을 보러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적당히 대답을 한 뒤 런던 필하모닉의 공연이 이뤄질 로얄 페스티벌 홀로 향했다.
객석에 미리 앉아 있던 메건과 겨울이는 무릎 위에 놓인 공연 정보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엄마. 여기 이건 뭐예요?”
“그건 피콜로.”
“이건요?”
“비올라.”
내가 없어서인지 폭풍 질문의 대상이 메건이라는 것은 참 다행이었지만, 겨울이가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겨울이의 타깃은 언제나 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빠! 겨울이가 또 다른 소리가 들려요. 이것도 컴퓨터에 넣으면 없어져요?”
“하하하. 그래 없어질 거야.”
“얼른 집에 가고 싶다….”
“공연을 보면 집에 갈 거야. 그러니까 여기에서 두 시간만 딱 이렇게 앉아 있자?”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교향악단의 공연을 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일 수가 없으니까.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가 두 시간 동안 한자리에 앉아서 공연을 본다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지.
그렇지만 공연이 시작했을 때, 내가 했던 걱정은 정말 말 그대로 기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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