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95
194화
오보에의 소리가 페스티벌 홀 안에 울려 퍼진다.
그 소리가 들려 온 뒤에 따라 나오는 각종 악기들의 튜닝 소리.
오랜만에 들어 보는 느낌이다.
이제는 내 머릿속에서 쉽게 음악이 흘러나오지는 않으니 말이다. 지난 4년 사이에 떠올랐던 멜로디는 정신이 없어 무시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케스트라의 소리는 정말이지 오래된 과거에 들어 보았던 것 같았다.
“흐에에에….”
한참 동안이나 팸플릿을 들고 악기들을 질문하던 겨울이.
지금은 자리에 앉아 들려 오는 소리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그 소리는 금방 그쳤다.
“지금 저거는 뭐 하는 거예요?”
“튜닝을 하는 거야. 악기에 쓰이는 현을 팽팽하게 해서 소리를 연주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거지.”
어려운 단어를 최대한 쓰지 않으려 했지만, 안 쓰기가 어렵다. 쉬운 단어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아이와 대화하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다.
튜닝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학생들이 공연을 하는 것이었다면, 한참 동안 튜닝을 했겠지만 여기는 교향악단이니까.
오보에의 소리를 기준으로 순식간에 튜닝이 이루어진다.
오리들이 꽥꽥거리다 잠잠해진 것처럼 한순간에 정적에 휩싸인다.
그때 무대 위로 올라오는 남자. 내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최근에 지휘자가 한 번 더 바뀐 모양이었다.
남자는 지휘용 단상에 올라가기 전에 객석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짝짝짝짝-
객석에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가 들려 온 다음 남자는 단상에 올라가 단원들을 마주 본 뒤 양손을 올렸다.
오른손에 들린 지휘봉을 두 손가락으로 잡고 있는 것을 보면 굉장히 가벼운 재질로 만든 듯했다.
취향이기는 하지만 길게는 두 시간 가까이 단상에서 팔을 휘둘러야 하니 무거운 것으로 만드는 지휘자는 거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손가락 두 개만으로 잡을 수 있는 지휘봉을 사용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손으로 감싸듯 쥔 다음 지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니 말이다.
남자의 손이 천천히 내려온다.
호른과 트럼펫으로 작게 시작하는 소리.
프로그램 팸플릿을 읽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차이코프스키의 서곡 1812라는 것을.
웃기게도 러시아 사람인 차이코프스키가 만들었지만 영국에서 자주 연주가 되는 곡이다. 프랑스가 전쟁에서 대패한 것을 기념해서 만든 곡이었으니까.
지금까지도 프랑스와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은 영국이었기에, 런던 필하모닉에서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자주 연주하는 편이었다.
말이 달려 나가듯 모든 악기들의 소리가 폭풍처럼 지나가고, 오보에의 소리가 영원히 반복되는 것처럼 들려 오기 시작한다.
음악에 너무 심취해 있었던 걸까. 옆자리에 앉은 겨울이가 신경 쓰여 고개를 돌려 보았다.
작은 몸을 의자 깊숙이 놓은 채로 멍하니 무대를 바라보는 겨울이.
그제서야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공연을 하는 중에 칭얼거리기라도 할까 싶어 걱정이 되었었으니 말이다.
메건은 괜찮다고 아이들은 모두 그러면서 크는 거라 말을 했지만, 공연 중에 울거나 나가고 싶다고 떼를 쓰면 다른 관객들에게 피해를 주는 거니까.
그때 반복되던 오보에 소리 위에 플루트가 겹쳐진다. 어느새인가 작게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올라오더니 모든 현악기가 활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현악기 소리가 겹쳐지니 분위기가 고조된다. 타악기들까지 격렬하게 울려 퍼졌다.
찰나의 순간 모든 관악기가 멈추고 현악기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학!”
옆에 앉은 겨울이의 숨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깜짝 놀라 겨울이를 바라보았더니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무래도 하이라이트 파트에서 숨을 참고 있었나 보다. 등받이에서 등을 뗀 뒤 토닥여 주었다.
전쟁에서 이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기에, 하이라이트 파트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것이 특징이지만 아이에게는 숨 막힐 정도로 긴박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다행히 16분은 금세 지나갔다.
곡과 곡 사이에 이어지는 짧은 인터미션에 나는 겨울이에게 물어보았다.
“겨울아 괜찮았어? 힘들면 집에 갈까?”
“…겨울이 괜찮아요. 집에 안 갈 거예요.”
나는 의외의 대답에 적지 않게 놀랐다.
지금까지 고집이라고는 단 한 번도 부려 본 적이 없는 겨울이의 말투가 아니었다. 이렇게 단호한 말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대화를 할 때 나를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은 채, 무대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이 콘서트가 겨울이를 그렇게 자극했을 줄이야….
***
“겨울아 안 돼. 밥 먹고 해야지.”
“겨울아 안 돼. 이제는 자야 돼.”
최근에 내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다.
겨울이는 내가 하지 말라는 말을 할 때마다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히잉…. 겨울이 더 하고 시픈데….”
울먹거리며 떼를 쓰는 모습에 이게 말로만 듣던 미운 네 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런던 필하모닉의 콘서트에 다녀온 뒤에 작업실 컴퓨터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많은 음악이 떠오르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겨울이의 머릿속에는 온통 음악 생각밖에 없는 듯했다.
컴퓨터로 교향곡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나기 전에 하드 디스크 용량이 부족해서 지금까지 만든 것을 새로 산 외장 하드에 백업하며 용량을 비워 주어야 할 정도로 작업물이 늘어났다.
“하아…. 지친다….”
여느 때처럼 작업실에 더 있고 싶다고 떼를 쓰는 겨울이를 방에서 재우고 나와, 나도 모르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나와 메건이 사용하는 방과 가까운 방을 사용하는 겨울이었기에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어도 괜찮았을 테지만, 매일매일 칭얼대는 빈도가 심해지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 뭐 해요?”
“그냥 좀 앉아 있었어요.”
평소처럼 의자나 침대도 아니고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 복도에 앉아 있는 것이 이상했는지 메건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거 알아요?”
“네?”
“겨울이가 자기와 나에게 물어보는 게 다르다는 거.”
“알죠.”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라서 다른 아이들과 비교를 해 볼 수는 없지만, 겨울이는 잠시라도 질문을 하지 않을 때가 없었으니까.
메건에게는 지나다니는 나비나 고양이 혹은 여우 같은 것을 보면 질문을 했고, 나머지 시간들에는 거의 나에게 물어보았다.
대부분의 것들은 음악에 관련된 것.
‘왜 저기에서는 바이올린을 켜는 거예요?’
‘왜 첼로 소리가 베이스 소리보다 얇아요?’
겨울이는 조금이라도 궁금한 것이 생기면 나에게 달려와 물어보기 시작했고, 나는 그게 살짝 걱정이 되었다.
한국 나이로 다섯 살인 지금, 여섯 살이 되는 내년이면 유치원에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학교에서 아이의 질문에 선생님이 답해 주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싶은 마음.
다른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것과 대상이 완전히 다를 테니 말이다.
“난 그게 가끔은 부러울 때도 있어요.”
“뭐가 부러워요?”
“진짜 알고 싶은 것들은 나에게 물어보지 않거든요.”
“…….”
나에게는 귀찮은 것이었지만, 메건에게는 부러움이었었나.
우리 둘은 복도에 앉아 겨울이의 방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얼마 전에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도 음악을 공부했었다고 말했더니, 갑자기 자기한테 물어보는 것처럼 질문을 하더라구요.”
“하하하. 엄청나죠.”
“그런데 대답을 해 줄 수가 없었어요.”
나는 조금 의아했다.
메건은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았던 나와 달리, 기초부터 전문 과정까지 모두 배워 왔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론에 대한 것이라면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나보다 오히려 더 잘 알지 않을까 싶은 사람이었는데, 왜 대답을 못 했을까.
“왜요?”
“화음에 대한 말이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거든요. 내가 배워 왔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엄마와 아빠의 역할이 완벽하게 갈렸네요….”
창가에 등을 대고 앉아 있던 메건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러니까 초보 아빠 티 내지 마시고 들어가서 주무세요. 아침에 일어나면 겨울이가 아빠부터 찾을 테니까.”
***
나는 꿈을 꾸었다.
꿈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가슴팍에도 오지 않았던 겨울이의 키가 메건만큼이나 커져 있었으니 말이다.
‘아빠!’
나를 부르며 달려오는 겨울이의 손을 잡아 주었다.
‘오늘은 뭐 가르쳐 줄 거예요?’
모르겠다 무엇을 가르쳐 주어야 할지. 겨울이가 나와 같다면 다른 사람에게 배울 수 없을 테니까.
나 역시 대부분의 것들을 배우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손을 잡지 않은 겨울이의 왼손에는 작은 악기 가방이 들려 있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작은 사이즈의 바이올린이 들어 있는 듯했다.
아빠는 악기를 다룰 줄 몰라. 그래서 겨울이에게 가르쳐 줄 수 없어.
나의 입에서는 평소에 내가 생각해 왔던 말들이 쏟아진다. 그리고 그 말들을 들은 겨울이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 가기 시작했다.
“…빠!”
푹-
명치 부근을 누군가가 세게 때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쿨럭쿨럭.”
살짝 눈을 떠 보니 어느 틈에 일어난 겨울이가 나의 배 위에 올라타 있었다.
“아빠! 일어나! 잠꾸러기!”
“겨울아 아빠 죽어….”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을 비틀어 침대 옆 협탁에 얹어진 시계를 보니 아침 일곱 시. 평소의 내 기상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이르다.
배 위에 올라탄 겨울이를 가까스로 옆에 내려놓은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멍한 느낌이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메건이 잠들어 있는 침대에서 내려와 겨울이의 손을 잡고 1층으로 내려왔다.
“오…. 오늘은 제가 깨워 드리기 전에 일어나셨군요.”
“좋은 아침이에요, 아서.”
“좋은 아침이에요! 아서!”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하루라고 생각했다. 조금 뒤숭숭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지만, 꿈은 꿈일 뿐이니까.
조금 쌀쌀한 1월이었기에, 정원이 아닌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털썩-
여느 다른 아이들처럼 푹신한 소파에 날아와서 박히듯 올라앉는 겨울이.
“아빠!”
“응?”
나를 부르는 겨울이의 말에 나는 시동이 켜졌다고만 생각했다.
언제나 질문을 하기 전에는 나를 불렀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를 부른다면 꼭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해 주어야 했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마주칠 때까지 아빠를 외쳐 댄다.
끝없는 질문 공세를 받아 내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겨울이 악기 배우고 싶어요!”
“…응? 갑자기? 작업실 컴퓨터로 연주할 수 있잖아.”
어차피 영국은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악기를 선택해 배우게 되어있었기에, 굳이 지금 배우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겨울이가 평생 경쟁에 치여 살아가는 연주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으니까.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평생 노력해야 하는 삶은 너무 비참하다고 생각해왔으니까.
“아니! 그런 거 말고 나무로 된 거! 이렇게 이렇게 연주하고 싶어요!”
겨울이의 입에서 내가 상상도 해 보지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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