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96
195화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가 특별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조금만 뛰어나다고 생각하면 동네방네 천재라고 소문내기 바쁘니까.
하지만 그 아이들 중에 진짜 천재는 몇 되지 않는다. 결국 부모가 낸 소문에 아이들이 상처를 입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단 한 번도 겨울이가 특별하기를 바란 적이 없었다.
“겨울이도 저렇게 하고 싶어요!”
아무것도 없는 작은 두 손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흉내를 낼 때도 그랬다.
“아빠가 한번 알아볼게.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네에! 아빠 최고!”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려면 어차피 악기를 하나 배우긴 해야 한다. 사립 학교가 아닌 일반 공립학교에서도 악기를 배우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니까.
대부분의 학생들은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선택한다.
나는 단순히 ‘관현악단의 연주에서는 피아노를 볼 수 없으니 가장 많이 쓰이는 악기라고 볼 수 있는 바이올린에 매력을 느꼈을 수도 있겠지’라고만 생각했다.
그랬어야 했다.
입문용 바이올린을 사 주고 며칠이 지난 뒤에 사건은 터졌다.
평소처럼 거실에서 바이올린을 가지고 놀던 겨울이가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으아앙 으헝 훌쩍 히잉-”
“겨울아 왜 그래? 어디 아파?”
메건이 회사에 가고 나와 단둘이 남겨진 겨울이는 내 앞에서 한참 동안 깡깡대는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을 들고 고군분투를 하던 중이었다.
“소리가 이상해요…. 흑흑.”
“뭐…?”
“겨울이 꺼 바이올린 소리가 이상해요! 바꿔 주세요!”
아직 연주하는 테크닉이 좋질 않아서 소리가 이상하게 나는 것에 악기 탓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머릿속에서 들려 오는 소리를 자신이 똑같이 낼 수 없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이 들었을 거다.
그 소리는 완벽하니까.
보통 사람은 따라 할 수 없을 거라고 느낄 정도로 완벽한 소리를 이미 알고 있는데, 자신에 손에 있는 악기는 그 소리를 낼 수가 없다는 것.
그 때문인지 악기 탓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악기를 바꾸더라도 똑같을 거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바이올린은 소리를 제대로 내는 것에만 몇 년이 필요한 굉장히 까다로운 악기다.
하다못해 활에 송진을 먹이는 양도 굉장히 까다롭다. 그 양에 따라서 소리가 갈리기도 한다.
게다가 현은 더하다. 동물로 만든 현을 쓰느냐, 다른 것과 섞인 것을 쓰느냐 아니면 금속 현을 쓰느냐에 따라 소리가 다 다르다.
당연하게도 바이올린을 손에 댄 지 겨우 며칠이 지난 겨울이가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우는 아이를 달래기는 해야 한다. 이미 두 눈이 퉁퉁 붓고 콧물까지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티슈를 손에 들고 겨울이의 코에 가져가며 말했다.
“흥 해. 아빠랑 바이올린 사러 가 볼까? 그러면 겨울이한테 맞는 걸 찾을 수도 있잖아.”
“크으응!”
그제서야 겨울이는 미소 짓기 시작했다.
***
정현이 겨울이의 손을 잡고 런던 시내에 나타나 큰 화제를 만들었다.
평소에 집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다고 알려진 정현이 자신의 아이와 함께 길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을 사람들의 휴대폰 카메라가 찍어 SNS를 도배했기 때문이었다.
– 아기 진짜 예쁘다….
– 왜 4년 동안 집 밖에 안 나왔는지 알 것 같아.
미혼인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아이의 외모에 감탄하는 댓글들을 남겼지만, 아이가 있는 기혼자들의 시선은 달랐다.
– 애 보는 게 얼마나 힘들면 집 밖에 한 걸음을 안 나오냐. 지난번 공연장 방문이 4년만인 게 말이 돼?
– 생긴 건 진짜 깜찍하게 생겼는데, 애기들은 울기 시작하면 다 똑같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셀럽들이 그들의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사진들. 곧 정현도 그런 사진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고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아이와 손을 잡고 런던 시내에 있는 한 악기상에 들어갔다 나오는데,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서럽게 우는 겨울이를 정현이 달래 주는 모습이 찍힌 것이다.
수많은 기혼자들은 저럴 줄 알았다면 공감했고, 미혼인 사람들은 그 우는 모습조차도 귀엽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악기상에서 일하던 파트타임 직원에 의해 아이가 울게 된 이유가 밝혀졌다.
물론 겨울이가 울었던 이유는 연주를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 수는 없었다.
***
“흐음…. 이정현 경의 아이를 맡게 된다는 것을 다들 부담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부담스러워서 모두 가정교사를 거절한 거예요? 저는 바이올린을 제대로 켜지도 못하는데….”
오랜만에 왕립 음악원에서 리처드가 찾아왔다. 내가 했던 긴급 요청 때문이었다.
겨울이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 줄 만한 가정교사를 구해 달라는 것. 아주 단순한 것이었지만, 나 때문에 모두 거절했다니.
“간혹 조건을 타진하는 경우는 있었는데, 부모가 참관할 수 없게 해 달라는 조건이었습니다.”
“그건 안 되죠.”
“그렇죠. 아이들이 부모가 없는 환경을 얼마나 불안해하는데 그럴 수는 없으니까요.”
“후우…. 결국 제자리네요.”
악기가 아니라 자신의 손이 문제라는 것을 겨울이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아무리 연습해도 만족을 하지 못한다는 거지.
소리는 전보다 조금 나아진 것 같은데, 그래 봐야 혼자서는 크게 발전하기 어렵다.
자잘한 테크닉이나 주법 같은 것을 혼자서 익혔다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사람들이 연주자로 크게 성공을 하는 일이 없는 것을 보면 독학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명백하다.
리처드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중절모를 머리에 얹었다.
“큰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리처드 경. 저를 위해서 바쁘신 분이 시간을 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나는 현관까지 리처드를 배웅하고, 겨울이의 방으로 가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올렸다.
다른 아이들의 부모들도 이렇게 답답한 마음을 끌어안고 아이들을 대할지 그게 궁금하다.
똑똑-
안에서는 작게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 오지만, 방문에 노크를 해도 반응이 없었다.
대답 없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한창 연습 중인 겨울이가 눈에 들어왔다.
캉-
괜찮다 싶은 연주 중에 끼어드는 음 이탈. 활과 현이 맞닿는 부위가 안정적이지 않을 때 들린다고 알고 있는데, 간간이 그런 소리가 들려 왔다.
현을 짚는 작은 왼손이 빨갛다 못해 피가 배어 나왔고, 울면서 연주를 한 것인지 눈 아래쪽은 하얗게 눈물 자국이 보였다.
나는 이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굳은살 때문에 손가락 끝 감각이 무뎌져서 연주가 안 된다며 굳은살을 제거하던 날이었다.
비록 그는 지금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었지만, 시커멓게 죽은 것 같던 눈이 지금 내가 보는 겨울이의 눈과 똑같았다.
내가 어렸을 적에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내 딸에게서 보인 것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나는 겨울이에게 다가가 품에 안아 주었다. 품 안에 들어오면서도 연주를 하려고 아등바등 움직이는 것이 안타까웠다.
“겨울아.”
“…….”
“바이올린 말고 다른 걸 해 보는 건 어때?”
겨울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대답할 기운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단 밥 먹고 아빠랑 거실에서 뭐 할지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
“네에….”
품속에서 마지못해서 하는 대답이라는 걸 누가 들어도 알 수 있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무림의 고수처럼 식음을 전폐하고 폐관 수련을 하던 겨울이는 그렇게 나의 손에 이끌려 식당으로 내려왔다.
며칠을 굶은 듯 허겁지겁 밥을 먹던 그때, 갑자기 겨울이가 두 손으로 자신의 귀를 막았다.
“흐으으….”
괴로운 듯한 신음이 네 살짜리 꼬맹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울리지 않는 표정으로 귀를 막으며 괴로워하는 얼굴을 보여 주더니, 먹던 그릇을 내팽개치고 식당 밖으로 뛰쳐나갔다.
“겨울아! 겨울아! 밥 다 먹고 아빠랑 거실에 있기로 했잖아!”
통통통통-
내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것인지 그 짧은 다리로 쏜살같이 계단을 올랐다.
“진짜 어떻게 해야 되냐 이거….”
수십 년을 연습해도 닿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그런 경지를 지금 당장 저렇게 연습한다고 되겠냐고.
네 살짜리가 뭘 알겠냐만, 내 아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건 나 역시도 괴롭게 만들었다.
자기들도 작은 아이가 저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서 괴롭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아서를 비롯한 사용인들은 모두 침묵을 지켰다.
“아서.”
“네, 이정현 경.”
“제 전화기 좀 찾아 줄래요?”
정신없이 살다 보니 전화기를 자꾸 어딘가에 두고 다닌다. 원래도 그렇게 잘 챙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내가 어디에 두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였다.
잠시 후 아서가 나의 휴대폰을 가져다주었다. 집 전화기로 전화를 걸어도 상관은 없겠지만,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니 휴대폰이 필요하다.
일단 바이올린 가정교사를 찾아야 하니 알버트에게 한 통. 그리고 걱정하고 있을 메건에게 한 통.
그렇게 두 번의 전화를 하고 나니 진이 빠질 정도였다. 위층에서 겨울이는 아직도 바이올린을 붙잡고 있겠지만, 걱정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
평소처럼 거실의 소파에 늘어지듯 누웠다. 이제 겨우 점심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왜 이리 지치는 건지….
이게 육아 스트레스라고 불리는 것인가?
나는 그대로 소파 위에서 잠들고 싶었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소파에 얼굴을 박고 숨을 들이쉬자, 옅은 가죽 냄새가 느껴졌다.
문득 어렸을 때에도 내가 항상 이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집뿐만이 아니라 수원이네 집에 가서도 똑같았지.
아마 머릿속에서 들려 오는 음악 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겨울이가 양손으로 두 귀를 막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 오랜만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전 기억이 떠올라 푸념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응, 현아.]“잘 지내죠?”
[엄마야 잘 있지. 너는? 겨울이는 좀 어때?]“겨울이가 아빠랑 똑같아요. 곧 있으면 아빠처럼 집 안에 매일 클래식만 틀어 놓을 것 같아. 그 왜 아빠 연습할 때 항상 오디오 틀어 놨었잖아요.”
상상만 해도 싫다. 안 그래도 머릿속에 음악이 들리는데 오디오까지 그 곡들을 연주하면….
나는 베고 있던 쿠션을 빼고 소파의 등받이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왜, 나 어렸을 때 아빠가 맨날 음악 틀어 놨었잖아요. 기억 안 나요?”
[네 아빠가? 그럴 리가 없는데….]“…그럴 리가 없다니, 항상 그랬는데?”
[네 아빠 음악 소리라면 아주 기겁을 했거든…. 엄마가 그림 그릴 때 적적해서 라디오를 한번 틀었다가, 아빠가 귀를 막고 집 밖으로 뛰쳐나간 뒤로는 한 번도 안 틀었었어.]이건 무슨 소리야. 나는 집 안에서 들려 오던 소리에 항상 괴로웠다고.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소리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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