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97
196화
“집 오디오에서 항상 클래식을 틀어 놨었다구요.”
[혹시 아빠 유품 안에 있던 CD를 보고 말하는 거니?]그거 하나를 보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들었던 온갖 음악들은 어떻게 설명이… 되네?
어릴 때부터 항상 음악이 들려 왔으니까.
그런데 그 소리들이 오디오에서 나온 게 아니라고?
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너무 의외의 사실을 알아 버려서 멍해졌다.
어렸을 때 내가 집이 싫었던 이유는 아버지가 항상 음악이 틀어 놓았다는 것 때문이다. 그런데 집에서 음악을 틀었던 적이 없단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필요도 없이 확실한 정보겠지. 어머니가 나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
일단 전화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론으로 들어갔다.
“…일단 겨울이를 바이올린 말고 다른 곳으로 신경을 돌려야 하는데 좋은 방법 없어요? 저러다가 애 영양실조 걸리겠어.”
[엄마가 갈까?]“아니야. 오지 마세요. 지금 애 히스테리 장난 아니니까. 감당 못 하셔.”
[현아, 클래식 말고 다른 걸 들려 줘 봐. 바이올린 안 나오면 다른 거 하고 싶어지겠지. 애들이 다 그렇잖니.]다른 거를 들려 주라는 말은 조금 설득력이 있다. 처음 런던 필하모닉 공연을 보지 않았다면 바이올린을 하고 싶다는 말도 꺼내지 않았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다른 음악들을 들려 주면 된다.
에릭이나 시에스타 같은 애들의 곡을 들려 주면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어서 편해질 수도 있을 거다.
지금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걸 바이올린으로 똑같이 하지 못해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들리는 거잖아?
“예예. 끊을게요.”
[몸 관리 잘하고.]김지숙 여사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아이를 보느라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몸 관리를 잘하라는 말을 했다.
서울에서 제주도 정도만 되었더라도 단숨에 찾아오셨겠지만, 런던은 8,852km 나 떨어진 곳이니까 쉽게 올 수는 없겠지.
전화기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나는 겨울이를 데리러 올라갔다.
방문 너머로 작게 바이올린 소리가 들린다. 문밖에서 들어도 한참 어설플 수밖에 없는 소리.
하루 종일 연습을 한다고 쳐도 아직 아이라는 신체적 한계가 있어서 제대로 된 소리를 만들기는 어렵다. 물론 그걸 겨울이는 알지 못하겠지만 말야.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눈 밑에 눈물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겨울이가 낑낑대며 바이올린을 켜는 모습이 보여 안쓰럽다.
“겨울아.”
“……?”
한창 몰두하는 중에 자신의 이름이 불린 겨울이는 나에게 언제 왔냐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
“아빠랑 놀자.”
“겨울이 이거 해야 하는데….”
“나중에 해도 돼. 그러니까 아빠랑 놀자. 아빠 심심해. 놀아 줄 거지?”
“네에….”
마지못해서 하는 대답이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겨울이는 의욕이 없었다. 마치 바이올린이 아니면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듯한 반응.
겨울이를 안고 거실로 내려와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 주었다.
테이블 위에 놓았던 전화기를 집어 들어 마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사장님.]“혹시 런던에서 우리 애들 공연 언제 해요?”
[네…? 오늘인데요….]차갑기로 유명한 마리가 당황하는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느껴졌다. 오늘 하는 것을 당일 전화해서 물어보는 게 이상하다고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잘됐네, 기왕이면 라이브로 현장에서 보는 게 낫지. 관객들이 열광하는 사이에서 음악을 듣는다면 다른 악기에도 관심을 가질 거다.
에릭이나 시에스타 둘 다 악기를 사용하지 않으니까, 겨울이가 DAW를 조금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괴로워하는 일이 없을 거고 겨울이의 찡그리는 얼굴을 다시 보지 않아도 될 거다.
“잘됐네. 제가 가도 되는 거죠?”
[사장님이 오시면 다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괜찮으시겠어요?]“뭐가요?”
[애들 공연 한 번도 본 적 없으시잖아요.]천하의 마리가 말이 길다. 항상 용건만 간단히 말하는 철옹성이었는데, 당황을 했기 때문인지 자신이 납득하기 위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냥 겨울이 데려가서 보여 주고 싶거든요.”
[…아이들 앞에서는 꼭 공연이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해 주세요.]아무래도 직접 경영에 매니지까지 함께 하다 보니 걱정이 앞서는 모양. 내가 아니라 겨울이에게 보여 주려고 한다는 말을 한다면, 사기가 떨어질 거라 생각하나?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 겨울이를 준비시켰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밖에 나가는 거니까 예쁘게 보여야지.
***
공연 준비가 한창인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인 런던 스타디움.
프리미어 리그가 진행되는 도중에 진행되는 콘서트이기에, 하루 공연 뒤에 다음 모두 철거해야 하는 시설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6만 석의 객석에서 모두 한자리를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정중앙에 위치한 무대.
어떤 자리에 앉아 있더라도 무대 위에 서 있는 아티스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거대한 전광판.
콘서트 준비를 진두지휘하던 LJH 뮤직 컴퍼니의 미국 법인 대표 마리 지미아노비츠가 전화를 받으러 다녀오며 급박하게 소리쳤다.
“VIP 오십니다!”
“VIP?”
“뭐야, 윌리엄 국왕이라도 오는거야?”
“상단에 가장 잘 보이는 VIP 관람석 한 곳 열어 두시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들도 준비해 주세요.”
설치물은 이미 준비가 거의 끝났기에 안전 점검을 하던 관계자들은 당황했다.
마리는 언제나 자신이 할 말만 하고 나면 입을 닫는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을 현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스타디움을 콘서트장으로 활용할 때는 축구 경기를 볼 때 쓰는 VIP 관람석을 닫아 놓는데, 그곳까지 열어 두라고 소리쳤다.
게다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니. 콘서트와는 전혀 상관없는 조합이 아닌가.
“저기 사장님. 대체 누가 오시는데 그러시는 겁니까?”
“저희 회사의 오너이신 이정현 경과 따님이 오십니다.”
지금까지 숱하게 치러 왔던 콘서트 현장에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정현이 온다는 것에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LJH 뮤직 컴퍼니를 만드는 과정에서 정현이 얼굴을 마주했던 직원들도 많았지만, 마주치지 못했던 직원들이 훨씬 많았다.
시에스타를 데뷔시키고 난 뒤 회사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던 정현이었고, 그 이후에 영입했던 아티스트들도 수두룩했기 때문이었다.
관심이 없었기에 얼마나 많은 아티스트들을 영입했는지 정현은 알지 못했지만, 오늘 런던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콘서트는 모든 아티스트들이 총출동하는 LJH 뮤직 컴퍼니 신년 맞이 콘서트였다.
정현이 콘서트장을 방문한다는 소식은 회사 안에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사부님이?”
“그렇습니다, 에릭. 오늘 따님과 방문해서 콘서트를 관람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제대로 해야겠네….”
지난번 수면 음악 사태에 동원되어 가장 최근에 정현을 만나 보았던 에릭이었지만, 자신을 키워 준 부모를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대 위에서 대충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현이 온다는 것에 기분 좋은 긴장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에스타도 에릭과 같았다.
“대표님이 오신다구요?!”
““꺄아아아아!””
이미 대표라는 이름이 붙은 자리는 마리의 차지였지만, 이들 넷은 모두 정현을 대표라 부르며 기대감에 부풀었다.
수년간 음악 한 곡을 만들어 주지 않았어도 자신들을 데뷔시켜 준 은인이라는 마음이 있었다. 또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들을 위해 곡을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있었고.
그렇지만 에릭과 시에스타를 제외한 나머지 아티스트들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회사에 정현의 이름이 붙은 LJH 뮤직 컴퍼니 소속이었지만, 단 한 번도 정현을 만나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환상 속의 동물을 대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안 그래도 아이를 낳은 뒤 수년간 집에서 나오는 것까지 화제가 될 정도로 은둔 생활을 하던 이정현을 만난다는 것에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
한숨만 나온다.
VIP 관람석이라고 붙은 자리에 들어왔는데, 무대가 진짜 농담하는 게 아니라 코딱지만 하게 보이는 자리였다.
이래갖고 노래 부르는 애들 얼굴이라도 보이겠냐고. 그렇다고 관객들 사이에 있으려니 겨울이 키가 작아서 더 안 보일 거고.
분명 지난번 런던 필하모닉 공연에 갔을 때 가까이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바이올린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텐데, 이렇게 멀리에서 보면 겨울이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기왕 온 거 보기는 해야겠지.
“후아….”
겨울이는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는 창에 달라붙어 아래에 보이는 스타디움의 전경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저 아래에 보이는 객석에 사람들이 비어 있는 자리를 찾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축구라도 보러 오는 건데. 축구의 종주국이라고 불리는 영국에서 살면서 축구를 보러 간 적이 한 번도 없네.
정확하게 말하면 집 밖에 나간 일이 거의 없었다. 영국은 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부모가 돌아다니면 바로 구속이니까.
뭐, 나나 메건이 밖에 나간다고 하더라도 아서가 잘 봐주겠지만.
창가에 달라붙어 신기해하는 겨울이를 내버려 두고 안락한 소파에 앉았다. 3인용이면 옆으로 누워 있겠는데 1인용 소파라 어떻게 하더라도 편안하지 않았다.
커다란 방 안에 놓인 1인 소파 두 개와 티테이블이 전부인 곳. 더럽게 불편하다. 어떻게 이런 곳을 VIP 룸이라고 일 년에 몇만 파운드씩 내고 쓰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똑똑-
어떻게든 편한 자세를 잡으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 와 다리를 꼬았다.
“네, 들어오세요.”
열린 문으로 들어온 것은 메건이었다. 회사에 갔었기 때문에 뒤늦게 오기는 했지만, 출근할 때 입었던 정장 그대로 이곳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자기가 웬일로 이런 곳에 다 왔어요?”
“내가 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겨울이 때문이에요.”
겨울이의 상황을 아이 엄마는 정확하게 보질 못해서, 이곳에 온 것부터 신기해하는 중이었다.
“겨울이가 왜요?”
“놀라거나 소리를 내지는 마요. 지금 한창 아래쪽 공연장 보느라 정신없으니까. 저 유리창 짚고 있는 손가락 보이죠? 아직 다 큰 것도 아닌데 너무 무리하더라구요. 밥도 잘 안 먹고. 그래서 기분 전환 겸 다른 것에도 관심을 가지라고 데려온 거예요.”
“어릴 때는 하나에 강하게 몰입하는 일이 흔하기는 하죠. 그게 너무 심하면 안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
설명을 더 해 주고 싶어도 메건은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원이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나 겨울이가 들었던 것을 듣지 못할 테니 말이다.
자세한 설명을 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말을 하다가 중간에 끊어 버리는 바람에 나를 바라보며 큰 눈을 깜박이고는 있었지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그때 스타디움 가운데에 있던 남자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전광판에도 얼굴이 나오고 있었지만, 전혀 모르는 얼굴.
저런 사람이 우리 회사에 있었나 싶었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어머, 이제 시작하나 보네요?”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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