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98
197화
[It’s Show Time!]퍼퍼퍼펑-
남자의 말에 무대를 둘러싸고 있던 폭죽이 터져 나왔다. 그 뒤에도 메건이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폭죽 소리에 가려져 들리지는 않았다.
폭죽의 스모그 뒤에 등장한 에릭.
빠밤빰빠밤-
내 귀에 심상치 않은 멜로디가 들려 왔다. 내가 만들어 주었던 R&B나 소울의 멜로디가 아니다. 재즈 같기도 한데 그 뒤에 이어지는 것은 재즈 특유의 감성이 아닌 힙합 계열의 리듬이었다.
힙합으로 전향을 한 걸까? 솔직히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에릭의 목소리는 힙합을 하기보다는 R&B나 소울에 특화되어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계속 소울만 했다면 아마 역사에 기록될 만한 보컬이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 와서 내가 하지 말라고 말을 한다고 해서 안 할 놈도 아니지.
지금 나는 사장도 뭣도 아닌 사람이니까.
[워우워우~]두껍다? 아니 두꺼운 것이 아니라 깊은 동굴 같은 곳에서 들려 오는 소리에 가깝다.
나름 노력을 한 것인지 내가 가르치며 느꼈던 어설픔은 많이 사라진 상태. 저 정도면 역대급 보컬 소리를 들을 만한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부족한 면이 보이기는 하지만.
지지지징-
힙합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일렉기타 소리가 들려 온다. 지금까지는 실망스러운 느낌에 무대 위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소한 음악이었으니 말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장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에릭이 랩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목소리로 추임새를 넣듯이 가끔 소리를 낼 뿐이었다. 마치 악기처럼.
무대 중앙으로 리카르도가 내려왔다. 전광판에 비친 모습은 예전의 그 꼬맹이가 아닌 적당히 근육질 몸매를 가진 청년이 되어있었고, 어딘지 모르게 내가 아는 누군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 리카르도가 업계에서 엄청 유명해요. 지미 헨드릭스의 환생이라나?”
“…에이, 그 정도는 아니죠.”
그 기타의 신이 환생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게다가 저 정도 실력으로 비벼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내 기억 속에 있는 리카르도와는 전혀 다른 실력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폭풍 같은 연주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찌이이잉~!”
겨울이의 귀여운 목소리가 기타 소리를 따라 하는 것이 들려 왔지만, 내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고개를 돌려 겨울이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니 반짝이는 눈망울로 에어기타를 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이올린보다 더 안 좋다. 기타는 아이들 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겨울이의 몸에 맞는 사이즈를 찾기는 어려우니까.
게다가 악기를 손에 댈 수 없게 만들고 싶은 마음에 데려왔던 것이 아니었나. 바이올린에서 기타로 넘어가는 건, 사탕에서 초콜릿으로 넘어간 것과 다름이 없다.
어차피 지금 몸으로는 제대로 연주할 수 없을 테고, 겨울이는 또 무리를 하기 시작할 테니 말이다.
“하아….”
“왜 그러세요? 어디 안 좋으신 건가요?”
“겨울이…. 이번에는 기타에 빠졌나 봐요….”
“네에…?”
메건은 놀란 눈으로 겨울이를 바라보았다.
자그마한 몸으로 리카르도의 온갖 퍼포먼스를 따라 하는 제스처. 넥을 하늘로 찌르듯 올리고 속주를 하는 것까지 보여 주는 작은 기타리스트를 바라보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웃을 게 아니라니까요.”
“귀엽잖아요. 내 딸이지만 너무 귀여운걸요?”
아마 메건이 회사에 가지 않고 집에 남아 있었다면, 귀엽다는 소리를 절대 하지 않을 거다. 저 밥풀보다 작은 손톱으로 현을 누르면 무조건 굳은살이 생기기도 전에 피가 나서 아파하는 걸 보아야 할 테니.
그래도 나는 메건에게 회사를 가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집에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겨울이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어려울 테니까.
콘서트가 끝나는 시간까지 겨울이는 에어기타를 쳤다. 기타가 나오지 않는 시에스타의 댄스음악에도 손은 열심히 스트로크를 하는 모습에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걸 어떻게 해야 하냐….
***
는 개뿔.
결국 그 안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리카르도였다는 것 아닌가. 겨울이를 오랫동안 관찰해 본 결과 자신이 본 공연에서 가장 뛰어난 악기를 따라 하는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게 다 에릭 때문이다. 만약에 에릭이 조금만 더 보컬을 갈고닦았다면, 겨울이도 노래를 부르고 있었겠지. 지금처럼 내 옷자락을 붙잡고 기타를 사 달라고 조르는 일도 없을 거고.
“겨울이 기타 사 주세요…. 네?”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서 바라보는 겨울이. 하지만 나는 바이올린을 사 주었던 때처럼 쉽게 사 줄 수는 없었다.
신체적 한계가 뻔히 보이는데 그걸 줄 만큼 미친놈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작업실 컴퓨터를 붙잡고 음악을 만들어 들려 주어도 겨울이의 관심을 돌릴 수는 없었다. 분명 최근에 만든 음악들 중에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할 정도의 곡이었지만, 눈에 보이는 악기가 없어서인지 전혀 관심도 두질 않았던 것이다.
노래를 들으며 감탄을 하기는 했지만, 직접 해 보려 하지는 않았다.
왜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을 하는 거지? 아이라서 그런 건가?
나는 겨울이가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게 되는 것을 위해 이렇게 애썼지만, 결국 성공할 수 없다는 것만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후회할 줄 알았다면, 처음 런던 필하모닉에 데려가는 게 아니었는데. 거기에 데려가지 않았다면 작업실에서 컴퓨터로 만들고 있지 않았을까?
이미 열려 버린 판도라의 상자를 닫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포기하고 하고 싶은 대로 두어야 하는 걸까.
옛 성현들이 말씀하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피부로 와닿고 있었다.
“아아~~ 지인짜 모르겠네….”
“아아~~ 지잉짜….”
소파에 쓰러지듯 엎어지는 내 위에 겨울이가 나를 따라 하며 누웠다. 바이올린을 치워 버렸더니 내 옆에 붙어 있다. 가끔 기타를 사 달라고 조르는 것은 덤.
그런데 내가 하는 것을 이렇게 따라 하는 것을 보니 귀엽기는 하네. 내 딸이지만. 이렇게 팔불출이 되어 가는 건가…?
나는 몸을 돌려서 겨울이를 내 배 위에 올려 두었다.
“겨울아.”
“네에~”
“아빠 따라 해 볼래?”
“응!”
별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겨울이가 나를 따라 하는 것이 귀여웠을 뿐이다.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노르웨이의 음악 그룹 시크릿가든의 명곡.
CCM이라는 오해를 사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아니라고 부정을 했던 곡. 한때 한국에서는 안 들리는 곳이 없었을 정도로 수도 없이 많이 리메이크가 되었던 You raise me up의 하이라이트 파트.
그런데 겨울이는 따라 하지 못했다.
말투나 다른 것들은 다 따라 하면서 이건 왜 따라 하지 못하는 거지?
다른 걸 해 봐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어 머릿속이 복잡해지려는 그때였다.
“다시 해 주세요!”
“뭘? 방금 그거?”
“네!”
“겨울이 따라 하지 못하는 것 아냐?”
겨울이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할 때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원곡을 들려 줄게 잠시만.”
휴대폰을 들어 스트리밍 사이트에 들어가 음악을 찾아내 재생을 시작했다.
[When I am down and, oh my soul, so weary-]길고 긴 전주가 끝나고 보컬이 시작하자마자 겨울이가 휴대폰으로 달려들어, 그 작은 손으로 들고 집어 던졌다.
쿠다당!
저거 100% 깨졌다. 내가 요즘 하는 일이 없어서 신상 휴대폰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알아봐야 할 것만 같다.
“아냐! 이거 아냐! 아빠가 한 거랑 달라!”
“…….”
“아빠가 한 건 으으으으…. 달라!”
제대로 말을 해 주지 않는다.
원곡이 좀 찬송가스러운 면은 있더라도 나쁘지는 않은데, 이렇게 집어 던질 정도는 아니지 않니?
이럴 줄 알았다면 웨스트라이프나 조수미 버전으로 들려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박살 난 걸 어떻게 되돌리겠나.
“엄마한테 전화 오면 어떻게 하지? 아빠 전화기 망가져서 못 받을 텐데?”
“으아아아앙!”
내 가슴에 달라붙어 기어코 그 눈물을 닦아 내는 겨울이. 콧물도 닦아 내는 것 같은 느낌에 떼어 놓으려 했지만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그 작은 주먹이 어찌나 힘이 센지 나의 옷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 것이다.
“아서!”
“찾으셨습니까.”
“마커스에게 전화 좀 해 주실래요. 제 전화기가 박살 나서.”
“유니버설 뮤직의 CEO 마커스 스미스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코알라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겨울이는 내 몸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질 않았다. 가끔씩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이는 모습이 애처로웠지만, 방금 백만 원도 넘는 휴대폰을 박살 내서 잘했다고 말해 줄 수는 없었다.
“여기 있습니다, 이정현 경.”
“고마워요.”
아서가 집전화의 수화기를 내게 내밀었다.
“마크, 저 정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정현 경. 오랜만에 목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괜찮으시다면 녹음실 좀 섭외해 주세요.”
[오오. 일선에서 물러나셨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새로운 인재를 발굴한 겁니까?]“그런 건 아니구요.”
길게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번에도 해 보고 안 되면 마는 거니까.
“아, 그리고 You raise me up 음악 판권이 유니버설에 있죠?”
[네.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리메이크 권한 좀 얻어 주세요.”
[오오…. 굉장한 보컬인가 보군요. 그 노래를 리메이크하다니.]원래부터 이런저런 소리를 많이 하는 마크였지만, 지금은 조금 불편하다. 가슴에 매달린 코알라 한 마리를 떼어 놓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워낙에 리메이크가 많이 되었던 곡이라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면 대중에게 어필하기도 쉽지 않은 곡이기에, 마크는 감탄을 하며 기대된다는 듯이 말을 했다.
[누구입니까, 그 뉴페이스가. 저에게도 비밀로 하시는 것은 아니겠죠?]“뉴페이스 아니에요. 아마 아시는 얼굴일 거예요.”
[흐음…. 에릭인가….]“아니에요.”
가만히 두면 한참 동안 다른 가수들의 이름을 꺼낼 것 같은 느낌이라 애초에 말을 끊었다.
가만 보면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하는데, 마커스도 엄청나게 많은 고양이를 죽였을 것만 같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두 시간 내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위치는 어디쯤이 괜찮으십니까?]“저희 집에서 무조건 가까운 곳으로 부탁드려요. 엔지니어는 최상급으로 해 주시고, 보컬 레코딩만 할 거니까 세션은 필요 없습니다.”
[네?! 전주도 없이 보컬만 녹음하시겠다는 겁니까?]“들려 주고 싶은 사람이 한 명이라서요.”
[들려 준다…. 헙! 최대한 빨리 준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마커스가 전화를 끊었다. 내가 먼저 끊기 전에는 전화를 내려놓는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나에게 매달린 코알라를 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겨울아. 아빠랑 밖에 나갔다 올까?”
“훌쩍…. 어디 가려구요…?”
“아빠가 아까 전에 겨울이가 듣고 싶어 했던 것 들려 주려고.”
겨울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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