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199
198화
“헛! 이정현이야!”
“옆에 있는 아이가 겨울이인가? 완전 귀엽네!”
주변에서 하는 말에 내 어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한다. 나에 대한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데 아이에 대한 말들이 들어오는 걸 보면 내가 아빠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겨울이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걸었고 뒤에서는 경호원들이 따라왔다.
녹음실에 가는 것보다 휴대폰을 사는 게 먼저였다. 서비스 센터에 가서 수리를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은 계획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새것을 사고 싶었다.
휴대폰을 팔고 있는 대리점에 들어가서 새로운 휴대폰을 구매한 뒤 기존에 사용하던 데이터를 옮기고 유심칩을 갈아 끼웠다.
안 그래도 바꿀 때가 되었는데 그 김에 바꿨다고 생각해야겠다.
Rrrrr-
깜짝이야…. 전화기를 새로 개통하자마자 전화가 걸려 왔다. 나도 놀라고 휴대폰을 판매하는 점주도 놀라 버렸다.
항상 진동으로만 해 놓는 나로서는 휴대폰의 벨 소리를 들어 보는 것이 오랜만이라 더 놀라 버렸다.
“여, 여기 있습니다. 이정현 경.”
“감사합니다. 여보세요?”
[접니다. 마크.]“아, 일찍 전화 주셨네요. 아까 제가 전화한 지 30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녹음실을 잡았습니다. 댁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순식간이네. 항상 빠르게 일 처리를 해 주었던 사람이지만 이렇게 빨랐던 적이 있었던가?
뭐, 빠르면 좋지. 빠르게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가득 차올랐다.
“주소 보내주세요. 안 그래도 지금 휴대폰을 새로 사느라 밖에 나와 있으니까 바로 가 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여기 주소는 문자메시지로 보내드리겠습니다.]어울리지 않게 조금 흥분한 것 같은 마커스의 목소리가 조금 이상하다. CEO를 하면서 이상한 취미에 눈을 뜬 것은 아니겠지?
“겨울아, 지금 아빠랑 녹음실이라는 곳에 갈 건데 괜찮지?”
“네에!”
겨울이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 내가 손을 잡고 가는 곳에 같이 가니까. 그렇지만 의견을 물어보는 것은 자신의 의견을 말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바이올린이나 기타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어느 정도 자신의 의사 표현을 확실하게 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이유들도 알려 주지 않을까?
띵-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가까운 곳에 잡아 두었다더니 꽤 가깝기는 하네.
“일단 애비로드 3번지로 가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메이페어 근처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시내로 가는 것보다는 외곽으로 나가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했다. 런던 시내에 있으면 좁은 도로에 끊임없이 몰려드는 차들로 꽉 막혀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니까.
주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차를 타고 20분가량 움직이자 경호원이 차를 멈추고 도착했다고 알려 주었다.
“애비로드….”
“아빠! 여기예요?”
나는 검은 쇠창살 앞에 멈춰서고 말았다.
그 안에 보이는 건물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세계에서 앨범을 가장 많이 팔았던 그룹의 사진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곳이 보였다.
이제는 물리적으로 판매하는 앨범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다시는 달성할 수 없는 숫자 2억 7천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전설의 그룹.
나는 비틀즈의 앨범 애비로드 표지에 찍힌 횡단 보도 앞에 서 있었다.
“주소를 불러줬을 때 깨달았어야 하는데….”
횡단 보도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쓴웃음을 짓고 있던 그때,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 왔다.
“하하. 금방 오셨군요. 제가 가까운 곳에 잡아 두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크, 직접 오셨을 줄은 몰랐네요. 겨울아 인사해야지. 마커스 스미스 아저씨야.”
“안녕하세여.”
“반갑구나, 꼬마 아가씨. 들어가시죠, 이정현 경. 준비는 모두 끝내 놓았습니다.”
분명 유니버설 뮤직의 본사는 미국에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매번 런던에서 마주친다.
뭐 내가 미국에 자주 가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런던에 항상 있는 것도 수상하다.
하지만 호의를 저버릴 수는 없는 법. 이곳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수년 동안 예약이 쌓여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이었으니까.
“설마 애비로드 스튜디오를 잡아 두셨을 줄은 몰랐네요.”
“이곳 역시 저희 회사에서 관리 중인 스튜디오입니다. 당연히 잡을 수 있죠.”
마커스의 뒤를 따라 갈색 문을 열고 건물 안에 들어갔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진열된 수많은 악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있는 작은 무대들 그리고 의자와 보면대를 보며, 원래는 라이브홀로 사용되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에서는 주로 오케스트라 같은 대규모 음악을 녹음합니다. 최근에는 게임에 들어갈 삽입곡을 녹음했죠. 이정현 경이 사용하실 2번 스튜디오는 2층에 있습니다.”
“아, 네.”
내가 너무 두리번거렸는지 물어보지도 않은 것을 마커스가 말해 주었다.
전설 속의 스튜디오.
이곳에서 음악을 녹음하면 잘된다는 전설이 아니라, 빌리는 가격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전설이다.
비틀즈의 앨범에 이름이 붙은 뒤에 렌탈비가 실시간으로 올랐다는 말은 너무나도 유명하지.
그래도 다행이다. 유니버설 뮤직의 사장인 마커스가 나와 아는 사이니까 할인이라도 해 주겠지.
천천히 마커스의 뒤를 따라가는데 벽에 걸린 수많은 앨범들이 눈에 들어왔다. CD도 아닌 이제는 부르는 게 값인 LP들.
매니아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 대는 음반들이 보란 듯이 벽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곳에 한 자리. 최근에 비워 둔 곳인지 액자가 걸린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자리가 비워져 있었다.
“여기는 원래 무슨 앨범이 있었나요?”
“아! 그 자리는 옆에 보이는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이 걸려 있던 자리입니다. 조금씩 옆으로 당겨 두었죠. 공간이 부족해서요.”
“새로 들어갈 앨범이 있나 보네요?”
“하하하. 곧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준비해 둔 공간입니다.”
어색하게 웃음으로 넘기려는 마커스. 대충 무얼 기대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기대감을 조금 낮춰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큰 기대감을 품고 들어오면 실망할지도 모르잖아?
“오늘은 제가 아니라 겨울이가 녹음할 거예요.”
“그렇군요. 괜찮습니다. 이정현 경의 딸 아니겠습니까. 피는 못 속인다는 말도 있는걸요.”
네 살짜리 꼬맹이에게 무얼 기대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말한 뒤로도 마커스의 음흉한 웃음은 끊이질 않았다.
이래서야 결국 끝까지 녹음 스튜디오 안에 남아 있겠다는 것 같은데….
마커스를 실망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쫓아낼 방법이 없었다. 작정을 하고 온 듯한 기세를 풀풀 풍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곳입니다.”
한참을 걸어가던 마커스가 멈춘 곳은 2 스튜디오라고 쓰여진 나무문 앞.
보기에는 굉장히 얇아 보이지만, 스튜디오의 출입구는 보는 것과는 다르게 무겁다. 방음 시설 때문이다.
나는 힘을 주고 당겨 두꺼운 나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도 없는 방 안을 밝히는 형광등과 낡은 가죽 소파 그리고 기다란 원목 테이블. 어쩌면 시간이 70년대에서 멈춰 버렸을지도 모를 그 인테리어에 시간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 방에서 애비로드 앨범을 녹음했었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실내 분위기도 보존해 두었습니다.”
“하하하. 진짜 이곳만 시간이 멈춘 것 같네요.”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풍경 속에 발을 내디뎠다.
다른 곳과 격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공기에 섞인 먼지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방 안에서 언제부터 기다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큰 덩치를 가진 사내가 다가와 인사를 했다.
“사운드 엔지니어 이언입니다. 오늘 경을 담당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반가워요, 이정현입니다.”
방 안에 들어가 소파에 앉자 녹음실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유리 벽 안에 보이는 마이크까지도.
“겨울아 이제 저 안에 들어가서 노래를 부르는 거야. 할 수 있지?”
“그치만….”
역시 예상했던 대로 겨울이는 한 번에 수락하지 않았다. 경험하지 않았기에 조금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 아빠가 먼저 시범을 보여 줄 테니까. 거기에서 보고 있으면 돼. 알았지?”
“네에!”
나는 녹음실 안으로 들어가며 휴대폰을 꺼내 노래를 검색했다. 가사도 모르는데 노래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녹음실에 들어가 문을 닫으려 하자 소파에 앉아있던 겨울이가 펄쩍 뛰면서 도도도 달려왔다.
“겨울이도 같이 가! 아빠!”
바로 코앞에 있는 녹음실에 들어가는 것인데도 멀리 떨어지는 것처럼 느꼈는지 같이 들어오자고 말을 하는 겨울이.
아이의 고집을 어떻게 꺾을 수 있을까.
다시 녹음실의 문을 열고 작은 마이크를 하나 달라고 말했다. 나에게 맞춰 놓은 높이의 마이크를 겨울이가 쓰기에는 너무 높았으니까.
아직 녹음을 시작도 해 보지 못했지만, 벌써부터 진이 빠지는 것만 같았다.
“겨울아 아빠가 먼저 할 테니까 따라 하면 되는 거야 알았지?”
“네에!”
“바로 들어갈게요. 반주 없이 목소리만 녹음할 거니까 큐사인은 안 주셔도 돼요. 그냥 채널 나눠서 녹음만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유리 벽 건너편에 있는 이언의 목소리가 헤드폰을 타고 들렸다.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마커스가 바라보는 녹음실 안에 있는 정현은 그저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녹음실 밖 모니터링 스피커에 들려 오는 그 숨소리마저도 음악같이 아름다웠다.
“노, 녹음하고 있지?”
“네, 네.”
마커스는 엔지니어 이언에게까지 녹음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이 소리를 놓칠 수는 없다. 그는 이제 숨소리마저도 예술이 되었어…!’
자신의 귀에 들리는 소리가 숨소리가 맞고 녹음이 되고 있는 중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세상을 뒤흔들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숨소리에 섞여 노랫말들이 들려 오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우울하고, 나의 영혼이 많이 지쳐 있을 때.]가슴을 어루만지는 것만 같은 목소리가 들려 와 마커스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너무나도 부드러운 목소리.
천상의 목소리라고 불리던 그의 목소리는 예전과 다름없이 그 목소리만으로도 모든 아픔들을 치유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커스와 이안이 모든 아픔이 치유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 그때였다.
[자, 겨울아. 아빠가 한 거 한번 따라 해 봐.]정현은 자신의 딸인 겨울에게 따라 해 보라는 말을 하며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마커스와 이언은 그저 정현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을 뿐이었지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기분이 상해 이 이상을 들려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두 손으로 제 얼굴만 한 마이크를 꼭 잡은 겨울의 모습은 귀엽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귀여웠다.
그리고 네 살배기 꼬맹이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러나 그 작은 입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는 두 남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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