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2
002화
고등학생은 공부를 해야 한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국내 콩쿠르는 참가 신청 자체를 거부하는 바람에 해외 콩쿠르만 다니다 보니 성적이 진짜 개판이다.
콩쿠르의 참가 일정은 교육부 규정상 교육의 일환이라 여겨져서 출석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지만, 공부를 할 시간이 없어서 성적이 개판인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음악 특기생으로 대학교에 들어가서 전과를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내가 여태까지 봐온 음악계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가 전과하는 것을 두고 볼 리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차라리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1학년 2학기부터 시작된 나의 ‘평범’한 고등학생 생활이 좋았다. 뭐 정 수능점수 안 나오면 재수하지 까짓거.
점심시간에 동아리실에 나와 빈둥대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좋구나, 이게 평범한 일상인 것 같다. 긴장감이 결여된 삶으로 돌아와 축 처진 상태로 동아리 방을 둘러보니 동아리의 1, 2학년 멤버들이 보인다.
빌어먹을 남고. 예술의 전당이 있는 서초3동과 그 길 건너편에 있는 방배동.
이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는 남고가 셋, 여고가 하나, 남녀 공학이 하나다.
저 멀리 양재까지 보면 남녀 공학만 세 학교인데 너무한 거 아니냐, 진짜. 아무리 그래도 남녀 공학이었으면 좋으련만 홀아비 냄새가 풀풀 나는 남자들로 가득 찬 동아리 방을 둘러보니 한숨만 나온다.
이럴 줄 알았으면 눈 딱 감고 남녀 비율 3:7인 예고를 갈 걸 그랬나?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예고는 아니야. 인문계에 들어왔으니 이제는 애써 노력해가며 하기 싫은 음악을 할 필요가 없다. 이것만으로 감사하자.
나는 고개를 돌려 동아리 방에서 연습 중인 녀석들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아토피 피부염 때문에 몸을 자주 긁어서 약간은 뻘건 피부를 가진 유자, 기타리스트 유재욱은 아직까지 하모닉스를 할 줄 모른다. 게다가 기초 중의 기초, 스케일을 연습하면서도 틀리는 아주 멋진 놈이다. 작년까지는 선배들이 퍼스트 기타를 맡아 줘서 세컨 기타로 리듬만 쳤는데 올해부터는 리드 기타를 해야 해서 긴장했는지 전보다 더 많이 틀리기 시작했다.
“야, 재욱아. 너 튜닝 다시 해라. 두 번째 줄 반음 나갔네. 아니, 기타 시작한 지 1년 됐으면 이제 튜너 놓아줘라…. 걍 귀로 듣고 해 자신감 갖고.”
베이스 치는 잘생기고 눈썹 진한 백원만, 백원빈은 아직까지 슬랩을 제대로 못 친다. 검지와 중지를 사용한 핑거스타일로만 베이스를 치고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손가락 끝이 아프다면서 일렉 기타용 피크까지 썼다. 슬랩 안 할 거면 왜 베이스 하는 거냐 넌…?
“원만아, 니가 무슨 기타리스트야? 손톱은 대체 왜 기르냐…. 자꾸 스트로크하지 말고.”
내 X알 친구 키보디스트 김수원은 글쎄… 잘 모르겠다. 키보드를 치긴 치는데, 이게 밴드용 음악이 아니다.
맨날 엘리제를 위하여 같은 고전 음악을 치고 있는데, 이것도 문제는 문제다. 여기는 피아노 학원이 아니라 밴드부거든. 어쨌거나 얘는 매운 음식을 엄청 잘 먹는다. 언젠가는 위장병 걸릴 거다, 얜.
“불닭 좀 밖에서 먹고 와. 눈 매워….”
드럼 치는 빡빡머리 근육맨 김치, 김지섭은 기분파다. 얘는 뭐라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기분이 좋아지면 박자가 빨라지고 기분이 안 좋으면 박자가 느려진다.
뭐, 드럼은 정확한 박자 감각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나는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힘 조절을 못 해서 공연 한 번에 스틱 두 세트는 부러지지만… 일단 공연이 재밌으면 그만이니까.
“야, 너 연습할 때 진짜 스틱 갖고 하지 마. 스틱 사느라 동아리 회비 다 나간다…. 나무젓가락으로 해, 머릿속으로!”
거기에 시어머니같이 온갖 참견을 다 하고 다니는 나.
이런 2학년 멤버들이 동아리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으면 내가 봐도 총체적 난국이라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만도 한데, 입학한 지 한 달밖에 되질 않은 1학년 애들은 구석에서 눈치 보기 바쁘다.
그렇다고 밴드 생활을 하다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두각을 나타내는 천재 같은 놈이 여기에 있다? 그게 더 이상한 거다.
그런 놈이 예고를 가야지 왜 인문계에 오냐? 일단 인문계 고등학교에 왔다는 것 자체가 실력 없음을 증명하는 거라고 볼 수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낡아빠진 소파에 늘어져서 배 위에 얹어진 랩톱으로 웹 서핑을 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조용해진 동아리실에서 모든 애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무슨 일이야?”
내가 살짝 귀찮다는 듯이 말을 하자 1학년 한 명이 말을 한다.
“형, 올해 동아리 활동 계획 제출하라고 화성태 선생님이 전달하라셨어요.”
“전달? 왜 직접 말 안 하고 전달이래, 새삼스럽게…. 이제 내가 꼴도 보기 싫은가 부지?”
3월에 입학, 그리고 3월 중에 동아리 신입생을 받는다. 4월부터는 본격적인 동아리 활동에 들어가는 거지.
그게 고등학생의 동아리 활동의 시작이다. 그 말은 뭐냐. 동아리 연간 활동 계획표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하지는 않았지만, 선배들이 나에게 떠넘기고 간 동아리 부장이라는 자리에서 결정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3학년이 되면 수능 준비에 들어가기 때문에, 2학년 겨울 방학 직전에 동아리 부장을 지목하고 은퇴를 한다.
다들 귀찮아서 아무도 입후보하지 않기 때문에 선배가 후배에게 지목하는 것이 전통이 되어 버린 그 동아리 부장. 그게 바로 나다.
뭐 부장이라고 하면 대단한 권력을 쥔 것처럼 생각되지만 별거 없다. 무대 공연을 위한 멤버 구성과 스케줄을 짜는 것.
기본적으로 연예인의 매니저라고 보면 된다. 자질구레한 것들을 해야 하는 위치란 말이지.
입학하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해외 콩쿠르 때문에 학교에 나올 수가 없었다.
6월이 되어서야 학교에 나올 수가 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밴드의 보컬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이게 바로 음악 선생님의 음모였겠지.
또한 슬프게도, 우리 동아리의 담당 교사는 그 음모의 주인공 화성태. 즉 나에게 음대 진학을 권유했던 그 음악 선생이기도 하다. 내가 줄기차게 부딪혀야 하는 입장이라는 거다.
“아, 귀찮게…. 야, 진혁아.”
나는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 소파 위에 고쳐 앉으며 1학년 보컬 이진혁을 찾았다.
“네, 형.”
아직 입학한 지 한 달밖에 되질 않아 어리바리 타는 1학년들 중에서도 최고의 어리바리.
하지만 1학년의 유일한 보컬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 동아리의 유일한 보컬이다. 나는 은퇴했으니까.
“너 어디까지 올라가냐?”
“네? 올라가다뇨? 어딜?”
답답하다. 보컬이 올라간다고 말하면 음역대를 말하는 거지, 당연한 거 아닌가?
“수원아, 얘 스케일 한번 봐줘라. 표준보다 한 옥타브 아래부터.”
스케일(Scale)은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등등 거의 모든 악기에서 쓰이는 단어다.
거기에 신이 주신 악기인 목소리의 음역대를 체크하는 것도 스케일이라고 한다.
기타나 베이스의 음계 연습은 크로매틱 스케일, 보컬의 음계 연습은 발성 스케일.
표준은 유럽에서는 C3, 미국에서는 C4라고 부르는 도부터 시작하는 게 표준. 국가마다 기준이 되는 도의 옥타브를 부르는 숫자가 달라서(숫자만 다르고 실제 음은 같은 음이다.) 그냥 표준 옥타브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가장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표준보다 한 옥타브 아래부터 체크하는 이유는, 혹시라도 더 콜링의 보컬 알렉스 밴드 같은 매력적인 저음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함이다.
어쨌거나 음역대를 알아놔야 공연편성표를 짤 수 있다. 보컬과 맞지 않는 음악을 선정할 수는 없으니까.
“야…. 너 진짜 이제 노래 안 할 거야?”
수원은 걱정된다는 듯이 나에게 물어본다. 당연하지, 이제 나는 자유인인걸!
“나 이제 매니저만 할게. 지쳤어, 진짜….”
내가 삶에 찌든 명예퇴직 당한 중년처럼 대답하자 수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지난 4년 동안 나는 하고 싶지도 않았던 음악을 하면서 살아 왔다. 미성년자인 내가 대외적, 합법적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콩쿠르 우승 외에는 생각나질 않았거든.
예술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자랐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떠올리지 못한 걸 수도 있지만….
내가 음악을 그만뒀다는 사실은 우리 동아리 멤버들은 전부 알고 있다. 공식적으로 동네방네 떠들면 콩쿠르 알바해서 얻은 군 면제가 취소될까 봐 이렇게 아직도 밴드부에 이름을 올려놓고는 있지만 정말이지 난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그놈의 계획.
계획이 어떻게 되십니까? 무엇을 하실 계획이십니까? 대학교는 어느 대학교에 진학하실 계획인가요? 콩쿠르의 상금은 어디에 쓰실 계획이신가요?
이게 고1에게 물어볼 말인가 싶다. 그렇게 일일이 계획을 세워가며 활동할 만한 나이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치밀한 성격도 못 되는 사람인데 말이지. 더러운 기레기들.
가장 귀찮았던 질문은 ‘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거의 1년 넘게 들었던 것 같으니까. 아니, 내가 어떤 고등학교에 진학하는지 그게 왜 궁금해? 자기네 자식도 아닌데.
옆에 놓인 동아리 연간 계획표에 적당히 이런저런 계획들을 대충 적어 내려가는데, 수원이와 진혁이가 보컬 스케일을 시작했다.
띵~
“아~ 아~ 아~ 아~ 아~”
보컬의 발성 스케일은 기본적으로 화음을 기준으로 한다. 1도, 4도, 5도 세 가지 화음을 기준으로 하며 이를 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