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201
200화
“그래서요. 그게 무슨 소식이었는데요?”
“너도 알걸, 현이 앨범 나왔던 거.”
“이게 그때 이야기에요? 한참 전이잖아요.”
“맞아. 사람들이 1집이라고 말하는 그 앨범이 그때 나왔어. 아이 보느라 바쁘다고 바깥도 안 나가다가 떡하니 내놓은 거지.”
어시스턴트는 의자까지 아예 돌려 앉으며 이정화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박이네. 나 그 앨범 귀에 달고 살았었는데.”
“놀라지 마. 사실 그 앨범에 들어간 곡들 반은 겨울이가 쓴 거야.”
“그때 네 살이었다면서요!”
“맞아. 네 살에 곡을 썼던 거지. 악기 다루는 법을 잘 몰라서 현이한테 물어가면서 썼는데, 나중에는 현이한테 노래를 불러 달라고 하더래. 그 노래 부른 것까지 곡이라고 생각해서 넣었던 거고, 결국에는 현이 이름이 붙은 앨범이 된 거지.”
이정화의 고개가 젖혀지며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는 듯 아련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몇 년이나 지나간 이야기였지만, 정화에게는 바로 엊그제 있었던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정화를 바라보며 어시스턴트는 또 시작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지만.
“그게 벌써 6년 전이네요. 저 중학생 때였으니까.”
“그러게, 내가 서른…. 아니 스무 살 때 이야기네….”
“…정현 님이 마흔인데 지금 서른도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건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니에요, 언니?”
“걔는 결혼했고 나는 안 했잖아.”
“말은 바로 해야지 안 한 게 아니라 못… 아악!”
“시끄럽고 나 돌아올 때까지 채색 끝내 놔. 연재 회의 들어가야 하니까.”
“어디 가는데요!”
결혼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했다고 말을 하려던 어시스턴트의 옆구리를 꼬집으며 정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리를 지르는 어시스턴트의 얼굴에는 억울하다는 감정이 잔뜩 서려 있었지만, 정화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짓곤 입을 열었다.
“음악 좀 듣고 올게.”
***
끼긱- 쿵-
런던 히스로 공항에 항공기가 가볍게 내려앉았다. 물론 활주로를 따라 택시웨이를 거쳐 여객 터미널까지 가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기는 했지만, 비행기가 착륙했다는 것만으로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후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여객터미널에 내려선 빈 필하모닉의 객원 지휘자인 페르디난트 뢰베는 답답한 비행기 안을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스트리아와 영국을 가로지르는 비행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뒤를 따르는 많은 단원들은 많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지만, 뢰베는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많은 공연을 해 왔다고 하더라도 다들 이번 공연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 왔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 때문에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상태였다.
“마에스트로. 왜 긴장을 해요.”
“자네는 긴장이 안 되는 건가?”
콘서트마스터가 오히려 지휘자의 긴장을 가라앉히는 기이한 광경이 히스로 공항 입국장에 펼쳐졌다. 120여 명에 이르는 단원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신들의 지휘를 맡은 뢰베가 긴장한 것을 알아차리곤 낄낄대며 웃을 뿐이었지만, 뢰베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하하하. 평소보다 관객이 많긴 하죠. 그렇지만 우리가 연주할 곡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잊은 건 아니겠죠?”
“관객이 많다고 해서 긴장하지는 않네. 그렇지만 아무리 그 사람이 굉장한 음악가라고는 하더라도, 우리가 실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니까 말이야. 그의 귀가 얼마나 민감한가 말이야.”
정현이 빈에 방문해서 계약을 했던 것이 자그마치 13년 전. 빈 필하모닉은 긴 시간 뒤에 완료되는 계약이행을 위해 오스트리아에서 날아왔다.
그가 보내왔던 악보를 지난 한 달 동안 수도 없이 연습했지만, 초연이라는 것은 그만큼 긴장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그렇기에 수십 년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마에스트로라는 호칭까지 얻어내었지만, 뢰베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녹음하는 것도 아니고 콘서트인데 사람들 소리에 가려져서 틀려도 대부분 모를 거예요.”
“내가 그런 것을 걱정할 것 같나?”
콘서트마스터의 말에 뢰베는 고개를 돌리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이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던 그가 입을 열었을 때는 이미 콘서트마스터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뢰베를 지나쳐 출구로 향한 상태.
뢰베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곤 혼잣말을 내뱉었다.
“우리가 연주할 곡이 훗날 교과서에 실리게 될지도 모르는데, 틀려도 된다니 다들 태평한 소리를 하고 있군….”
평소라면 공연이 시작하기 며칠 전에 이동해 컨디션 조절을 할 테지만, 연습을 아무리 해도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공연 당일까지 끝도 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공연하기 전부터 자신들이 연주할 신곡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지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공연이 초연임에도 사력을 다해 후대에 전해지는 명연주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뢰베가 앞서가는 다른 단원들을 따라 히스로 공항의 출구로 나가자 검은색 고급 세단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에스트로 빨리 오세요.”
“안녕하십니까. LJH 뮤직 컴퍼니에서 나왔습니다. 마에스트로 뢰베 본인 맞으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이정현 경께서 편하게 이동하시라고 차량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하얗게 눈이 내려앉은 것 같은 머리칼을 한 노인이 뢰베에게 허리를 숙이며 말을 꺼냈다. 단원들은 모두 그가 늦었기 때문에 차에 타고 갈 수 없다며 아우성.
뢰베가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차량에 다가가자 노인은 문을 열어 주었고, 그는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가볍게 닫히는 문. 그리고 조금 전 자신의 문을 열어 주었던 노인은 조수석에 올라타며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웸블리 스타디움으로 갑시다.”
***
수십만 명이 운집한 웸블리 스타디움의 입구는 소란스러웠다. 끝도 없이 펼쳐진 입장 행렬이 출입구에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불평은커녕 서로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었다.
“난 긴장되어서 한숨도 못 잤어!”
“네가 공연을 하는 것도 아니고 보는 건데 왜 긴장을 해.”
“오늘 공연에 누가 나오는지 잊은 거야?”
“흐흐. 사실 나도 제대로 못 잤어.”
공연을 시작하기 한 시간 반이 남았을 때, 스타디움의 출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전광판에 ‘OPEN’이라는 녹색 불이 들어왔고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대화가 멎었다.
긴 시간 동안 기다려 왔던 사람이 무대 위에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 왔다.
꿀꺽-
아직 공연장의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었음에도 사람들 사이에선 긴장감이 맴돌았다.
“티켓 보여 주십시오.”
삐익-
“확인되셨습니다.”
웸블리 스타디움이 수용 가능한 인원인 9만 명이라는 관객들이 모두 들어가기까지 한 시간이나 걸렸고, 그들이 스타디움의 객석을 모두 채웠음에도 티켓이 없어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들어간 사람들보다 많았다.
공연이 시작되기까지 30분. 경기장 외벽에 설치된 커다란 스크린에 불이 들어오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스크린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스크린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들었다.
스타디움 앞에서 이 광경을 촬영하는 BBC 방송국의 리포터는 현장을 바라보곤 흥분하며 카메라에 대고 말했다.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9만 석의 웸블리 스타디움 전 좌석이 매진된 공연이라는 것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본 공연이 인터넷으로 무료 생중계가 되는 공연이라는 것입니다.”
리포터는 자신의 뒤에 있는 끝도 없는 인파를 돌아보며 다시 카메라를 향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이 위대한 공연은 이정현 경의 첫 번째 콘서트로 역사에 기록이 될 것이고 그 증인은 바로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
“공연 10분 전입니다!”
공연의 설비를 맡은 사람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관객이 들어오는 콘서트임에도 수많은 카메라를 체크하며 이상 여부를 확인했다.
“이상이 있으면 바로 보고하는 것 잊지 말고. 오늘 우리 공연 예상 시청자가 천만 명이에요.”
“유튜브 측에서 회선 확장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다행이네, 그것까지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는데.”
오늘 공연할 단 한 명의 아티스트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 그들을 지휘하는 것은 마리였다.
공연의 총책임자인 마리는 긴박하게 흘러가는 준비 과정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번 공연을 위해 기울였던 노력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리를 제외한 사람들 역시 모두 수도 없이 많은 공연들을 치러온 베테랑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공연만큼 긴장되는 순간은 없었다.
LJH 뮤직 컴퍼니 수장의 첫 번째 콘서트.
음악계에서 다시 나오기에는 어려울 것이라 말하는 천재가 공연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체크할게요. 오케스트라?”
[모두 자리 잡아놓은 상태입니다. 마이크 테스트도 끝났습니다.]“조명?”
“다른 때는 몰라도 오늘은 절대 실수하면 안 돼.”
[[네!]]“스탠바이!”
마리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에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치로 이동했다.
***
공연장뿐만이 아니라 인터넷 생중계로 지켜볼 전 세계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긴장감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 있었다.
바깥에서 쉴 새 없이 급박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나, 공연을 기대하는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분위기의 유유자적한 곳.
바로 정현이 대기하는 웸블리 스타디움의 대기실.
3인용 소파가 벽 한쪽에 놓여 있었고 그 앞에 기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단 한 명만을 위한 곳이라고 말하기에는 거대한 대기실.
정현은 대기실의 소파에 앉아 몸을 기대고 있었고, 이제 한국 나이로 열한 살이 되는 겨울이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정현은 여유로운 자세로 겨울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겨울이 이제 이해되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몰라도 괜찮아. 아빠가 무대에 오르는 걸 보면 이해가 될 테니까.”
“네!”
정현은 겨울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들 부녀에게는 일상적인 평범한 대화였지만, 메건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똑똑-
둘만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을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 공연 5분 전! 스탠바이!
그제서야 정현은 소파의 팔걸이에 걸쳐 두었던 재킷을 손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그리고 동네의 가까운 곳에 다녀오는 것처럼 말을 하곤 겨울이의 손을 잡고 대기실을 나섰다. 둘은 대기실 문 앞에 길게 이어진 복도를 걸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둘의 곁을 스쳐 지나갔지만, 이들 부녀는 천천히 자신들의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스타디움의 잔디밭까지 이어진 입장 통로.
정현은 눈부시게 빛나는 통로의 끝에 멈춰 서곤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사랑하는 딸을 향해 물었다.
“겨울아. 음악 좋아해?”
“네! 아빠만큼!”
“아빠도 좋아해. 겨울이만큼.”
겨울이는 정현을 바라보며 밝게 웃었고, 정현은 통로에서 홀로 빠져나와 수많은 함성 소리를 헤치고 무대 위로 연결된 계단 위를 올랐다.
넓디넓은 스타디움 한가운데에 세워진 무대 위, 12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의 눈이 정현을 바라보았다.
정현은 그들을 향해 가볍게 눈인사를 하곤 무대 한가운데에 놓인 마이크를 향해 걸었다.
“안녕하세요. 이정현입니다.”
““와아아아아아!“”
그리고 전 세계 음악사에 전설로 남을 공연이 시작되었다.
–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完) –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