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21
020화
2021년의 추석 9월 21일 화요일. 추석 연휴는 전 주 토요일부터 이어져 5일짜리 휴가가 되었다.
여느 때 같다면 3일짜리보다 길어졌다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어야 할 가족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클래식 공연이나 영화 개봉, 콘서트는 명절이 호황이다.
원래대로라면 이정희는 공연 일정을 잡았을 테지만 집에 있었다. 이정희뿐만이 아니라 이정화와 김지숙 역시 집에 있었다.
어디에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정현을 위해서였다.
사실 정현은 가족들의 이런 부분이 부담스러웠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하고, 평소에도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 한 달간 법원과 검찰청을 오가며 받은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는 걸, 가족들은 느끼고 있었다.
평소라면 장난스럽게 툭툭 말을 내뱉을 정현에게 아무리 말을 걸어도 돌아오는 답변이 없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와 다르거나 말거나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터넷 포털 사이트만 들어가도 정현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었으니까.
“절대로 인터넷 하면 안 돼. 알았지, 현아?”
마치 아이를 달래듯 말을 걸어오는 큰누나 정희와.
“다 구속해 버려야지, 이런 걸 그냥 두냐! 아무튼 이 한국 땅에서는 경찰, 검찰이 문제야. 얼마나 돈을 처먹었길래 이런 걸 그냥 둬?”
정현보다 더 흥분해서 날뛰는 작은누나 정화.
“현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현이 좋아하는 갈비찜 해 줄까?”
다섯 살 먹은 꼬맹이를 챙겨 주듯 말을 건네는 어머니 김지숙까지, 평소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민족 최대 명절이라는 추석은 소리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스트리밍 사이트에 올라간 음원으로 인한 수익의 정산금 수십억 원이 추석 직전에 들어왔지만, 집안의 그 누구도 정산금 따위에는 신경 쓸 수 없었다.
***
이정현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학교 앞과 집 앞에 진을 치며 기다리는 기자들에게 시달리는 것은 물론, 민·형사 소송으로 인해 법정에 서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소송을 당해 막다른 길에 몰린 잡지사 측에서도, 저작권 침해 의혹으로 맞고소를 하는 바람에 검찰청까지 들어가서 조사를 받아야 했다.
물론 저작권을 침해당한 피해자를 찾을 수가 없었기에 해당 소송은 한 달도 채 지나기 전에 불기소 처분이 되었지만, 정현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정현의 공연이 끝나고 석 달이 지난 11월 15일 수요일 오전 10시, 서초구의 관할 지방 법원인 서울 중앙 지방 법원.
본인이 변호사를 사서 소송을 시작했지만, 주요 참고인으로 법정 증언을 해야 하기에 정현은 윤 교수와 함께 법원으로 향했다.
“괜찮을 거야. 다 정현이 네가 만든 것 맞잖아.”
법원 주차장에서 청사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며 꺼낸 윤 교수의 말에 정현은 침묵했다.
이 침묵이 그녀의 말을 부정하거나 긍정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단지 기분이 나빴을 뿐이다.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누구도 정현이 네가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을 거야.”
윤 교수는 정현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싶은 마음에 꾸준히 대화를 시도했으나 아직 별다른 답변을 얻지 못했다. 이번에도 답변이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교수님.”
기대하지 않았던 정현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응? 왜?”
정현은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저 이제 안 할래요. 음악이 싫어요. 따지고 보면 음악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잖아요. 그 사람들이 나를 믿지 못하는 것도, 언론사하고 사람들이 증거를 요구하는 것 모두.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자살한 것까지도 다 음악 때문이에요.”
윤 교수는 정현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저 한국이 싫어요. 아니, 사람이 싫어요. 자신들이 믿지 못한다고 존재하지 않는 거라면, 그냥 존재하지 않게 만들어 주고 말래요.”
정현이 꺼낸 말을 윤 교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만든 백 곡이 넘는 엄청난 수준의 음악들을 포기할 거라는 말이었다.
아니, 어딘가에 묻어 두겠다는 말일 테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음악가가 한국에서 나왔다는 기대감으로 시작했던 윤 교수의 장기적인 계획은 이렇게 시작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현은 지정된 법정의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변호사와 앉은 뒤, 자신의 공판이 시작될 때를 기다렸다.
소송을 시작하고 나서 한 달.
그사이에 수많은 언론사와 악플러들은 소송에 당했다는 것을 알고 정현이 무고하다는 것을 인지하였지만,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현이 합의는 없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언론과 악플러들은 오히려 더 발악하듯 정현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와 악플들을 쏟아냈다.
이 때문에 바빠진 것은 장재열 변호사였다. 혼자서는 자료 수집을 모두 할 수가 없었기에 아르바이트까지 고용해가며 자료를 수집했다.
또한, 상대 언론사들에 의해 거대 로펌이 움직였다는 것을 알고, 그에 맞먹는 다른 거대 로펌에 공동 변호 의뢰까지 넣는 등 크고 작은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현재 정현의 옆에 앉은 변호사는 총 세 명. 장재열과 로펌 소속 변호사 두 명이었다.
오늘 공판은 명예 훼손과 모욕, 허위 사실 적시(악플)에 따른 민사 소송. 형사 소송은 이 사건의 공판이 종료되면 시작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검사에게 들었다.
소송을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지만, 민사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할 경우 형사의 기소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이 그 이유였고,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정현은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았다. 그저 억울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정현의 공판이 시작되는 판사의 개정 선언이 들렸다.
“사건 번호 2021두000000. 공판을 시작합니다.”
양측 변호사들과 관련인들은 빠르게 자료를 갖고 변호인석으로 이동했다.
“그러면 오늘 첫 번째 참고인 이정현. 자리해 주세요.”
판사가 정현을 증인석으로 불러내었다.
“증인은 앞에 놓인 선서문에 따라 증인 선서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현이 증인석 앞에 놓인 서류철 같은 것을 펼치자 법정 증인 선서가 보였다.
“선서.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정현은 선서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왜 이곳까지 나와서 법정 다툼을 해야 하는지, 자신이 한 일을 왜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았다 하는 것인지도 말이다.
하지만 법정 공방이 아니고선 이 일을 끝낼 방법이 없었다.
상대방의 주장대로 정현은 악기도 다루지 못하고, 작곡에 관련된 그 어떤 것을 교육받은 일도 없었으니까.
단지 저들의 말 중에 틀린 것이 있다면 ‘정현이 만든 것이 맞다’라는 것뿐이다.
정현이 증인 선서를 마치자, 판사는 상대방 측에 말했다.
“피고 측 변호인 시작하세요.”
피고 측의 변호인단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증인은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해 교육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이럴 줄 알았다. 자신이 약한 부분만을 골라 공격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장재열 변호사에게 이미 들었다.
정현은 미리 생각한 대로 질문이 들어오자 생각한 대로 대답했다.
“아니요.”
정현이 빠르게 답변하자, 나이 많은 변호사는 바로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증인은 작곡하기 위해 교육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아니요.”
정현이 대답하자, 변호사는 피식하는 웃음을 지으며 바로 판사에게 말을 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증인이 방금 말한 것처럼 증인은 작곡하기 위해 그 어떤 교육도 받은 일이 없습니다. 이처럼 전문적 교육을 받아야 할 수 있는 게 작곡입니다. 증인 자신이 곡을 만들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피고 측 변호사가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질문을 하고 판사에게 말을 하자 장재열 변호사가 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피고 측 변호인. 질문은 끝났습니까?”
판사가 물었다.
“네. 이상입니다.”
피고 측 변호사는 짧게 답변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면, 원고 측 변호인 질문 하세요.”
판사의 선언이 끝나고 장재열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현에게 향했다.
“증인은 성악을 하기 위해 교육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장재열 변호사는 정현에게 윤주란 교수가 성악에 대한 것을 가르친 사실이 있느냐 물었다.
이것은 대외적으로는 스승이어야 하는 윤주란 교수를 대놓고 무시하는 일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굉장히 민감한 일이었다.
방청석에 앉은 수많은 기자가 웅성대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성악이 여기에서 왜 나와?”
“성악으로 콩쿠르를 싹쓸이할 정도면 제대로 배웠던 거 아니야?”
“조용! 조용! 여기는 신성한 법정입니다. 정숙하세요!”
판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법정을 침묵하게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없습니다.”
방청석에서는 조금 전보다 더 큰 소란이 일었다.
“성악을 배운 적이 없다고?”
“그게 말이 돼?”
“성악계의 신성이잖아! 한국대 윤 교수 추천으로 국제 콩쿠르도 갔다 왔고!”
기자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이정현에 대한 정보들로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조용! 조용! 마지막 경고입니다!”
소란을 잠재운 판사는 장재열 변호사에게 계속 질문하라는 말을 하였고, 장재열은 정현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증거로 제출한 이 노트북 컴퓨터가 증인의 것이 맞습니까?”
법정 증거로 제출한 랩톱이었다.
“네. 맞습니다.”
정현은 랩톱을 바라보곤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 노트북 컴퓨터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전원만 켜면 누구든 접근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장재열 변호사는 정현의 지문이 있어야 잠금이 풀린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것을 다른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장치라는 것으로 증명하려 했다.
“제 지문이 없으면 잠금이 풀리지 않습니다.”
정현이 대답했다.
“이 노트북 컴퓨터 안에 증인이 만든 곡들이 모두 들어 있나요?”
“네.”
정현이 대답하자 피고 측 변호인석에서 소란이 일더니 나이 많은 변호사가 외쳤다.
“원고가 곡을 만들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피고 측 변호인! 경고입니다. 주어진 시간에만 발언하세요!”
판사는 능숙하게 나이 많은 변호사의 말을 일축하더니 장재열 변호사에게 말했다.
“계속하세요.”
“네, 재판장님.”
장재열 변호사는 판사를 향하던 시선을 돌려 다시 정현을 바라보고 말했다.
“증인은 악기도 다루지 못하시고, 성악도 배운 사실이 없으며, 작곡에 관한 것도 알지 못합니다.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정현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증인, 작곡은 어떻게 할 수 있었습니까?”
장재열 변호사는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정현에게 물었다.
“머릿속에서 음악 소리가 들립니다. 그 음악 소리를 로직, 그러니까 작곡 프로그램에서 그대로 옮겼습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네.”
정현의 답변이 끝나자, 장재열 변호사는 판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새로운 증인을 요청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 판사는 대답했다.
“증인이 이 자리에 있습니까?”
장재열은 답변했다.
“예.”
판사는 다시 물었다.
“사전에 요청된 증인인가요?”
장재열은 그에 다시 대답했다.
“네. 요청한 바 있습니다.”
법정의 절차에 따라 장재열은 윤주란 교수를 증인석에 세웠고 그녀가 증인 선서를 마치자 질문을 이어갔다.
“증인은 원고인 이정현에게 성악을 가르친 사실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윤주란 교수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증인은 대외적으로는 원고 이정현의 스승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가르친 사실도 없는데 스승이라는 말을 붙일 수는 없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네, 동의합니다.”
장재열 변호사와 윤주란 교수의 질문 공방은 쉼 없이 이어져 갔으며, 그에 따라 피고석에 앉은 변호인단, 방청석에 앉은 기자들의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원고는 증인에게 스승이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뭐죠?”
“제가 정현이에게 가르친 것은 음악이나 성악 같은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가르치기는 했다는 말인 것 같네요. 그렇다면 증인, 무얼 가르치셨죠?”
윤주란 교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장재열을 향해 있던 고개를 돌려 원고석에 앉은 정현을 바라보고 대답했다.
“한국대 교수인 윤주란을 이용하여 국제 콩쿠르에 나가는 방법입니다.”
윤 교수의 답변이 끝나자마자 장재열은 고개를 돌려 판사를 바라보고 말했다.
“이상입니다.”
법정 안은 단숨에 다시 소란스러워졌고 판사는 10분의 정회(쉬는 시간)를 선언했다.
불리함을 느낀 피고 측은 이 틈을 타 정현에게 다가가 다시 한번 합의를 요청하였으나, 정현은 받아 주지 않았다.
피고 측 변호사가 자리로 돌아가자 정현은 목소리를 낮춰 장재열 변호사에게 말했다.
“아저씨. 증인이 한 명 더 있어요.”
“그래? 누군데?”
“저의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요.”
정신과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많은 한국에서는 정신과 의사가 법정에 서는 일이 드물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주로 강력 범죄에서 심신 미약에 의한 감형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견해로 인해 정현이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 역시도 사건에 불리함을 불러올 수 있었다.
장재열은 고민이 되었다. 정신과 상담 기록을 오픈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렇지만 정현이 그것을 공개하겠다고 하는데 변호사인 자신이 막을 수는 없었다.
이 의사가 사건을 봉합하는 데 중요한 증인이 될 수 있다면 불러오는 것이 맞는다는 판단을 했다.
모든 것이 끝난 뒤에 정현에게 향할 사람들의 의심을 없애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어차피 오늘 공판은 쉬는 시간이 끝나면 다음 공판 기일 선언 후에 끝날 거야. 그러면 내가 증인 신청해 둘게.”
“네. 아저씨만 믿을게요.”
정현은 모든 걸 다 드러내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정신과 진료 상담 기록이 머릿속에서 음악이 들린다는 증거가 될 것이리라.
정회 선언 후 밖으로 나갔던 판사가 돌아온 뒤, 다음 공판 기일을 선언한 후 공판이 종료되었다.
정현을 비롯해 법정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향했고, 기자들은 법원 입구에서 정현을 기다리며 질문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차에 올라타 돌아갔다.
그리고 장재열 변호사는 법원에 남아 있었다. 새로운 증인을 요청하기 위해서.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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