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22
021화
2차 공판일인 12월 20일 오전 10시, 다시 서울 중앙 지방 법원.
법원의 일 처리는 아주 느린 편이다. 법정의 판결을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컴퓨터로 문서 정리가 가능해진 21세기에도 사건의 판결은 사람이 내린다. 22세기에도 그럴 것이다.
1차 공판이 이례적으로 빠르게 이루어진 편에 속했다.
물적 증거가 정현의 랩톱과 계좌 거래 명세뿐이었던 것도 있지만, 악플러를 제외하면 사건에 관계된 모든 사람이 도주 우려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건의 판결은 증인들의 증언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원고인 이정현에게 작곡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증인은 굉장히 중요했다.
장재열 변호사는 증인으로 정현이 정신과 상담을 받았던 의사를 세웠다. 피고 측에서는 이미 증인에 대한 고지를 받았겠지만, 이 자리에 의사가 나오는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증인은 선서하고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판사의 말에 따라 의사는 선서하고 자리에 앉았다.
원고 측이 요구한 증인이었기에 원고 측 변호사인 장재열에게 먼저 질문 순서가 돌아왔다.
“증인은 원고 이정현의 불면증에 대해 상담을 하신 적이 있지요?”
“네.”
“그렇다면 불면증의 구체적인 원인을 알고 계십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그 원인을 이 자리에서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전… 의사입니다. 환자의 병에 관련된 비밀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걸 말하기 위해선 환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의사는 원고석에 앉은 정현을 바라보았다. 정현은 시선을 마주치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 모습을 장재열 변호사가 보고 말을 이었다.
“본인의 동의가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증인, 불면증의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환자… 이정현 씨는 소리가 들려와 잠을 잘 수 없다고 상담을 요청했었습니다.”
의사가 한 말을 장재열이 받았다.
“소리라…. 구체적으로 어떤 소리라고 하였는지 들으신 바가 있습니까?”
의사는 장재열의 말에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음악… 소리라고 했습니다.”
음악소리라는 말이 법정 안에 퍼지는 순간 장재열 변호사는 몸을 돌려 판사를 향해 말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난번 공판 때 원고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음악소리가 들려 온다는 증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오늘 이 자리에서 증인으로 자리한 원고의 정신과 주치의가 한 발언은 해당 증언을 뒷받침하는 크나큰 증거라 생각합니다.
본 발언과 지난 공판 때 원고의 발언을 모두 법정 증거 발언으로 채택해 주십시오.”
“본 발언을 증거로 채택합니다.”
장재열 변호사는 판사에게 향했던 몸을 돌려 다시 증인에게 말을 이었다.
“증인, 상담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의사가 답변을 시작했다.
정현이 방문하여 불면증에 대해 토로한 일, 그 원인이 음악소리가 들려 오는 것 때문이었다는 것도.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생각할 때는 음악적 영감인 것으로 보였으며, 영감을 쏟아내면 편안해질 것이라 한 것과 정현이 시도해 보겠다 한 것 역시 모두 말했다.
“그 이후 원고가 증인을 다시 방문한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불면증이 해소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의사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증인의 조언이 도움이 되어 그것을 실행한 것으로 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럴 것으로 생각합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장재열 변호사가 인사를 한 뒤 자리로 돌아가자 판사는 피고 측을 향해 물었다.
“피고 측, 증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피고 측 변호인단은 물어볼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의사와 기자 가운데 누가 더 발언에 공신력이 있느냐 묻는다면 당연히 의사일 것이 아닌가.
의사의 발언은 너무도 확실한, 강력한 증거였다.
“없습니다….”
판사는 공판을 10분간 정회하고 자리를 비웠다.
정현은 증인석에서 물러나 돌아갈 채비를 하는 의사에게 다가가 감사의 인사를 하고 다시 원고석으로 돌아왔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돌아온 판사는 다음 공판이 사건을 마무리 짓는 선고 공판이 될 것이라 말하며 재판을 마무리하였다.
사실 증언과 계좌 거래 명세에서 보이는 타당성이 명확하기에 선고를 내리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이정현에게 줘야 할 보상 금액 역시 계산해야 했기에 그것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정현이 민사 소송에서 요구한 것은 언론사의 기사 하나당 100억과 악플러의 악플 하나당 1천만 원의 보상금이다. 또한 사건의 정보 공개 권한.
형사 소송의 소장에서 이들에게 모두 실형을 원했고, 담당 검사는 민사 재판의 선고 공판과 동시에 사건을 기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선고 공판일은 2주 뒤였다.
***
여름 방학 때 시작된 논란은 반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결론이 나질 않았고, 언론사들은 벌써 법정에서 불리하다는 정보가 퍼졌기 때문인지 정현에 관한 기사를 올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형사 기소가 되질 않아서 악플러들은 멈추질 않았고 장재열 변호사와 아르바이트생들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캡처를 해야만 했다.
선고 공판일이 1주일 정도 남았을 무렵, 학교로 정현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바로 최초 의혹 기사를 게재한 클래식 전문지 의 기자인 원강현이었다.
학교 앞까지 찾아와 전교생이 보고 있는 앞에서 무릎을 꿇은 원강현을 정현은 무시한 채 그냥 지나쳤고 이 모습이 사진에 담겨 그대로 기사로 올라갔다.
언론들은 합의나 용서를 받아 주지 않는 이정현을 두고 냉혈한으로 깎아내리기 바빴으나, 그 기사들을 깊숙하게 파고들면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는 전혀 나와 있지 않았다.
또한 아직 선고되질 않았기 때문인지, 사과나 정정 기사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몇몇 언론사에서는 기사를 삭제하였지만, 이미 해당하는 기사들은 별도의 증거물로 채택이 되어 법원에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여전히 ‘이정현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모임’은 물밑에서 활동 중이었다. 그들은 정현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음악들의 작곡가를 자신들이 찾아내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 조사에 의해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한 혐의만 추가되었다.
선고 공판일 하루 전날인 1월 2일 일요일.
결국 벼랑 끝에 몰린 언론사들은 정현이 정신과 상담을 받았었다는 것을 기사에 노출시키며, 이정현이 정신병으로 인해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장재열 변호사의 예측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들의 기사에는 무엇 때문에 정신과 상담을 받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장재열 변호사는 이 기사들 역시 모두 캡처하여 형사 법정의 추가 증거로 제출하기로 하였다.
이에 정현은 자신의 이름으로 웹사이트를 하나 만들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정신과 상담은 불면증으로 인한 것뿐이며, 언론사에서 허위로 주장하는 정신 병력과는 무관함.]그리고 가장 확실한 증거인 정신과 진단서의 캡처 사진이 포함되었다.
***
선고 공판일인 1월 3일 월요일 서울 지방 법원 입구에는 수많은 사람이 진을 치고 정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뻔뻔하게도 마지막까지 발악하며 정현을 깎아내리기 바빴던 언론사들은, 법원의 입구에서 시위하듯 길을 막으며 정현을 들여보내지 않으려 하였다.
정현이 법정에 들어가든 들어가지 않든 선고 공판이 진행되는 것은 같음에도 말이다.
이 모습은 중립 기어를 넣고 지켜보던 YTM과 공중파에서 촬영하여 실시간으로 특집 보도되고 있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말로 보도의 당위성을 표방하는 언론들이 자신들만의 이득을 위해 한 명의 인권을 허위 보도로 침해하였던 사건이 있었죠. 이 소식을 김대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네, 김대기입니다. 저는 지금 서울 중앙 지방 법원 앞에 나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잠시 뒤 세기의 논란이라고 할 만큼 시끄러웠던 진실 공방의 선고 공판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난 8월 성악가 이정현 씨가 국내 유력 언론사와 악플러들을 상대로 민·형사상의 소송을 제기했던 바로 그 사건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음악계의 모 언론사에서 이정현 씨가 타인의 저작물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매하려 한다며 소위 밀어주기 의혹을 제기.
이에 이정현 씨는 법원에 자신이 음악을 만들었다 주장한 노트북 컴퓨터와 통장 거래 명세 등을 증거로 제출하며 해당 기사가 명백히 거짓임을 밝혀왔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인 이정현 씨가 지속해서 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해당 기사를 모방한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정현 씨가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물질적 피해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몇 달간 계속된 진실 공방에서 피해자인 이정현 씨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 자신이 만든 100곡이 넘는 곡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사건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통장 거래 명세 때문입니다. 이정현 씨와 주변 관계자의 계좌에서 인터넷 방송에서 보여 준 150곡의 대가로 특정할 만한 금액의 거래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증거가 되어, 선고 공판에서 이례적으로 거액의 추징금을 징벌적인 의미로 허위 기사를 남발한 언론사들에 부과할 것이 유력한 상황입니다.
YTM 뉴스 김대기입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국민들도 언제 이렇게 무고한 피해자가 될지 모르기에 경계를 해야 하는 무서운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법원은 당연하게도 정현의 승리를 선고했다. 다만 보상 금액에서는 정현 측이 원한 것과 조금 달라졌다.
악의적 기사를 실었던 기사 개수가 가장 많은 언론사는 100억 원이 내려졌으나 그 외 다른 언론사들은 기사 개수에 따라 차등되었다.
악플러에게 받기를 원했던 악플 하나당 1천만 원은 악플 하나당 1백만 원 수준으로 줄었지만, 그들에게 사과문을 10장씩 받기로 하였다.
YTM을 비롯해 공중파 뉴스에 보도되며 큰 파장을 일으켰던 사건이기 때문인지 정현이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정보 공개 권한 역시 주어졌다.
이와 동시에 정현은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 위해 만들었던 웹사이트에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언론사, 기자, 악플러의 신상 명세 및 사진을 게재하기로 마음먹었다.
선고 공판이 끝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정현은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갔다.
“신상 정보를 조사해 줄 사람이 필요해요.”
정현은 장재열 변호사에게 말했다.
“신상 정보?”
“네. 탐정이든, 심부름 센터든. 사람의 신상 명세, 현재 직업, 가족 구성. 하다못해 어제저녁에 무얼 먹었는지까지 조사해 줄 수 있는 사람이요.”
“그런 게 왜 필요한데?”
정현은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장재열 변호사를 향해 말했다.
“나한테 칼을 들이댄 것들이 멀쩡하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
장재열 변호사는 처음 보는 정현의 화난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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