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23
022화
“여기다.”
장재열 변호사를 따라 도착한 곳은 서초역에 널린 변호사 사무소들 가운데에 있었다.
탐정 사무소.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금지된 대표적인 직업 중 하나가 탐정이었다. 그래서 심부름 센터 같은 이상한 이름의 간판으로 영업을 하는 곳이 대다수였고.
하지만 1년 6개월 전인 2020년 8월, 탐정이 합법이 되면서 한국에서도 많은 심부름 센터나 흥신소의 간판이 탐정사로 바뀌게 된 곳이 많았다.
1990년대의 추리 만화들이나 고전 소설인 셜록 홈스처럼 형사 사건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그런 탐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민간 정보 조사 기관이 합법이 된 것은 정현이나 장재열 변호사에게는 반길 만한 일이었다.
방금 공판이 종료되었는데 바로 불법을 저지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까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수많은 언론들이 정현을 노리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었다. 장재열 변호사는 조심스럽게 민간 조사가 자격을 가진 괜찮은 탐정을 알아보았고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만남이 성사될 수 있었다.
선고 공판이 지나고 2주가 흐른 2022년 1월 17일.
정현은 장재열 변호사와 함께 대법원 앞에 있는 한 탐정사를 찾았다.
“이 목록에 있는 모든 사람과 회사의 정보를 정기적으로 조사해서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재열 변호사는 모든 사건 관계자의 이름과 언론사가 나와 있는 목록을 탐정에게 주었고, 정현은 지속적인 조사 비용으로 매년 5천만 원을 주기로 계약하였다.
사실 민간 조사 업체에서는 건당 착수금으로 받는 금액과 완수될 경우 받는 금액이 정해져 있다.
다만 정현이 맡기는 일의 경우에는 조사해야 할 인원이 좀 많긴 하지만, 지속적인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탐정사 특성상 지속적인 수입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반길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탐정사에서는 조사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정보 갱신 기간은 1년, 계약 기간은 10년. 탐정사에는 5억짜리 일이었다.
비록 수백 명을 조사해야 했지만, 현재 확실한 직장이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조사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2022년 2월 8일. 겨울 방학은 어제 끝났고, 며칠 동안은 학교에 다시 나가야 하는 날.
학교 앞은 서로 불쌍한 척을 하는 가해자들이 아우성치며 정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판이 종료되었지만 정현의 평화는 이미 깨져 버렸고, 형사 기소된 수많은 피의자들이 여전히 선처를 바라고 있었지만, 정현은 단호하게 모두 거절했다.
정현이 이들의 선처 요구를 모두 거절하자 그들의 부모가 찾아와, 자식들에게 빨간 줄을 긋고 싶다면 자신들에게 먼저 그어야 한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신고받은 경찰들에게 연행되었다.
당연히 이들에게도 합의는 해 주지 않았다.
학교의 선생들이나 학생들과 관련된 사람들도 있었는지 학교 안까지도 찾아왔지만 어림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현은 인터넷 웹사이트 관리 업체를 만나 자신의 웹사이트 정보를 탐정사에서 받은 자료들로 정기적인 업데이트를 하는 계약을 맺었다. 연간 금액은 역시 5천만 원. 그리고 계약 기간은 정현이 사망할 때까지였다.
웃기는 건, 정현에게 배상금을 수천만 원 이상 지급해 주어야 할 ‘이정현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모임’이 여전히 시위 중이었다는 것이다.
법원에서도 판결이 났고 증거 부족으로 인해 항소까지 기각되었는데 말이다.
장재열 변호사는 이 상황을 카메라에 담아 형사 재판 증거로 삼기 위해 담당 검사에게 보내는 일이 이제 일상처럼 되어 버렸다.
스트리밍 사이트의 음원 순위는 반년이 지나도록 연주곡 부문 1위부터 9위까지 모두 이정현이 작곡한 곡이었고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정산금 역시 엄청날 것이다.
정현은 교실의 책상에 앉아 무심하게 은행 앱을 확인하고 있었다.
“돈이 엄청나게 벌리네…. 이래서 노이즈 마케팅하나 보다. 노래들이 하나같이 우울하던데 어떻게 그런 노래가 순위에 오르지?”
자신이 만든 음악들을 거침없이 깎아내린다. 그래도 별로 상관은 없었다.
배상금으로 들어와야 할 돈보다, 정산금으로 들어와야 할 돈이 더 많다.
언론사들이 순순히 돈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직 정정 기사도 올리지 않아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법원에서 강제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아마 입금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통장의 잔고는 돈이라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핸드폰 안 내? 담임한테 걸리면 엄청나게 혼날 텐데.”
김수원이 걱정하듯 말했다.
“혼나면 뭐 어떠냐…. 뭐라 그러면 들이받지 뭐. 안 그래도 지금 나보고 쌈닭이라는데.”
이제는 경찰서고 뭐고 하나도 두렵지가 않았다.
“이젠 질릴 때도 된 것 같은데 말이지, 크크크.”
“넌 좀 네 자리로 가라, 좀. 옆에서 자기 자리 차지했는데, 말도 못 하고 기다리는 거 안 보이냐?”
앞자리에 앉는 소심한 녀석이 수원을 힐끔힐끔 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엇, 미안, 미안. 자꾸 버릇처럼 이 자리에 오게 되네, 나도 모르게.”
“아…. 아냐, 괘, 괜찮아….”
김수원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뒤 다시 자리에 엎어졌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상황이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정현은 그저 조용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언론에, 사람에 치여 사느라 공부를 하나도 못 했다.
지난 몇 번의 시험에서 전교 최하위권의 성적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학교를 나오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은 마음. 인터넷 커뮤니티에 수학을 포기한 자가 있다면 정현은 모든 과목을 포기한 자에 가까웠다.
자신의 작은 꿈이었던 평범하게 사는 삶이 예전보다 더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이 것도 전부 음악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거지 같네, 진짜….”
자신의 고민은 고민이고,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차기 동아리 부장을 지명하는 일도 정현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형, 저 실용 음악과 가려고요.”
삶에 치여 오지 못했던 동아리실에는 웬 미친놈이 하나 더 늘어 있었다.
뭐, 가시밭길을 본인이 가고 싶다는데 말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 그래…. 잘해라.”
정현은 진혁에게 무엇 하나 가르쳐 준 것이 없었다.
아마추어로 살아갈 것인지 프로가 되고 싶은 것인지 결정은 진혁 자신이 내린 거고, 보컬 레슨은 수원이 잠시 해 주다가 영 신통치 않아 보컬 학원에 다녔다.
의외로 보컬이 진혁에게 잘 맞았었는지 음역도 그럭저럭 여유 있게 넓히고 있었고 발성법도 쉽게 익혀갔다.
얼굴도 꽤 괜찮게 생긴 녀석이라 노래만 잘하면 잘 먹힐 만했다.
자신의 미래도 신경 쓰지 못하는데 자신보다 더 잘나갈 것 같은, 잘생긴 놈을 신경 쓰다간 가랑이가 찢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현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의 미래가 순조로워 보였다. 적어도 본인의 미래보다는 훨씬.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
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 정정 기사 하나 올라오질 않았다.
판결만 있으면 바로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은 너무 그대로였다.
그 어떤 것도 바뀌지 않았다.
언론사는 하루 이틀 보상금 지급과 사과문 게재 집행을 미루려고만 했고, 정현을 향한 시선은 여전히 차갑게 느껴졌다.
정현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은 것은 작은누나의 졸업식인 2월 17일이었다. 졸업을 축하할 겸 민사 소송에서 이긴 것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두 모인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
“졸업 축하해. 졸업 선물은 집에 가서 줄게.”
정현이 오랜만에 웃으며 이야기했다.
“뭐야, 깜박하고 안 갖고 온 거야? 섭섭한데.”
정화는 서운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정현은 아무런 대꾸 없이 웃어넘겼다.
“졸업 축하해, 정화야!”
졸업을 축하한다는 말들과 선물들이 오갔다. 그 흔한 취업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 볼 수 없었다.
취업이라는 것은 이 집안에서 오히려 평범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나… 할 말이 있는데.”
정현은 이 기뻐하는 분위기 사이에서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어머니인 김지숙과 누나들은 평소와 너무 다른 태도로 말을 꺼내는 정현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저 바라만 볼 뿐.
“학교 그만둘래요, 나.”
난데없이 나온 정현의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선언에 가족들은 모두 놀랐다.
“왜? 무슨 일 있어?”
“누가 괴롭혀? 어떤 놈이야! 누가 내 동생을!”
“…….”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자리를 정리하듯 정현이 말을 다시 이어갔다.
“아니, 내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서. 공부하는 것도 학교 수업을 못 따라가서 과외로만 했잖아. 이러면 학교가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배움의 때를 놓쳤기에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남들은 공부가 쉬웠니 어쩌니 하면서 다들 잘만 하던데, 자신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학교에 갈 때마다 기자들하고 사람들이 교문 앞에서 나 기다리고 있는 것도, 너무 스트레스받아. 그만 다니고 싶어.”
고등학교 기간을 겨우 1년 남겨놓은 상황에서, 정현의 발언은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그의 가족들은 완벽하게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정현이 힘들어할 때 함께했기에 어느 정도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뭐 할 건데?”
김지숙은 무거운 분위기에서 힘겹게 입을 열어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특유의 부드러운 말투로 말을 건넸다. 학교를 그만둔 다음 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일단은 좀 쉬고 싶어요. 여행도 다니고.”
“작은누나랑 같이 갈까? 누나도 졸업해서 이제 백조잖아. 시간 많아.”
정현의 가족은 정현이 학교를 그만두는 것을 다른 가족들처럼 반대하지 않았다.
“엄마는 항상 우리 현이 편이야, 알지?”
“큰누나도 현이 항상 응원하고 있어.”
정현은 자신의 가족이 평범하지 않음을 그렇게도 싫어했었지만, 지금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이 순간에 가족들 누구도 반대하지 않음을 감사하게 여겼다.
축하의 자리는 저녁 늦도록 계속 이어졌다.
정현의 충격 선언 이후에도 즐거운 대화가 오가며.
3학년 1학기가 시작해야 할 3월이 오기 전인 2월. 정현은 학교에 자퇴원을 제출했다.
학교의 선생들과 행정실 직원들은 그가 학교에 나오지 않음을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반겼다.
학교 앞에 매일 진을 치고 기다리는 기자들 때문이었다. 더는 막무가내로 학교 안에 들어오려는 기자들을 막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정현은 사라졌다.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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