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hates music RAW novel - Chapter 24
023화
“어흐, 춥다…. 뭔 놈의 눈이 이렇게 와.”
2032년 2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곡 전문 엔터테인먼트 회사,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JHJ 토탈 뮤직에 들어서는 남자 김수원.
국예종을 졸업한 뒤 이곳에 입사한 지 4년. 이제는 어엿한 시니어 작곡가가 된 김수원은 항상 그렇듯 자신의 친구가 만들어 놓은 웹사이트를 열며 하루를 시작했다.
유치원 때부터 항상 붙어 다니던 가장 친한 친구인 이정현이 사라진 뒤 10년 동안, 군대에 있던 기간을 제외하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아침마다 확인하고 있었다.
“변한 게 하나도 없네.”
웹사이트상에 올려진 정현의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에 대한 정보들은, 매년 꾸준히 업데이트되며 날조된 허위 기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이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은 대부분, 이미 실형을 받은 사람은 형기가 만료되어 출소했지만 더 이상 기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목록에 있는 잡지나 일간지의 경우는 폐간된 것이 반 이상이었다. 날조 기사를 쓰는 삼류 저널이라는 딱지가 떨어지지 않았다.
역시 그런 이유로 폐간되며 편집장은 실업자가 되었고, 정현에 대한 날조 기사를 가장 먼저 작성했던 원강현은 현재 무직인 것으로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감옥 갔던 사람들도 돌아왔는데, 너는 언제 돌아오냐….”
그는 자신의 책상에 놓인 가장 왼편의 액자를 바라보았다. 그 사진 안에는 여섯 살부터 자신의 형제라 믿으며 살아 왔던, 원한다면 자신이 대신 죽어 줄 수도 있을 거로 생각했던 친구의 짓궂은 모습과 자신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수원은 그 액자를 한 번 쓰다듬고 내려놓았다.
책상에 놓인 세 개의 액자들의 가장 왼쪽에는 여섯 살 무렵에 정현과 함께 찍었던 사진, 가운데 있는 것에는 자신의 두 살 먹은 딸인 지유의 사진, 오른쪽에는 자신과 딸 그리고 부인인 최지회와 돌잔치에서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들어 있었다.
Rrrrrr-
책상에 놓인 전화기가 울렸다.
“네, 김수원입니다.”
[팀장님, 사장님께서 유지현 씨 관련 정규 앨범 회의하신다고 올라오시랍니다.]“그래, 알았어.”
그는 작은 수첩과 함께 재킷을 챙겨입으며 자신의 방을 나섰다. 오늘도 그렇게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았다.
올해 시무식에서 새로 만들어진 A & R 3팀의 팀장의 자리를 맡게 된 김수원.
그가 지금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여성 솔로 가수 중 독보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유지현의 앨범이었다.
그녀의 앨범은 항상 사장이었던 정혁진이 맡아왔는데, 그가 작곡에서 잠시 손을 떼겠다고 선언하면서 자신이 넘겨받게 된 것이다.
부담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솔로 가수에, 기존 프로듀서는 학교 직속 선배이니 말이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사장실의 문을 열며 눈이 마주친 사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사장인 정혁진은 사장이나 대표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했기에, 대부분의 직원은 선배님이라고 하거나 프로듀서님이라고 불렀다.
그래 봤자 사장이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응, 그래. 나온 것 좀 있어?”
“일단 자리 좀 앉고요, 선배님. 너무 급하시다니까, 흐흐.”
“야, 네가 내 자리 와 봐라. 체리 엔터 사장이 하루에도 열두 번을 더 전화해. 곡 언제 나오냐고.”
테마도 정해지지 않았다. 우선 테마부터 정해야 하는데, 정혁진의 스타일은 곡에 맞춰서 테마를 지정하는 스타일이었다.
물망에 올랐던 곡은 유지현 본인이 다 싫다며 쳐낸 상태였다.
“아직이요. 만들어진 곡 10곡 정도 지현 씨한테 보내 봤는데, 다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예요.”
“원하는 게 뭔데? 들은 거 없어? 아직 백지야?”
수원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에휴…. 없어요. 어쩌죠? 이러면 정규는 못 내잖아요. 그렇다고 아이돌처럼 싱글 내자고 하기엔 화낼 것 같은데….”
“마, 급이 싱글로 간 볼 급은 아니지. 차라리 기다리거나 할 것 같은데.”
오늘의 회의도 큰 영양가가 없어 보이는 느낌이다.
“직접 얼굴 보고 이야기를 해야 결론이 날 것 같은데…. 회사로 부르건 밖에서 만나건 한번 보자고 하면 안 될까요? 계속 전화로만 하니까 감정 소모만 되는 것 같아요.”
“큰일이네…. 이번 앨범 작업 들어간 지가 벌써 3개월인데 이 정도쯤 되면 원하는 게 한두 개는 나와야 정상이거든? 그런데 평소랑 다르단 말이지.”
삐이이이이입!
두 남자가 답이 나오지 않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인터콤의 버저가 울렸다.
“아후, 놀라라. 이거 볼륨 좀 낮춰 놔야지. 내가 이것 때문에 심장 마비 걸리겠다, 진짜. 네.”
혁진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인터콤의 버튼을 눌렀다.
[피디님, 유지현 씨 오셨는데요.]“응? 약속된 거 없잖아. 갑자기 왜 왔지? 알았어요. 들여보내요.”
인터콤의 연결이 끊어지고 비서실에서 기다렸는지 곧바로 유지현이 방 안에 들어왔다.
특유의 짧은 머리를 하고, 몸매를 강조하는 피처럼 붉은 니트에 눈처럼 하얀색 모직 코트를 손에 들고.
“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 피디님? 어휴, 난방 좀 약하게 하세요. 건물 안이 무슨 여름 같아.”
“응? 아냐, 아냐. 안 그래도 지연 씨 이야기하고 있었어. 겨울인데 따듯하면 좋지, 뭘 그래.”
“어쩐지 귀가 간지럽더라니. 대체 무슨 욕을 하고 계셨던 거예요.”
유지현은 이 자리에 여러 번 왔었던 만큼 자연스럽게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가 처음 보는 수원을 보곤 고개를 돌려 혁진에게 말했다.
“이분은 누구…?”
“아, 이번에 지현 씨 앨범 맡을 김수원 프로듀서. 얼굴은 처음 봤나?”
“김수원입니다. 항상 바쁘셔서 전화 통화만 해서 제 얼굴도 아실 거로 생각했네요. 하하. 처음 뵙겠습니다.”
수원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예, 잘 부탁드려요.”
지현은 밝게 웃으며 답했다.
“대체 매니저는 어디 두고 혼자 다녀? 톱스타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오래 걸릴 것 같아서 밖에서 시간 좀 보내고 오라고 했어요. 오늘 앨범 컨셉까지는 뽑아야죠. 바쁘다고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잖아.”
원래 정혁진은 체리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작곡가였다. 거기에서 음악 경연 프로그램의 우승자인 유지현과 계약하게 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지현은 음악 경연 프로그램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어 국민 여동생으로 시작해, 현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가수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정혁진은 그런 유지현의 데뷔 앨범부터 작년에 나온 정규 6집까지 지난 8년 동안 내놓은 여섯 장의 앨범에 작곡과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2집까지는 체리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3집부터는 자신이 세운 JHJ 토탈 뮤직의 수장으로.
그만큼 가장 많이 마주한 사이였다.
“그럼 내려가서 나 빼고 둘이서만 이야기할래? 이번에는 내가 참여하는 게 아니니까 괜히 사공 많아지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일단 음료수는 사 주면서 내보내세요. 그냥 내쫓으면 나 서운해.”
수원은 혁진과 지현의 친분 과시에 거의 한마디도 끼어들 수 없었다. 혁진이 곧 커피를 사서 배달해 주겠다고 하고 나서야 사장실에서 나와 수원의 사무실로 향했다.
수원은 사장실이 있던 8층에서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5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지현에게 말을 걸었다.
“일단 저희 팀원을 부르려고 해도 컨셉 같은 게 안 나왔으니 원하시는 컨셉을 찾아보는 게 우선이라 생각해서 제 사무실로 가려 합니다.”
지난 3달 동안 수십 번의 전화 통화를 했음에도 처음 얼굴을 마주해서인지 어색한 침묵이 자주 흘렀지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수원과 함께 5층에 있는 사무실에 들어온 지현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저는 웬만한 건 다 해 봤 잖아요. 이번에는 좀 신선한 걸 해 보고 싶어요. 재미없는 거 말고 재밌는 거.”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신선한 걸 시도하는 건 용기일 수도 있지만, 때론 무모한 짓이라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 세상.
성공하면 용기라 포장하고 실패하면 만용, 오만이라 깎아내리는 게 이 바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원하시는 건 없나요? 제가 보내 드렸던 곡이 저희 팀에서 만들고 모았던 곡들의 엑기스만 모았던 건데, 전부 뻥뻥 차여서….”
유지현은 잠시 고민을 하듯 턱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말했다.
“음…. 엑기스들 말고 추려지지 않은 것들을 좀 듣고 싶어요. 필터링 안 된 것들.”
“골라내지 않은 곡들을 전부요?”
수원은 살짝 놀랐다.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녀가 원하는 취향에는 잘 맞춰 왔다고 생각했다.
“네. 전부 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콘셉트가 정해지지 않으면 그가 팀장으로 있는 3팀은 마비 상태일 테니까. 어떻게 해서든 방향을 정하는 게 중요하다.
“알겠습니다. 잠시 전화 한 통만 할게요.”
수원은 자신의 팀원들이 갖고 있던 음악들을 모두 모아 회사 내 NAS(Network Attached Storage. 보통 ‘나스’라고 부르며 네트워크에 연결된 저장 장치를 칭한다)에 올리라 지시하고 자리에 앉아 팀원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지현에게 말을 걸었다.
“일단 곧 저희가 만든 곡과 수집한 곡 전부 다 올라올 거예요. 수가 좀 많긴 한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럼요, 당연하죠. 시간 많아요.”
둘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대화를 시도할 때마다 이상하게 어색한 침묵의 기류가 흘렀다.
아무래도 일개 팀장의 사무실이다. 소파 같은 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사무용 의자에 앉아 자리가 불편해서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쯤 혁진이 말했던 커피와 간식이 도착했고, 둘은 커피를 마시며 어색한 침묵을 지킬 수 있었다.
촹~
가벼운 기타 스트로크에 이어지는 부드러운 선율의 소리가 들려 왔다. 바로 이어지는 남성 보컬의 목소리.
I thought I saw a girl brought to life~
둥둥! 쿵쿵!
드럼과 베이스의 소리가 이어진다.
수원은 지난 10년간 지정해 놓았던 자신의 휴대 전화 벨 소리인 줄 알고 깜짝 놀라 주머니에 있던 전화기를 꺼내 보았지만, 자신의 전화가 아니었다.
“응? 뭐지?”
음악은 계속 이어지다 끊어지며 유지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언니. 어. 여기? 5층. 잠깐만.”
지현이 눈을 돌려 수원을 향하며 물었다.
“여기 어떻게 찾아와야 해요? 5층에서?”
수원은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답했다.
“A & R 3팀장실로 오면 됩니다.”
“A & R 3팀장실이래. 응. 알았어, 좀 이따 봐.”
전화를 끊자 사무실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빨대로 음료수를 마시는 소리와 간식의 봉투를 뜯는 소리만 가득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대답하기 전에 문이 열렸다.
“언니~!”
“안녕, 지현아! 오랜만이네!”
“이게 얼마 만이야?”
오랜만에 만나 돌고래 울음소리로 회포를 푸는 두 여자를 앞에 두고 김수원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 너 수원이 아니니?”
방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가 수원에게 말을 걸었다.
“엥? 언니, 김수원 팀장님 아세요?”
“맞지? 맞지? 너 진짜 오랜만이다, 수원아, 잘 지냈어?”
당황해서 좁아졌던 시야가 급격하게 넓어지며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어? 정화 누나?”
“그래, 예쁜 정화 누나야. 오랜만이네? 어떻게 지냈어?”
그녀는 10년 전에 사라졌던 자신의 절친한 친구 정현의 누나인 이정화였다.
음악이 싫은 음악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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